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뿐만 아니라 60만 모든 국군이 염통(심장)이 터질듯 분개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바로 1968년도 있었던 김신조 일당의 1.21 청와대 습격사건... 그때는 내가 입대전이라서 언급을 안 하겠습니다.
다음은 1976년도에 있었던 판문점에서의 8.18 도끼만행사건 입니다.
그때는 월남에서 철수하여 중부지역에 위치한 맹호부대 혜산진 부대에 제가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비상신호가 울렸고 그 내용은 실전인 전투준비 명령이였습니다.
실전인데 밥이고 뭐고가 어디 있나요... 밥 몇숟갈 뜨다가 그대로 뛰어나가 자기의 위치로 향했습니다.
내용은 판문점 안에 있는 미류나무를 미군들이 관측에 시야를 가려 장애가 된다하여 베어내려는 것을, 북한군
30여명이 들이닥쳐 미군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배럿 중위를 도끼로 때려 죽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JSA에 근무하는 한국군 장교 1명과 장병 4명, 미군 장병 4명 합하여 9명이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당시 북한에서는 불과 1년전인 1975년도에 월남이 공산화되자, 여기에 으쓱하여 지금까지 있었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명분을 잃은 미군들을 철수시켜 약해진 한국을 다시 재침략하겠다는 속셈이였는데...
이때 미군들에게 겁을 주어 당시 미국의 대선에 영향을 주어 미군을 철수시키는데 한몫 보자고 한 일이였습니다.
그때는 막 월남전이 끝났을 때여서, 한국에서도 여러 문제가 생기면 미국에서도 월남에서처럼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 계획적으로 소요를 발생시킨 것이지요.
그래서 살인사건에 대한 유엔사의 사과 요구에 북한은 동문서답하며 사과를 하지 않자, 모두가 분개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늘 북한의 깡패같은 수작에 피해만 보고 시간만 지나면 그냥 없던 것으로 있어야 하나? 하는 분개였죠.
이윽고 미군들은 항공모함을 급파하고 B52폭격기와 팬텀기 편대들을 보내 무력시위를 하였지만
한국은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보복을 원하였습니다.
당시 대통령도 미친개에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언급이 있을 정도로 같이 분개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려던 미류나무를 마져 베어야 하는데, 그 작업중 경계를 한국군이 맡아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특별히 선발된 특전사 요원 64명을 선발하여 보복하려고 갔지만 미군들은 이 계획을 몰랐지요.
당시 모두 미친개에게 쓸 몽둥이만 들고 갔었지만 권총과 수류탄 등은 방탄복 안에, 소총은 타고 간 트럭에
자루에 담아 감춰서 진입하였습니다. 이 64명은 목숨을 걸고 싸우러 간 결사대 요원들이였습니다.
이윽고 작업은 시작되었고... 64명의 특전사 요원들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 입구에서 북한군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나타나서 또 방해를 하려고 하면 그들을 몽둥이로 내려 칠 계획이였습니다.
이윽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쪽에 북한군 150여명이 나타나 우리의 64명과 대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북한군들이 도대체 우리쪽으로 오지를 않고 말뚝처럼 서 있기만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제의 미류나무가 베어져 쓰러졌습니다. 제발 북한군이 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64명 결사대의 염원과 달리 북한군은 소극적이였습니다. 이리와서 한판 뜨자고 해도 귀먹은 듯 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쪽에 세운 4개의 경비초소로 가서 "모조리 죽여" 하며 들이쳤지만... 한명도 없네요.
아예 겁이 나서 근무를 안 세운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는 김일성 초상화와 비품을 때려부수기 시작하였습니다.
분통이 터져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군 장교들이 와서 그러지 말라고...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하지만 할 일 다하고 왔죠. 당시 박 대통령도 우리땅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가 모른체 하면 되나? 할 정도였으니...
특전사 요원들은 미친듯 초소를 때려부수고 김일성 사진을 짓밟으며 설쳤지만 북한군은 꽁무니를 뺐다고 합니다.
이렇게 강하게 나가자 이윽고 김일성이가 사과를 하는 바람에 미군이 수용하며 그만 불길은 꺼자고 말았습니다.
아~ 그때 인민군들이 와서 한바탕 집단 격투기 아닌 백병전이 벌어졌더라면... 우리는 이미 통일을 했을텐데...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북한군은 우리의 특전사 요원의 기세에 눌려 꼬리를 내리며 도망치는 꼴을 보면서
그냥 철수하고 말았네요. 그리고는 지금도 또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하자고 하니... 또 분통이 터지려고 합니다.
첫댓글 1968년 1월 소승은
눈덮인 대전 한밭땅 둔산동 당시 공군 기술교육단에 입대 훈련중이었는데
김신조 일당 침투 사건으로 훈련이 엄청 강화되어 아주 호되게 ㅉㅉㅉ~
당시 전역도 연기 되어 집으로 가려던 병사들은
느닷없이 몇개월 더 연장 복무를 했는데 ㅎ 김신조 욕을 하면서 ㅎ 투덜 투덜 ㅋ
하여간 북한 종간나 뭣들
억수로 남반부를 향해 애를 많이도 먹였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무시하는 종간나들...
이들에게 했뵽은 무슨 햇볕... 그냥 몽둥이가 약인 것을...
그래도 동포라고 해서 원조를 해 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그걸로 핵개발을 하고는 오히려 우리이게 겁박을 해? 참 한심한 간나들...
이제는 더 저놈들에게 속지 말고 우리식대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남한과 북한은 영원한 평행선 인것 같네요.
평행선은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도 만날 일은
없을테니요. 특히 우리 졺은이들이 이렇게
자유룰 누리며 잘 사는데 통일 되면 빼앗길
자유가 겁나겠죠. 그저 통일은 천천히 더 알
아보고 타진도 해 보고 적절할때 해야지 급하게
서두를 일은 없다고 보네요.
정으니가 나쁜 놈이지 북한 주민들이
리더를 잘 못 만나 고생하고 있는거 보면
참으로 안됐지만요 ..
이제 갈라진지 오래되다 보니 말도 달라진 것이 많아지고 있고
생각도 많이 달라져 있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의 젊은이들도 통일에 대하여 그닥 염원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깝지만 이해도 됩니다.
북한의 적ㄷ은 정권을 잡고 구김들을 좌지우지 하는 부류들이지 북한 주민이 우리의 적은 아니지요.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 같은 통일... 아십습니다. 감사합니다.
76년8월18일
판문점사건
잊을 수가 없는
비참한 사건이었죠
미군들의 희생?
안따깝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군사영어반
교육을 받을 때라
비상이라도
별 영향없이
랩에서
히어링만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북한의 만행들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
분노의 그날... 우리는 일전을각오하고 출동을 하였는데
출동하는 탱크와 장갑차의 어마무시한 행열에 사람들은 전쟁난거냐? 고 묻기도...
사실 이미 상황은 전쟁으로 돌입했었는데....
그당시 끝내 북진을 하지 못해 한탄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