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가 주저하고 있다. 목표가 바로 눈앞인데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다. 방법은 한 가지. 어차피 건너야 할 바다라면 참모가 나서야 한다. 두려워 떨고 있는 지도자의 눈을 가리고 두려움을 없앤 후 그를 속여서라도 배를 태워 강을 건너게 해야 한다.
나중에 비록 지도자를 속인 벌을 받더라도 조직의 생존을 위한 참모의 충정을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병법 36계(計) 중에 가장 첫 번째 계책인 만천과해(瞞天過海)의 본 뜻이다.
만(瞞)은 ‘속인다(deceive)’는 뜻이다. 천(天)은 하늘처럼 높은 사람, 즉 천자(emperor)를 뜻한다. 따라서 만천(瞞天)은 ‘천자를 속이다’의 듯이며 과해(過海)는 ‘바다를 건너다’라는 뜻이다. 즉 ‘바다를 건너는 것이 목표라면 신하가 얼마든지 황제를 속여 바다를 건너게 할 수도 있다’는 전술이다.
바다는 건너야 하는데 황제가 바다를 두려워하여 건너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면 유능한 신하는 잠시 오너인 황제의 눈을 가려 앞을 못 보게 하고 바다를 건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 계책은 명나라 때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영락대전(永樂大典)》 당(唐) 태종에 관련된 이야기에 나온다. 정관(貞觀)의 정치로 유명했던 당태종이 30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동쪽을 정벌하러 갈 때 바닷가에 이르렀다. 끝없이 펼쳐진 망망한 바다의 위용 앞에서 당 태종은 바다를 건넌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하고 주저하였다. 이때 바닷가 근처에 사는 어느 귀족 노인이 황제에게 나아가 자신이 황제의 30만 대군을 위해 양식을 준비하였으며 황제를 모시고 자신의 집에서 주연을 베풀고 싶다고 청하였다. 황제는 기쁘게 백관들을 데리고 그 노인의 집으로 갔다. 노인의 집은 사방이 오색찬란한 장막으로 덮여 있었는데 노인은 황제를 모시고 실내로 인도하였다. 백관들과 황제는 술을 마시며 노인이 베푼 연회를 즐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나더니 파도소리와 함께 술잔이 뒤엎어지고 사람들이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당 태종이 깜짝 놀라 보좌관에게 장막을 걷어보라고 명령하였는데 밖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였고 어디에도 노인의 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있는 곳은 바로 전함 안 이었고, 30만 대군은 이미 황제와 함께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원래 이 노인은 새로 부임한 설인귀(薛仁貴)라는 장군이 분장한 것이었다. 황제가 바다를 두려워하여 건너는 것을 꺼리자 천자를 속이고 바다를 건너기 위하여 ‘만천과해’의 전술을 사용한 것이었다.
군주를 모시는 신하는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 주저하는 군주를 속이는 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모가 오너의 눈을 가리고 속이는 일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오너가 분명히 가야 할 길을 앞에 두고 주저한다면 참모는 그대로 주저하는 오너의 결정만 따를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여기서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바다를 건너고 나서 오너가 웃을 수 있는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둘째 조직의 생존과 대업을 완수하기 위한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셋째 개인의 욕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만천과해(瞞天過海). 오늘날 하늘이 꼭 황제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은 국민일 수도 있고, 직원들일 수도 있고, 대중일수도 있다.
손자병법의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장군은 모든 병사들에게 일일이 모든 작전을 설명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가야할 길은 멀고 해야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설득하고 달랠 여유가 없을 때는 잠시 눈을 속이고 일단 강을 건너게 해야 한다. 비록 그런 일로 목숨을 내 놓는 결과가 있더라고 두려움 없이 뜻을 관철시키는 지도자의 모습은 아름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