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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3월29일-가정교회 주일예배 순서-다섯째주일
➜예배전에 준비 할 것
①. 성경과 찬송가를 먼저 준비하세요.
②.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예배하려면 단톡(금강교회 단체 카톡)에서 실시간예배 중계를 위한 주소가 주일 오전 11시 전에 올라오게됩니다.
③. 헌금은 예배 전에 바구니 혹은 상자 안에 넣어 ‘예배’ 인도자 앞에 놓아두세요.
▣.예배
➀. 묵상기도 하시므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겠습니다.
롬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아멘
전능하신 하나님 이 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정교회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되도록 우리들의 심령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고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➁.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➂. 찬송가 38장(예수 우리 왕이여)
1.
예수 우리 왕이여 이 곳에 오셔서
우리가 왕께 드리는 영광을 받아 주소서
우리는 주님의 백성 주님은 우리 왕이라
왕이신 예수님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2.
예수 우리 주시여 이 곳에 오셔서
우리가 주께 드리는 찬양을 받아 주소서
우리는 주님의 종들 주님은 우리 주시라
주 되신 예수님 오셔서 이 찬양을 받아 주소서
➃.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품어 주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송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에 심령의 귀를 열어 주시며,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순종하며 살게해 주옵소서.
이 시간에도 말씀을 증거하는 설교자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어린아이들을 지켜 주옵소서. 어린 아이들이 이 힘든 시절을 잘 견디도록 저들에게 성령님 임하시어 힘주시옵소서.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며, 이럴때에 다치거나 상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해 주시옵소서.
이 어려운 때를 여호와를 경외하며 말씀을 사모하는 기회가 되어 신앙으로 승리하게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들의 가정과 우리 심령에 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➄. 성경봉독 : 이사야 11:6-9(p.981)
말씀을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기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➅. 설교
제목 : 평화의 왕 예수
한 가정의 가장(家長)이 인자(仁者)하고 덕(德)스러우면, 그 가정의 분위기는 화기애애(和氣靄靄) 할 것입니다. 이런 가정은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이웃 사람들에게도 들릴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가장이 항상 술에 취하여 집에 들어왔어는 폭력을 행사하거나 부부 싸움을 일삼는다면 그 가정에서는 웃음이 사라질 것입니다. 아이들은 항상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한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정권욕을 버리고, 당리당략(黨利黨略)을 버리고,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그분의 재임 기간동안 나라가 평안할 것입니다.
특히 왕정(王政)시대에는 왕이 평화로운 분이면 나라도 평화로운 나라가 됩니다. 왕이 폭력적이라면 나라도 결코 평화롭지를 못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장차 이 땅에 메시야가 오시면 평화가 함께 임할 것을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즉 장차 오실 메시야, 그 분은 평화의 왕으로 오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기 때문에 평화의 나라가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그분이 누구십니까?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 말씀을 듣는 가운데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육간에 평화를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0년대 80년대 까지만 해도, 해마다 전국체전을 할때면, 대통령이 개회식에 참석하여 축하의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체전을 알리는 개회선포를 대통령이 했습니다. 대통령이 <지금부터 제50회 전국체전이 개회됨을 선포합니다.>하고 말하면 군악대의 빵파래가 울립니다. 그와 동시에 수천마리의 비둘기가 운동장 한편에서 날아올라 운동장을 한바퀴 돌고 날아갑니다. 그당시로는 그 광경은 대단한 구경꺼리였습니다.
비둘기를 날리는 것은 평화를 상징하며 화합을 상징하였습니다. 전국 체전을 통해 전국 팔도가 화합하고 나라가 평화롭게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비둘기를 날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평화의 상징었던 비둘기가 지금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새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비둘기들은 도시의 교량 아래 주로 수백마리들이 운집하여 삽니다. 그래서 비둘기의 배설물들이 교량의 볼트 낫트들을 녹슬게 만들거나, 도시의 거리나 건물들에 배설물들을 뿌리므로 미관상 더럽게하기 때문에 평화의 상징이 애물단지의 상징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평화는 변합니다. 오늘의 평화가 내일은 전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배신자가 되기도하고 사기꾼이 되어 친구의 재산을 몽땅들고 잠적하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서로 적이었으나, 지금은 우방국가가 되어 지내는 그런 나라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제1차세계대전때는 같은 연합군이었으나, 지금은 서로 적대국가가 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平和)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영원토록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오시게 될 때 펼져질 세상을 본문 말씀에서 다같이 살펴 보시겠습니다.
. 먼저 6절을 보겠습니다.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기에게 끌리며
이 말씀에서 <그때>는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그때를 말합니다. <그때>는 참으로 우리에게는 놀라운 때입니다. 우리에게 평화가 넘치는 때입니다. 그 평화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 평화입니다.
6절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이리가 어린양, 즉 새끼 양과 함께 살며》하였습니다. 여기의 이리는 늑대(wolf)를 말합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 그다음에도 놀라운 광경을 말씀합니다. 표범이 어린 염소, 즉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하였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새끼 양을 보게되면 늑대는 침을 흘립니다. 새끼 양이니까 잡아먹으려고 용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입만 쩍 벌리면 단숨에 그냥 잡아 먹을 수 있습니다.
날쌔고 사나운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하였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광경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평화의 왕이 오시게 되면,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평화롭게 살게됩니다.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워 뒹글며 평화롭게 놀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늑대와 어린 양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누가 변화 되었기에 될 수 있는 것일까요? 변화된 것이 늑대입니까? 어린 양입니까? 늑대가 변한 것입니다.
표범이 어린 염소, 즉 새끼 염소와 함께 누워 뒹굴며 살 수 있는 것은 누가 변화 된 것입니까? 표범이 변화 된 것입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임하시면 늑대가 변합니다. 표범이 변합니다.
즉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오실때에는 악한 죄인이 양처럼 변합니다. 사납고 표독한 자들이 변합니다.
참 평화는 돈 몇푼 쥐어주고, 싸우지 말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하는 이런 평화가 아닙니다.
애수님이 오셨어 주신 평화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평화입니다.
새끼 양만 보면 잡아 먹던 늑대가 변하여 새끼 양과 함께 살게됩니다. 표독스러운 표범이 변하여 어린 염소와 함께 뒹굴게됩니다.
2013년에 만들어진 <파파로티>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주인공으로는 한석규 이제훈, 오달수 같은 톱 연기자가 출연했습니다.
조폭이었던 한 청년이 음악선생을 만나 성악가가 되는 과정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음악 선생님은 김천고등학교에서 음악선생님으로 있던 서수용 선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폭력서클에서 주먹을 휘둘렀던 사람은 ‘김호중’이었습니다. 서수용선생님은 ‘김호중‘이를 폭력조직에서 빼내오기 위하여 조폭 두목을 찾아갔어 담판을 벌일 정도로 김호중이를 사람 만들려고 희생했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한 것은 그가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신앙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늑대 같은 한 청년을 양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포항에는 자유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있습니다. 일반고등에서 퇴학 맞은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학교입니다. 일반학교에서 도저히 못가르치겠다라고 두손두발 다든 학생들이 오는 학교입니다. 이 학교를 설립한 분은 기독교대학인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의 교수이신 김윤규 교수님이십니다. 자유학교를 설립할 때 동네 주민들이 우리 동네에 그런 깡패아이들만 다니는 학교를 세울 수 없다 하여 반대가 극심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학교는 세워졌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학교가 달라졌습니다. 전국에 있는 대안학교 중 가장 성적이 좋은 모범학교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고등학교 학력인정 검정고시에서도 전원이 합격을 하였습니다. 포항에서 제일가는 청소년 주먹 꾼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매일 학교를 쓸고 동네를 청소하는 아이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여기온 아이들의 대부분이 일반 학교에서, 담임선생님 책상을 엎어버리고 교무실 문을 이단 옆차기로 부숴버리고 친구들 돈 빼앗는 것은 기본일 정도로 골치 덩어리들이 자유학교에 왔어 변한 것은, 설립자이신 김윤규 교수님의 신앙 때문입니다.
갈6:9절 말씀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말씀을 붙들고, 단 한명이라도 자유학교에 남아있다면 포기하지 않는다는 김윤규 교수님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늑대 같은 아이들이 양처럼 변하였던 것입니다.
➜ 다시 6절 말씀을 봅니다.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하였습니다.
송아지는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새끼 사자도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송아지도 사자 새끼도 아직은 천방지축(天方地軸)입니다.
송아지를 저는 고향에서 자랄적에 많이 보면서 자랐습니다. 송아지가 있으면, 어른들은 애를 먹습니다. 어미 소는 주인이 끄는대로 길을 가지만 송아자는 풀쩍 풀쩍 뛰기도 하고, 길을 가다가도 뒤로 돌아 가기도 하고, 밭으로 뛰어 들어가기도 하고, 논으로 뛰어 들어 가기도합니다. 밭에 자라는 보리 싹이나, 채소를 뜯어 먹어 버리기도 합니다. 송아지를 끌고 가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이것은 사자 새끼도 마찬가지입니다. 텔레비젼의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에서 어른 사자 곁에 새끼 사자들이 노는 광경을 더러 보게됩니다. 어미 위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이리 저리 겁 없이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새끼 사자를 노리고 있는 하이에나나 늑대의 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미 사자는 잠시도 새끼 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심하게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간섭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함께 등장하는 동물이 <살진 짐승>입니다. 살진 짐승들도 말을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몸이 비대하기 때문에 몸을 잘 움직이려 들지 않습니다. 몸이 비대한 하마 같은 짐승은 고집이 대단합니다. 이미 배가 부른 짐승들은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여기서, 송아지와 새끼 사자, 그리고 살진 짐승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송아지도 새끼 사자도 살진 짐승도 통재를 잘 받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즉 끌고 다니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나 평화의 왕이 오시면..., 어린 송아지도, 새끼 사자도, 그리고 살진 짐승도 아기가 끌고 가도 따라갑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타락한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삽니다.
그러나 평화의 왕이 다스리게 되면 변합니다. 주님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요10장]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양들은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어린 아이가 이끌지라도 주님의 음성이라면 따라갑니다. 순종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따라가는 것은, 연습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 우격다짐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평화의 왕이 그의 삶 가운데 들어오시면 평화로운 주님의 인품에 감동받아 주님을 따라갑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말씀을 듣고 따라간다는 그것은 주를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짐승들은 먹이 다툼이 아주 굉장합니다. 숫사자는 노루나 산양을 사냥하게 되면 절대로 나누어 먹지 않습니다. 자기 배가 불러 더 먹을 수 없을 때까지 그 큰 노루 한 마리를 혼자 끼고 앉아 뜯어 먹습니다. 그때 암 사자나 새끼 사자가 귀퉁이 살점 하나 뜯어 먹으려고 가까이 오게되면 난리가 납니다. 먹이를 나누어 먹지 않습니다.
개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개들은 자기 밥그릇에 누가 주둥이를 밀고 한입 먹으려하면 가만 두지 않습니다. 이것이 야생의 세계입니다. 먹는 것 만큼은 양보하지 않는 것이 짐승의 셰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암소와 곰이 함께 먹는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거기다가 새끼까지 거기 엎드려 먹도록 한다는 것은 욕심을 다 버린 것입니다.
화평의 왕이신 주님이 오시면 사람들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깁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번에 토로나19로 여유만만하던 미국에 갑자기 코로나19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생겨나자 미국의 마트에는 싸재기가 일어났습니다. 대형마트마다 물건이 동이났습니다. 나만 먹고 살려는 심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총를 신고만 하면 누구든지 소지할 수가 있습니다. 금번에 총도 싸재기가 일어났습니다. 사회가 불안하기 때문에 총을 구입하여 자기한몸은 자기가 지키겠다는 심리인 것입니다.
[빌2장]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함께 되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낮아지심으로 죄인들로 하여금 생명의 떡을 먹게해 주셨습니다.
➜. 평화의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고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삽니다. 사자는 짐승의 고기를 먹고 삽니다.
그런데 평화의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사자가 다른 짐승의 피를 흘려 그 살점을 식량으로 삼지 않고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생명을 경시한다는 것이며, 그리고 잔인하다는 것입니다.
[신19장]
13.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신21장]
9 .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평화의 왕이 함께하는 그곳에는 남을 죽이거나, 남을 멸시하거나, 남을 해하여 내가 잘살려고하는 그런 죄가 사라집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게되는 것은 이미 사자가 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노래함과 같이 푸른 풀밭을 쉼터로 생각하여 주님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는 양처럼 살아가는 주의 백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라는 말은 암소와 곰이 벗이 되어 지낸다는 것입니다. 암소와 곰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암소와 곰이 친구처럼 함께 먹고 살게되니, 암소의 새끼와 곰의 새끼가 함께 뒹굴며 놀게되는 것입니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는다 하였습니다. 휘발유로 달리는 자동차에 물을 넣게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달리겠습니까? 단 1m 도 달리지 못합니다. 고장이 납니다.
사자가 풀을 뜯어 먹는다는 것은 휘발유 자동차가 갑자기 물을 넣어도 달리는 것 만큼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오시게되고 그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게 되면 사람이 바뀝니다. 먹는 것이 달라집니다.
.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어릴적 시골에서 살면서 더러 뱀 구멍을 보게됩니다. 그 구멍 근처에서 뱀이 허물을 벗어놓은 것도 보게됩니다. 뱀 구멍을 보게되면 돌로 막아버립니다. 그러나 독사의 구멍에 손을 집어 넣지는 않습니다. 독사의 구멍에 손을 집어 넣게되면 독사에게 물린다는 정도는 알만한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어린아이들은 땅에 구멍이 있으면 그게 무슨 구멍인가하여 손을 집어 넣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십중팔구는뱀이 손가락을 물고 늘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독이 온몸 퍼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오시면 아이들이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고 놀아도 해치거나 상하게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을 해를 대신하여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상하고 찢겨져야할 죄로 인한 형벌을 주님이 대신 상함을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해됨도 상함도 받지 않습니다.
[사53장]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마지막으로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평화의 왕이 신 예수님이 뱀의 머리를 깨뜨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사 상하게 한다는 것은 크러쉬 (crush)..., 즉 ‘부수다’, ‘으깨다’, ‘짓밟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박살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발꿈치가 상하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음으로 자신이 승리한줄 알았으나 그것은 발꿈치가 상한 정도였습니다. 발꿈치가 좀 상한다하여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머리는 다릅니다. 머리가 짓밟혀지고 박살이 나면 그것은 끝입니다.
주님은 극심한 고통을 받으시면 서도 이미 사탄을 깨뜨리셨고, 상처받은 발꿈치를 가지고도 상처를 준 뱀의 머리를 짓밟으신 것입니다.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를 의미하는데 '머리'라는 말로써 그리스도께서 사탄과의 최후적 싸움에서 완전하고도 궁극적인 승리를 쟁취하실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롬16:20.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궁극적(窮極的)으로 '사탄은 떨어지고'(눅10:18), '결박을 당하여'(계20:2), 마지막 심판 때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으로 던져집니다'(계20:10).
평화의 왕이신 주님이 왕으로 임하실 때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그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때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할 것도 없어지고, 상하게 할 그 무엇도 없어질 것이므로 독사의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안다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복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을 받을 때, 그 성령님은 하나님을 알게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우리 안에 움직이는 운동력으로 역사하여 배워서 이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만 하면 참으로 우리의 영적인 삶이 풍성해집니다. 산다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 할 것입니다.
바다에 물이 없다면 그 바다는 죽은 바다입니다. 그런데 바다를 물로 가득체워질 때 그 바다는 온갖 물고기들로 체워집니다.
바다 깊은 곳에서부터 온갖 바닷 식물들을 얻게됩니다. 그리고 바다가 비를 만들어내기도합니다. 바람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하나님으로 우리 심령을 덮어버려질 때, 우리는 주안에서 주시는 은혜가 충만하며 주님이 주시는 평화로 우리 마음이 쉼을 얻을 것입니다. 절망 스러운 세상이 소망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듯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덮어 버려주시기를 바랍니다. 화평을 주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의 은혜가 물로 바다를 덮어버리듯 우리를 덮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더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므로 심령에 은혜로 기쁨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어 심령의 안식과 평안함의 은혜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잠언28:1절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시는 의롭다 함의 칭의를 받아 심령이 쫓겨나니는 것이 아니라 사자 같이 담대한 심령의 평안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➆.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된지1년이 된 것도 아니고, 반년이 된것도 아니지만 참 길게만 느껴집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하루 하루 보내면서 바이러스에 감염이 될까봐 염려가 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조심하여 생활한다는 것이 참 불편합니다. 더욱이나 어린 아이들이 안스럽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코로나 바이러스를 멈추어 주시옵소서. 교회들도 힘들고, 소상공인들이 하루 하루 초조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들을 모두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 이땅에 다시 한번 평화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땅을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에서 헌금을 드린 성도들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주옵소서 감사드리옵고 에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➇. 찬송가 151장(만왕의 왕 내 주께서)
1.
만왕의 왕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그 보혈 흘렸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2.
주 십자가 못 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 수 없도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3.
늘 울어도 그 큰 은혜 다 갚을 수 없네
나 주님께 몸 바쳐서 주의 일 힘쓰리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➈. 주기도문으로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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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도 여러분, 조금더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인내 하시기를 바랍니다. 최후까지 손을 깨끗하게 하시고, 마스크 잊지 말고 착용하시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날씨 좋은 날에는 사람들이 없는 근처 공원이나 산책길에서 한번씩 아이들과 산책하시기 바랍니다.
2. 수요일밤(4월1일) 기도회 순서도 단톡에 올리겠으니, 혼자서라도 장소에 상관 없이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3. 마스크를 걷어내고 얼굴과 얼굴을 볼 수 있는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합시다.
4. 가정예배에서 드린 헌금은 교회 계좌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헌금 보내실 계좌번호
농협 3510 0558 90923 금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