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서 신부는 공개적으로 남편과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합니다. 차라리 오빠였다면 공개적으로 함께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흉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가족 외에 남녀가 공개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금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랑과 신부의 사랑이 너무 커서 공개적으로 자랑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을 아쉬워하는 것입니다(1-3). 그래서 더욱 남편이 잠시 자기와 머무르는 현재의 상황이 더 지속 될 수 있도록 남편을 깨우지 말라고 부탁합니다(4). 신부는 신랑의 사랑을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그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 오는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신부입니다. 어머니가 낳은 곳에서 남편과 사랑을 나누며 새로운 생명을 얻은 신부가 열정을 다해서 남편을 다시 만나러 옵니다. 그리고 불타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을 더욱 품어 주기를 남편에게 부탁합니다. 신부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불같이 뜨겁습니다. 그 사랑이 너무 강렬하여서 많은 물로도 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너무 가치가 있어서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그 사랑과 바꾸려고 할지라도 결국 수치만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값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뜨거운 사랑을 가진 누이를 걱정하는 오라비들의 말이 이어집니다. 유방은 신체적인 일부를 가리켜서 아직 시집갈 나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할 수도 있지만, 일종의 비유로서 아직까지 동생이 여러가지 면에서 시집 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가슴은 생명력과 풍성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은 망대’와 ‘백향목 판자’를 세우겠다는 말은 물질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여인이 결혼할 수 있는 물질적인 준비가 풍성하게 되어있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만으로는 안되고, 다른 무엇이 더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서 그분을 사랑하는데, 그 사랑을 위해서 물질적인 것이나 다른 어떤 것이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부는 남편 솔로몬을 잘 압니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돈을 요구하고 물질적인 것을 요구하지만, 신부에게는 그런 것이 아니라 신부 자체에 관심이있다는 것입니다. 13-14절에서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를 부탁하고 신부는 노루처럼 빨리 자신에게 달려 올 것을 말합니다. 서로가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의 노래는 끝이 납니다.
아가서의 여인의 사랑은 고대 세계에서는 어색합니다. 왜냐하면 여인이 이렇게 드러내 놓고 사랑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부는 그것을 아쉬워 합니다. 더 공개적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나누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음에 안타까워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부 교회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먼저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받아서 그분을 사랑하는 교회의 사랑은 뜨거워야 합니다. 또 사랑 외에 다른 어떤 것을 더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원하시고 우리의 자체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나, 열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의 행위보다 어디에서 비롯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그분을 향한 사랑에 푹 젖어서 뜨거운 사랑과 열정으로 받은 것을 다시 돌려 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보이셨습니다(롬5:8). 오늘 하루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그 사랑의 가치를 알고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돌려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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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