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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동서양 투석기에 관한 소고-기술적 패러다임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carrhae 추천 0 조회 4,194 06.06.09 21:48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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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6.09 22:10

    첫댓글 조총의 경우 따지자면 일단 조총을 처음 보았을때 선조는 조총을 군기시에 보관하게 합니다 이 군기시는 지금의 국과연이죠 그리고 이전에 점화식 발사체계인 승자총통 시리즈들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조선은 총을 무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 06.06.09 22:43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했을 때 다양한 공성무기를 개발해 사용한 적도 있었는데, 동양의 공성기술이 낙후되었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 06.06.09 22:45

    그리고 원나라가 남송의 양양성을 공격할 때 사용한 투석기(회회포-만자니크)는 훌라구가 정복한 페르시아 지역에서 차출된 이슬람 기술자들에 의해 발명된 것입니다. 그걸 서양의 기술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죠.

  • 06.06.09 22:54

    645년 5월 17일, 이세민이 이끄는 수십 만의 당군이 고구려 요동성을 공격했을 때 포차를 사용했었죠. 포차(抛車)는 투석기인데, 3백 근 무게의 석탄을 1리(250미터)나 날릴 수 있었고, 성문과 성벽을 부수는 공성 망치인 당차(撞車)도 있었습니다.

  • 06.06.09 22:58

    그리고 수십 명의 병사가 한꺼번에 타고 올라가 성벽에 뛰어 내릴 수 있는 용도의 이동식 사다리인 운제도 있었고, 이동식 공성탑 역활을 하는 누각도 개발해 사용했습니다. 또, 안시성 공략 당시에는 성벽을 마주보는 크기의 토산(土山)까지 만들었습니다. 동양의 공성 기술이 그렇게까지 낙후된 것은 아닙니다.

  • 작성자 06.06.10 00:09

    전상용님->조총을 군기시에 보관하게 한 것만으로 조총의 효용을 크게 인정한 것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총을 처음 본 조선인들의 평가내용중에 제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차라리 활을 쓰는것만 못하다고 한 내용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총이 조선에 소개된건 임진왜란 발발 한참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란시 왜군의 조총을 보고 충격을 받은 조선군의 모습만 봐도 조총이 그동안 조선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06.06.10 05:40

    군기시에 보관한것 뿐만 아니라 조총에 대한 모든 전술적 유용성에 검토가 들어갔고 칼해님이 지적하신 것과 같이 "지금 쓰고있는 무기를 쓰는게 낫다" 라는 결론이 나온것이죠. 조선 군관들이 보기엔 총통이나 조총이나 그놈이 그놈같은 무기였을 것이고, 또한 생산단가가 더욱 더 커질게 뻔하므로 조총무장을 보류한 것이라 볼수 있습니다. 실제 일본군에게서 조총 활용법을 익힌 후에는 대규모 조총 생산에, 나중에 가선 머스켓 까지 복제하는데 성공하죠. 뭐 벨테브레가 복제한 머스켓은 "그놈이나 그놈이나 주의"로 사장당했습니다만 -ㅅ-;;

  • 작성자 06.06.10 00:13

    타메를랑님->동양의 공성전 기술이 낙후한게 아니었단 점은 저도 본문에서 밝혔습니다. 오히려 고대에는 동양의 공성기술이 서양에 전래되 서양공성기술을 발전시키기도 했죠. 제가 서양투석기가 앞섰다고 말하는 시기는 이보다 한참 후대인 중세 중반 이후를 얘기하는 겁니다. 이시기에는 서양이 동양보다 우수한 투석기를 제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서양의 공성전기술이 동양으로 역유입된 사실을 봐도 어느정도 분명한 것 같습니다.

  • 06.06.10 00:30

    글쎄요... 서양투석기가 시기적으로 봤을때.. 인간의 힘을 주로 이용하는 인력식 투석기에 의존한 기간이 중국이 그리스 보다 더 길었습니다.동양의 공성기술이 서양에 전파됐다고 했는데.. 투석기에 한해선 서양이 전혀 낙후되지도 않았고.. 양양포 같은걸 쓰기 시작할 무렵에야 인력에 의존하지 않는 포를 사용하는데..

  • 06.06.10 00:32

    줄로 당겨서 쏘죠..당나라 진나라..묵가 집단이라든가.. 그리고 명나라나 조선이나 당시엔 승자총통은 유행하던 무기였습니다.문제는 조총이 왔을때 굳이 대량으로 보급되어 있는 승자총통을 대체할만큼 대량 생산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하는 문제죠.대량생산 할때도 따로 기관을 두고 국가적인 사업을 해야 하는데 여러가지 복잡하죠..

  • 06.06.10 00:33

    그리고 승자총통보다 조총이 낫습니다.지금하고 비교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무기입니다.

  • 06.06.10 03:26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비틀림(torsion)을 이용한 투석기가 인력적 효율성에서는 유리할지 모르나 실제 성벽 파괴에서 중국의 투석기를 능가할 위력을 발휘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비틀림을 이용한 투석기는 투석거리는 카운터웨잇식 투석기에 비해 길지만 쏠 수 있는 발사체의 무게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실제 성벽파괴라는 면에서는--성벽파괴에는 발사체의 무게가 사거리보다 중요합니다--중국식 투석기가 뒤떨어졌으리라 보기는 힘들다봅니다. 물론 카운터웨잇식 투석기의 위력의 후덜덜함은 양양포와 호준, 칠초포의 사례에서 증명되었습니다만.

  • 06.06.10 03:26

    어차피 동양, 특히 중국에서 인력이 남아 도는데, 굳이 비틀림을 이용한 투석기를 쓸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아, 카운터웨잇식 투석기는 서양쪽에도 중국보다는 꽤 일찍 쓰였습니다. 이슬람에서 최초로 개발했는지의 여부는 모르겠습니다만 유럽에서도 꽤 일찍부터 쓰인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남부유럽에서는 습한 기후 때문에 위력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 06.06.10 03:27

    그러니까 양양포 vs 호준포,초포 씨리즈의 위력대결에서 양양포가 위력에서 졌다는 겁니까?근거가 뭡니까.?

  • 06.06.10 03:34

    뭔 소리합니까? 카운터웨잇식 투석기의 위력이 후덜덜하다고 했는데 뭔 호준포한테 졌다고 그러시는지 이해가 안갑니다만.

  • 06.06.10 03:33

    판타지 라이브러리 들먹이긴 그렇지만 양양포가 초포들 보단 한세대 앞선것이고 칠초포가 사용할수 있는 탄환의 무게가 54~60kg 양양포가 최대 90kg 이라고 써져있는데 몽골군이 굳이 초포를 쓸거 같으면 양양포같은걸로 남송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투석기의 옳바른 발전과정의 선택은 기계식이지 인력식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 06.06.10 03:35

    제가 비교한건 카운터웨잇식-인력식이 아니라 비틀림-인력식의 비교입니다만.

  • 06.06.10 03:36

    지금 글에 혼동이 왔는데 카운터 웨잇이 인력식을 말하는거 아닙니까.근데 그 범주에 왜 양양포가 들어갑니까?

  • 06.06.10 03:36

    양양포가 인력식입니까?

  • 06.06.10 03:38

    비교 대상에 대해, 카운터웨잇식이 인력식에 앞선다는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카운터웨잇식-양양포, 인력식-호준, 칠초포. 그리고 앞에서 한교님께서 예로 드신 그리스, 로마식은 비틀림이고, 인력식이 비틀림에 비해 위력이 떨어지느냐에 대한 생각입니다만.

  • 06.06.10 03:39

    밑에 비교 예시에 양양포 호준포 칠초포가 나란히 들어가서 무슨얘긴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 06.06.10 23:02

    '기술적 균형상태의 돌파여부가 그 사회의 기술패러다임을 결정한다'는 태제를 증명하기 위해 많은 근거와 가설들을 제시하셨지만 글 전체 분위기가 웬지 산만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님은 서두에서 '자, 그럼 오늘의 주제인 공성전 기술로 넘어가 봅시다. 중세말 동양의 투석식 공성무기가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발달해 있었다고 일단 보고, 그렇다면 그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라고 먼저 이 글의 주제를 밝히고 계십니다. 허나 뒤에 가선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죠. '동서양의 기술수준의 '우열관계'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갑옷이나 전술 같은 응용과학 부문을 비교하는 것보다는 기초과학의 수준을 비교

  • 06.06.10 22:28

    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허나 그렇게 따지면 '공성무기' 역시 활이나 갑옷과 마찬가지로 응용 과학 부문에 속한 것 아닌가요? 제 말이 맞다면 결국 님이 네 번째 문단까지 할애하신 공성무기 관련 부분들은 사실상 본문의 주제와 별로 관계가 없을 뿐더러 님의 궁극적인 주장과도 서로 배치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06.06.10 17:38

    그리고 님이 내세우신 가설 -이미 경갑체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데, 충격전에 새로 관심을 갖게 된 황제 하나가 중갑을 새로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그러나 그럴싸한 중갑을 만들고 활용하기에는 아직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갑에 비해 상당히 '비효율적인' 수준의 갑옷이 만들어졌고, 이것을 한번 입어본 황제는 중갑의 효용에 회의를 느끼고 더이상의 개발을 중지합니다. 반면 일찍부터 중갑 위주의 전술이 발달했던 서양에서는 중갑에 대한 기술적 배리어가 오래전에 극복되었기 때문에 지속적 투자가 순조롭게 이뤄졌죠.- 역시 뒤에 가서는 '역사는 개인이 아니라 대중에 의해 만들어지는

  • 06.06.10 21:06

    거대한 흐름이기 때문에, 단순하고 순리에 맞는 방향으로 흐르는 겁니다."라는 주장을 통해 사실상 그 근거가 부정되고 있습니다. 즉 가정의 출발은 '개인(황제)에 의해 만들어 지는 역사'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개인은 역사를 만들 수 없다는 또 다른 성격의 주장을 하고 계시는 거죠.' 물론 님이 쓰신 글은 지적 박식함이 묻어있는 훌륭한 글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일관성은 좀 부족한 것 같네요. 그것만 좀 더 보완하시면 더욱 훌륭한 글이 될 것 같습니다.

  • 06.06.10 15:57

    저는 승자총통이 조총보다 우수하다고 한적은 없는데요 ㅡ.ㅡ;;;그냥 그와 비슷한 류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총의 효용을 우습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 것인데

  • 06.06.10 18:28

    상용님한테 쓴거 아닙둥~ OTUL

  • 06.06.11 12:00

    OTUL은 뭡니까??U존재는 혹시 똥배...

  • 06.06.11 17:28

    투석기도 유럽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바가 있다는군요ㅡ유럽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대포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대포가 풍포라는 이름으로 1004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것은 프레임에 설치하여 회전시키는 대형 투석기로서, 투석기의 들보끝에 매어 잇는 로프를 동시에 당겨 발사하는 것이었다. 이런 투석기는 유럽에서는12세기 초 모사라베 필사본에 처음 등장했고 북방 십자군이 리스본을 공격하던 때인 1147년에 다시 등장했다ㅡ린 화이트 중세의 기술과 사회변화

  • 06.06.11 17:34

    대신 추를 이용하는 카운터웨잇식 투석기는 서유럽에서 최초로 등장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13세기 초 이슬람 서적들이 카운터웨잇 투석기를 프랑크형, 서유럽형이라 칭했다고 하죠. 현대 실험에 따르면 십톤의 추를 가진 투석기는 이, 삼백 파운드의 돌을 삼백야드, 고대 비틀림식은 4~6

  • 06.06.11 17:35

    0파운드의 돌을 사백오십야드 날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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