기똥 찬 방망이 3
저녘녁이면 매일이다시피 아내가 작업하는 담미헌까지 걸어서 찾아간다. 나의 일과이다. 이제는 운전 면허증을 갱신하려 해도 치매 검사도 받아야 하고,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면서 운전 솜씨를 못 믿겠다고 하니, 나도 자존심이 있다면서, 구질구질하게 성질을 죽여가면서까지 면허증을 바꾸기 보다는 차를 없애버렸다.
그리고는 아내의 작업실까지 3km쯤 되는 길을 걷는다. 내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중의 하나가 ‘늙은이는 걷기 운동이 건강에 최고다.’ 면서 걷기를 합리화한다. 내가 결정한 일이 마치 종교적 신념이라도 되듯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활짝 펴고, 다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걷는다. 그런데도 내 자세가 정말 꼿꼿한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발이 헷갈리면서 뒤뚱거리지는 않는지, 걷기를 할 동안 온갖 잡 생각이 머리에 가득하다. 웬지 길의 보도 블록이 울퉁불퉁해 보인다. 내가 뒤뚱거린다면 보도 블록 탓으로 돌린다. 길을 오고 가는 사람이 걸기적거려서 바른 자세를 하고, 똑 바로 걷기가 힘이 든다면서 투덜거린다. 방망이가 또 참견이다.
”내 잘못이 아니고, 남이 잘못했다는 거지,“
”요즘 세상의 진리잖아. 내로남불.“
”어디서, 못 된 것만 배우셔서 가지고. 이런 것도 원하는데로 들어 주어야 해요? 나더러 자꾸 이런 걸 원하면 내가 아무리 주인님의 분신이더라도 말을 따르지 않는 수도 있어요.“
”방망이 씨,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당신의 숙명이야. 당신은 나의 욕망이잖아. 하나님이 당신을 그런 용도로 만드셨잖아. 나의 욕망을 따라야 하는 것이 숙명이란 걸 인정해야지.“
‘숙명’이란 말을 되씹더니 자기는 당신의 욕망을 이루어주어야 하는 것이 숙명이라면서 방망이도 입을 다물었다. 하기 싫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나의 욕망으로 만든 자기의 숙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차가 없어지고 나서는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에는 관심이 멀어졌다. 길이 한산하든, 홍수났을 때의 마을 앞 개울처럼 차가 길을 넘쳐나도 남의 일이 되었다. 이제는 사람이 다니는 길, 보도라고 하는 것이 더 관심을 끈다. 보도라면 사람만 다니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길 위로 다닐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다닌다. 다니라고 만든 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탓할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자전거는 도로 교통법으로는 차라고 한다. 자전거가 보도로 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은 법이 하는 말이고, 현실의 자전거는 자기가 보도의 주인인 양 휘젓고 다닌다. 나도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다. 마주 오던 자전거가 내 곁을 지나가면서 내 왼쪽 팔을 툭 치고 지나갔다. 팔을 보니 상처가 난 것은 아니지만, 조금 아프다. 나는 멈춰서서 뒤돌아 보았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미안하다 라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그 사람도 자전거를 멈추고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나를 돌아보고 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태도가 아니다. 뭔가 내게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내가 사과를 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나더러 듣기 싫은 소리를 할 것 같은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돌아섰다.
걸어오면서 생각해보니 저 앞에 자전거가 오는데도 나는 내 길을 똑 바로 걸어갔다. 나는 자전거가 비켜가리라고 생각했고, 자전거는 자전거대로 부딪히면 당신이 손해니 네가 비껴가야지 라고 생각했을까. 내 나이가 얼만데, 이럴 때 내가 가장 쉽게 들고나오는 무기가 나이이다. 앞에 영감쟁이가 어기정거리면 젊은 넘이 비켜가야지. 라는 게 내 생각이다.
”방망이 씨, 내 말이 맞지.”
“누가 뭐래. 당신 말이 백 번 옳지.”
“기똥 찬 방망이씨, 내 말이 옳으면 그녀석에게 혼줄이 나도록 해주어야지.”
“그러고 싶지만------, 그 녀석의 자전거가 꽈당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당신더러 치료비에, 뭐라더라 정신적인 뭐뭐 하면서 돈을 청구할텐데, 그래도 그 녀석을 길바닥에 넘어져서 머리를 다치도록 해줄까. 감당할 자신 있어요.”
“세상이 그렇게까지 험할라구.”
“허어, 이 영감탱이 봐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더 험하다오. 떠도는 이야기보다 더 험해요. 일부러 사고를 위장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뒤돌아 보니 자전거는 이미 멀리까지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불을 환히 켠 오토바이가 굉음을 울리면서 인도로 뛰어오르더니 저만치 앞에서 다시 차도로 들어간다. 빨리 가야 할텐데, 앞에서 우회전한답시고 차가 얼쩡거렸나 보다. 신호등 앞에 서 있던 나는 깜작 놀라서 흠칠 뒤로 물러났다.
‘저러다가 사고를 나면 어쩔려구.’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방망이 씨가 잽싸게 대답한다.
“매스컴에서 한 말씀 하시겠지. 빨리 배달을 끝내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려던 50대 가장의 안타까운 죽음을 전합니다. 집에는 등록금을 내야하는 귀여운 딸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라면서 눈물을 짜내는 온갖 언어들을 사용하여 슬픈 분위기를 만들겠지.”
“사실이 아니잖아. 무리하게 교통 위반을 하다가 난 사고잖아. 그 사람 때문에 오히려 선량한 운전자가 피해를 보는데.”
”허허, 모르시는 말씀, 메스컴에서 배달하는 오토바이 운전자가 잘못했다고 보도하는 걸 본 일이 있어. 뉴스가 관심을 끌려면 평범한 사실로는 안 되지. 하층민은 무조건 정의롭고, 착한 사람으로 만들고. 상류층 사람에게 핍박받고 시달리어야 하고, 그런데도 가족을 위해서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해야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어. 그렇게 도색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메스컴을 외면하지. 뭐라더라. 자기들도 먹고 살려면 시청율에 목을 메야 한다잖아. 그렇게 하려면 사고를 낸 사람이 아니고 당한 사람이 악한 사람이 되어주어야 하는거야. 매스컴도 살아 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질질 짜잖아.“
”사고를 당한 운전자는 잘못이 없는데도.“
”자기 차를 운전하는 상류층이니 무조건 나쁜 넘이지. 왜 오토바이가 아니고 네 발 달린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거야. 그게 죄지.“
”우와, 오토바이에 부딪히지 않았음을 감사, 감사. 또 감사해야겠네, 까딱 했다가 착하고 성실한 사람을 잡아먹은 나쁜 넘이 될 뻔 했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입니다. 나, 기똥 찬 방망이가 기똥 찬 충고를 하겠습니다. 감성을 건드리지 않고 과학적인 근거로 충고합니다. 인도이든, 차도이든 사고가 나면 젊은이보다는 늙은이의 사망률이 훨썬 더 높아요. 이건 통계이고 과학입니다, 과학이니, 미신이니 또 내가 옳니, 네가 잘못이니를 따지기 전에 안전이 제일이지요. 이것이 노인이 명심하고 살아가야 하는 방법입니다. 노인의 소망은 감정을 만족시키기보다는 하루라도 더 사는 것 아닙니까.“
”방망이 씨 말, 명심하겠네.“
첫댓글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글은 역시 재미가 있어야 읽게 되네요.
방망이씨 케릭터 쨩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