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나의 70년대
70년대에 태어난 나로서는
70년대에 대한 나의 추억은 전무하다.
동네 아이들과 놀던 기억이 잡힐듯 기억나는 것이 전부이다.
70년대 대한민국과 나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저 79년 박정희가 죽었을때
온통 TV에서 재미없는 것만 했었다는 기억뿐이다.
그런 70년대 대한민국은 역동의 시절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급진적인 경제정책으로 노동자는 최악의 조건에서
자신의 삶을 잃은 채 오직 생존을 위해서 살아갔으며
우리의 광부와 간호사들은 국외로 실려나갔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그 시절의 지도자들의 덕택이 아니다.
그 시절의 노동자들의 덕택인 것이다.
이 사실을 착각하며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우리 카페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도올 선생의 현대사강의 중에
고등학생들에게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묻는데,
우리 고등학생들이 박정희에 대해 너무나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태일이 생각났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분신자살한 전태일.
오늘날 당시보다는 노동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우리시대 아직도 약자는 있다.
그리고 노동관련 법규도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은 과연 없는가?
깨어있는 언론이나 뉴스를 통해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생활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난장이 가족과 같은 이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많이 고쳐야할 곳이 많다는 점이다.
1. 가난한 난장이 노동자
이 책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포함한
여러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이라고 하지만,
각 단편에 나오는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동일인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관련된 인물들이다.
그 중심에 있는 이들이 바로 난장이의 가족들이다.
..
백십칠 센티미터 키에 삼십이킬로그램의 몸무게.
이 사람이 바로 이 책에 가장 많은 화자로 나오는 영수의 아버지이다.
가난한 난장이 노동자.
그가 바로 영수의 아버지이고,
70년대 소외층에 가장 대표적인 모델이었던 것이다.
물론 70년대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아직도 이 소설이 많이 읽혀지는 이유는
아직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난장이 노동자를
색안경의 시선으로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들은 이번생에 편안한 삶을 누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들 주변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도 그렇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회사 간부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잘못하면 간신이 유지해오던 생존의 수단마저 잃어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존의 수단을 위해서
그들은 하던 학업도 줄여야 한다.
배우지 않으니,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이 있는 줄도 모른다.
양심있는 지식인들이 그들과 함께한다.(소설속의 지섭같은 인물이 그렇다.)
그리고 소설의 전반적인 주인공 영수는 지섭을 만나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노동자들의 보호를 위해 눈을 뜨게 되는 영수.
그는 협상을 통해 바꾸려 해보지만 바꿀수 없음을 안다.
전태일이 시청에 수십차례 시정요구를 해도
바꿀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전태일은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분신자살을 선택한다.
소설 속의 영수는 좀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바로 위선에 가득찬 회사경영자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영수는 강자와 권력을 위한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슬픈 내용이 주를 이룬다.
70년대 자본주의에 숨겨져 있는 하층계급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 삶과 작은 행복에 기뻐하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음에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3. 해설
책 뒷편에 부록으로 초판 해설과 신판 해설을 싣고 있다.
행간의 놓친 의미를 찾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너무 전문적인 용어에 쉽게 지루해진다.
짧은 문장의 위주의 소설을 읽다가
전혀 다른 문체의 해설을 읽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책제목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지은이 : 조세희
출판사 : 이성과 힘
독서기간: 2006.10.24- 2006.10.26
페이지: 351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