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9일 연중 26주일 설교
마르 9:38-50. 민수 11:4-6, 24-29. 야고 5:13-20
마음에 소금을 품고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소금을 다시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마르 9:50)
오늘 복음의 결론입니다. 마태 5장에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는 말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구약 성서에서 소금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우리는 롯의 아내를 먼저 떠올립니다. 온갖 악행의 상징이던 소돔과 고모라가 하느님께 저주를 받아 파괴될 때, 그곳을 탈출하던 롯의 아내가 미련이 남아서 금기를 깨고 돌아봅니다. 이내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어 버립니다. (창세 19:26) 욕망과 불순종의 상징인 셈입니다.
소금은 물에서 생겨나지만, 그 성질은 불을 닮았습니다. 소금이 땅을 만나면 그 땅이 불모지가 되고, 물과 섞이면 갈증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소금의 이미지는 메마름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런 이중의 상징을 띠고 있기에 종종 저주의 표징이 되기도 합니다. (시편 107:33-34)
소금은 음식을 저장하고 오래 보관하는 데 쓰입니다. 이때 소금은 썩지 않음을 뜻합니다. 변하지 않고 일관 된 은총을 그리고 신심을 늘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소금은 또한 하느님과 맺은 계약 곧 소금 계약의 표징입니다. (민수 18:18) 모든 봉헌물과 제물에 소금도 빠지지 않고 바쳐야 했습니다. (레위 2:13)
소금은 미감을 살려주고 맛을 돋웁니다. 소금이 빠지면 음식은 맛이 없고 싱거울 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자신을 녹여 음식의 부패를 막고 맛을 살려주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을 태워 빛을 내서 다른 이들을 인도하라는 말씀과 일맥상통입니다. 하지만 이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명령입니다. 어떻게 자신을 완전히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게 할 수 있을까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이렇게 결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세상과 다른 이를 보는 눈이 너그러워져야 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이웃을 바라봅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곧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예수님의 너그러움과 공감 능력을 이해한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1독서로 들은 민수기에는 이집트를 탈출하여 사막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평이 나옵니다. 출애굽기에서보다 구체적이고 적나라합니다. 철없는 그들의 불평에 야훼께서 화가 나셨고, 모세는 또 부르짖습니다. 모세의 고군분투가 가련하셨는지 이스라엘 백성 중 70명의 장로를 선발합니다. 그들이 야훼 하느님의 영에 휩싸이고 야훼 하느님과 대화합니다. 입신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에 모세의 지도력이 흔들릴 것 같아진 것으로 생각한 후계자 여호수아가 그들 모두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절이 이렇습니다. ‘질투하지 마라. 모두가 야훼의 영을 받아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민수 11:29)
자신의 권력이 위태해질 수도 있는 순간에도 모세는 자비롭습니다.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늘 자기 백성의 허물을 용서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던 말주변도 없고 숫기도 없는 모세, 하지만 그는 그 많은 백성을 이끌고 40년간이나 사막 생활을 버텨냈습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오늘 복음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실천한 것입니다.
서로의 차이점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명쾌함은 있을지언정 너그러움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모호함과 넉넉함은 내부 구성원 간의 갈등이 있을 수 있고, 더디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모세의 부족한 리더십을 통해 공동체를 결속시켰습니다. 마음에 소금을 간직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부지런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비로운 눈으로 더불어 함께 살 줄 아는 사람이 소금을 간직합니다.
2독서로 들은 야고보서에는 구체적인 삶의 실천 모습이 나옵니다.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야고 5:16) 여기에 강력한 지도자에게 순종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결단한 신자들이 허리가 되어(흔히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려움을 당한 신자들을 이끌어 주는 책임을 맡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라고 전합니다.
이렇게 먼저 섬기고 봉사하는 자세가 마음의 소금을 품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아픈 사람,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 바른길에서 벗어난 사람이 있다면 응당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위로와 용기를, 그리고 옳은 길로 인도까지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방문하신 분들을 위한 환대팀을 만들고 피정을 진행했습니다. 환대한다는 것은 공감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소금을 품고 늘 맛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조금 더 묵상합니다. 장로들이 하느님과 만나는 입신을 경계한 사람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에게 혹시 후계자의 자리가 흔들릴까 봐 그랬을까요? 진정으로 섬기는 지도자 모세의 자리가 위태해질까 두려워서일까요? 오늘 복음에 ‘예수의 이름을 사칭하여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못하게 막은’ 사람은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 요한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요한, 이들이 스승에게 한 말과 그들이 걱정한 내용을 깊이 묵상해 봅니다. 서툴고 걱정이 많지만, 후계자로서 견디고 갖추어야 할 덕목을 하나씩 배워 나가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눈앞의 이익을 좇지 않는 것, 나아가 자기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음에 소금을 간직한다는 것은 다른 이들이 변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이전에 스스로가 변질되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이들을 굳게 지켜 주지만, 정작 본인은 녹아 없어지는 존재입니다. 그러기 위해 늘 변함없이 짠맛을 내야 합니다. 녹아 없어진다는 말에 부담을 느끼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아주 약간의 불편함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내 마음 안에 있습니다. 시선을 돌리고 관점을 바꾸면 되는 일입니다. 교회에서는 각기 분야에서 활동한 일꾼들이 속속 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교회 공동체 안에 조금 더 녹아들기를 위해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각자의 일상과 삶 안에 귀한 소금을 품고 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아멘. 나를 녹이는 순종과 자비로 다른 이들을 사랑케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