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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신사의 1년>
남극의 여름이 끝나고 난 3월, 푸른 바다 아래서 자유롭게 유영하던 황제 펭귄들이 한꺼번에 솟아오른다. 그들은 얼음 육지 위로 털썩 떨어져서 바다 밑에서 날렵하게 헤엄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뒤뚱뒤뚱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걷다가 힘들면 누워 배로 얼음을 지치기도 한다. 대체 무슨 이유로, 어디로 가는 걸까? 1년에 단 한 번, 신성한 짝짓기 행사를 마치고 단 하나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그들은 묵묵히 힘겨운 걸음을 옮겨 오모크에 도착한다.
그곳은 새끼를 낳고 키우기에 안전할 정도로 단단한 얼음 지대이고, 바람을 막아주어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빙산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 남극 내의 작은 오아시스 같은 장소다. 4월과 5월에 걸쳐 그곳에 모인 수백 마리의 펭귄들이 각자 짝을 찾는다. 선택되지 못한 펭귄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다시 바다로 떠난다.
황홀한 구애 의식과 짝짓기 의식이 끝나면 5월 말, 암컷은 하나의 알을 낳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알을 얼음 위로 떨어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암컷은 극히 조심스럽게 알을 자신의 발 위에서 수컷의 발 위로 살짝 굴려보낸다. 그리고 암컷은 곧장 먹이를 잡으러 바다로 떠난다.
수컷은 60여 일 동안 꼿꼿한 자세로 알을 품은 채 암컷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풍속이 시속 100km에 달하고 영하 80도를 밑도는 강추위가 몰아닥친다. 수컷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체온만으로 알이 부화하기를 기다린다. 몇 백 마리의 수컷은 추위를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면 한데 뒤엉켜 천천히 거대한 원을 그리며 돈다.
순백색의 평평한 공간에 검은색의 거대한 나선형이 장관을 이룬다. 7월 중순 즈음 알이 톡톡, 안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다. 제 힘으로 알을 깨고 나온 새끼 펭귄은 회색빛 털이 보송보송하다. 곧장 먹을 것을 달라고 울어대는 새끼에게 수컷은 그때까지 소화시키지 않고 감춰두었던 비장의 음식물을 토해내 먹여준다.
그 무렵 소화시키지 않은 음식물로 묵직해진 암컷들이 무서운 바다표범과 위험천만한 빙하라는 장애물을 이겨내고 돌아온다. 12월 경, 새끼가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암컷과 수컷은 교대로 걸어서 2~30일 정도가 걸리는 바다까지 몇 번이고 왕복한다. 이것이 남극의 제왕 황제 펭귄의 1년 생활 패턴이다.
<남극에 미친 사나이>
뤽 자케는 본래 생물학을 전공했다. 그의 석사 논문은 ‘생태학과 동물 행태’, 박사 논문은 ‘산악지대의 자연 관리’에 관한 것이었다.
1992년 스물 네 살이 되었을 때 그는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의 ‘극지방 조류생태학’ 연구를 담당하면서 ‘세상 끝에서의 14개월 동안의 삶’을 자청했다. 그곳에서 그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남극의 순수하고도 무자비한 아름다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누군가는 묵묵히 산을 오르고 사막을 걷고 바다를 건넌다. 나에게는 남극이 그랬다.
특별히 남극 지역에서 편안함을 느꼈고 모험의 진정한 감각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일단 거기 머무르면 신체는 어쨌든 적응하게 되어 있다.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무시무시한 바람까지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철저한 분석과 객관적인 데이터를 요구하는 리서치 작업에 흥미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친구 중 한 명은 남극의 범고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돌아와 자케의 비밀스런 열정에 불을 댕겼다. 자케는 그때부터 유난히 남극을 자주 찍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그 이후로 12년이 흘렀고, 나는 여전히 위도 66도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남극이 왜 그토록 나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오는지 설명하기 힘들다. 그곳은 마치 지구가 아닌 것 같다. 그곳에선 직경 30km짜리 빙산을 볼 수 있다.
인간 세계에서는 참조하거나 빌려올 수 있는 어떤 레퍼런스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채로운 색채도, 어떤 냄새도 그곳엔 없다.” 그는 남극에서의 경험을 마치 현실과 환상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묘사한다. “모든 기준은 사라지거나 뒤바뀐다.”
그는 특히 남극의 모든 생물 중에서도 황제 펭귄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사실 펭귄 자체는 남극에서부터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와 남미 해안에 이르기까지 널찍이 분포한다. 그러나 황제 펭귄은 오로지 남극에서만 서식한다.
5천만 년 전부터 남극을 지켜온 생존자 황제 펭귄은, 그러나 그렇게 끈질기게 종을 보존하기 위해 대단한 모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자케는 황제 펭귄이 자유로운 바다에서 빠져나와 힘겨운 육지에서 마치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속죄자처럼 걷고 또 걸어" 산란과 부화, 부양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가는 모습에 탄복했다. “단언컨대 어떤 생물 집단도 남극에서 이런 행동을 할 수 없다.” 그는 펭귄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그 안에서 인간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드라마틱한 삶과 사랑, 죽음과 생존의 파노라마를 읽어냈다.
그는 그것을 표현하고 싶어졌고, 자신이 느낀 감탄과 경이로움, 감동의 순간들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졌다. 2001년에 그는 펭귄에 관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잠깐, 시나리오라니? 다큐멘터리란 본래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피사체의 있는 그대로를 찍어내는 게 아니었던가? 자케는 자신이 펭귄의 사이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한 편의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시나리오는 세심하게 공들여 쓰여졌고,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연기자 펭귄을 두고 내기를 해보는 것뿐이었다.” 그는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과학영화도 아닌 또 다른 장르를 원했다. “이 놀라운 피조물을 향한 내 자신의 감정을 번역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마치 관객들이 바로 그곳에 있는 것처럼, 펭귄들과 함께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빠 펭귄과 엄마 펭귄, 새끼 펭귄에게 각각의 내레이션을 부여했고, 온갖 고난을 겪고 마침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한 가족의 일대기를 보는 듯한 극적 구성을 선택했다.
<얼음 위에서의 13개월>
2002년 제작이 본격적인 궤도에 이르렀을 때, 본래 TV용 영화로 기획되었던 <펭귄-위대한 모험>은 극장용 영화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합의점에 다다랐다. 두 명의 카메라맨이 여기에 합류했다.
바다생물학과 극지방 대양에 능통한 제롬 메종, 그리고 다큐멘터리 촬영에 열정적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던 로랑 샬레는 1년 이상 세상과 격리된 채 오로지 펭귄에 매달려야 하는 이 작업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11월이 되자 펭귄의 일정에 맞춰 촬영하려면 두 달여 밖에 시간이 남질 않았다. 늦어도 2003년 초에는 남극에 가야만 했다. 그들은 우선 1년을 자급 자족하기 위해 모든 물품의 여분과 영하 40도에서 작동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한 특수 카메라를 제작하는 것에 최우선을 두었다. 시간이 없으니 질문하고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1년 하고도 한 달 더, 남극에서 꼼짝도 않고 펭귄의 기나긴 여정을 따라다녔던 촬영팀의 고생은 물리적인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매일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 한 시간 반 동안 장비를 준비하고, 얼음 위에서 네 대의 슈퍼16mm 카메라에 필름을 끼우고, 한 사람당 60kg의 기기를 짊어지고 길을 떠나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직사광선으로 내리쪼이는 햇빛으로 입은 화상과 최저 영하 9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로 인한 동상도 일단 익숙해진 다음에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과 카메라의 존재에 익숙하지 않은 펭귄에게 가능한 최대의 근접 촬영을 시도하기 위해 시속 150km의 바람에 맞서 조악하게 두들겨 만든 킥보드 같은 기구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얼음 위를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촬영했던 것도 농담 같은 후일담으로 기억될 수 있었으리라. 어느새 펭귄과 동화되어 있던 인간들 역시 ‘지구와 우주 사이의 경계선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열에 들뜬 듯 펭귄의 삶에 몰두해 있었으니까. 필름은 모자라지 않았고 아무도 13개월 동안 촬영장을 떠나려 안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촬영팀의 가장 큰 고민은 <펭귄-위대한 모험>이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을 넘어선 ‘이야기’를 담아내야 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펭귄-위대한 모험>의 환상적인 오프닝, 1천 마리가 넘는 펭귄이 일제히 얼음 위에 집결해 오모크로 떠나는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제작진은 매일매일 임전 태세를 갖추고 펭귄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건 뛰어난 관찰력이나 테크닉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조류 관측소의 도움을 받아 펭귄들이 어디에 집결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시기는 주연배우들인 펭귄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13개월 동안 줄창 엄청난 분량을 찍어댔지만 막상 남극을 떠날 때까지 단 한 번도 현상해볼 수 없는 필름 때문에 마지막 촬영분이 어느 시퀀스까지 찍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했으며, 또한 무려 1천 마리에 가까운 펭귄들 중에서 주인공을 결정하는 문제 역시 남아 있었다.
사람처럼 희로애락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이 위대한 생명체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내는 촬영팀이 가질 수밖에 없는 어떤 윤리적 태도의 문제 역시도 중요했다. 펭귄에게 있어 알을 낳고 새끼를 무사히 키워내는 행위는 그의 모든 사활을 걸고 하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촬영팀은 자칫 그것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혹시나 신경이 예민해진 펭귄이 인간에게 거친 공격을 가하진 않았을까? 그렇진 않았다. 아마도 산적해 있는 일상의 문제들 때문에 인간에게 별다른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으리라. 대신 펭귄들은 무척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기색도 없이 신기한 듯 촬영팀의 주위를 맴돌곤 했다. “짝짓기에 성공하지 못한 몇몇 펭귄들은 혹시 우리 중에 커플을 이룰 수 있는 존재가 있는지 관심을 보여 왔지만, 우리는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진 않았다.(웃음)” 적어도 펭귄들은 아직까지 ‘인간적인 식민지화의 과정’에 노출되지 않았다. 사실 펭귄과 인간이 처음 마주친 건 불과 100년 전의 일이다.
자케는 결국 펭귄과 남극 양쪽을 존중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를 담아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지배하고 싶다면 먼저 복종하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매우 현명하게 처신해야 했다.” 그는 펭귄이 자신들을 원치 않는 날이면 굳이 펭귄에게 접근하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펭귄-위대한 모험>에는 이제껏 보여진 적 없는 몇몇 놀라운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짝짓기에 성공한 펭귄들의 순결한 환희,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얼어 죽어버린 갓난 새끼를 내려다보며 울부짖는 암컷 펭귄의 비통함,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는 갈매기의 부리 끝에 살짝 물렸다 간신히 빠져나와선 짹짹거리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새끼 펭귄의 공포... 사실 배한성과 송도순의 한국말 더빙이 굳이 아니었더라도, 사실 그 화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펭귄의 심정에 동화되는 체험을 몇 번이고 겪게 되리라.
<절실한 생존의 문제 >
촬영팀이 프랑스로 돌아온 뒤 그동안의 촬영분을 편집하는 데에만 6개월이 소요됐다. 놀랍게도 암컷이 수컷에게 알을 건네주는 은밀한 장면을 찍은 단 한 세트의 필름에서만 문제가 발생했을 뿐, 지독한 추위를 뚫고 돌아온 대부분의 필름은 무사했다.
자케는 원래 시나리오 흐름에 따라 정확하게 편집을 해나갔지만 잠재적으로 수백 마리의 펭귄들이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펭귄들을 일일이 구별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원래의 의도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단지 편집의 문제였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매순간 위협받는 펭귄들의 아슬아슬한 삶의 경계선을 극의 중심에 두는 것이었다. 그들의 삶은 명백하게 아주 작고 숨겨진 요소만으로도 위협받는다. 하얗게 뒤덮인 얼음 속에 감춰진 크레바스, 물 밑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사나운 바다표범, 갑자기 몰아닥친 강풍 블리자드 모두가 1년 동안 펭귄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생존과 번식의 행위를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태어난 새끼들 중 80%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채 성장도 하기 전에 죽는다. 20%의 소수만이 살아남아 종족을 이을 수 있는 엄혹한 현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마치 설화나 전설처럼 들리는 이 황제 펭귄의 일대기에 대해 자케 자신이 공감했던 절실함이 영화의 중심이 되길 원했던 것이다. “나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묘사하려 애쓰지 않았다. 삶과 죽음 사이의 끈질긴 투쟁과, 어떤 한 생명체에 대해 극한까지 밀어붙여 경험 가능한 모든 것을 탐험했을 때의 외경심에 대해 내가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싶었다.
펭귄은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모든 힘겨운 한계들을 어떻게 감당하는 것일까?”
그 점을 제대로 살려내기 위해 자케가 선택했던 의인화의 방식, 즉 부모 펭귄과 새끼 펭귄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인간들의 내레이션 더빙을 입힌 것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프랑스 판에서는 라울 루이즈의 <야생의 영혼>, 올리비에 아사이야 <데몬러버>, 클로드 소테의 <넬리와 아르노> 등에 출연했던 중견배우 샤를 베를링이 아빠 펭귄을, 시릴 콜라르의 <싸베지 나이트>,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토탈 이클립스>, 질 미무니의 <라빠르망> 등으로 잘 알려진 로만 보링거가 엄마 펭귄 목소리를 맡았지만, 미국에 개봉했을 때에는 배급사 측의 반대로 모건 프리먼이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의 내레이션을 맡았을 뿐이다.
그러나 자케는 “의인화는 과학적 팩트를 묘사할 때 사용된다면 잘못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방식으로는 옳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또 다른 아빠 펭귄 >
어쩌면 관객들은 <펭귄-위대한 모험>을 보며 엄마 펭귄보다는 몇십 일을 단식해가며 추위와 배고픔에 맞서 용감하게 알을 부화시키는 아빠 펭귄에게 좀 더 애정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자케 본인의 개인적인 체험이 영화 전반의 구성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극에서 촬영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자케는 프랑스로 다시 날아와야 했는데, 그의 아내가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이다.
“나는 매우 강렬한 부성애의 감정으로 <펭귄-위대한 모험>의 편집을 진행했다.” 촬영팀이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상황에서 카메라와 필름을 소중하게 보존하며 남극에서 13개월을 보냈듯이, 황제 펭귄들이 꼬박 1년을 기다려 사랑스런 자식들을 키워냈듯이, 자케 역시도 자신의 ‘단 하나의 알’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결국 영화 한 편 찍는 것도, 자식 하나 키워내는 것도 물심일체, 몰아의 경지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남극의 추위까지도 녹여버릴 것 같은 뜨거운 사랑의 결과물, 스크린으로 직접 확인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