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대흥(大興)은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에 속한 지명으로 백제시대에는 임존성(任存城) 혹은 금주(今州)라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임성군(任城郡)으로 개칭하여 웅주(熊州: 公州)의 관할로 있었고, 청무현(靑武縣: 靑陽)과 고산현(孤山縣)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대흥군으로 바꾸고, 1018년(현종 9) 홍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에는 대흥현이 되었고, 1682년(숙종 7) 대흥군으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 대흥군이 되었다가 1896년 충청남도 대흥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예산군, 덕산군과 함께 예산군으로 통합되면서 대흥군은 폐지되었다. 1934년 대흥면(大興面)으로 유지하다가 예산군에 편입되었다.
성씨의 역사
시조 백우경(白宇經)은 《백씨대동보(白氏大同譜)》에 따르면 중국 고대의 전설 속의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 16세손 백을병(白乙丙)의 후손으로 중국 소주(蘇州) 출신으로 당(唐)나라에서 첨의사(僉議事)와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으나 간신(奸臣)들의 모함을 받아 780년(선덕여왕 1) 신라에 건너와 자옥산(紫玉山: 지금 경주시 안강읍 옥산동) 밑에 정착한 후 영월당(迎月堂) 만세암(萬歲庵)을 짓고 학문보급에 진력하였다고 한다.
대흥백씨(大興白氏) 시조 백임지(白任至)는 고려 문종 때 상사직장동정(尙事直長同正)을 지낸 백가적(白可績)의 5세손으로 고려 의종 때 내순검군(內巡檢軍)으로 왕을 시종 공으로 대정(隊正)이 되었다. 조위총의 난의 진압에 공을 세워 우군지평마사, 형부상서(刑部尙書), 병부상서(兵部尙書)를 거치고, 1190년(명종 20)에 지문하성사, 공부상서(工部尙書)에 올랐다. 그 후 후손인 백견(白堅)이 충청도 대흥에서 경상도 동해안 영해박씨의 사위가 되어 영덕에 정착하여 세거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후손들은 대흥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분적종 및 분파
대흥백씨는 수원백씨(水原白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생원공파, 평해파, 지평공파, 족한당공파, 현감공파, 언양파, 참의공파, 성헌공파, 한남군파, 시랑공파로 나뉘어졌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일원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대흥백씨는 399가구 총 1,280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