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 언니는 오후에나 일어날거야..어제 아버지랑 무안숙부님이랑 밤 늦도록 중요한 이야기를 했거든~"
바하가 목소리를 낮추고 대답했다.
"무슨 이야기? 어떤 중요한 이야긴대요?"
자하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야 뭔지는 잘 모르지..암튼 중요한 것만은 확실해"
"뭔데요 언니..알면서 말 안하는거죠? 말해줘요 언니..궁금해요.."
바하가 자하의 호기심을 건드리며 말하자 다급해진 자하가 바하를 조르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들 떠들구 그릇이나 더 닦거라..조금 있으면 손님들이 계속 올텐데 그릇 모자르면 어쩌 려구 그래!! 조금 있다가 바하는 사하 머리 모양 좀 잘 만져주고 자하는 보영이랑 이 그릇 다 닦을 때까지만 나를 돕거라"
함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세 딸들은 조용히 마른 수건으로 그릇 닦기에 열중했다.
여슬마하의 방
"아무래도 조운 그사람이 두마와 무언가 일을 꾸미는게 분명해."
마하의 머릿속에는 지난밤 여슬겨하와 여슬무안과 했던 대화들이 계속 맴돌고 있는 중이였다.
"사하의 생일잔치가 끝나면 궁에 들어가 무비(* 단 제2 비 아잔하- 여슬겨하의 이모)님을 통해
서 궁안의 사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마하 니가 잔치가 끝나는대로 궁에 들어가 무비님을 만나뵙고 두마님의 주변 이야기를 좀 알아오거라."
겨하의 다급한 목소리..
마하에게 내려진 겨하의 심부름...
'아버지가 이렇듯 초조하신 적은 없었어..무언가 크게 잘못돌아 가고 있는거야..'
마하는 지난 밤의 대화들을 곱씹으며 생각에 열중했다.
무얼까...?
무슨 일일까...?
두마 제1 비인 지안은 도대체 무엇때문에 나와의 거리를 이렇듯 벌린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를 알 수가 없어..
그래,일단은 사하의 생일이 끝나는 데로 무비님을 찾아 가는 것만이 최선이겠구나..
어쩌면 무비님은 짐작이라도 하고는 계시겠지..그럴꺼야..'
마하는 나름대로의 자신의 생각에 결론을 내린 후 사하의 생일을 축하하기위한 아침을 열었다
사하의 생일 날 오후
병사들이 들이 닥친 것은 잔치가 한창 무르익은 점심무렵이었다.
"여슬겨하는 어서 나와 단명(*단의 명령 = 어명과 같은 의미)을 받드시오"
제5 병사 우두머리인 사추위가 호령하자 사하의 생일을 축하하러 왔던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사추위와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사추위, 자네가 무슨 일로..?"
공주가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사추위 앞으로 나와 말했다.
"공주, 단명이오.. 이렇듯 경사스러운 날..이런 소식을 전하게 될줄이야.."
사추위가 다소 민망한듯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단명이길래 이리 많은 병사들까지 데려오셨오?"
여슬겨하의 첫째 딸인 마하가 새파랗게 질린 모습으로 물었다.
웬지 지난 밤의 불안했던 마음이 뼛속부터 느껴지는듯했다.
"...어서 여슬 겨하를 이리 뫼셔주십시오.."
"무슨 단명이냐고 묻질 않습니까.. ?"
마하가 사추위를 다그쳤다.
그녀의 입술과 손이 파르르 떨렸다.
"여슬겨하께서 나오시면 말씀 드리리다.."
"언니..무슨 일이예요?"
음식을 나르다 말고 바하와 사하가 뛰쳐나와 마하 옆에 섰다. 바하는 병사들의 살벌함에 다리가 풀린듯 털썩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바하를 옆에서 부축하는 사하 또한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흠...바로 이것이던가 조운?..'
"흐음..."
눈을 감고 신음하는 여슬무안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여슬겨하는 함현과 방안에서 손님들과 담소를 나누다 말고 벌어진 이 날벼락 같은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 나왔네..무슨 일인가? 단명이라니..
"
여슬겨하가 사추위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앞으로 다가섰다.
"경사스러운 날 이런 불미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여슬겨하.."
사추위는 여슬겨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곧은 사람, 정직한 사람,강직한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눈 앞에 서있는 이 사람 이었다.
'단과 두마께서는 어쩌면 엄청난 실수를 하고 계신 것인지도 모른다..'
"말해보게..단께서 어떤 단명을 내리셨는지.."
여슬겨하의 날카로운 눈매가 오늘따라 더욱 가늘어 보였다.
'조운 형님..형님이 벌이신 일은 아니겠지요..?'
사추위를 바라보며 여슬겨하는 마음속으로 조운에게 물었다.
사추위는 곧 단명이 적힌 단명지를 꺼내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 단은 명한다. 여슬겨하는 나 단의 곁에서 2년 동안 나에게 충성스런 신하로써 나를 보필하며 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허나 그 이면에는 다음대의 단 계승자인 두마를 몰아내고 무비(* 아잔하- 여슬겨하의 이모)의 장남 손을 다음대의 단 계승자로 추대하여 권력을 탐하려했다.
이는 나 단의 총애를 등에 업고 나를 비롯하여 두마를 기만한 중대한 죄이며 그 증거가 만천하에 드러났도다.
그리하여 그대의 직책인 한주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3일안에 자결할 것을 명한다. 만일 3일안에 자결하지 않는다면 일족을 멸할 것이며 그대의 자손들은 평민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라"
"아버지...흐흐흑.."
사추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하가 여슬겨하의 옷깃을 붙잡고 절규했다.
'..조운.자네의 짓인가?,, 왜., 도대체 왜?..왜 그랬는가..'
여슬무안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사추위..그 증거란 것이 무엇인가.."
겨하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무비께서는 여슬겨하님의 이모가 아니십니까..
그것만으로도 말을 만든다면 얼마든지 만들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이사람이 무비님의 조카이기 때문이란 말인가?"
여슬무안이 사추위를 매섭게 쏘아보며 물었다.
"소인이 무엇을 알겠사옵니까..
소인은 그저 단명을 받들어 이자리에 섰을 뿐입니다.."
"말도 안되요,,아버지가 얼마나 충신인지는 사추위도 알지 않습니까..아버지께서 단과 두마를 기만하시다니요..무비님은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이건 분명 누군가의 함정입니다..밝혀 내야해요.. 자결이라니요..말도 안되는 소릴..흐흐흑..아버지..제가..제가 무비님을 당장 찾아 뵈올것입니다 제가 아버지의 누명을 꼭 벗겨드릴 것이옵니다.. 아버지..흐흐흑.."
마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듯이 흐느꼇다.
",,이..이..이런..말..말도 안되는..흐흑..흐흑.."
"어머니!!"
함현은 엄청난 충격에 말도 재대로 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어머니!!어머니 정신 차리세요..보영아..어서 의원을 모셔오너라..어서!!"
자하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함현을 끌어 안고 소리쳤다.
여슬겨하는 그저 지긋이 눈을 감고 자신의 딸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서있을 뿐이었다.
사추위 역시 여슬겨하가 누명을 썼다는 건 알면서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자신의 입장이 부끄러워 연신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 지금 당장 단을 찾아 뵙겠네..한주 자네는 잠시만 기달리시게..내 바로 다녀옴세.."
여슬무안은 굳은 얼굴로 여슬겨하에게 말하고는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무안 숙부님..저도 데려가 주세요..저도 무비님을 만나 뵈어야 해요.."
마하가 퉁퉁부운 얼굴로 공주에게 말했다.
"여슬마하님..안됩니다..죄인의 식구들은 단 궁에 들어가실 수가 없사옵니다.."
사추위가 마하를 만류했다.
"죄인이라니요!! 누가 죄인이란 말입니까.. 우리 아버지는 지금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계신 것인데 죄인이라니요.."
바하가 사추위 앞에 다가서며 사추위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게..저..제 말은.."
"그만두거라.."
여슬겨하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무안 형님..부탁드립니다..단을 찾아 뵙고 어찌 된 영문인지..그것만 부탁드립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억울한 누명만은 쓰고싶지 않습니다.."
"알겠네..내 금방 다녀 올테니 기다리고 있게나..사추위 자네도 그만 물러가지.. 잔치의 흥이 깨져 손님들이 다 가시지 않았나..아직 남아 계신 손님들께라도 인사를 해야하지 않겠나.."
“..예..알겠사옵니다..당장 물러가겠사옵니다.."
여슬무안의 꾸중에 민망해진 사추위는 병사들을 이끌고 서둘러 단궁으로 향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손님들도 병사들이 돌아가자 슬그머니 일어나 하나 둘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슬겨하와 그 딸들이 너무 안스러워 위로조차 하지못하고 ...
"아버지..흐흐흑.."
여슬무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여슬겨하의 옷깃을 붙잡고 사하가 흐느꼇다.
"너희들은 아무 걱정 말거라..단께서 작은 오해가 있으신듯 하구나..이 아비를 누구보다도 신뢰하셨던 단이 아니더냐..곧 이 아비의 누명을 공주께서 벗겨 주실거다.."
"흐흐흑..아버지...저희들도 그렇게 믿고 있사옵니다..꼭..꼭 무안 숙부님께서 단을 찾아 뵙고 아버지의 결백함을 밝혀 주시리라 믿고 있사옵니다..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