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544&aid=0000000036&rc=N
리우 올림픽 유도 남자 73kg급 경기 장면. 사진=연합뉴스
“○○○ 선수, 업어치기! 다시 업어치기 시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유도 경기 중계에서 유독 자주 듣는 말이다. 유도, 하면 자연스럽게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업어치기’다.유도 메달 유망주를 소개하는 기사에는 대개 이런 제목이 붙는다. ‘금빛 업어치기 보라!’
업어치기는 유도의 수많은 기술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업어치기가 유도의 대표적인 기술로 인식돼 있다. 대부분의 한국 선수들이 자신의 주특기를 업어치기로 꼽기 때문에 한국 스포츠팬들에게 더욱 친숙해졌다. 업어치기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회전을 만들어내고, 상대를 등에 업듯이 들어올린 뒤 메다꽂는 기술이다. 화려하고도 통쾌하다. 실제 한국 선수들이 많이 쓰는 기술이며 매력적이기도 해서 더 기억에 남는다.
유도의 핵심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 ‘유능제강(柔能制剛)’이다.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제압한다는 뜻이다. 자신보다 더 큰 상대를 메칠 수 있는 기술이 바로 업어치기다. 완벽한 업어치기 기술을 보면 이 말의 뜻을 이해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유도 종목소개>
한국의 업어치기 달인들
한국 유도가 국제 대회에서 처음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었다. 남자 -71kg급(현재 -73kg급)의 안병근, 남자 -95kg급(현재 -100kg급)의 하형주가 금메달을 따낸 것을 비롯해 은메달 2개와 동메달 1개까지 더했다. 이 대회를 통해 유도가 확실한 효자 종목으로 자리매김을 시작했다.
당시 안병근이 결승에서 에치오 감바(일본)를 상대로 따낸 효과 2개 중 첫 번째가 업어치기였다. 이후 이 체급은 한국 유도의 간판 체급이 되었고,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린 선수들도 계보를 이어가며 대거 배출됐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에 빛나는 ‘유도 천재’ 전기영을 비롯해 왕기춘, 최민호 등이 대표적이다.
현역 대표 중 업어치기의 달인을 꼽으라면 안바울이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66kg급 금메달리스트 안바울은 이 대회에서 모든 경기를 업어치기로 승리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결승에서 안바울은 마루야마 호시로(일본)를 경기 시작 50초 만에 업어치기 한판으로 눌렀다.
안바울(왼쪽)과 안창림이 2016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왜 한국 선수들이 업어치기를 잘 할까. 대한유도회의 선찬종 전무이사는 그 이유를 한국 선수들의 체구와 업어치기라는 기술의 특징으로 설명했다. 그는 “업어치기는 체구가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넘길 수 있는 기술이다. 국제대회에서 체격이 좋은 유럽 선수들을 보면 과연 같은 체급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힘이 좋고 몸집도 좋다. 이런 선수들을 상대로 통할 수 있는 기술이 대표적인 게 업어치기다. 체격조건이 좋은 중량급 선수들은 허벅다리 걸기를 자주 쓴다”라고 설명했다.
역대 한국 선수 중 업어치기를 잘 썼던 선수들은 대부분 체구가 크지 않았다. 선 전무는 “여자 선수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다. 한국 선수 중에서도 조민선(96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66kg급 금메달) 처럼 체격 조건이 좋고 힘이 좋았던 선수는 업어치기를 많이 구사하지 않았다. 반면 정보경(2016 리우 올림픽 여자 48kg급 은메달)처럼 키가 150cm 조금 넘는 작은 선수는 업어치기가 주특기다”라며 “업어치기는 쉽게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또 동작에 따라 팔꿈치에 크게 무리가 갈 수도 있다. 잘 구사하기는 어렵지만 체격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수단이 업어치기다. 그래서 한국 지도자들은 ‘한국에서 업어치기를 못 하면 세계 정상급 선수가 되기 힘들다’고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업어치기로 훨씬 더 큰 상대를 메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메치기 기술이 대부분 그렇듯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린 후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낮은 타점에서 제대로 업어치기 기술을 걸었을 경우 상대 몸무게의 일부에 해당하는 적은 힘만 써도 메칠 수가 있다. 장성호 용인대 유도학과 교수(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 -100kg급 은메달리스트)는 과거 인터뷰에서 “한판이 제대로 들어가면 100킬로그램 보다 더 나가는 선수를 던져도 깃털처럼 아무 느낌이 없다”고 했다.
참고>> '우리동네 예체능' 유도 편 중 업어치기 한판승 장면
‘한국 업어치기’도 있다
업어치기와 관련해 화제를 모았던 변칙 기술이 있다. 2003년 최민호(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60kg급 금메달리스트)가 처음 사용한 ‘리버스 업어치기(말아 업어치기 라고도 불렀다)’다.
최민호는 정석 업어치기와 달리 상대 옷깃을 잡고 몸을 270도 가까이 많이 돌려서 업어치기를 했다. 그의 변칙 업어치기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상대가 반대쪽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보통 오른쪽으로 업어서 메치면 오른쪽으로 떨어지고, 왼쪽으로 업으면 왼쪽으로 떨어지는데 최민호의 업어치기는 오른쪽으로 업어서 메치면 왼쪽으로 떨어진다. 이 때문에 영어로 ‘리버스(reverse) 세오이-나게(업어치기)’라고 이름붙였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최민호. 사진=연합뉴스
처음에 이 기술은 변칙이라고 해서 아예 기술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국제유도연맹(IJF)에서 공식적으로 기술 인정을 했다. 2003년 오사카 세계선수권 경기 장면을 보면 최민호가 완벽하게 리버스 업어치기로 한판 기술을 해냈는데도 심판이 한판을 선언하지 않고 지나친다. 그러나 이 기술이 인정을 받은 후 최민호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 경기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최민호의 변칙 업어치기는 이후 한국의 다른 선수들도 사용했고, 프랑스나 일본 선수들도 썼다. 그러나 주로 한국선수들이 더 잘 구사했던 건 사실이다.
2015년 일본에서는 이 기술을 쓸 경우 낙법이 어려워져서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중학생 이하의 선수들에게는 실전에서 이 기술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 재미있는 건 이를 발표할 때 일본유도회의 심판위원회가 쓴 용어가 ‘한국 업어치기(韓?背負い)’였다는 점이다. 일본 심판위원회는 당시 “속칭 ‘한국 업어치기’를 중학생 경기에서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유도의 흐름을 단순화해서 설명하자면 크게 ‘기술의 일본’과 ‘힘의 유럽’으로 대표된다. 유럽은 세밀한 기술 보다 힘을 앞세운다. 반면 일본은 어릴 때부터 유도를 시작하며, 체력 훈련 보다도 도복을 입고 실전 훈련을 더 많이 하는 전통이 있어서 기본기가 압도적으로 탄탄하다. 이런 양대 흐름 사이에서 한국은 엘리트 선수들이 혹독한 체력 훈련을 소화하면서 ‘유럽보다 힘에서는 밀리고, 일본보다 기본기에서 밀리는’ 열세를 극복해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필승전략 중 하나가 업어치기였다.
안창림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체전 경기 도중 일본의 에비누마 마사시를 상대로 업어치기를 시도하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한국은 피나는 연구와 노력 끝에 변칙 업어치기까지도 만들어냈고 유도에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이끌었다. 이것이 어쩌면 최민호의 업어치기를 그의 이름을 딴 ‘최민호 업어치기’나 동작을 설명하는 ‘리버스 업어치기’로 부르지 않고 굳이 ‘한국 업어치기’로 부르는 이유일지 모른다. 그만큼 한국 유도는 체격의 열세를 극복하자고 단순하게 업어치기만 파고든 게 아니었다. 이를 더 발전시키고 승률을 높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66kg급 동메달리스트 조준호는 자신이 직접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한판TV’에서 업어치기를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선수들이 경기가 길어지고 상대가 나를 대부분 파악했을 때도 업을 수 있는(업어치기를 성공시킬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보통은 업어치기 기술을 걸 때 상대의 발을 보고 들어가는데, 한국 선수들은 하늘을 보고 업어치기를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이처럼 한국 유도는 상대편이 ‘한국 선수니까 결정적인 순간 업어치기를 시도하겠지’라고 예상하고 들어온다는 점을 감안하고 매우 세밀한 부분까지 준비하고 있다.
유도의 기술은 260개 이상
유도의 기술은 크게 메치기와 굳히기로 나뉜다. 메치기는 다시 손기술, 다리기술, 허리기술로 분류할 수 있다. 굳히기에는 꺾기, 조르기, 누르기가 있는데 각각의 세부 기술이 더 세분화되어 있고 이러한 기술을 이용한 변칙기술은 셀 수 없이 많다.
정훈 전 유도대표팀 감독은 2013년 ‘무도연구소지’에 소개한 자신의 논문 <런던올림픽 유도 결승 경기 잡기 기술 분석>에서 “유도는 기본 기술만 메치기 66개 굳히기 29개로 합계 95가지이며, 비공인 응용기술은 260가지가 넘고 비공인으로 분류하지 않은 기술은 더 많다”고 밝혔다.
일본판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 엘리트 유도 경기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기술은 허벅다리 걸기, 업어치기, 배대뒤치기다. 2017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서 IJF가 낸 통계에 따르면 대회 중 나온 한판승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기술은 허벅다리 걸기였다. 2018 바쿠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나온 6개의 한판승 중 2개가 허벅다리 걸기 한판이었다.
유도 경기에서 승리를 따낼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한판 기술을 성공시키거나 절반 두 개를 따내는 것, 그리고 상대가 경기 종료까지 아무 것도 성공시키지 못했을 때 절반을 따내는 것, 또 하나는 상대가 지도 3개를 받아 지도패 당하는 것이다. 지도는 상대를 고의로 매트 밖으로 밀어내거나 5초 이상 공격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경기할 때, 메치기 때 다리를 잡는 경우에 받는다.
메치기로 한판을 따내려면 상대의 등이 땅에 완전히 닿아야 한다. 누르기는 상대 등이 바닥에 닿은 채로 20초를 버텨야 한판을 인정받으며 꺾기나 조르기는 상대가 항복하거나 의식을 잃을 때 한판을 따낼 수 있다.
규정 변화와 유도
유도 경기 규정은 최근 10여 년 동안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변해왔다. 과거 한판-절반-유효-효과로 세분화되어 있던 기술 성공 판정이 2009년부터 효과가 없어졌고, 2017년부터는 한판과 절반으로 단순화됐다. 또한 연장전의 경우 과거에는 제한시간 동안만 경기한 후 점수가 안 나면 판정에 의해 승패가 갈렸지만, 이제는 누군가 기술을 성공시키거나 지도패를 당할 때까지 시간제한 없이 계속되는 ‘끝장 승부’로 바뀌었다.
한편 절반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참고해야 할 사항이 있다. 유도에서 사용하는 국제용어는 모두 일본어다. 한국은 이 용어를 모두 한국말로 번역해서 쓰고 있어서 오히려 국제대회를 볼 때 더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유도의 절반은 ‘와자아리(技有り)’를 번역한 것인데, 이는 반이라는 뜻이 아니라 ‘기술이 있음’이라는 뜻이다. 즉, ‘한판의 반을 쳐준다’는 뜻 보다는 ‘기술 있음’이라는 말에 해당한다. 다만 유도 규칙상 와자아리 두 개를 따내면 승리하도록 인정하는 것뿐이다.
결국 이처럼 규정이 자주 바뀐 목적은 단 하나다. ‘한판승이 많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유도의 한판(국제유도용어에서는 ‘잇폰(Ippon, 一本)’이라는 일본말을 사용함)은 말 그대로 유도의 꽃이자 궁극적인 목표다.
잇폰은 무슨 기술이든 완벽하게 사용하면 얻을 수 있지만 특히나 상대의 몸이 공중에서 완전히 돌아갈 정도로 메치기 기술을 멋지게 성공시키거나 경기 막판 짜릿한 역전승을 만들어내는 한판이 나왔을 때는 지켜보던 사람들이 이를 ‘슈퍼 잇폰’이라고 부른다. 실제 점수를 더 주는 건 아니지만 보는 이들에게 더 큰 짜릿함을 줬다는 찬사의 의미다.
4분 경기에서 3분59초를 지고 있다가도 마지막 1초를 남기고 한판을 성공시키면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게 바로 유도의 매력이다. 유도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슈퍼 잇폰’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경기를 본다.
그러나 2017년 규정 변화는 여전히 뜨거운 찬반양론을 몰고 다니고 있다. 한편에서는 ‘레슬링도 퇴출당할 수 있다는 위협을 겪었을 정도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살아남는 건 쉽지 않다. 흥미를 유발하는 파격적인 규정 변화가 필요하다’며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과거 유효 밖에 못 얻었을 기술을 두 번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규정 변화는 오히려 유도의 재미와 진가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도의 재미가 떨어졌다는 비판이 본격적으로 나온 건 2010년 경부터다. 당시 IJF가 유도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메치기 때 다리 잡기 공격을 금지했는데, 더 다양한 기술이 나온 게 아니라 힘 좋은 선수가 버티기에 들어가면 이길 수 있는 쪽으로 부작용이 나왔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결국 이런 점이 극대화됐다. 유럽과 남미 선수들이 변칙 잡기 기술로 일본과 한국 선수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잡기 싸움만 하다가 끝나버리는 경기가 속출했다. 유도 고유의 기술 대신 점수만을 목표로 한 변칙 기술이 나와 무슨 종목인지 구별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리고 2017년부터는 더욱 파격적인 규정 변화가 생겼다. 당초 IJF는 절반은 여러 번 해도 경기가 끝나지 않고 오직 한판만 경기를 끝낼 수 있도록 한다고 발표했다가 2018년 1월부터 절반 두 개면 승리로 인정하기로 했다.
허벅다리 걸기. 사진=연합뉴스
IJF는 “규정 변경 후 실제로 지도승 보다 한판이나 절반승의 비율이 늘어났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유도인들은 “IJF가 지도승이 나오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고 항변한다.
국제대회 준결승 이상의 큰 경기에서 연장에 들어갔을 경우 정규경기 중 누군가 지도 2개를 받은 상태라면 연장에서 지도 한 개만 추가해도 바로 경기 끝이다. 이런 경우 심판이 확실한 지도 상황에서도 웬만해서는 지도를 잘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승부를 내게 하려고 공격을 안 하고 시간을 끌어도 배려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상황에서 IJF는 '기록상으로 지도승이 줄어들었다'고 주장한다는 지적이다.
과연 유도 규정이 앞으로도 더 드라마틱한 변화를 계속할 것인지, 혹은 유효가 부활하거나 다리 공격을 허용하는 등 과거를 다시 인정하는 보완책이 나올 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기사제공 이은경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