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 서기지부 교선부장
“여기 왜 잡혀오신 줄은 아시죠?”
“모릅니다.”
“모른다구요? 정말 모르세요?”
“모릅니다.”
“당신은 오늘 오전 행신역에서 (어쩌구 저쩌구...) 맞죠?
“아닌데요.”
“그럼 왜 잡혀왔죠?”
“저도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이윽고 형사가 눈을 치켜떴다. ‘이 새끼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조사는 지리한 질문의 연속이었다. 형사는 내가 현장에서 불법을 저질렀고 따라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이라는 확신에 찬 질문을 연신 쏟아내었으나, 난 형사의 기대를 줄줄이 배신했다. 형사의 왼쪽 입술이 살짝 올라갔다.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거만해 보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형사의 금색 안경테가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
“행신역에서 벌어진 집회에 참석하신 일이 있지요?”
“없습니다.”
“집회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계셨죠?”
“몰랐다구요.”
“동행한 사람이 있었죠?”
“없다니깐요.”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TV를 켰다.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연행되었다는 뉴스앵커의 말에 잠이 확 달아났다. 간 밤에 행신역에서 일어난 사건이 생생한 영상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아, 지부장!
11시에 기자회견을 한다는 지방본부의 메시지를 받고 혼자라도 가야겠다 싶어 사업소에서 행신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늘 새벽 78명이 연행되었는데, 기자회견을 할 수 있을까? 강행한다면 모조리 연행될 것이 분명했다. 도데체 어디서 하겠다는 거지? 행신역 안에서? 밖에서?
*
“참나.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요.”
“뭐가 안 맞다는거죠?”
“단지 기자회견이 있다는 문자 메세지만을 받고 혼자서 왔다?”
“그게 뭐가 이상하죠?”
“노동조합의 간부도 아니면서 문자를 보고 혼자서 기자회견을 보러 왔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잖아요.”
“지침을 따르는 건 조합원의 의무인데요.”
“평소에도 노동조합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가요? 지금까지 집회는 몇 번이나 참석했죠?”
“수도 없이 가봤죠.”
형사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난 결백했으나 조사가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슬슬 짜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자, 보세요. 이대로 하면 쓸데없이 질문이 길어지고 하니까, 제가 대략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드릴테니, 제 이야기를 듣고 합시다.”
난 있는 그대로 사업소에서 나와 행신역 홈에서 연행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이미 한바탕 소동이 끝난 이후였고, 내가 연행된 시각도 이미 정오를 지나서였다 등등...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열차를 강제로 멈추게 하고 선로를 무단으로 점거하신 일이 있지요?”
“없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으신 적이 있지요?”
“뭐, 예...” (아뿔싸, 낚였다. 내가 한 적은 없지만, 다른 조합원들이 “강제로” 멈추고, “무단”으로 점거했다고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잠깐만요!”
*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이었다. 좁은 도로 양쪽에 길게 늘어선 전경버스의 지붕과 유리창은 뜨거운 태양빛을 반사시키며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시커먼 전경 무리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를 구경하기 위해 힘껏 목을 뺀 시민들이 보이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휠체어를 탄 장애우들이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대여섯 명의 경찰들이 장애우를 둘러싸더니 휠체어를 통째로 들어올려 전경버스에 실어버렸다. 그들은 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로 “장애인 이동권 쟁취”, “역사 무인화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있었다. 담장 너머에는 한승수 국무총리의 연설이 한창이었다. 마이크가 있는 연단은 지붕이 있어 그늘이 졌는데, 그늘 아래로 갈 수 없는 장애우들은 강제로 버스에 태워져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행신역 입구는 시커먼 전경들이 대열을 갖추어 서 있었고, 대열 맨 앞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의 손에 든 무전기에서는 다급한 목소리가 쉴새 없이 흘러나왔다. 계단을 오르자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저마다 양팔을 경찰에게 내맡긴 채(아니 빼앗겼다고 하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게다) 3인 1조로 움직이거나 벽 쪽으로 찰싹 달라 붙어 있었다. 한 둘이 아니었다. 개찰구 주변은 오가는 승객들과 경찰들, 그리고 경의선 개통식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히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인해 몹시도 어지러웠다. 혹시 플랫폼에서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급하게 플랫폼을 향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계단에서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는데 그 역시 양팔을 경찰에게 빼앗긴 채였다. 미안한 마음에 멀뚱 쳐다볼 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한바탕 소동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
아... 늦었구나!
*
“질문을 다시 해주세요!”
“예?”
“질문을 정확하게 다시 해달라구요!”
“열차를 강제로 멈추게 하고 선로를 무단으로 점거하신 일이 있지요?”
“그거 말구 그 다음 질문이요.”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으신 적이 있지요?”
“없습니다.”
“??(뭐야 이거)”
“제가 들은 이야기는 단지 열차가 멈췄고, 사람들이 선전전을 했으며, 사람들이 연행되었다는 것 뿐입니다.”
*
개찰구 앞에 무대가 마련되었다. 허준영 코레일 사장과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한승수 국무총리가 보인다. 승강장에서 개찰구 쪽으로 올라오는 계단은 전경들에 의해 봉쇄되었다. 세 명은 모두 가위를 들고 있었다. 경의선 복선 전철 개통을 축하한다며 그들은 테잎을 자르고 있었다.
테잎이 싹둑싹둑 잘려진다. 잘려진 테잎 조각들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낙하한다. 아무런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한 채 잘려진 테잎 조각의 운명.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행사를 취재하는 수많은 카메라의 플래쉬가 번쩍이며 가뜩이나 기름진 그들의 면상을 더욱 번들거리게 만들었다. 잘린 테잎의 날카로운 모서리만이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분노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 시간 철도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연행되었다 미처 닭장에 싣지 못한 직원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컷팅식 행사 주변에 꼼짝 못하게 잡혀 있었다. 시민들조차 볼 수 없도록 경찰들로 모든 입구를 봉쇄한 채, 코레일 사장과 국토부장관, 국무총리 일당은 사진을 찍고 황급히 사라졌다.
계단을 막고 있던 경찰들이 한쪽으로 길을 터주었고 다시 한 번 내려가 보았다. 내려가던 중이었는지 내려간 직후였는지 아무튼 기분 나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지사 승무팀이었던가, 인사노무실 직원이었던가? 아무튼눈이 마주쳤으나, 서로 모른 척 얼굴을 돌렸다. 꽃단장을 한 전동차가 홈 입구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윽고 꽃가루가 날리며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성이 나왔다. 마치 반사신경처럼. 멀어져가는 열차와 손 흔드는 사람들. 조금 전 연행되던 얼굴들이 오버랩되었다. 제기랄... 겨우 이거 한다고 사람을 다 잡아가다니...
그 순간이었다. 뚱뚱한 남자가 슬쩍 내 옆으로 오더니 전경들을 향해 외치는 것이었다.
“야! 얘도 데려가!”
*
전경버스엔 철도노조의 조합원들로 북적거렸다. 한 시간쯤이나 흘렀을까? 버스는 고양경찰서를 향했다. 여기서 뭐하는 거지?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여기저기서 밥 달라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밥 줘! 니들만 쳐먹는거야? 우리는 왜 안 주는거야?”
“저희도 아직 못 먹었으니 조용히 하세요.”
“이거 인권유린이야! 알아? 밥 달라고.”
밥 달라는 아우성은 그치질 않았다.
“중국집 전화번호라도 달라고! 시켜먹을테니까. 어이!”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간짜장 곱빼기!”
“난 설렁탕!”
결국 도시락이 왔다. 배고픔에 이성을 잃었던 연행자들의 위대한 승리였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안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일부는 포천경찰서로 일부는 양주, 일부는 파주 등으로 이송된 것이다. 나는 양주경찰서행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얼마쯤 갔을까 풍물패 사부인 L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어디냐?”
“어디 좀 가고 있는데요.”
“그러냐. 아니 거시기, 뭐냐. 문자가 왔는데 우리 지부에서 2명이 연행되었다 그래서, 누가 잡혀갔냐?”
“아.. 그게요..지부장하고요.”
“응.. 또..”
“전데요.”
“뭐여?”
*
“이런 놈은 바로 구속해야 된다니까! 대한민국 경찰들은 뭐하는거야?”
“어? K형!”
뒤로 N형과 H형 그리고 W형의 모습도 보였다.
K형.. 형은 작년 촛불집회 때 어이없게도 인도에서 연행된 적이 있다. 당시 나도 함께 있었으나, 미처 도망치지 못한 K형만 연행이 되었던 것이다. 면회도 가지 못했기에 속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빚을 갚았다 싶어 내심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면회라니... 이걸로 또 얼마나 우려먹을까... 뒷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이윽고 조사가 끝났다. 형사는 마치 한판 신나게 정사를 벌인 사람마냥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사뭇 친철하게 나를 인도했다. 야릇하게 웃음짓는 표정이 메스꺼웠다.
“이쪽으로 오시죠.”
찾아 온 사람들과 몇 마디 나누지 못한 채 나는 형사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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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개통식 행사장에선 철도 노조원들의 시위와 경찰의 무더기 연행이 잇따랐습니다. 노조원들은 경의선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홍석우 기잡니다.
철도 노조원들이 경의선 개통식 행사장에서 기습 시위를 벌입니다. 경찰은 밀고 당기는 실랑이 끝에 15분 만에 시위를 벌인 노조원 50여 명 전원을 연행했습니다. 앞서 어젯밤과 오늘 새벽 사이에도 철도 노조원 200여 명이 행신역 플랫폼까지 들어와 농성 시위를 벌였습니다.
노조원들은 경의선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터뷰> 변종철(철도노조 정책국장) : "충분한 인력배치와 안전 조치를 요청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공기에 떠밀려서 개통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 끝까지 의지를 표현할 것이고..."
경찰은 역시 오늘 새벽 강제 해산에 나서 모두 70여 명을 연행했습니다. 어젯밤과 오늘 사이 경찰에 연행된 철도 노조원은 모두 120여 명으로 이들은 현재 인근 경찰서에 분산돼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철도 노조 측은 경의선 1단계 개통식 이후에도 여러 방법을 통해 안전 문제에 항의하는 행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