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를 행복하게 하는 5갖지---8월 21일
1. 조영희 보살님한테 이른 아침에 톡이 들어와 있는 것을 봤으나 바빠서 통화를 미루다가 오전 10시쯤에 통화를 하였더니 글쎄 거사님께서 돌아가셨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잘생기고 멎진 거사님이었고 건강한 줄 알았거든요.
주간 불교대학 학장을 맡고 계신 거사님인데 처음 두달동안은 부산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안빠지고 잘 오시더니 어느 순간부터 안오시더라구요.
서울에 치료받을 것을 있다고 하시길래 그냥 어디 조금 안좋은 정도로 생각했는데 거사님이 자신이 아픈걸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네요.
암 투병중이셨고 그 때도 한달동안 입원해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나쁜 정도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급속도로 나빠져서 준비도 안되었는데 가셨답니다.
2. 종다리 태풍 영향을 어제부터 비가 내립니다. 태풍 비 치고는 이슬비 수준이라 이정도면 산에 가려고 했으나 공양간 분위기가 좀 어수선한걸 보니 안가려나?
운전을 담당하는 명진거사를 청과물 시장에 버섯 찾아 오라고 보냈는데 아직 가게에 가지도 않았다는 둥 그러더라구요..
나보고 늦었으니 오늘은 쉬라고도 하고.....음.. 산에 갈 수 있는데...
그러다가 급변해서 승용차타고 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명진거사는 땀띠가 온몸에 심하게 났습니다. 더운데도 불구하고 낮에까지 산에 가고, 낮에도 절 일을 보았고, 백중 때 땡볕에 영가옷 태우기도 하여 탈이 난 것입니다.
땀띠 난 상태에서는 산에 가는게 해롭겠죠?
자안 이성열 거사도 백중 때 소각한 이후로 눈이 잘 안보인다고 며칠 째 안오고 계시네요. 명리공부하러도 안오시고요,,,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5명이 한 차를 타고 산엘 갔습니다.
우산 쓰고 다녔는데요, 비가 오는 듯 안오는 듯 해서 보살님들은 머리에 수건만 두르고 다니시더라구요.
오늘은 송봉관 거사님도 끝까지 같이 했습니다.
보통은 정상까지만 올라왔다고 도로 내려가서 차를 끌고 착지까지 운전해서 오셨는데 다운목장으로 한바퀴 다 돌았습니다.
촉촉한 땅을 밟으며 습기가 가득한 산을 다니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이렇게 산에 다니고 나면 그날 컨디션은 거뜬 합니다.
3. 법당에 올라가려는데 카페 봉사하시는 윤인영보살님이 ‘이것좀 봐주세요’하며 폰을 주시길래 KYC 인증을 해드렸습니다.
신분증 사진을 찍고, 얼굴 사진도 6번을 찍어야는데 잘 못찍으면 다시 찍어야니까 한번 할 때 제대로 해야합니다.
근데 결국 다시 찍었네요. 화면이 넘어가지 않길래 그대로 갖고 있으라하고 법당에 올라갔습니다.
오늘은 지장재일이거든요. 지장불공 축원을 드렸습니다. 영구위패 올리신분들 다 축원하려니 주소와 본관은 생략하고 복위자와 영가명만 했습니다.
지장재일만 잘 모셔도 따로 천도재나 기제사 등을 모시지 않아도 되게 신경써서 지장재를 모십니다.
법당에 기도하는 분이 몇분 없었는데 나중에 법문하고 잔 칠때는 그래도 모여들었습니다.
봉사하시더라도 사시 불공시간에 잠깐이라도 불공과 법문을 들었으며 좋겠구만..
재 모시고 나서 내려 오니 아직도 KYC 화면이 넘어가지 않았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들어가서보니 그 사이에 KYC 인증까지 통과되었더군요. 와....빛의 속도로 인증이 진행되었군요.
KYC 신청 하자마자 통과된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KYC 인증을 받아야 지갑으로 파이가 이동되어 현금처럼 쓸 수 있으니 모두 KYC 인증 받으시기 바랍니다.
윤위자 노보살님도 제게 KYC인증 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보살님은 52파이를 모으셨는데 당신도 사람들에게 커피를 쏘고 싶은데 할 수 있냐고 물으셨어요. 근데 어쩌나..... 지금 제가 설치해 드린분들은 락업을 해놓아서 2년동안은 모으기만 하지 쓰지는 못하거든요.
근데 세월이란게 금방이잔아요. 계속 누르다 보면 2년 금방 갑니다. 그땐 수백명에서 음료를 대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수요일은 명리학 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2시에 강의장에 가니 5명 밖에 없더라구요. 강의를 시작하니 점점 모여들어서 나중엔 강의 할 맛이 났습니다.
명리학 강의가 끝나고 나서야 부산에 장례식장에 갈 수 있었습니다.
명리학 수업을 30분정도 줄이고 3시반에 출발하였습니다.
불교대학 회장님께서 돌아가셨으니 다들 같이 가 주길 바랬지만 안가시더라구요,
명리학 수강생이나 북카페에 계시는 분이나 모두 일정이 있으신지....아니면 장례식장에 가기 싫은지 별 움직임이 없어서 침통한 마음으로 봉고차에 올랐습니다.
제 지낼 때는 남의 재라도 기도해주고 잔 치고 절 올리는 것은 어느 정도 정착 되었는데 장례식장 가서 염불해 드리는 것은 참여가 잘 안되더라구요. 제가 주도적으로 못해서 그런거 같기도합니다.
가자고~ 가자고 자꾸 독려해야는데 그냥 ‘알아서 가주겠지’하며 지나치기만 했죠,
명진거사가 운전하고 나까지 6명이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현묵거사님은 부산 지리에 훤하신지 인간 네비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고신대에서 가서는 한바퀴 휭 도는 헤프닝을 일으켰죠..
5. 장례식장 분위기는 차분했습니다.
아니 약간 썰렁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아직 입관을 안했더라구요. 아들이 미국에 오고 있는 중이랍니다. 아들 오는 즉시 입관하고 4일장을 하신답니다.
영정 앞에서 염불하는 동안 조문객이 많이 다녀가셨는데 모두다 묵념만 하고 절은 안하시길래 ‘요즘 장례문화가 바뀌었나?’란 생각까지 했습니다.
망자께서 평생 교직에 계셨고 교장도 지내셨는데 아마 기독교 학교에 계셨나봅니다.
천수경과 다라니 지장경 등을 독송하면서 염불소리는 깊어가는데, 망자는 어디 계시는지, 반드시 이 마음을 헤아려 같이 염불하고 왕생극락하셔야는데... 부처님의 가호가피를 끝없이 청하였습니다.
저녁 늦게 절에 돌아왔는데 아직 회장님이 계시더라구요, 주택 창고정리를 하셨답니다.
학생들이 많이 도와줬다네요.. 강선생님이 계시니 우리청소년들이 자주 절에 오는데 그 학생들이 짐을 다 옮겨 줬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