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산책
곡우를 앞둔 사월 중순 전국적으로 바람과 함께 요란한 강수가 예보된 화요일이다. 간밤 인터넷으로 검색해둔 기상과 자고 난 아침의 내용이 달라져 있었다. 간밤 우리 지역은 화요일 날씨가 늦은 오후부터 비가 그려져 있었는데 자고 나니 낮부터 그려져 있었다. 일기 예보 분석관의 그 날 적중률이 가장 낮은 계절은 봄철임을 실감했다. 봄철에 한반도 주변 기압은 시시각각 달랐다.
비가 오지 않을 날씨였다면 아침 식후 서둘러 북면 야산으로 참취 산채를 나가볼까 했는데 그럴 일이 없어 느긋했다. 평소 음용하는 약차를 달이면서 전날 다녀온 반월 습지와 곡강의 풍경을 일기로 남겼다. 그리고 초등 친구 단톡을 비롯해 몇몇 지기들에서 보내는 1일 1수 시조로는 ‘등꽃 아래서’를 탈고해 사진과 함께 날려 보냈다. 오월 초순에 피던 등꽃이 올해는 벌써 피어났다.
아침 식후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를 펼쳐 읽었다. 저자가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꼭지에서 교도소와 같은 획일화된 우리나라 학교 건물을 비판하면서 ‘지식은 책에서 배우고, 지혜는 자연에서 배운다.’는 간접 인용구에 여운이 남았다. 책을 덮은 후 점심을 들려니 창밖 하늘은 흐리기만 했지, 비는 내리지 않아 산책이 가능할 듯했다.
점심을 해결하고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북향으로 걸으니 높이 자란 메타스퀘어는 연초록으로 물들어 갔다. 퇴촌교 삼거리에서 창원천 천변을 따라 걸었다. 천변 조경수 산수유나무와 벚나무는 이른 봄부터 얼마 전까지 화사한 꽃을 피운 임무를 완수하고 싱그러운 잎이 돋아 자랐다. 개울 가장자리 산책로를 따라 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내려갔다.
냇바닥에는 쇠백로와 흰뺨검둥오리들이 보였는데 둘은 생활 습성이 달랐다. 쇠백로는 단독 개체로 혼자 먹이 활동을 하는데 오리류는 늘 쌍쌍이 짝을 지어 다녔다. 흰뺨검둥오리는 오뉴월이면 검불 속 어디엔가 둥지를 틀어 병아리와 같은 여러 마리 새끼를 데리고 나왔다. 알을 품는 때와 어린 새끼를 들고양이게 들키거나 누룩뱀에게 잡아 먹히지 않고 온전하게 키워내길 바랐다.
올봄에는 가뭄이 심했던 작년에 비해선 비가 간간이 내려 냇바닥 하천 유지 수량은 제법 흘러가는 편이었다. 냇가에는 노랑꽃창포가 잎줄기를 시퍼렇게 키워갔는데 곧 꽃을 피우지 싶었다. 지난해 묵은 갈대와 물억새 그루터기에서는 새로운 잎줄기가 돋으면서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었다. 물웅덩이 수면에 자라는 노랑어리연은 동그란 이파리는 서로가 연대해 커다란 세력으로 불려 갔다.
창원천 제2교를 지나 명곡 교차로가 보이는 곳에 이르니 바람이 심해지고 먹구름이 몰려와 연방 비가 내릴 듯했다. 창원대로 용원 지하도나 봉암갯벌이 보이는 남천까지 내려가 보려다가 도중에 지귀상가로 갔다. 거기는 5일장이 아니라도 서민들이 즐겨 찾는 주점을 알고 있어 혼자서 가끔 찾아갔다. 가게 문이 열린 주점을 찾아드니 나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한 손님이 있기도 했다.
나는 명태전을 시켜 맑은 술을 자작으로 잔에 채워 비웠다. 그새 이웃 테이블은 두 사내가 자리를 일어나고 아낙 셋이 와 앉더니 왁자해졌다. 아마 상가에서 무슨 가게를 하는 여인들로 보였는데 비가 와 손님이 없어 잠시 주점에 온 듯했다. 나는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혼자 잔을 비웠는데 마침 내가 속한 문학 동아리 회장이 그의 친구 둘을 데리고 들어와 마주 앉아 잔을 비웠다.
시인인 회장은 입담도 글재주만큼 되고 그림도 잘 그렸다. 부동산 중개업으로 생계를 잇는 회장은 사량도에서 펜션업을 하는 친구들이 뭍으로 건너와 어울린 자리였다. 회장 일행은 생선구이를 시켜 맑은 술을 비웠는데 나는 자리를 먼저 일어나면서 주인에게 그 테이블의 술값까지 치르고 서둘러 나왔다. 아까 지나왔던 천변을 따라 걸으니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늦은 오후였다. 23.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