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서 나를 안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나를 반갑게 마지해 주십니다.
그런데 가족이 두분뿐입니다.
`다 어디로 갔지?`
할아버지께서는 나의 이름과 주소와 가족상황을 물으시고, 나는 아는대로 대답해 드렸습니다.그리고 어머니가 총에 맞아돌아가셨다고 하고 겨울 피난때 어머니 시신을 찾아 가매장하였다고 하자 놀라워 합니다.
나의 왼쪽 어깨밑의 총상을 보여달라고 하시기에 팔을 걷어 보여드리자
상처가 거의 한뺨이나 된 것을 보고 놀라시고 아직도 한곳에에서 조그만 피고름이 나는 것을 보십니다.
할머니께서 저녁상을 들고 들어오시며 우리셋이 같이 저녁을 먹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양반집에서는 어른이 먼저 드시고 나면, 그제서야 가족들이 밥을 먹었는데 여기에서 같이 먹다니 !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라고 나는 어머니에게서 배운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남의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반드시 그런 인사를 드리도록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양반집자손이고 대단한 명필입니다.어머니가 쓴 붓글씨를 보면 모두가 놀랍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어려워 하며 하얀 쌀밥을 다 먹었는데 굉장히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또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라고 절을 하였습니다.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의 요와 이불을 펴시고 그 옆에는 내가 자도록 요를 깔아주는데 그 요는 비단금침으로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요이고, 이불도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비단금침입니다.
"들어가 자거라"
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데 거지같은 옷을 입은 더러운 내가 어떻게 이런 좋은 비단이불을 덮고 잘 수가 있는가?
나는 매우 거북하여 망서리는데
"괜찮다 편히 들어가 자거라"
고 하십니다.
나는 몹시 거북해 하며
"예 어르신 감사히 자겠습니다,어르신께서도 편히 주무셔요""
라고 절을 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나는 이런 비단 이불속에서 처음 잠을 자 봅니다.
나는 누워서 잠시 생각해 봅니다.
딸이나 아들이나 누가 걸혼할것이기에 준비한 금침인데, 이것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인민군들에게 죽은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고 이런 이불을 거지같은 내가 덮으라고 하실 일이 아닙니다.
나는 말못할 그런 사정이 있는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숙기가 없어 감히 그런의문을 묻지를 못합니다.
나는 너무 피곤하여 그만 잠속으로 떨어집니다.
♡ ♥ ♡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일찍 잠을 깼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도 이미 일어나 책을 보시고 계시는게 아닌가?
나는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세수하고 들어와 조용히 이불을 깹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앞에 엎드려
어머니에게서 배운 양반에게 드리는 문자 인사를 합니다.
"기체 후 일향 망강 하시옵니까?"
라고 인사드리자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시며
"그래 너도 잘 잤느냐?"
"예"
"네 고향이 어디냐?"
라고 묻기에
"장호원입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거기에 지금 누가 사느냐?"
라고 하시기에
"외삼촌이 살고 있어요"
라고 말해드렸습니다.
"외삼촌 성함을 아느냐?"
"예 민경소 입니다."
"오 이런 !"
할아버지가 놀라시며
"네 어머니 존함이 누구시냐?"
"민유순입니다."
"나는 민경소를 좀 안다, 지금 그분은 이천장호원 읍장이 아니냐?"
"예 맞아요,"
"네 어머니와는 어떤사이냐?"
"제 어머니의 친오빠입니다."
"허 ! "
탄식을 하십니다.
"1890년대에 우리나라 국모이신 명성황후가 일본의 자객에게 살해 된후 일본인들이 민씨의 가족들을 찾아 3대를 멸하려고 하자, 가족들이 모두 흩어져 살았는데
경기도 여주, 용문산,장호원, 충주등에서 살고 있음을 내가 잘 알고 있었는데, 그 후손을 여기에서 만나게 되다니 !"
라고 혼잣말 처럼 하시는데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날 아침도 우리는 세사람이 같이 겸상을 하였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는 이제 떠나려고 엎드려 절하며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라고 하고는 하직하고 그곳을 떠나는데
힐아버지께서
"그래 잘 가거라"
고 하시며 마루에서서 내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바라보십니다.
(계속)
첫댓글 모처럼
배고픔과 편안한 숙면을 했군요
어머니가
민씨 집안이라
배움이 많군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어서오세요 사랑벼리님 찾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 어머니는 아주 깔끔하셨고 꼿꼿하셨어요 그런데 청주에 계신 이모님은 우리 어머니의 언니인데 저를 보면 늘 이런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엄마는 우리3형제중에 망내이면서 우리 언니들을 꼼쩍도 못하게
했단다 너무 쌀쌀맞었다 라고 한말이 기억 납니다.
아하, 어머님 성정이 대단하시다 했었습니다. 그 전쟁터에서 형광등등 님을 지켜오신 모습이
민비를 닮으신 듯 합니다.
영의정을 하셨던 민치록의 따님 민비, 고향이 여주라고 오래전 '이조 오백년사'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천 장호원 읍장이신 외삼촌님을 찾아가셔서 좋은 일들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초라한 소년에게 비단금침을 내 주셨던 할아버지 할머님 참 따뜻하게 와 닿습니다.
형광등등 님 추측대로 어떤 아픔이 있었을 것 같네요.
요즘 바빠서 카페글 잘 못 읽는데 형광등등님 연재는 계속 기다립니다.
좋은 나날 되세요.^^*
송초님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송초님도 우리나라 근대사에 대하여 알것은 다 아시네요
일본을 탓하기 보다 우리나라 영반제도가 나빴어요
그래서 발전이 너무 늦었지요 ^)*
훌륭하신 어머님의 가르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군요.
예로부터 반갓집에서는 가정 교육에 신경을 써 자손들을 올곧고 바르게 키우는데 집중했습니다. ^^~
순수수피아님 오셨어요? 하하하 이 아침에 무조간 방가 하하하
그런교육이 계속 되었으면 우리나라 더 좋았을텐데 지금은 이상하개ㅔ 변했어요 감사
말로만 들어보았는데 비단금침에서 주무셨군요.
그 이불을 내어놓으신 할아버지 심정이 어땠을까요.
전쟁의 아픔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예 베리꽃님, 아마 당신의 아들이 죽었나봐요
장가갈때인것 같아요 전 지금 가슴이 미어져 눈물이 납니다. 감사
어린나이셨을때
많은 일을 겪으시고
많은 사람들도 만나시고-
훌륭하신 어머님이셨네요.
어서오세요 아녜스님 감사합니다.
제가 그때15살이었지만 12살쯤으로 보일만큼 어려보였어요 하하하 감사
외가 집안의 어른을 만나셨네요.
옛날엔 먼 일가들도 식구처럼
잘 지냈었지요.
어린나이 이신데 참 어른께
예절을 잘 지키셨네요ㅡ
무악산님 어서오세요 아직 외삼촌 집에 가지도 않았는데요 하하하 감사
인생길 가다보면 좋은 일도 나쁜일도 다 겪게 되지요
그것이 참혹한 전쟁만 아니라면 웬만히 이겨 낼수는 있을 텐데요
예 맞아요, 전쟁만 아니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심성들이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감사
인생의 힘이 되어 준 귀인과 조력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누구나 인생고개 열두고개를 다 넘지 못하고 쓰러질 것입니다. 힘들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도움을 줬던 이들의 은혜를 생각하면 여지껏 살아온게 나 잘나서 살은게 아님을 절감합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대접 주는 정성과 배고픈 이에게 밥한그릇 주는 공덕도 크거늘 하물며 비단금침에 하룻밤을 재워준 노부부의 온정은 필경 천사였겠지요,,, 어머니께 배운 예절과 예법이 공손하여 뼈대 있는 가문의 근지가 엿보입니다. 무극에 사시는 삼촌댁으로 가는 길은 또 어떠한 험한 여정이 기다릴까요? 의지가지 없이 떠밀려 다니는 소년의 처지가 눈물납니다.ㅠㅠ
예 자하님 저를 아주 정확히 보셨어요 그냥 떠밀려 다녀요 하하하다음이 궁금하시지요.
그런데 제가 나이가 들어 이날의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한 번 찾아가 봐야 겠다고 하면서도 선듯 가지못하고 한참 세월이 지난뒤에 그곳을 걸어가 보았습니다, 전의 기억을 더듬어 40리를 갔지만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 아무 엣 흔적이 없어 헤매다가 그냥 돌아왔습니다.제가 그때 동내ㅔ 이름이라도 알았어야 하는데 바보같은 짓을 하였어요.
그러나 제가 그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느님에게 그를 천국으로 인도해 달라고 분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