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운기독신우회에 처음 참석한 64회
조순실후배는 들곷 피는 마을 김현수목사의 사모(위 사진)로
생생한 목회이야기를 짧게한 대신
"똥교회목사 사모-들꽃피는 마을 이야기"책을 나누어 주고
장미경후배는 지구촌교회 찬양사역자로헌금송을 아름답게 찬양하여 감동받게하였다.
나누고싶어서 옮겨온 글입니다.

하늘이 모처럼 푸르러 푸근한 날 아이들을 만났다.
초대받지 않았지만 점심 휴식 시간에
들꽃피는학교 홀에 들어갔다. 예쁘장한 눈매가 야무진 여학생이 피아노를 치고
몇몇 친구들은 노래를 따라 불렀다.
최대한 편한 자세의 아이들. 노란 염색 머리, 별 목걸이, 귀걸이를 해도
이 학교는 무방하다.
아이들, 열려 있다 남녀 학생 10여 명이 무관심하고 싶다는 표정으로 꺼칠하게 힐끗 본다.
저만한 또래의 청소년.
누구네 자식 할 거 없이 반항하기 위해 준비된 아이들.
그래도 공유한 기억은 미소를 짓게 한다.
'좀 전, 시간대는 달라도 같은 반찬과 밥을 먹었잖니….'
PC를 열심히 치고 있는 소녀 옆에 가 반대 방향으로 앉았다.
보통 속 얘기 하려면 몇 달이 걸린다던데 편한 에너지의 교집합이 순식간에 기습적으로 이뤄졌나 보다
"PC내용 안 볼게…"
"보셔두 돼요."
"추석에 아무데도 안 가니?"
"아뇨, 세 군데나 가야돼요. 아빠 집, 엄마 집, 친척 집. 엄마가 좋구요, 아빤 재혼했어요.
아빤 여자가 많아요. 그래서 싫어요."
아니, 뭔 일일까? 황송해서 할 말을 잊는다. 고1이라는데 눈을 바라보니 너무 순하다.
어찌된 일인지 그 소녀의 브리지한 긴 머리를 간간이 만져도 되게 되었다. 가출 청소년,
결손가정 청소년을 가르치는 대안학교 들꽃피는 학교에서.
우리는 이쁜 아이들이야
우리는 이쁜 아이들
우리는 이쁜
아아 이뻐라
우리는 열려 있다
-황동규 '사랑의 뿌리' 중에서
바로 이 얼굴
이 학교를 세운 김현수 목사(49세)는 소위 운동권 출신이다. '바로 저 얼굴이구나!'
그의 맑은 얼굴을 새삼 바라보았다.
겁없이 유인물 돌려 가을학기 학교에 가면 휴교령이 교문 앞에 크게 나붙게 한 사람.
가을 축제의 낭만 같은 소린 얼어붙고, 때론 부끄러움에 수근거리게 한 사람, 다방으로
몰려다니면 으레 나오게 마련이던 이야기, 프락치며, 카메라에 찍혔을 거라는 둥, 우리도 뭐 동참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언어의 반찬에 불안을 넣어 만들어 주던 사람.
민주화 운동, 데모, 긴급조치 위반, 노동자, 투쟁, 좌경화, 민중민주주의…. 세상을 관념이
아닌 실천의 대상으로 보았던 용기 있던 피끓는 청춘들. 감옥에 갔다와서 고향집으로 갔다는
소문거리는 의레 제공되고…. 바로 그들 중 하나인 그를 정치가가 아닌 목사로 마주하게 되었다."어용이었는데요…." 갑자기 웃음소리가 그의 들꽃학교 안에 울려퍼졌다. 분단의 비극처럼
같은 세월을 타고났어도 졸업하면 한쪽은 회사의 발전을 위한다는 책자를 만들고 한쪽은
선봉에 서서 투쟁을 했다. 구경꾼은 아니었지만 누구처럼 숟가락의 사유에서 거리가 생겼던 걸까?
젓가락은 둘인가 하나인가
젓가락은 둘이면서 하나다
모았을 땐 하나
벌렸을 땐 둘
모았다 벌렸다 하는 것이 젓가락이매
남과 북도 우선 당분간은 그럴 일이다.
김지하의 '수수께끼'
나눈다는 것
1977년 한신대에 다니던 그는 긴급조치 9호 및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됐었다. 하늘이
잿빛으로 바뀌는 걸 그때 그는 보았다. 유인물이 평화통일 등 너무 폭 넓은 내용을 담고 있었던
탓에 정치범 교도소에서 또 다른 차원의 삶을 맞게 된 것이다. 대학 신문엔 연일 동아언론
탄압 내용이 범벅이 되었던 그 시절에….
저녁 후면 '시와 문학의 밤' 도 창살 너머, 낭송으로 열었다. 말로 바둑도 두고, 비전향 장기수를
보며 민족 분단의 아픔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감사한 그 시절'이라고 그가 표현했다.
그곳에서 경제, 철학, 역사, 세계사 등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철창 안에서도 젊은이들은 꿈을 접지 않는다. 그도 그랬다. '난 농민들과 같은 가난한 사람과 살아야 겠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누구일까. 밥을 고민하는 사람들. 뭔지 빼앗긴 거 같아 허전한 사람들.
그 때문에 혁명세력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거칠어진다. 어쩌면 나눈다는 건 같다. 그들의 편이
돼서 밥을 챙겨 주겠다는 것과 있는 걸 나눠 복지사회를 만들자는 것. 정치가 무력하면 민간이
나서는데 젊은 혈기의 사람들은 그 시간을 앉아서 기다릴 수 없다는 것. 그것이 그 시절
학생운동이요, 데모 아닌가?
품고 가르치고 출감하니 10.26후 1980년 민주화의 봄이 왔고, 그는 사목의 길로 들어섰다.
'새벽에 가 보니 교회 지하실에 아이들이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었어요."
1994년 가출 청소년들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들꽃피는 마을, 학교의 시작은
어쩜 피아노 아래 얼기설기 누워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닌, 얼기설기 구부리고 자는 바로 그것이었다.
가난의 자녀들. 숙식이 해결 안돼 찢어진 가정의 앳된 청소년들이 갈 곳을 잃은 것이다.
아무리 쫓아도 가지 않던 제도권 밖의 아이들. 약물 중독으로 신음하던 아이들.
"목사님 아침 밥 좀 사 주세요! 배고파요." 문을 잠궈도 아침이면 달려왔다. 어찌하랴.
유인물 대신 아이들을 봉고차에 싣고 함께 구질구질 엉켜 사는 그 삶을 택했다.
아파트에서도 살았지만 불량청소년 불러들이냐고 비난하는 주민들의 반대로 쫓겨나와
폐농가, 수목원에서도 살고 봉고차 인생도 되었다. 파출소에 가도 보호자로 자신을
지목하던 아이들. 젊다는 건 나이가 문제되지 않나 보다. 감옥에서 나와 노동자가
많은 안산 지역에 민중교회를 세우고 노동 사목을 하던 그 시절에 만난 아이들을
도망다니지 못해 차라리 끌어안았다.
내 가슴에 안는 건 고통과 희생을 함께 안는 일. 우선 김 목사 부부의 희생이 요구되었다.
늘 한뜻으로 살아온 동지 같은 그의 아내 조순실 씨는 여학생 2명을 맡아 하나의
가정을 꾸렸고, 김현수 목사는 남학생 6명과 가정을 꾸렸다. 남들같이 부부가
저녁에 TV도 보고 오손도손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 먹는 평범한 일은 그들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김 목사도 저녁이면 밥을 해 먹이고 청소년들을 돌보아야 했다.
바로 그룹홈이다.
지금은 그런 그룹홈이 늘어나 안산, 봉평, 진천 등지에 10 가정이나 된다.
14명의 생활교사 선생님들이 4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살아간다. 유학 가려다
다시 주저앉은 부부에, 여름 도보여행 체험학습때 봉사하다 정들어 이 길에 들어선
27세 된 젊은 총각 선생님도 있다.
김목사 내외뿐이 아니다. 85세 된 그의 노모도 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대학 가서 감옥 가는 걸 보신 어머니가 아들을 도와 한 가정을 꾸리신다니!
남들처럼 오롯이 효도하고, 아내와 딸과 꿀단지처럼 살고 싶은 마음을 그는 어찌 다스렸을까?
아니 그도 그지만, 아내는? 어머니는?
대부분 아이들을 학교에 다시 보냈지만 복학이 불가능한 아이들을 위해 1997년 들꽃피는학교도 세웠다.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검정고시 교육, 특기교육, 봉사활동 등을 시킨다.
희생 속에 핀 들꽃피는마을은 아이들 저녁을 품어 주는 마을이요, 들꽃피는학교는
그 마을 아이들을 낮이면 따뜻하게 가르치는 학교다.(글쓴이 이인영은 아산재단 편집장)
★책 이야기의 시작은 경기도 안산노동교회의 1994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로부터 시작된다.
이 안산노동교회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의지하던 셋방살이 교회였다.
이 교회로 찾아든 8명의 거리의 아이들과의 목사와의 만남이 들꽃피는 마을의 시작점인 것이다.
목사는 처음 이 아이들을 밖으로 쓸어 보냈다.
어디서 얼마나 뒹굴고 다녔는지 교회는 형언할 수 없는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거름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청국장을 띄울 때 나는 냄새 같기도 한” 악취에
하나님의 집은 장악되어 있었다.
목사는 아침을 먹이며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엄중 경고했다.
그러나 이 갈 곳 없는 아이들은 잊혀 질 만하면 교회 안으로 스며들었다.
때론 교회 안에 똥까지 싸질러 놓았다. 경찰의 구둣발과 매질은 잘 참았던 목사였지만
그 꼴은 두고 볼 수 없었다.(똥교회라는 소문이 날까 염려스럽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86년 창립 이래 한번도 잠그지 않았던 교회 문에는 커다란 자물통이 걸렸다.
그 이후 아이들은 교회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안산서초등학교에 운동을 나갔던 목사와 사모는
학교 운동장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과 다시 만나게 됐다.
그 아이들은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달려와서는 팔에 매달려 밥을 달라고 졸랐다.
원망을 들을 줄 알았던 목사는 당황했고, 문득 이 아이들의 사연이 듣고 싶었다.
아침을 먹여 보내며, 저녁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날이 바로 김현수 목사의 진로가 바뀐 문제의 10월9일이었다.
★엽기적 사회증오 범죄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날리는 사람들
최근 온 나라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엽기적인 범죄’가 경기침체로
어둡던 민심을 더욱 어지럽게 하고 있다.
20여 명을 잔혹하게 살해하고도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자신을 영웅시하는
유영철이라는 한 살인자 때문이다.
그의 살인행각을 전문가들은
‘무동기형 범죄’ 또는 ‘사회증오 범죄’라 부른다. 이러한 범죄 양상을
‘선진국형 범죄’라고도 하지만, 대체로 그 원인을 빈부격차의 심화와 도시의 익명성의 강화,
이에 따른 사회부적응자의 뿌리 깊은 소외감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공동체성의 확보를 제시하고 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일찌감치 범죄에 발을 들이게 되고, 그로부터 깊은 사회적 소외감과
복수심의 결과에서 비롯된 이러한 범죄의 근원적 처방은 결국 해체일로를
걷고 있는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가족과 사회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문제아’가 잔혹한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빈부격차의 심화와 이혼율의 급등으로 갈수록 해제가정이 급증하고
있는 요즘,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코 밝게 내다볼 수 없게 만드는 어두운 소식이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사회의 곳곳에 희망의 씨앗을 퍼뜨리는 들꽃 같은이들이 있다.
바로 신간 [똥교회 목사의 들꽃피는마을 이야기]의 저자 김현수 목사와 마을 식구들이 그 장본이다.
이들은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가 노숙자와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몸을 파는 여인들의
친구였던 것처럼,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 가출청소년의 형제이자 부모이고,
나약자 자의 모습으로 드러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참다운 목회자이다.
★★홈페이지/www.wahaha.or.kr
[들꽃 피는 마을 이야기]
-김현수 목사 -
교회 바닥에 x을 싸고 사라진
아이들이 있었다.
자고가면 갈 것이지
x까지 싸놓고 갈게 뭐람.......
몰래몰래 x을 치우면서
'x교회'라는 소문이 돌면 어쩌나,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튼튼한 자물통 네 개를 구입하여
교회 문을 닫아 걸었다.녀석들은 더 이상 오지 못했다
대신 소식이 들려 왔다
파출소에 들락거린다느니 죽도록 맞았다느니...........
아이들을 품은지 10년.
꼼작없이 하나님의 각본인 것을,
울기도 하고 또 웃기도 하면서 확인한 세월이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손길을 보여주신 이웃들로 하여
'허한 가슴'들은 따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