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중 가장 팔팔하다는 팔월 팔일 공교롭게도 입추를 하루 지난 말복이다.
문경새재를 걷기 위해 길을 떠나는 아침 동쪽 하늘 아침 노을이 곱다.
인천의 진산 소래산 너머로 떠오르는 해의 붉은 기운이 구름에 퍼질 때
중천에는 가녀린 여인의 눈썹 같은 상현 달이순백으로 빛난다.
문학경기장역 2번 출구에는 우릴 태우고 갈 버스가 이미 와 있다.
배낭을 내려 놓고 탁 트인 전망에서 아침 노을을 찍기 위해 10차선 왕복도로를 무단횡단한다.
아직 아침 6시가 되지 않아선지 도로에 차가 그리 많지 않다.
언덕 아래로 멀리 소래산이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사진을 찍는다.
노을 만큼이나 소래산 마루금이 아름답다.
새벽 여명에 깨어나는 도시 속 전원풍경도 아름답다.
더이상 그 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버스로 돌아오니 해가 둥실 떠오른다.
오롯하게 소래산 왼편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의 정염을 찍기에는 조망이 너무 안좋다.
머피의 법칙처럼 버스가 서더니 그 장면을 가로막는다.
아침 6시 출발시간에 정확히 출발해 보기는 아마도 처음일텐데
지난 번 걷기여행 때 매우 늦은 출발 때문에 버스가 기름부족으로 도중에 퍼져버리는 사태를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학습효과가 정말로 뛰어난 일행들이다.
인천에서 문경새재도립공원까지 2시간 40분 걸렸다.
도중에 35분의 아침식사시간이 있었으니 얼마나 빨리 도착했는지 모두들 문경이 이렇게 가까운 곳이냐고 묻는다.
문경새재도립공원 주차장에서 새재를 향해 걸어 올라가는데 성(性)박물관이 남녀 장승을 앞세워 눈길을 끈다.
언제 부터 성이 상품으로 공공연하게 모습을 드러냈는지 모르지만 전국 각지에 너무 많이 생긴다는 느낌이다.
삼척 해신당 여신을 위무한다고 만들어진 장승공원의 수많은 성기들은 그나마 해학이라도 있는데
제주 월드컵 경기장 성박물관의 조잡하고 천박함이란 시대정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성을 제대로 알린다는 미명으로 성을 상품화하는 세태의 반영이 천박함으로 조잡함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여겨진다.
문경새재가 조선시대 열린 이후로 영남의 유생들이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가는 길목이었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여러개가 있었지만 죽령은 죽쑬까봐 피하고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질까 피했다니
기쁜 소식 듣기 위해서는 이 곳을 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초입에 조선시대의 선비상을 세워 놓았다.
태극을 상징하는 반원의 둘레에 팔괘를 둘렀는데 땅으로 들어가서 하늘이 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선천팔괘를 그렸다.
땅에서 시작하여 하늘의 도를 깨우치라는 뜻이라는데 조형성을 떠나 선비든 인간이든 추구해야할 바를 잘 나타냈다.
주흘산은 구름모자를 쓰고 있다.
문경새재는 이화령과 하늘재 사이에 있다고 해서 사이에 있다는 새재라 썼다고도 하며, 하늘재를 이어 새로 관문이 되었다 해서 새재라고도 하고, 또는 새도 날아 넘기 힘들다 해서 새재라 했다는데 걸어보니 새도 날아 넘기 힘들지는 않는 것 같다.
새재의 첫번째 관문인 주흘관이다.
영남제일관문이라는 현판이 뒷쪽이 걸려 있다.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어 마치 지나는 사람들을 지키는 수문장 같다.
성벽 옆으로 흐르는 물길을 깊이 내서 성 앞으로 흐르게 해 자연스레 해자가 되었다.
주흘관에서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
영남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여기서서 바라보았을 풍경은 아직도 갈길이 먼 첩첩산중 바로 그것이다.
신구 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다는 교귀정이 있었던 곳인 만큼 관찰사들의 선정비와 영세불망비가 세워져 있다.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인지 아님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인지 모르지만 눈에 띄는 비가 하나 있는데 바로 철로 세운 철비다.
의성 고운사 고불전 한켠에 있던 철비가 생각난다.
오래오래 이름을 남기려 했던 그 뜻은 이루어졌지만 그 비를 세운 행간의 뜻을 읽는 눈밝은 나그네들에게
그 이름자가 어떠할지는 이미 간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니
철비를 세운 이나 그를 바라보는 이나 덧없기는 마찬가지다.
길이 편하고 부드러운 흙길이 좋아 걷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발을 벗어 손에 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항상 용감한 누군가 있어 생각을 실천에 옮겨도 바로 따라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가 보다.
삼인행에 필유아사라 제일 먼저 한 사람이 신발을 벗었다.
금방이라도 가가멜이 어디선가 툭 튀어나와 딴지를 걸 것만 같은 버섯나라가 평화로움을 주고 있다.
하나의 염원이 모여 돌탑을 이루니
일즉다 다즉일,
하나는 만인을 위해 만인은 하나를 위하는
화엄만다라의 연화장 세계가 길가 숲그늘에 펼쳐진다.
탑속에 탑인 어느 돌무더기
가부좌를 틀고 턱을 괴고 않아 사색에 잠긴 미륵보살의 모습이다.
돌다섯개로 만든 미륵부처 국립중앙박물관에 계신 국보 미륵반가사유상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마음으로 쌓아 올린 돌탑길 옆으로 나그네는 쉬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휘어 돌아 올라가는 길이 만드는 곡선이 나그네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휘어지고 꺽어지는 삶이 없었다면 저 돌탑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
돌 하나 들어 올릴 필요조차 없는 사람이 있을까?
산불조심이 강조되는 것은 더 이상 이곳에는 산신령이 없다는 뜻일까?
두 번째 관문인 조곡관이다.
산으로 오르면서 골이 좁아지니 관문도 주흘관보다는 규모가 작다.
자연스레 해자가 형성된 위로 돌다리를 놓았고 앞에 두마리 석수는 앞을 뒤의 두마리 석수는 관문쪽을 바라보고 있다.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늘속에 들어앉았다.
어디에서 쉬어도 그곳이 곧 쉼터니 길이 쉼터요 쉼터가 곧 길이다.
새재에선 성벽을 이룬 돌과 나무가 같은 색으로 나이를 먹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