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문학＞2021,여름호 계간평

<시조문학> 2021, 여름호 계간평      문학진흥법이 일부 개정되었다               -“시”를 “시, 시조”로                                                                                 䨒溪 이도현                                                                            (한국시조협회 고문) 지난 2021, 5, 18 일, 국회에서 문학진흥법 일부를 개정, 공포하였다<법률 제18151호>문학진흥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제2조 제1호 중 “감정”을 “감정 등”으로 “시”를 “시, 시조”로 “평론”을 “아동문학, 평론”으로 한다. 이 법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개정 2021, 5, 18)1,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 등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작품으로서 시, 시조, 소설, 희곡, 수필, 아동문학, 평론 등을 말한다. 이상을 요약하면 종래의 “시(시조)”개념을 “시, 시조”로 “시조”를 독립 장르로 위상을 높였다. 이에 시조시인들은 긍지를 갖고 시조의 자존심을 세워나가야 한다. <시조문학>이 올해 61주년을 맞이한다. 표지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변신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이에 시조문학 온 가족은 동참하여 창대한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 이제는 가야 한다뒤돌아 서지 말자 낮은 곳 발을 딛고마당을 밟고 나가 숲속의 계곡 한자리마음 풀고 살아야지-이경란의 「낙수」전문 표지 시인 이경란의 수록작품 20편 중 자연을 주제로 한 두 편, ‘낙수’와 ‘풀잎은’을 골라 보았다.‘낙수(落水)’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말한다. 낙수도 자연이요, 떨어짐도 자연이다. 이경란은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한다. 이제는 뒤돌아보지 말고 가야 한다고 단호한 결심을 한다. 낮은 곳 발을 딛고 마당을 밟고 나가 숲속 계곡 어느 한 자리에서 마음을 풀고자 하는 청운낙수(靑雲落水)의 삶을 살고자 함이다. 푸른 구름 빗겨 싣고 자연스레 산골짜기로 졸졸 흘러내리는 물과 함께 살고자 한다.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다. 최상의 삶은 물과 같이 살고자 함이니 이경란의 낙수와 함께 사는 삶, 숲속 낮은 곳에서 마음을 풀고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그러하다. 절실한 자연 친화의 발상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밤 무서리에 떨고 있던 풀잎들은아침의 햇살 밟고 시린 몸 달래면서산비탈 고개 너머로 작은 꽃잎 피웠어라 국화꽃 높은 향기 취하려 들지 않고높이만 올라가는 담쟁이 욕망에도저으기 낮은 자세로 우러르지 아니한다 한 세상 힘겹게 견뎌온 삶이라서비바람 몰아쳐도 지난날을 생각하며이제는 보람 있으리 고즈넉이 살 일이다.-이경란의 「풀잎은」전문 이경란 시인의 자연 친화의 삶이 작품 <풀잎은>에서 더욱 고조된다.이경란의 시는 요란스럽게 소리 지르지 않는다. 조용조용 속삭이는 풀잎이다. 무서리에 떨고 있는 풀잎이며 시린 몸 달래면서 산비탈 고개 너머에 홀로 핀 작은 꽃잎이다. 국화꽃 높은 향기도 아니요, 높이만 오르고자 하는 담쟁이는 더욱 아니다. 그저 낮게 낮게만 살고자 하는 풀잎이다.한 세상 힘겹게 견뎌온 삶이라서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쳐도 소망을 향해 풀잎처럼 나지막이 살고자 하는 풀잎이다.세상을 살아가는 나지막한 자세, 고개 너머에 핀 작은 행복, 한 세상 힘겹게 견뎌온 경륜, 그러면서 하늘 향한 작은 소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 고즈넉이 살아가는 시인의 철학이 또한 감동을 준다. 조개의 속살 가슴 이제야 보입니다생살을 찢고 키운 진주알 조개 가슴그 이름 어머니라는 숙명의 이름표 바닷속 식인 상어 이빨을 드러내도속살을 보일까 봐 치마끈 조여 매고바닷가 갈매기처럼 울었다 모래밭 앉아 진주는 모릅니다. 어머니의 산고 통증한 생애 감추었던 피고름 짜는 아픔치매기 환자가 되어 속살 열고 웃고 있다.-성낙수의 「어머니의 속가슴」전문 성낙수 시인의 <어머니의 속가슴> 전문이다.시인 어머니의 속가슴은 생살을 찢고 키우는 진주알 조개 가슴이요, 어머니라는 숙명의 이름표를 단 가슴이다.흔히 어머니는 무지(無知) 또는 인종(忍從), 희생, 사랑의 화신이란 장한 이름표를 달고 있다.그러나 성낙수 시인 어머니의 가슴은 생살을 찢고 키운 진주알 조개 가슴이요. 한 굽 더 나아가 그 속살을 보일까 봐 치마끈 조여 매고 갈매기처럼 울어대는 피고름 짜는 아픔을 감춘 가슴이다. 이제는 노년기 치매 환자가 되어 속가슴을 열고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는 허망한 가슴이다.어머니의 속가슴을 생살을 찢고 키우는 조개 가슴으로 환치하여 인종, 희생, 사랑의 이름표를 단, 장한 어머니로 그러다가 끝내는 노환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치매 환자가 된 가엾은 어머니의 끝자락 삶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슴 저미는 아픔, 절실한 가락이다. 하늘이 불에 타고 산과 들 재가 됐다쓰나미 닥쳐오듯 몰아친 민족 광란파편이 갈라지듯이 흩어진 홀씨처럼 포성이 그치면 달려갈 살던 고향등 굽고 숨이 차도 뚜렷한 저 달 속에뛰어가 안기고 싶다 따뜻한 고향 들녘 감으면 파고들고 눈 뜨면 텅 빈 하늘마지막 잎새처럼 가슴이 벌렁댄다고향 땅 기어서라도 흙 한 줌 품고 싶다.-성낙수의 「기어서라도 가마」전문 하늘이 불에 타고 산과 들이 재가 되었다. 쓰나미 닥쳐오듯 몰아친 민족의 광란, 6·25가 서럽게도 금년 71주년을 맞이한다.포성이 그치면 내 살던 고향에 달려가리라. 비록 늙어서 등이 굽고 숨이 차도 고향 산천에 뜬 저 달 속에 뛰어가 안기리라. 마지막 잎새처럼 벌렁대는 가슴으로 기어서라도 고향 땅을 찾아 흙 한 줌 품으리라.6·25로 분단된 민족의 아픔, 두고 온 고향 산천의 간절한 그리움을 사무치게 묘사한 절창이다.성낙수 시인은 이 작품 외에도 모두 절실한 내용을 담은 그러면서 철저하게 정형을 지킨 우수작들을 내놓고 있다. 하늘과 땅이 만나태동한 푸른 잎새 곡우절 닷새 앞뒤신성한 이슬 맺어 솔바람 산 소리 듣고초록 향기 풍기다. 끓는 물 맑은 향기신성한 기운 담아 옥초록 다관으로진향(眞香)을 그득 빚어 맑은 빛 청초한 성품가슴으로 배운다.-최봉희의 「<다도(茶道)2」전문 차 한잔을 마실 때도 도가 있고 예절이 있다. <다도(茶道)2>는 차를 달이거나 마실 때의 예절을 말함이다.첫수에서는 찻잎이 자라서 성숙하기까지의 과정을 말한다. 하늘과 땅이 만나 푸른 잎새를 태동하여 곡우절 전후의 신성한 이슬을 받고, 솔바람 소리를 들어야 겨우 찻잎 향기를 풍긴다고 하였다.둘째 수에선 끓는 물 맑은 향기에 신성한 기운을 담아 옥초록 다관으로 진향(眞香)을 그득 빚어 색과 향기와 맛을 우려낼 때에 차 맛의 극치를 이룸이라 맑은 빛 청초한 성품을 가슴으로 배운다고 하였으니 시인의 다도(茶道) 생활의 멋과 예를 알만하다.최 시인은 다도의 경에 빠져 흠뻑 젖은 듯싶다. 그 경지가 한 굽 높아만 보인다. 하늘을아롱다롱수놓은 아름다움 팔 벌려노래하는사랑의 세레나데 붉은빛넉넉한 구원달보드레한 큰 웃음.-최봉희의 「까치밥」전문 최봉희 시인의 <까치밥> 단수이다.시조는 단수(單首)에 묘미가 있다. 3장 6구 12소절 45자 내외의 글자로 시상 전체를 압축하고 함의(含意)하기 때문에 간결미와 균제미를 동시에 갖기 때문이다.까치밥은 한겨울 까치를 비롯한 새들이 먹으라고 다 따지 않고 남겨 둔 감을 말한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측은지심으로 까치밥을 남겼다. 가지에 매달린 까치밥을 화자는 초장에서 “하늘을/ 아롱다롱/ 수놓은 아름다움”이라 했고, 중장에선 “팔 벌려/노래하는/사랑의 세레나데”로, 종장에선 “붉은 빛/넉넉한 구원/달보드레한 큰 웃음”이라 하였다.작품 구성이 전경후정(前景後情)의 기법이요, 시각, 청각, 미각이 한데 조화를 이룬 공감각의 지경에 이른다. 특별히 종장에서 “붉은빛/ 넉넉한 구원/달보드레한 큰 웃음”의 대목에선 까치밥을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구제하고 돕는 달큼한 큰 웃음이라 은유했으니 얼마나 놀라운 감각적 표현인가.시조는 종장에서 주제를 함축하면서 대미를 장식하기에 종장 처리에서 성공 여부를 가름한다. 잘 지어진 절창 한 편을 본다. 다음엔 신작 특집을 보자. 풀벌레 울음들이 산기슭을 풀어 낸다제 갈 길 가다 말고 주춤대던 갈바람이사는 건 혼돈이라고 어둠을 부추긴다 골짝으로 흘러가는 계곡물은 지줄대고온 산에 달빛 들어 색이 색을 덧입힌다할 말을 삼켜가면서 나도 한창 익어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온몸으로 토해내는내 안의 속울음이 어찌 이리 붉었으랴,이제는 눈을 감아도 환하게 탈 수밖에-김민정의「단풍단풍」전문 김민정 시인의 가을은 ‘단풍단풍’으로 타고 있다. 제목부터 첩어를 사용하여 독자들의 눈길을 끈다.첫수에선 풀벌레 울음과 갈바람이 뒤섞여 어둠을 부추기고, 둘째 수에선 계곡물이 재잘대고 온 산 달빛이 융합하여 시인 자신도 물이 들어 가을로 익어간다. 마지막 수에선 드디어 화자의 속울음까지 붉어 눈을 감아도 단풍으로 활활 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가을 단풍을 미화 또는 점층시키고 있다.김민정의 작품은 각 수에서 초장과 중장은 대상을 구체적(감각적)으로 묘사하다가 종장에서 그것들을 추상적으로 마무리한다. 다시 말하면 이미지와 관념이 결합하여 입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이른바 중층묘사(重層描寫)의 기법을 활용, 이상적인 시적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시인의 몸과 마음이 단풍과 하나가 되어 온몸으로 토해내는 속울음이 붉게 물들어 눈을 감아도 활활 탄다. 낮잠 자다 깨보면 큰이모 사라지고삼촌은 기름 발린 채 몸부림치며 저항하고초장을 뒤집어쓴 여동생은 손님에게 먹히고 뼈대 없는 집안에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약육강식은 비인간적이라 무시하는 그대들이우리만 산 채로 잡아먹는 그 이유가 궁금해 데쳐 먹든 끓여 먹든 기본 예의는 있어야지제발 우릴 산 채로 씹어 먹지는 말아줘그대들 인권이 중요하다며 우리 낙권도 소중해-이소영의 「낙지 권리장전」전문 낙지도 ‘권리장전(權利章典)’을 한다. 권리장전은 1689년에 제정된 영국의 법률로 명예혁명의 결과로 이루어진 권리선언을 말한다.이소영 시인은 낙지를 의인화하여 낙지를 산채로 씹어 삼키는 인간의 잔혹성을 폭로하고 낙지의 권리도 소중하다며 약육강식의 인간시장(人間市場)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첫수에선 낙지 가족인 큰이모, 삼촌, 여동생이 손님에게 먹히는 수모를 말하고, 둘째 수에선 산 채로 먹히는 서러움을, 마지막 수에선 낙지 권리도 소중하다며 제발 산 채로 씹어 먹지는 말아 달라고 애원한다.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인가. 화자는 낙지 회식(會食)의 현장을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부조리한 인간사회로 풍자하고 질타한다. 더 이상 약자를 괴롭히거나 압박하지 말고 약자와 함께 가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겠다. 표정은 태초에 없는 낱말이 됩니다웃음은 사전에 없는 새뜻한 단어로울음은 순전한 문장을 이루고도 남습니다 스스로 써 본 적 없는 불가능한 글자들을엎드려 몸으로 쓰고 있는 부지런함내 시(詩)도 이렇게 써야 합니다 아기 앞에 엎드려 봅니다-이태정의 「한 수 위」전문 이태정 시인은 지금 시를 쓰고 있다. 한 수위의 시를 쓰기 위하여 첫수에서는 표정은 웃음으로 웃음은 울음으로 독자가 받는 감동의 진폭을 점층시켜야 한다고 하고, 둘째 수에서는 엎드려 몸으로 체험하여 쓰는 시 곧 아기처럼 순진무구한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읽힌다.다시 말하면 울음처럼 감동을 주는 시, 엎드려 겸손하게 낮은 자세로 체험한 내용을 쓰는 시, 아기처럼 순진무구한 꾸밈없는 시를 쓰고 싶다는 상상이 아닌가 싶다. 좋은 시는 아기처럼 순수한 감정을 몸으로 쓸 때 큰 감동을 준다.여기서 마지막 행 ‘아기 앞에 엎드려 봅니다’를 위에서 굳이 한 칸을 띄어서 써야 했을까? 종장 처리가 잘 되었는지 살펴보면 어떨까. 잘려 나간 발목을 온몸으로 끌어당겨박차다 곤두박는 독수리의 비행을묵묵히 겨누고 있는 철책선 밑 겨울 눈밭-표문순의 「DMZ」전문 DMZ(비무장지대)는 6·25 전쟁 이후 1953년 7월 27일에 한국군사정전협정이 체결되어 군사분계선이 확정되고 현재의 비무장지대가 설정되었다. 이 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 2Km씩 너비 4Km의 폭을 유지한다. 이곳은 40여년간 출입 통제되어 자연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어 자연생태계 연구의 학술적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표문순 시인은 지금 이곳 상황을 상상하고 분단된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비무장지대는 원래 격전지여서 잘못 밟으면 발목이 잘려 나가는 지레밭이었다. 지금은 민간인 출입 통제가 되어 독수리가 서식하는 자연생태계로 쌍방이 경계하는 철책선만이 세워지고 겨울엔 눈밭이 되어 차갑고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쓸쓸하게 진술하고 있다.통일이 되어 이 구역이 평화누리길이 되기를 모두와 함께 소망한다. 다음 여름시조단을 보자. 파도에 시달리다 진흙탕에 묻힌다막힌 숨 신음으로 묵언수행 하다가번뇌를 토악질하고 열반하는 사리(舍利)다-구충회의 「바지락」전문 구충회 시인의 「바지락」전문이다.진흙탕에 묻혀 파도에 시달리고 막힌 숨 신음하면서 묵언으로 수행하고, 번뇌를 몇천 번 토악질하면 사리가 될까. 불가(佛家)에서 묵언수행(默言修行), 곧 고행(苦行)의 기도과정을 진흙탕 속에서 파도에 시달리며 토악질하는 바지락의 일생에 비유한다. 멋진 비유요 절창이다.이 작품을 졸작 “앞에도 안 계시고/뒤에도 안 보이나// 내가 가는 길을/ 주님이/ 아시나니// 연단 후/ 내가 부서져/ 순금 되어 나오리라-「욥의 대답」” 의 작품과 둘을 놓고 상상해본다.앞의 작품에서 수행(修行)의 아픈 과정과 뒤의 작품 연단(鍊鍛)의 아픈 과정이 어쩌면 뼈가 시리도록 저리 흡사할까? 수행과 연단의 아픔 끝에 사리가 남고, 순금이 되어 나오는 이치를 알게 된다. 꽃들이 아름다운 그 까닭을 네 아느냐고와서도 아니고 이뻐서도 아니란다가지려피는게 아니라주려 피기 때문이다. 지는 꽃을 보아라 그러면 네 알리라바람에 햇빛 담고 이슬에 쟁인 열매다 주고가지 않느냐아낌없이남김없이-문무학의 「꽃이 이쁜 까닭은」전문 문무학 시인은 꽃이 이쁘게 피는 까닭을 말한다. 고와서도 아니고 이뻐서도 아니고 내가 가지려 피는 것도 아니며 남에게 주려고 피기 때문이란다.둘째 수에서는 앞에서 진술한 내용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는 꽃을 보라고 한다. 아낌없이 남김없이 다 주고 가지 않느냐고그렇다 꽃은 아름다운 미감과 향기를 혼자서 갖지 않고 밖으로 보이고 뿜어 모두에게 기쁨을 준다. 그러다가 명을 다할 때는 그동안 햇빛 담고, 이슬 먹고 쟁인 열매를 다 주고 가는 높은 삶을 영위한다.시인은 욕심 없이 주고 나누는 삶을 살다가 다 주고 떠나는 한 수 위의 꽃의 덕을 노래하고 있다. 구름 속 학의 나라꿈속을 휘젓다가 먼 하늘 수평선 조용한 이야기들 여닫는구름문 한쪽가만 비집고 들어선다.-박영교의 「학처럼 살다가리」전문 박영교 시인은 학처럼 살다 가겠노라고 조용한 다짐을 한다. 학은 고귀한 자태와 하늘을 여유 있게 나는 모습, 청청한 울음소리로 하여 신선에 비유되기도 한다. 회색, 흑색의 어두운 채색으로 종교로의 귀의(歸依)를 상징하기도 하며 높이 날기에 고고성, 영(靈)의 힘으로도 상징되는 새이다.화자는 지금 주야로 시끄러운 요설(饒舌)의 세상을 벗어나 구름 속 학의 나라에서 조용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구름문 한쪽을 비집고 들어선다고 진술한다.속세의 잡설(雜說), 번뇌를 훌훌 벗고 학의 나라 선경(仙境)에서 고고한 삶을 살고자 하는 명상적인 작품이다. 바람을 태웠다가 구름을 실었다가이승의 강나루에 한가로운 빈 배 한 척석양에 몸을 맡긴 채 생각 없이 떠 있네. 아무리 달려봐도 쳇바퀴 도는 일상뭐 그리 바쁠 것도 서둘 일도 없는 것을세월은 무슨 조바심 사공 두고 가잔다.-박필상의 「나루터」전문 박필상 시인은 이승의 강나루에서 한가로운 빈 배 한 척의 삶을 살고자 한다. 석양에 몸을 맡긴 채 생각 없이 떠 있는 배 한 척! 그는 누구인가? 바로 화자가 아닌가?아무리 달려봐도 쳇바퀴 도는 일상, 뭐 그리 조바심으로 가자 하는가. 서둘러 봐야 거기서 거기 아닌가. 요즈음 한 박자 느리게 사는 삶을 지향한다. 바장이고 허덕이며 다투고 경쟁하며 사는 세상을 훌훌 벗고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돌아가고자 한다.이 작품에서 핵심어는 ‘빈 배 한 척’이다. 아무 욕심 없이 떠 있는 한 척의 배는 바로 느림과 비움으로 살고자 하는 화자가 아닌가. 이제 단시조단의 작품을 보자. 걷다가 힘이 들면언제든지 오세요 기대고 싶을 때잠깐이라도 괜찮아요 당신이허리를 펴고하늘을 볼 수 있다면-구금자의 「벤치가 있는 풍경」전문 구금자 시인은 벤치 하나를 놓고 걷다가 힘든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기대고 싶을 때 잠깐이라도 좋으니 언제든 와서 쉬었다 가라고 한다. 당신이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볼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하단다.화자는 하늘의 삶을 살고 있다. 성경에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하였으니,하나님은 반석이요 구원이요 요새이니 그를 믿고 소망을 하늘에 두고 살면 모든 것이 그에게서 나와 흔들리지 아니할 것임이라.구 시인은 아마도 신앙생활을 하나보다 자선(慈善)의 삶을 살고 있다. ‘벤치가 있는 풍경’은 한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내 몸속 깊은 곳에빈방 하나 만들라던 속엣것 다 내주고바람의 집이 되어 비워야소리 얻는다며젓대 불던 어머니-김덕남의 「대·2」전문 김덕남 시인은 내 몸속 깊은 곳에 빈방 하나 만들라며 비워야 소리를 얻는다고 젓대 부시던 어머니를 회상한다.어머니는 속엣것 다 내주고 바람의 집으로 사셨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텅 빈 집에서 비워야 소리를 얻는다며 비어 있는 젓대를 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몸속 깊은 곳에 빈방 하나를 만들라고 권하셨다.장자(莊子)나 법정 스님처럼 어머니는 철저하게 비움의 철학을 실천하신 분이셨다. 비워야 소리를 내는 젓대를 불며,,,‘빈방’ ‘바람의 집’ ‘젓대’라는 사물을 병치은유(竝置隱喩)시켜 ‘대(竹)’의 화두를 성공시킨 작품이다. 비워야 소리를 내는 철학은 영원한 진리가 아닐까. 산사는 겨울잠 깊이 들어 고요해요댓돌 위 검정 털신에 소복이 담긴 하얀 눈연못에 풍경소리만 떨어져 퍼집니다-두마리아의 「풍경」전문 겨울 산사(山寺)의 고즈넉한 풍경(風景)이다. 두마리아 시인은 지금 겨울 산사의 정경을 카메라에 담는다.산사는 겨울잠에 깊이 빠져 있고,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털신엔 하얀 눈이 소복히 담겨 있다. 절 아래 연못엔 풍경(風磬)소리만 떨어져 적막을 깨고 있다.산사의 겨울 정물화 한 폭이다. 여기서 종장 풍경소리만 떨어져 산의 적막을 깨운다. 풍경소리가 일품이다. 풍경(風磬)소리가 산사의 고요한 풍경(風景)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공감각의 기법이다. 서리서리 햇살에다 깟깟깟, 까치소리 소르르이는 바람에자박자박 잰걸음 이 저런 채근들이 모여배추속이 꽉 찼다.-박방희의 「가을배추」전문 박방희 시인의 「가을배추」전문이다. 시행을 가로세로 자유자재로 연출, 공간구성을 했다. 보기 드문 시각적 구성이다.배추속이 그냥 찬 것이 아니고 햇살과 까치소리와 바람과 잰걸음이 합작하여 이루어졌다고 노래한다.가을이 그냥 오지 않는다. 따스한 햇살과 깍깍 울어주는 까치소리와 소슬한 바람과 아낙의 잰걸음이 서로 함께 할 때 배추속은 노랗게 속이 차게 마련이다. 자연과 인력이 하나가 되어 가꾸고 보살필 때 배추속이 꽉 찬 가을을 맞이한다고 화자는 말한다.시각과 청각이 어울어진 감각적 표현이 행갈이와 함께 조화를 이룬다. 귀에서 귀까지 안전을 보장한다고코와 입 핥아대며 턱까지 물어뜯더니 봄같이달디 단 미소를흔적 없이 삼켜 버렸다-손수성의 「‘마스크의 식성’」전문 요즈음은 코로나 감염 시대, 마스크가 필수인 시대를 우리는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마스크 없인 거리에 나설 수가 없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손수성 시인은 우리네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마스크가 코와 입을 핥아대며 턱까지 물어뜯더니 마침내 봄같이 달디 단 미소를 흔적도 없이 삼켜버렸단다. 무슨 소린가?마스크가 우리들 코와 입 그리고 턱까지 앗아가더니 드디어 어여쁜 눈의 미소까지를 몽땅 빼앗아 버렸다는 이야기다. 마스크(코로나)는 잡식성이요, 다식성이라 누구든 구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는 역설(?)이다. 그만큼 코로나는 괴질이요 이 시대의 악역이다. 어제도 옥신각신오늘도 아웅다웅 지독히 미워하냐고아니야 매우 사랑해 서로가 가진 모서리깎아주고 있는 중-이솔희의 「친구」전문 친구(親舊)란 오래도록 가까이 두고 사귄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기에 친구를 잘 두면 복을 받을 수 있고 잘못 두면 해를 입을 수도 있다.이솔희 시인은 어제도 옥신각신, 오늘도 아웅다웅 다투다가 아니야 매우 사랑한다고 금시 변한다. 종장에서 친구의 의미를 “서로가 가진 모서리/깎아주고 있는 중”이라고사람은 누구나 모서리(개성)를 가지고 있다. 그 강한 개성을 고집하면 다툼이 되고 그 모서리를 깎고 다듬으면 화해가 된다. 그것이 친구의 우정을 오래도록 살리는 방법이 아닐까? 흘러간 아쉬움의실핏줄을 다독이며 사색의 빈 공간에붉은 꽃을 피웠는데 그 누가나의 생애에꽃이 없다 하는가.-조경순의 「무화과」전문 무화과(無花果)는 겉으로 보기엔 꽃이 없이 열매만 익기 때문에 꽃이 없는 과일이 되었다.조경순 시인은 실핏줄을 다독이며 사색의 공간에 붉은 꽃을 분명 피웠는데 그 누가 나의 생애에 꽃이 없다 하느냐고 토로한다.무화과도 꽃은 핀다. 꽃이 필 때 꽃받침과 꽃자루가 주머니처럼 비대해지면서 수많은 작은 꽃들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 숨어 있는 붉은 실핏줄 곧 열매가 무화과 꽃이다.무화과는 꽃이 없다고 보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해마다 그 자리에 보이지 않는 자기만의 꽃-열매를 맺는다. 우리 인생도 겉으로는 화려한 꽃을 피우지는 못해도 무화과처럼 단맛을 내면서 보이지 않는 꽃을 피우는 사람이 많다. 보이지 않는 꽃이 더 거룩할 수가 있다. 꽃은 숨겨두고 묵묵히 열매를 맺는 무화과의 삶이 존경스럽다. 살다 보면언젠가꽃 필 날 올 것이다 그날을기다리는 건살아가는 이유 아무리힘들다 해도웃을 날 있을 것이다-홍사성의 「그날」전문 우리가 살다 보면 언젠가는 꽃 필 날이 온다. 홍사성 시인은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란다. 아무리 힘이 든다 해도 웃을 날이 있을 거란 믿음이다. 그날은 꽃 필 날이요 웃을 날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꽃은 피고 웃을 날이 온다.코로나19로 온 세계가 우울하고 답답하다. 이러한 때 아무리 힘들어도 인내하며 영혼을 지킬 때라고 화자는 말한다.“환난이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롬5:3~4)는 믿음을 갖자.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그날을 기다리자. 기러기 더디 오네하늘 점점 깊은데                 ㅛ ㅠ ㅛ        ㅠ ㅠㅠ ㅠ        ㅠ ㅠ               ㅠ ㅠ                       ㅛ ㅠ ㅛ 산굽이물굽잇길을돌아돌아오시는지-김영주의「가을」전문 시조문학 편집장 김영주 시인이 <뉘엿뉘엿> 시조집을 보내왔다. 「가을」은 그 시조집 첫 작품이다.가을이 온다고 묘사하거나 굳이 진술할 필요가 있겠나? 기러기 하늘에 날면 가을이지.김영주는 중장에서 기러기 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것도 한글 모음만으로 기러기 소리를 내면서, 종장은 단어 하나하나를 5행으로 행갈이 하여 작품을 마감했다.언어로 그린 이미지 기법, 곧 시각적 조형으로 처리한 한 폭의 가을 하늘 정경이다. 도전적, 실험적인 작품이 아닌가? 일독을 권한다.그러면서 시조집 발문으로 자전적 시론을 쓰고 있다.“나는 종종 ‘시조(時調)’라는 명칭이 얼마나 과학적인가에 혼자 놀라곤 한다. 때 시(時)자를 쓰니 굳이 ‘현대’라 말하지 않아도 시조는 늘, 언제 어느 시대에서나 현대시조다. 그러므로 시조는 여타 문학 장르보다도 그 감각이 뒤처져서는 안 되는 도전정신과 긴장감을 늘 안고 있어야 한다.”<후략> 오랜 잡지 <시조문학>이 깊은 잡지 <시조문학>으로 거듭나고 있다. 원대한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소걸음으로 전진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