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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92차 나눔문화포럼에서는 후배 건축가들에게 존경의 표시로 '한국 건축계의 공익요원'이라고 불리는 정기용 소장을 통해 우리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건축을 만났습니다. 정기용 소장은 '기적의 도서관'과 무주의 공공건축 등 그동안 진행했던 공공건축 이야기를 현장의 사진과 특유의 입담으로 생생하게 전해주었습니다. 우리 삶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희망의 건축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던 감동적인 시간을 전합니다. |
건축, 인간의 삶을 조직하는 일
“우리나라를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하죠. 가족끼리 오순도순 살던 곳을 때려부수고 증축하는 곳은 대한민국 뿐입니다. 특히 강남에 재건축 위해서 내건 플랜카드를 보면 제대로 된 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참혹합니다. 재개발 하는 사람들이 내거는 두가지 상상을 초월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경축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라는 겁니다. ‘안전진단 통과’라고 하는 건 우리 사는 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통과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사는 곳이 안전하지 않은 것을 경축하고, 때려부수는 것을 경축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겁니다. 기업과 전 국민이 공모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이 공간과 도시가 이것이 인간을 위한 사회인지 되묻게 하는 그런 세상에 너도 나도 살고 있습니다."
"건축가는 공공의 삶을,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도대체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건축가는 적어도 무슨 일을 주문받았을 때, 이것이 사회가 요청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구분은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축을 대할 때, 물질과 형태만을 보고 아름다움에 관해서만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건축을 정의하자면, 삶을 조직하는 일입니다.
건축가는 남의 삶을 조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건축을 하는 건축가만이 아니라 모든 건축가가 기본적으로 보살피는 마음,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보살펴서 서로 나누고 행복하게 살게끔 해야 합니다.”
건물의 쓰임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정기용 소장은 우리가 사는 땅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우주까지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다며, 부분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봐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어서 무주에서의 작업과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의 사례를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건축가을 통해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어떻게 조직해 나갔는지, 그리고 그 철학과 방법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 했습니다.
“무주에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안성면 면사무소를 새로 짓는 일이었습니다. 건축은 삶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저도 면사무소를 설계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면사무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아시나요? 저도 등본이나 서류를 떼주는 곳으로 알고 있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설계를 부탁한 군수가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겁니다. 내용과 형식을 다 만들어 달라는 거죠.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직접 안성면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전북 무주의 시골인 안성면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요? 80%이상이 노인 입니다. 이 어르신들께 면사무소를 짓는데 무엇이 가장 필요하시냐고 물었더니, 열 사람 중에 아홉이 “면사무소는 뭐 하려고 짓냐? 목욕탕이나 지어줘!”하시는 겁니다. 집에 목욕탕이 없으시냐고 물으니, 새마을 운동을하면서 부엌을 입식으로 만들어서 물 끼얹을 공간도 없다는 겁니다. 70, 80대의 뼛골이 쑤시는 어르신들이 돈 모아서 봉고차를 빌려서 대전에 가서 목욕을 하고 옵니다.
그래서 최초로 목욕탕이 결합된 면사무소를 지었습니다. 크게 지으면 유지비가 많이 드니까 작게 지어서 홀수 일은 남탕, 짝수 일은 여탕 이렇게 운영하기로 하고, 나이든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보건소를 같이 합쳤습니다.”
“삶을 조직하는 것이 건축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겁니다. 주민들이 밭 갈고, 김 메고 나서 오후 늦게 서로 전화해서 목욕탕에서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회복됩니다. 다같이 발가벗고 누가 부자인지 가난한 자인지도 모르고 함께 목욕탕에 몸을 담그는 것이야 말로 공동체의 첫 걸음입니다.
이 면사무소가 생긴지 2년, 3년이 되면서 옆 군에서도 목욕하러 와서 증축해달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면사무소 짓는 사람들이 안성면을 거쳐갑니다. 목욕탕을 짓느냐 안 짓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공건물의 프로그램을 누가 결정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뼛골이 시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도서관이나 인터넷 시설이 아니라 목욕하고 나와서 건강체크도 해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귀기울여 들을 때 우리의 삶과 세상을 변화된다
“무주 공설운동장을 하면서, 제가 건축을 30여 년을 했지만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식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무주 군수가 갑자기 공설운동장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자기가 군수가 되고 공설운동장에서 행사를 하면 주민들이 아무도 안 온다는 겁니다. 군수가 답답해서 왜 오지 않느냐고 주민들에게 물었더니, '군수만 그늘에 앉아있고, 우리는 땡볕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가겠느냐?'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래서 이 군수가 운동장 주변으로 등나무 240그루를 심었습니다. 일년 전에 심은 나무가 훌쩍 자라서 제가 갔을 때는 등나무 240그루가 타고 오를 곳을 찾는다고, 전부 가지를 두 팔처럼 벌리고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돌아와서 세시간 동안 꼼짝도 안하고 바로 설계를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전 세계 하나밖에 없는 등나무 운동장입니다. 여기서 행사도 하고, 영화 상영회도 하고, 데이트 코스도 되면서 무주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삶을 조직하는 것은 건축가의 상상력이 아닙니다. 등나무 운동장은 한 군수가 주민들의 얘기를 가감 없이 듣는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그것이 올바르다면 수용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우리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다양한 사회분야가 연대할때 탄생하는 기적
“공공건축 얘기를 하면서 '기적의 도서관'을 제외하고 갈 수는 없습니다. 공공건축은 건축가 혼자, 관청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진정으로 결합할 때 비로서 힘을 얻게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사회가 요청하는 건축을 누가 대변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는 많이 필요 없습니다. 위대한 건축가는 한 두 명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대한 건축가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사회를 위한 건축에 제대로 답해주는 사람입니다. 공공건축은 위대한 건축가에 의해서 탄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서관이 없는 나라가 나라냐'며 도서관을 만들자고 노력해온 시민단체, 십 여 년 동안 10평, 20평 작은 공간에서 홀로 작은 도서관을 계속해온 아줌마들, 부지와 공사비 절반을 대준 관청,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고민 끝에 어린이 도서관이라는 것에 주목한 매체, 지역시민들의 역량이 연대해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순천 어린이 도서관이 열리고 나서 삼 개월 동안은 애들이 책을 못 봤습니다. 아파트에서만 사는 요즘 애들은 다양한 공간에 대한 체험이 적습니다. 그런 애들이 높고, 낮고, 움푹 파인 패인 공간을 만나니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면서 방문하기도 바쁜 겁니다. 서너달이 지나서 애들이 공간을 파악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자리를 찾아가면서 도서관이 정착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어린아이들은 세계인으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국민이 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들어가서 깡통이 되어서 나옵니다. 아이들은 전부 태어나는 순간 세계인입니다. 어린아이들의 동화책을 보면 정신 없이 날아다닙니다. 어린이 동화는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아이들에게 다가갑니다. 그 아이들의 상상력을 순수하게 키워주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행복해요. 어린이 도서관에 갈 있어서’
진해 어린이 도서관에서 한 아주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에 오면 아이를 재울 수도 있고, 젖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고, 자신도 책을 보고, 동네아줌마들이 모여서 이야기도 합니다. 아줌마들이 자원봉사하면서 영어, 미술을 가르치고 그게 부업이 되면서 도서관 주변에 가게도 내면서 삶이 변화되고, 동네도 변화되었습니다.
사회가 요청하는 일을 해주니 세상이 변한 겁니다. 건축가는 이제 위대한 창조자가 아니라 Social Coordinator 입니다. 사회적인 여러 문제들을 조직하고, 결합해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건축을 만들어내는 것은 위대한 건축가가 아니라 평범한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함께 삶의 길을 만드는 공공건축
“'기적의 도서관'과 무주를 소개한 것은 건축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고, 함께 만드는 새로운 건축의 생산방식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건축을 한다, 무슨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면 유럽, 미국 가서 사진 찍고 좋은 사례가 있으니 이렇게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나라도, 역사도, 사람도, 재료도 다른데 그게 그대로 적용이 되겠습니까? 참고는 할 수 있겠죠.
무주와 '기적의 도서관'을 하면서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은 문제도 이 나라에 있고, 해법도 이 나라에 있다는 겁니다. 문제를 쥐고 있는 것은 주민들입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질문하는가, 어떻게 듣는가에 따라서 해답을 찾을 수도 못 찾을 수도 있는 겁니다. 확언하건데, 우리 스스로 연대하여 서로를 믿어야 합니다. 서로가 믿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나누기 위해서는 생산을 해야 하고, 생산을 하려면 믿어야 합니다."
“오래된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의미 깊은 그림일기 입니다. 내가 여기 이 길에서 본 풍경은 우리아버지와 우리 할아버지가 보았던 바로 그 풍경입니다. 아버지가 보았던, 할아버지가 보았던 길에 서면서 내가 역사에 편입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그림일기를 그려내야 합니다. 공공건축이란 세상에 이렇게 길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