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곰소항 주변 가볼만한 곳

곰소수산시장, 건어물시장
곰소항은 칠산바다의 입항으로 칠산어장에서 어획되는 각종 수산물의 집결소이다. 또한 곰소에는 드넓은 염전이 펼처져 있어 예부터 염장기술이 발달하였다. 조기, 갈치, 갑오징어, 새우, 멸치, 서대, 박대, 풀치, 갯장어, 가오리 등이 대표적인 곰소의 건어물이다.

곰소젓갈시장
청정해역인 변산반도 근해에서 어획되는 싱싱한 어류를 재료로하는 곰소젓갈은 그 종류가 다양하며, 곰소염전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을 1년이상 저장하여 간수를 제거한 깨끗한 소금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위생적이며 그 맛이 담백하다.

곰소횟집타운
청정해역인 곰소 앞바다에서 갓잡아 올린 광어, 전어, 우럭, 삼치, 도미, 농어, 숭어, 갑오징어, 대하, 주꾸미 등의 활어를 재료로 하기 때문에 펄펄 뛰는 싱싱한 회를 값싸게 맛 볼 수 있다.

곰소염전
바야흐로 소금수난시대다. 우리네 질좋은 천일염이 값싸고 맛이 쓴 중국산 소금에 밀려 그 많던 염전 전북권 서해안을 통틀어 곰소염전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곰소염전은 곰소항 북쪽에 위치한 8ha에 이른 드넓은 염전이다. 서해안의 광활한 간석지는 지형, 토질, 기후 등 천일염 생산의 적지로 꼽히는데, 특히 곰소만은 주위가 산지로 둘러쌓여 있고 큰 강물이 유입되지 않으며 인근에 공장이 없어 갯벌도 바닷물도 오염되지 않았다.
곰소 천일염은 바로 이 깨끗하고 영양분이 많은 바닷물을 사용하는데다, 간수(후짠물)를 사 용하지 않아 쓴맛이 나지 않고, 소금발이 가늘어 품질이 뛰어나다.

진서리 청자가마터 소재지: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산 134-6
진서리 청자가마터는 고려시대 11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순청자, 삼감청자, 철회청자 등을 굽던 곳으로 유천리와 함께 부안지방의 대표적 청자 생산지이다. 이곳에는 해변을 중심으로 연동, 신작, 구작마을 주위의 구릉에 35개소의 가마터가 산재해 있는데 그 특징은 대체로 유천리 청자와 비슷하다. 대접, 접시. 주병, 매병, 장고 등이 만들어졌으며 상감문양으로는 모란, 국화, 운학 문양이 발견되고 있다.

유천리 청자가마터 소재지: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10-1
유천리 청자가마터는 전라남도 강진의 청자가마터와 함께 우리나라 청자의 대표적 생산지로 고려시대 11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세계에 자랑할만한 순청자, 상감청자를 굽던 곳 이다. 이곳 넓은 벌판의 구릉 주위에는 40여개소의 가마터가 널려 있는데, 1930년대 일본인들이 발굴하면서 우수한 파편을 가진 가마터의 퇴적층은 거의 파기되었으며, 또 이곳에서 나온 수 백 점의 고려청자는 대부분 일본으로 빼돌려졌다. 출토되는 자기로는 순청자, 상감청자, 철회청자, 진사청자, 백자, 철유자기 등이 있고, 매병(梅甁), 주병(酒甁), 호(壺), 탁잔(托盞), 완(梡), 주자(柱子), 합(盒), 접시, 대접 등의 다양한 기형에 음각, 상감으로 시문된 국화문, 모란문, 운학문, 수금문, 인물문양 등의 자기편들이 발견되고 있어 청자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청자는 중국의 영향으로 탄생했지만, 머지않아 중국청자의 전성기였던 송나라 청자보다도 품질면에서 월등히 앞서게 되어 송나라의 귀족들도 송나라 청자보다는 고려청자의 비색을 더 높게 평가하였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독특한 상감기법의 「상감청자」를 꼽았는데 유천리 가마터는 특히 상감청자의 대표적 생산지이다.

내소사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관음봉 아래자락에 안기 듯 자리한 내소사는 진입로 양쪽 전나무 숲이 한껏 풍치를 더하는 가람으로 백제 무왕 34년(633) 혜구두타가 창건하였다. 그 후 중건중수를 거듭하다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선사가 중창하였는데 지금의 대웅보전은 그때 지어진 건물이다. 그후 1902년 관해선사가 중수하고, 만허선사가 보수하였으며, 1983년 혜산스님의 중창으로 지금의 대가람을 이루었고, 1986년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일원(一圓)이 문화재보호구역(전라북도 기념물 제 78호)으로 지정되었다. 내소사가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로는 먼저 대웅보전(보물 제 291호)을 들 수 있는데 빼어난 단청솜씨와 연꽃을 연속문양으로 조각한 화사한 꽃문살, 국내 제일의 후불벽화인 백의관음보살좌상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고려동종(보물 제227호), 법화경 절본사본(보물 제278호), 영산회 괘불탱(보물 제 1268호), 설선당과 요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내소사 3층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24호) 등이 있다.

반계 유형원 유적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22호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775-39, 산 128-5
실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반계 유형원(1622∼1673)은 그의 뛰어난 경륜에도 불구하고 초야에 묻혀 은둔생활을 하였는데 반계수록을 집필하며 20여년을 보내고 또 생을 마감한 곳이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이다. 이 곳은 본래 우반동이라 하였는데 "반계"라는 호는 여기서 따왔다고 한다. 우반동은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유관(1346∼1433)의 사패지로 유관은 반계선생의 9대조이다. 반계선생은 32세 때인 1653년(효종 4년)에 조부의 고향인 보안현 우반동으로 내려와 이 후 20년간 「반계수록」 저술에 몰두하였다. 총 26권으로 된 반계수록은 국가체제의 전반적인 개혁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반계수록에 나타난 내용의 특징은 부민, 부국을 위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과, 개혁의 요체를 자영농민의 육성에 있다고 보고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입각한 균전제, 세제개혁, 병농일치의 군사제도인 부병제, 공거제 실시, 신분제 및 직업세습제 개혁, 관료와 학제 개혁 등 다방면에 걸쳐 국운을 걸고 과감하게 실천할 것을 강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