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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단지 모자를 하십니까?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2
금년 3월 26일은 안중근의사님이 순국하신지 101주년이 되는 날이다.
금년에도 안중근의사님의 마지막 유언“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 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를 이루어 드리지 못하고 추모일을 맞으려니 복받치는 마음 가눌 길이 없다.
나는 2004년도 5월 부천시장에 당선이 되면서 자매도시 중 안중근의사님이 이등박문을 저격한 역사적 현장이 있는 하얼빈시와 각별한 관심을 갖고 교류하게 된다.
2005년도 1월 하얼빈시 빙설축제에 초청을 받고 시장으로서 처음 하얼빈시를 방문하면서 내 기대는 하얼빈시에 가면 안중근의사님의 흔적이라도 만나보고 싶은 설래임 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하얼빈시에 가본 기대는 너무 허무했다.
하얼빈시 그 어느 곳에도 안중근의사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부천시와 하얼빈시와는 10년의 교류역사를 갖고 있다.
이해선시장 3년, 원혜영시장 6년의 교류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하얼빈시에 우리의 민족영웅 안중근의사님에 대한 아무런 흔적도 만들어 놓치 못하고 지방정부간 교류만 해 온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대한민국 부천시장으로서 하얼빈시에 진출해있는 한국기업인회(한상회)의 상황과 애로사항이 무엇인가? 하얼빈에 민족영웅 안중근의사님의 기념사업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로 초점을 맞추어 지방외교를 진행했다.
여기서 한상회를 위한 지방외교 성과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고 안중근의사님의 기념사업 성과를 기록하고자 한다.
나는 대한민국 부천시장으로서 하얼빈시 정부에 안중근의사님의 기념사업 추진을 요청했다.
“안중근의사님은 비록 한국인이지만 조선침략과 중국침략의 원흉인 이등박문을 저격하여 일본의 만행을 세계만방에 알린 시대적 영웅임이 틀림없다. 그러니 중국정부와 하얼빈시는 안중근의사님의 기념사업에 협력함이 마땅하다. 더욱이 안중근의사님의 마지막유언이 [내가 죽거든 내 뼈를 하얼빈공원에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조국으로 반장해 다오]였는데 현재까지 안중근의사님의 시신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이 통탄하고 있다. 그러니 안중근의사님의 동상을 하얼빈공원(현재 조린공원)에 세워 길이 기념되도록 특별조치를 취해 달라” 고 요청했다 .
그러나 하얼빈시장은 “외국인 동상은 중앙정부의 승인사항으로 세울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더 이상 거론치 말 것을 요청해 왔다.
그래도 나는 “하얼빈시에서 안중근의사님의 흔적이라도 남겨야하고 기념사업이 추진돼야 한다.”는 뜻을 전하며 지방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노력 끝에 2006년도 하얼빈시 두우신서기와 석충신시장이 용단을 내려 조선족 예술회관 2층에 안중근기념관을 만들고 하얼빈공원에 안중근의사님의 휘호 비 청초당(靑草塘)과 연지(硯池)를 세워 안중근의사님의 흔적을 만들어 기념하게 됐다.
후일 장천파 외사판공실 주임으로 부터 “이 사업은 홍시장님의 간청을 해결하기위해 두우신서기가 정치적 위협을 무릅쓰고 추진한 사업”이란 애기를 들었다.
하얼빈시는 인구980만의 대도시다.
역사적으로는 고구려 영토였으며 발해국의 발원지가 되는 도시로서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역사왜곡이 시작되는 도시다. 이런 도시와의 지방외교는 여러 면 에서 중요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외교적 차원의 교류를 증진시켜왔다.
나는 지금도 이 작은 성과에 깊이 감사 하고 무엇보다 부천시와 최고의 지방외교를 진행시켜준 하얼빈시 두우신서기와 석충신시장, 장호렴시장. 장천파 주임 장미화차장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2006년 하얼빈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기업인이 하얼빈시에 안중근동상을 세웠다 얼마 후 철거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동상을 3년이나 하얼빈시에 보관했다가 안중근의사 이등박문 저격 100주년을 맞이하여 2009년도 하얼빈시에서 여순감옥을 거처 고국에 들여왔는데 안중근의사님의 동상을 그 어느 도시도, 어느 단체도 유치하는 곳이 없어 갈 곳을 못 찾고 국회 뜰에 방치됐다는 신문보도를 접하고 나는 심히 분개 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100년 전 국가 잃은 국난의 시대에 안중근 의사님은 오직 대한독립을 위해 독립군으로 전쟁을 하고, 단지를 끊고, 혈서를 쓰고, 조국침탈의 원흉 이등박문을 저격하는 의거를 성취하고 끝내는 가정도 버리고 목숨도 버린 민족의 영웅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세계 10위권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에 그분의 동상을 맞이하는 도시도 단체도 없다니.. ...!!!
가슴이 미어지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어쩜 이럴 수가... !!! 지금 우리가 잘사는 것은 그냥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분명 안중근의사님 같은 애국선열들의 수많은 희생과 목숨 건 투쟁이 밑거름이 된 것이거늘 이를 망각하고 그 뜻을 받들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어떤 일이 있어도 그분들의 희생은 기념돼야하고, 교훈돼야하고, 세세토록 찬양돼야 마땅하거늘 이리 박대해도 되는가?
나는 즉시 “안중근의사님의 동상을 부천에 유치토록 명령을 내리고 직접 협의하여 안중근동상을 2009년 10월 26일 의사님의 이등박문 저격 100주년 기념일을 기하여 중동공원에 제막하고 공원 명을 안중근 공원으로 명명했다.
안중근의사님의 동상을 제막하는 날 나는 25분의 기념사를 하면서 5번이나 울음을 터트려야 했다.
안중근의사님이 너무도 불쌍해서.....! 안중근의사님의 그 큰 애국애족의 정신을 몰라주는 세상이 야속해서....! 안중근의사님과 함께해주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각오를 새롭게 했다.
이 공원을 안중근 공원으로 잘 조성하고 안중근기념관을 만들어 부천시민 누구나 안중근을 가슴에 품고 사는 교육장화 하려는 꿈을 그리게 된다.
2010년 1월 5일 15년간 연례행사로 추진돼온 하얼빈시 빙설제 초청을 받고 공무해외여행허가, 여권비자발급, 행사일정협의 등 모든 절차가 끝나고 출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1월 4일 폭설이 내렸다.
워낙 큰 폭설이라 경인전철까지 연착되고, 아무리 비상근무를 하고 제설작업을 해도 해결할 길이 없는 준 재난의 폭설이었다.
나는 비상근무 지시를 하고 제설작업에 총력을 경주했다.
이런 와중에 시장이 내일 오전 중국으로 출국해야하는 부득이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참모들과 논의를 했지만 국제교류 상 안갈 수 없고, 부시장을 대신 보내자니 여권비자발급의 시간적 여유가 없고.... 해서 시장은 계획대로 하얼빈에 가고 부시장과 참모들이 비상근무를 하며 제설작업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하얼빈시를 방문하게 된다.
또 하나 이유는 안중근 공원조성과 기념관건립을 위하여 자료 수집 차 하얼빈시를 방문해야 하는 시급성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나는 하얼빈시에 갈 때 안중근단지 모자를 쓰고 가고, 하얼빈시에서 안중근단지 모자를 쓰고 다녔고, 안중근단지 모자를 쓰고 귀국했다는 것이다.
그 만큼 나는 안중근을 존경했고 안중근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1월 9일 입국하는데 비행기에서 내리 자 마자 MBC, KBS 방송 카메라가 나를 붙잡고 눈 폭탄에 하얼빈시 빙설제에 놀러 간 것이 맞느냐? 는 시비조의 인터뷰가 있었다.
나는 하얼비시와 15년의 지방외교가 있었고 금년에도 예년과 같이 하얼빈시를 공무 방문한 것임을 누누이 설명했으나 내 설명은 필요 없고 오로지 눈 폭탄에 놀러간 죄인취급 하는 질문으로 30여 분간 논쟁을 벌였다.
참다못해 인터뷰를 거부하고 돌아서는 데 나는 붙잡고 강제적으로 눈 폭탄에 놀러 간 죄인취급에 나는“시민 앞에 부끄러운 짓 한 것이 없다” 마지막 답변을 하고 견디다 못해 “MBC”가 쇼하는 거냐? 항의하고 돌아서 왔다.
지금도 나는“시민 앞에 부끄러운 짓 안했습니다.”답변한다.
나는 대한민국 부천시장으로서 명예와 품의를 지켰으며 하얼빈시 방문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안중근공원조성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돌아왔으며 또 방문단에 여야 시의원 8명과 수행공무원, 방문단 그리고 관내 헬로 TV기자 등 50여명이 함께 동행 했으며 방문단은 지금도 하얼빈시와의 지방외교를 높이 칭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밤 9시 MBC, KBC, SBS, YTN 등 모든 공중파에 눈 폭탄에 놀러간 시장이란 톱기사로 방송하고 전 언론이 “눈 폭탄 놀러간 시장, 재임기간 중 28회나 놀러 다닌 시장...이란 제하에 기사를 실었다. 그것도 제설담당국장을 대동하고(제설담당국장은 건설교통국장으로 비상근무를 했고 도시국장이 수행했음)라고 자극적으로 거짓 선동한 것이다.
내가 더 놀란 것은 이모든 제보를 연결한 것이 민주당 시의원들과 홍건표시장에 대한 허위 거짓비난성 기사를 수 백통 올려놓은 뭐 인터넷 신문기사에 전 언론과 방송이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한심한가?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안중근단지 모자를 쓰고 들어오는 내 모습을 찍어 보도하면서 안중근단지모자는 못 보고 “눈 폭탄에 놀러간 시장, 고개숙인시장, 야구모자 쓰고 변장하고 들어오다 들켰다”고 비난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정당한 행정행위로 공무해외여행허가를 받고 지방외교를 하고, 하얼빈시에 안중근을 심어놓고, 안중근단지 모자를 쓰고 들어오는 홍건표 시장은 못보고 전 언론이 [눈 폭탄 외유]라고 온갖 거짓 비난 보도를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 언론과 방송이 진실은 외면하고 이리도 무책임하고 유치한가? 가슴이 녹아내리는 분노를 참아야 했다.
이 거짓 왜곡보도로 나는 엄청난 정치적 치명타를 입었다.
내 짧은 인생에도 여러 번 경험했지만 세상에는 진실이 묻히고 거짓이 하늘을 뒤덮는 비리가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
나는 다음날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정작 하고 싶은 애기... 터트리고 싶었던 발표문을 삼켜야 했다.
그 내용은 “나는 부천시장으로서 그간 5개국 7개 도시와 자매결연 을 맺고 지방외교를 성공적으로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오늘 부로 교류를 단절할 것이다. 그 이유는 시장의 정당한 자매도시와의 결연방문을 전 언론, 전 방송이 놀러 갔다고 죄인으로 단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절의 그 책임은 홍건표 시장을 죄인으로 공격한 전 언론과 방송 그리고 정치공세를 한 야당과 거짓을 가장한 좌파 시민단체가 책임을 져야 할 젓이다.” 였다.
홍건표시장은 왜 이 말을 삼켜야만 했는가?
나는 분명 안중근을 존경하는 사람, 그 표시로 안중근단지 모자를 쓰고 하얼빈 에 갖고, 단지 모자를 쓰고 귀국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나는....못하겠습니다.”이 말을 내 밷으려는 순간 안중근의사님의 말씀이 가슴에 못 박혀 들어왔다.
“홍시장 너는 안중근을 존경한다는 것이 맞냐? 단지 모자를 쓰고 들어오면서...! 안중근은 일제의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압제를 당하다 목숨까지 다 버렸는데....! 너는 그까짓 [눈 폭탄] 거짓선동하나 못 참고 나는 못하겠다. 안 하겠다...하는 것이 맞냐? 네가 대한민국 부천시장 맞냐?” 이 말이 가슴에 걸려 말을 못하고 삼켜야 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 흑색선전 비난을 다 당하고 결국 나는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했다.
그리고 김만수 시장과 민주당, 소위 좌파 시민단체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눈 폭탄사건”을 선거공보에 한 면을 탑으로 싣고 선거기간 내내 “눈이옵니다.”퍼포먼스 까지 하며 흑색선전으로 일관하여 성공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안중근 단지모자는 못보고 야구모자에 변장이라니... !
이들에겐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없다. 비전도 없다. 안중근을 가슴에 품을 생각도 없고 국가를 위하여 목숨 걸 다짐도 없다. 오직 거짓 선동과 거짓 이슈로 정권만 잡으려는 포풀리즘이 있을 뿐이다.
역사는 이들에 대한 심판을 할 것이다.
나는 안중근의사님 순국 101주년을 맞이하여 이 어지러운 세상 !
천안함이 공격을 당해도 “미국 놈의 소행”이라고 거짓충동을 하고 “연평도가 공격당했는데도 북한에 대해 성토한마디 안하는 정치세력의 선동”에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 무너지고 정의가 상실되는 현실을 개탄하다.
지금이야말로 국가위난이 시대다.
나만이라도 안중근의사님을 가슴에 담고 단지 모자를 쓰고 대한민국의 통일을 위해 목숨 걸 것을 다짐하고 남은여생 살아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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