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스럽다]는 조어가 부시 미국대통령의 무능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올해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화씨911]은 가장 부시스럽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눈치 보지 않고, 체면 차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부시와 부시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보수 세력들을 공격한다. 특히 911 테러에 대한 부시의 대응이 얼마나 부적절한 것이었는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사실적 기록과 증언을 통하여 드러낸다. 시종일관 부시 대통령의 무능을 폭로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이 영화는, 사실성과 기록성이라는 다큐멘타리 장르가 어떻게 총보다, 그리고 펜보다, 더 강렬한 무기로 변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의 결정적 승부처였던 플로리다 선거의 의문부터 시작된 [화씨911]은, 플로리다 주지사인 부시 대통령의 동생 젭 부시나, 그의 친척이 보도국장으로 있던 폭스채널 등이, 당시 살얼음판의 박빙 승부를 달리던 고어-부시 대결에서 결정적으로 부시에게 대세가 기울어지게 되기까지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를 조목조목 살핀다. 그리고 취임식 때부터 리무진에 계란 세례를 받던 부시가 취임 후 100일의 42%를 휴가 보내는데 썼다고 맹비난한다. 부시가 그동안 한 일은 요트 타기나 텍사스에서 카우보이 놀이를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감독은 [전화와 팩스가 발명되었기 때문에 워싱턴의 의자에 앉아 있어야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부시의 말을 직접 소개하며 부시를 조롱하고 있다.
비극의 9월 11일, 플로리다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과 함께 동화책을 읽고 있던 중, 부시 대통령은 보좌진들로부터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공격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7분을 허비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은 압권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7분동안 무능과 무책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부시 대통령은 불쌍하고 처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의 얼굴 위로, 마이클 무어 감독은 아는게 없으니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수밖에 없다면서, [이럴줄 알았으면 일 좀 할걸]이라고 부시 대통령의 속마음을 자신의 나레이션으로 공개함으로써 폭소를 터트리게 한다.
또 오사마 빈 라덴 일가와 텍사스의 실패한 석유재벌인 부시 일가의 오랜 커넥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미국의 방위비 지출이 늘어날수록 빈 라덴 일가의 이익도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래서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난 후 벌어지고 있는 이 추악한 전쟁의 이면에 개인적 이권 획득에 대한 음모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비록 의혹제기 단계에 그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올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부시와 공화당은 커다란 타력을 받을 것이다. 특히 911 테러 직후 특별 전세기 편으로 미국을 빠져나간 빈라덴 일가의 항공기 이륙을 누가 허가 했는지에 대한 의문 제기는 매우 유효한 것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그의 전작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미국의 보수진영을 강타한 바 있다. 총기 소지에 대한 거의 무제한의 자유가 어떤 비극을 불러일으키는지, 그 이면에 미국의 핵심 보수 세력인 군수산업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역시 다큐멘터리의 사실성으로 실감나게 전해주었다. 이 영화로 마이클 무어 감독은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분 대상을 받고 시상식에서 [부시, 부끄러운줄 아시오]라고 일갈하여 전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화씨911]은 비록 정치적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일방적으로 한 대상에 대해 집중포화를 하고 있지만, 다큐멘타리 영화로서는 드물게 영화적 재미와 대중성을 갖추고 있다. 타렌티노 감독이 심사위원장 자격으로서 칸느의 황금종려상 월계관을 이 영화에 씌워주면서, 정치적 내용보다는 영화 그 자체만 보고 최종 승자를 결정했다고 말했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만약 올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참패한다면 [화씨911]의 기여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떤 영화도 [화씨911]처럼 직접적이든, 아니면 우회적이든, 정치적 상상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덧붙이자면, 반부시 진영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나로서는, 엔드 크레딧 올라올 때 휘파람을 불며 즐거워했다. 정치적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축복과 같은 영화, 그러나 부시 지지자들에게는 폼페이 화산의 화산재보다 더 큰 재앙의 영화다. 부시, 부끄러운줄 아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