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에서 곡강으로
비가 간간이 흩뿌리는 사월 중순이다. 그러함에도 황사에 송홧가루가 겹치니 대기는 뿌옇기만 한 월요일도 변함없이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가 이웃 동 꽃대감이 가꾸는 꽃밭으로 가봤다. 친구는 이른 시간임에도 꽃밭으로 나와 화초를 살피면서 폰으로 지기들에게 보낼 모닝 카드를 입력했다. 꽃대감은 고향이 같은 초등 친구인데 우리는 퇴직 후 공생 협력하는 이웃이다.
친구와 간밤 이전 며칠 밀린 안부가 오가고 오늘 하루를 잘 보내자는 인사를 나누었다. 친구는 서부 스포츠센터 빙상장으로 나가 체력을 유지 단련하고 나는 나대로 자연학교로 등교해야 했다. 강변의 둑길을 걸으려 대방동을 출발해 본포로 가는 30번 버스를 타려고 원이대로로 향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메타스퀘어 가로수가 도열한 외동반림로 소하천을 따라 원이대로로 나갔다.
반송 소하천을 따라가니 미끈하게 솟은 메타스퀘어는 예년보다 이르게 새잎이 돋아 연초록이 짙어가는 즈음이었다. 원이대로 좌우의 느티나무 가로수도 신록이 싱그러웠다. 버스 정류소에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제각기 타고 갈 버스가 순차적으로 다가왔다. 그 가운데는 서부권 국립대학으로 등교하는 학생들과 그곳의 공무원들 출근길 버스에도 차례를 지켜 승차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나는 대방동을 출발 주남저수지를 둘러 본포로 가는 녹색 버스를 탔다. 시내를 벗어나기까지 바쁜 출근길 승객 몇몇이 타고 내렸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자 밤낮의 일교차에 의한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사위 분간이 되질 않았다. 주남저수지를 돌아 봉강에서 본포에 이르러 버스에서 내렸다. 민물횟집을 지나 강둑으로 오르니 아침 햇살에 안개가 걷혀 가고 있었다.
강심을 가로질러 학포로 건너는 본포교에서 유장한 강물이 흘러가는 방향을 바라보니 안개가 사라지는 모습이 몽환적이었다. 저만치 학포 동구를 뒤로 하고 청도천에 놓인 반학교를 건넜다. 밀양 초동 반월과 창녕 부곡 학포 사이로 흐르는 샛강 청도천에 놓인 다리가 반학교였다. 들녘을 관통한 지방도가 아닌 강가로 원호를 크게 그린 반월 생태습지 공원으로 가는 둑길로 들었다.
둑에서 연초록 갯버들이 우거진 생태공원으로 내려가 습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묵은 갈대와 물억새 덤불에서 몸을 숨기고 지내던 고라니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겅중겅중 사라졌다. 조용하던 숲속의 평화를 깨트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산에 살아야 할 꿩들은 둔치의 무성한 숲을 은신처로 삼아 녀석들의 낙원이었다. 간간이 장끼가 영역 표시로 우는 쩌렁쩌렁한 소리가 들렸다.
반월 생태공원은 한때 국토부가 선정한 우리나라 아름다운 강변길 100선에도 들었던 적 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당국에서 동원한 할머니들이 꽃양귀비에 섞여 자라는 김을 매주었다. 주차장과 다목적 광장을 조성하기도 했다. 꽃양귀비 잎줄기와 함께 올봄 싹이 튼 어린 코스모스 순도 보였다. 생태공원 들머리는 인부들이 어디선가 길러온 백일홍 꽃모종을 줄지어 심고 있었다.
반월에서 성북마을 앞으로 흐르는 초동천을 건너 곡강으로 나갔다. 곡강은 본포에서 흘러온 강물이 수산을 앞두고 바위 벼랑에 부딪혀 휘감아 흐르는 곳이다. 연산군을 몰아냈던 중종반정 공신 이식이 낙향 은둔했던 고강정(高江亭)이 있던 자리다. 풍광 감상의 개방형이 아닌 독서를 위한 닫힌 공간이었다. 조선 후기 벽진 이씨 집안에서 중건하면서 곡강정(曲江亭)으로 바꿔 붙였다.
곡강정 앞에 대형 분재와 같은 고목 팽나무가 인상적이었다. 곡강정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아름답겠으나 해가 중천에 있어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수산을 향해 가다가 서편마을의 가마솥 장작불 곰탕집으로 들어 맑은 술을 곁들인 점심을 해결했다. 식후 제1수산교 건너 정류소에서 종점을 출발해 오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주남저수지를 둘러 용강고개를 넘어가니 소답동이었다. 23,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