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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숙제보고
1. 성경묵상 본문을 적으세요
마가복음 1장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2. (하나님)본문을 통해 어떤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회개한 한사람 한사람 아시고 지명하여 제자로 부르시는 하나님.
3. (만남)주님께서 어떤 음성을 들려주셨습니까?
사랑하는자야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4. (분별)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마귀의 나라를 구분해 보세요.
하나님나라 ㅡ 영혼구원을 위해 제자로 부르심.
세상나라 ㅡ 제자를 세울 필요 없음.
5. (인식)본문을 통해 바라본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생활에 바뻐 하나님의 일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
6. (적용)본문을 통해 내 삶에 적용해야 할 사항은?
때를 아껴 영혼구원 하나님의 일에 힘쓰자.
7. (기도)말씀을 가지고서 기도문을 만들어 기도해 봅시다.
주님 저같은 죄인을 주님의 일꾼으로 불러주시셔서 감사합니다. 때를 아껴 복음전파에 힘쓰게 하소서.
8. (배움)본문의 말씀을 더욱 구체적으로 자세히 원어를 참조해서 배워봅시다.
14.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예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오신 때는 침례 요한이 잡힌 사건과 관련이 있다(요 4:1-3, 43 주석 참조). 침례 요한이 잡혔다는 사실과,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의 사역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을 알게 되셨을 때, 예수께서는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향하셨다(특히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마 4:13)더욱이 갈릴리 지방에는 예수께서 자신의 우리 안으로 인도해 들여야 할 잃은 양들이 많이 있었다(요 10:16).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께서 갈릴리 사역 내내 전파하신 메시지의 주 내용은 ‘하나님의 복음’이다. 다른 사본에는 이를 ‘천국 복음’이라고 일컫기도 한다(마 4:23). 여기서 ‘전파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κηρύσσων 케뤼쏜’은 현재 능동태 분사형을 취하고 있어 그 행위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이 표현을 통해 하나님은 복음의 원천(주격 소유격)이시며 더불어 복음의 대상(목적격 소유격)이심을 알 수 있다. 즉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이시며, 또 이 복음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복음은 ‘좋은 소식’ 곧 인류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기별이다. 복음은 곧 그리스도로 인한 죄 사함과 구원 및 영원한 복락을 그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후 5:17).
”(마가복음 1:14, 만나주석)
“15. 때가 찼고. 이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구속사의 결정적인 시점이 이르렀음을 나타낸다(갈 4:4, 엡 1:9). 본문의 ‘때’(καιρός 카이로스)라는 말은 단순히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변화되는 시기를 뜻하는 ‘크로노스’와 구별되는 것으로서 호기(好期, opportunity), 즉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날 결정적 기회라는 뜻이다(R. C. Trench).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와 초월적인 주권을 가리킨다. 이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은 예수의 가르침의 중심 주제가 되고 있다. 20:21).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Bruce Metzger, The New Testament, p. 148 ).
어쨌든 본 절에서는 그 나라의 도래가 대단히 강조되어 있다. 즉 그 나라는 공간적으로(예수 안에서), 또 시간적으로(그 나라는 마지막 때의 사건들을 선포하는 것이므로) 가까이 왔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가까워진 하나님 나라를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상으로는 양자가 근본적으로 동일하지만 마가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표현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전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역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는 침례 요한이 광야에서 전파한 기별의 내용과 동일하다(4절, 마 3:2). 그러므로 침례 요한과 예수의 복음은 동일한 것이었으며,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진정한 길 예비자였다.
여기서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면하고 있는 자들의 올바른 삶의 자세이자 구원의 핵심적 요소이다. 특히 이 중에서 ‘회개’는 성부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며, ‘믿음’은 영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성자 예수와의 긴밀한 신뢰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서 이 양자 중 어느 하나의 결핍은 온전한 신앙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우리 말의 ‘회개하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지만, 헬라어 ‘μετανοεῖτε 메타노에이테’는 2인칭 복수 현재 명령형으로서 과거에 저지른 모든 악한 일에 대하여는 슬퍼하는 한편, 앞을 바라볼 것도 의미하고 있다. 즉 그것은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 ‘마음과 생활의 근본적 변화’ 그리고 ‘완전한 생활로의 전환’까지를 모두 내포한 포괄적 의미이다.
그리고 ‘복음을 믿으라’고 덧붙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회개의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면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즉 ‘믿으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πιστεύετε 피스튜에테’는 앞에 나온 ‘메타노에이테’와 동시에 작용을 하며 함께 역사한다(Lenski). 즉 진정한 회개에는 믿음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 나타난 두 동사는 미완료 동사로서 계속적인 현재를 의미하며, 전자가 계속될 때 후자도 계속됨을 나타낸다.
”(마가복음 1:15, 만나주석)
“16.갈릴리 어부 형제인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셨다. 그들이 부르심을 받은 것은 어부의 직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 형제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은 요단 강에서 이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바로 메시아라고 가르쳐 준 침례 요한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요 1:35-39). 특히 침례 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모세와 선지자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소개하였다(요 1:29). 따라서 이 두 형제는 그 때부터 예수를 따라다녔다. 그 결과는 그들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세우심을 받게 된다(3:13, 마 10:1 등).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마가는 안드레 형제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그들이 생업에 열중하고 있는 도중에 사람 낚는 어부로 부름 받은 사실을 현장감 있게 긴박감을 더하여 기술해 주고 있다.
”(마가복음 1:16, 만나주석)
“17. 사람을 낚는 어부. 주님의 부르심은 부름받은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오히려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신 것은 사람들을 임박한 심판으로부터 구해내어야 하는 긴급한 임무를 맡기시기 위함이었으며,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즉각적인 순종이 요구되는 것이다. 구약에서도 심판과 관련해서 ‘낚는다’는 말이 사용된 경우를 볼 수 있다(렘 16:16, 겔 29:4, 5, 38:4, 암 4:2).
한편 본문의 ‘사람’은 헬라어 원문에서는 복수형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란 이 말은 단순히 갈릴리 주변 사람들이나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범 인류적이고 보편적인 대상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Lenski).
”(마가복음 1:17, 만나주석)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여기에서 ‘곧’(εὐθὺς 유뛰스)이란 표현은 긴급하고도 생생한 장면을 강조하는 특별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예수께서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에는 종말론적인 긴박성이 짙게 깔려 있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과거의 모든 삶을 과감히 청산하고 주님을 따라 나선 것이다.
어부들에게 ‘그물’은 배와 더불어 그들의 생존의 근거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 모든 것들을 버리는 데에는 과감한 의지적 결단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두 제자의 이같은 즉각적 순종의 배후에서 우리는 또 한 가지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예수의 절대적 능력과 권위이다. 그분의 권위 앞에 모든 피조물은 순종할 수밖에 없다(빌 2:10).
따르니라. 헬라어 ‘ἀκολουθέω 아콜루떼오’는 복음서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으며, 의미상으로는 (1) 예수를 따르는 것, (2) 예수의 부르심에 자원하여 순복하는 것, (3) 예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뜻한다(8:34, 마 4:25, 9:38 등).
이 말은 합성어로서, ‘같은 길을 함께 가다’란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그들은 주님의 부름을 받은 즉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는 선포에 대한 증인으로서 주님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마가복음 1:18, 만나주석)
“19. 조금 더. [ὀλίγον 올리곤] 이 부사는 마가의 세밀하고도 정확한 사건 묘사 기법을 드러내 주는 표현이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 요한. 야고보와 요한은 형제로서 이들의 어머니는 살로메였다(마 10:2 참조). 야고보가 언제나 먼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가 형으로 보인다. 후에 그는 12 사도 가운데 최초로 순교하게 되지만(행 12:2), 요한은 모든 사도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아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등 여러 서신들을 기록하였다.
이들은 베드로의 경우와 같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즉각적으로 응답했으며 사도로서의 훈련을 받게 된다. 사실 그들은 마 13:55, 요 6:42 등의 경우처럼 그들도 “이는 나사렛에서 온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왜 우리가 이 사람의 제자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라는 거부의 의사를 표시할 수도 있었다. 예수와 이종 사촌간이었던 그들은 예수의 메시아성에 대한 의구심을 누구보다도 많이 갖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예수의 형제와 친척들은 심지어 예수를 보고 ‘미쳤다’고 하지 않았던가(3:21). 하지만 그들은 주님의 위엄과 능력과 사랑의 부르심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그물을 깁는데. 베도로와 안드레가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을 때 부름받은 것과 짝을 이루기나 하듯이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수선하고 있던 상황에서 부름을 받는다. 즉 그들은 어떤 종교적 분위기나 헌신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생업에 충실하고 있을 때 주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한편 팔레스타인에서는 보통 저녁 이후 시간에 고기를 잡고 낮에는 그물 수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본문을 베드로 형제를 부르신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Bultman).
”(마가복음 1:19, 만나주석)
“20. 곧 부르시니. 예수의 선교사역은 이처럼 신속하고도 민첩하게 진행되었는데, 이는 당신의 사역의 긴박함과 중대함을 보여준다.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품꾼들’에 대한 언급은 마가복음에만 나오며, 임금을 받고 고용된 일꾼들을 가리킨다. 이런 일꾼들을 고용하여 일한 것을 보면, 세베대의 가정이 비교적 부유했음을 알 수 있다. 품꾼들이 있었기에 야고보와 요한은 주저함 없이 그들에게 아버지 돕는 일을 맡기고 예수를 따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떠남의 결단이 필요하다(창 12:1-3). 이 떠남을 통해 하나님의 더 크고 풍성한 은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마 19:29)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뜻에 순종.
무엇을 하고 있든지 순종.
떠남의 결단.
회개한 베드로에게 함께 가자고 찾아오신 주님
예수님에게서 풍겨나오는 아름다움과 권위 앞에
이분을 놓칠세라 두말없이 따라가는 이들을 보며
울컥한 마음이든다. 보잘것 없는 어부에게 찾아오신 주님은 보잘것 없는 나에게 찾아오신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까요.. 주님 앞에 저의모습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 마음 주님께 삶으로 온전히 드릴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인도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