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우
김민술
삼월 첫날이다. 삼 일절 고마운 봄비다. 그런데 바람이 거칠어 우산을 받아도 뒤집어지고 모자가 날아가 하필 하수구 물통에 빠졌다. 그까짓 빠진 게 문젠가? 줄기차게 옷 적셔도 좋을 것 같은 고마운 봄비다. 우주 생명을 불어넣는 고마운 봄비 아닌가? 우산 낙수가 바람에 들이쳐 아랫도리가 후질 근 찌거분하다. 그래도 시원하다 못해 즐거웠다.
코로나 때문에 하릴없어 걷기라도 하려고 신성 공원으로 방향을 잡고 가는데 산수유가 빗물을 머금고 노랗게 웃는다. 백매白梅도 하얀 틀 이를 들어 내고 시골 튀밥 장수 뻥 튀기 여러 번 터뜨려 놨다. 매화 꽃향기가 고소하게 튀밥 냄새를 풍긴다. 내 마음이겠지, 평화 도서관 언덕배기 잣나무가 먼지를 빗물로 목욕하며 쓸어낸다. 초록 이파리가 더 푸름이 비속에서도 빛이 난다.
세한연후지송백歲寒然後知松柏 추운 계절이 되어야 소나무 잣나무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오늘 삼 일절 고마운 봄비로 목욕하고 푸름이 우뚝, 대한독립만세 삼창 하듯 기골이 장대하다. 언제나 내 마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뒤집힌 우산을 접고 비를 맞는다. 즐거이 떠도는 저 구름 왜놈 순사 피하느라 비를 질금질금 내리고 바쁘게 지나간다.
공원 언덕에 그늘을 만들려고 심어 놓은 저 소나무 슬픔의 무게를 아는 듯 가지를 늘어 트린채 우두커니 비를 맞고 있었다. 바람에 소나무 늘어진 가지 흔들리는 소리가 처연悽然하게 귀속을 파고 들었다.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피를 토하며 만세 부르는 함성도 귀속을 합작으로 들어온다. 그날 그때 시공을 초월한 함성이 또렷이 살아 있음을 극단의 정의 삶이 삼 일절 뜨거운 봄비에 넋을 위로 드리고자 우산 없이 비를 맞았습니다.
안중근 유관순 이름을 안다는 건 애국에 문제이죠. 애국지사 독립 운동가님 유추해 도감을 만든다면 얼마나 두터울까? 오늘 봄비가 주룩 오는 게 아니고 질금 하루네 오면서 내일 아침까지 온다고 기상청 예보가 맞아간다. 아쉬운 건 있다. 비가 내려서 태극기 게양이 안 되고 코로나 때문에 기념식도 축소했다.
우리 집은 서남 간이다. 베란다 창가 화분들이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잎을 창 쪽으로 내미는 게 아쉽고 미안하다. 그렇게라도 적응 못하면 도태 할 수 밖에 아는지 해가 창에 들어 올 때면 잎은 조금씩 더 세우는 게 보였다. 저녁 무렵 부터 봄비가 살져 도타워진다. 당분간 산 불조심 덜었고요, 베란다 창문을 두들기며 거미줄처럼 소소하게 작은 강을 만들고 섬진강 거슬러 오는 물줄기가 고아高雅하게 넘실거리며 고운 목소리로 노래 불러 누구도 거역 할 수 없는 봄비가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한 물을 받아 섬진강에서 춤을 추겠지, 활엽수도 부지런히 이파리 틔우고 허겁 떨겠다. 오늘 봄비 맞는 게 축복이다
(20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