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깐느는 시작부터 불안했다. 애초 기대를 모았던 다수의 영화들이 영화제 시작 전까지 기한을 맞추지 못해 출품이 취소되자 영화제 측은 개막작과 무려 6편의 자국영화를 경쟁부문에 올리는 것으로 그 불안감을 해소코자 했다. 프랑스 영화계의 '앙팡 테러블'로 불리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프랑소와 오종의 <스위밍 풀> 역시 올해 깐느가 선택한 프랑스의 자존심일 것이다. 지난 해 베를린에서는 독특한 뮤지컬 <8명의 여인들>로 8명의 출연 배우 전원이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던 영예를 안았던 그였지만 과연 올해 깐느에서도 프랑스의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을까?
1990년대 초반부터 도발적인 단편들로 일찌감치 명성을 떨쳐왔던 프랑소와 오종은 1998년 <시트콤>으로 장편 데뷔한 이래 예측을 불허하는 전개와 무정부주의적인 감성, 일탈과 도발적인 상상력을 통해 부르주아 사회의 평온한 일상 뒤에 숨겨진 삶의 균열과 공허함을 냉소적으로 풍자해 왔다. <스위밍 풀>은 형식적으로는 이전의 영화들에 비해 보다 안정됐으며 장르에 충실하는 동시에 좀더 영화라는 것 자체에 몰두한다. 몇 편의 베스트 셀러를 발표한 영국인 여성 추리 소설 작가 사라 모튼(샬로트 램플링)은 상상력 고갈에 시달리고 있다. 좀처럼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수 없던 그녀는 편집장의 충고에 따라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그의 여름 별장에서 휴가를 갖게 된다. 따사로운 햇볕과 신선한 바람, 수영장이 딸린 그림같은 별장, 아름다운 남부 프랑스의 풍광 속에서 사라는 창작 의욕이 샘솟는 것을 느끼지만 이 평화로움도 잠깐, 어느 날 갑자기 편집장의 프랑스인 딸 줄리(루도빈 사니에)가 별장에 쳐들어옴으로써 그녀의 파라다이스는 온통 혼란스러운 것으로 변하게 된다.
영국에서의 사라와 프랑스 남부 도시에 도착 한 이후의 사라, 메마른 영국인 중년 여성 사라와 싱싱한 육체를 지닌 프랑스인 젊은 여성 줄리. 영화는 이렇듯 서로 다른 것들의 대조와 변화과정을 다룬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영국에서의 사라는 사인을 부탁하는 팬의 부탁도 일언지하에 거절할 정도로 차갑고 메마른 모습이지만 이윽고 프랑스 남부 지방의 평화로운 풍광과 마주하면서 점점 활기차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이러한 사라의 변화는 줄리의 출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저기 물건과 음식물을 흩트려 놓기 일수요, 화려한 의상과 싱싱한 육체로 밤이면 밤마다 다른 남자를 별장으로 데리고 오는 줄리 때문에 사라의 평화로운 시간은 끝장 나버리지만 어느 사이 사라는 줄리의 젊음과 자유스러움에 매료되어 감을 느끼게 된다. 영화의 제목이자 중요한 공간인 '수영장'은 사라의 변화에의 욕망을 부추기는 곳이며 비밀과 살인을 간직한 곳인 동시에 그녀의 변화가 시작되는 곳이다. 영화의 초반, 사라는 덮개가 드리워진 수영장을 바라만 볼뿐이다. 하지만 줄리는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덮개를 걷고 알몸으로 수영을 한다. 그리고 사라가 줄리에게 매료되고 변화해 가면서 마침내 그녀 역시 수영장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사라의 '글쓰기' 자체이다. 사라는 줄리에게 매료됨과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상처와 비밀을 안고 있는 줄리와 그녀의 일기, 어머니가 남긴 소설에서 새로운 창작에의 영감을 얻게 된다. 덮개가 드리워진 수영장과 그 밑에 숨어있을 지도 모르는 살인과 비밀에의 의혹은 사라의 창작욕구를 부추긴다. 한 편의 영화 안에 여러 장르들이 섞여 있는 대개의 오종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 역시 평범한 드라마처럼 시작했던 초반과 달리 영화의 중반 이후 급격하게 코믹한 미스테리 스릴러로 선회하게 된다. 점점 고조되어 가던 긴장은 줄리가 별장으로 데려온 사라의 단골 식당 종업원이 하룻밤 사이 실종되면서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사라는 줄리의 비밀과 남자의 실종을 추적해 가기 시작하고 영화에서 그 과정은 사라의 글쓰기 자체와 동일시된다. 영화의 초반 전형적인 중년의 영국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했던 사라는 이제 아가사 크리스티 류의 영국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마플 부인이나 자신의 추리소설 속 주인공처럼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밀들을 밝혀가기 시작한다. 줄리의 비밀과 살인사건은 사라의 소설과 점점 구분하기 힘들어지고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한다. 줄리의 어머니는 과연 살아있는 것일까, 죽은 것일까? 아니, 애초 줄리가 존재하기는 했던 것일까?
이렇듯 환상과 현실이 뒤섞이며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영상으로 담아 가는 영화는 도발적인 상상력과 영상으로 가득한 이전의 오종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그의 어조는 한결 차분해 졌으며 여전히 여러 장르들이 뒤섞여 있지만 한결 장르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어쩌면 <8명의 여인들>의 전작인 <사랑과 추억 Under the sand>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과 추억>은 그 동안 유희만 있을 뿐 깊이는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오종에게 작가로서의 새로운 평가를 안겨준 작품이며 여기서 여름철 바닷가에서 남편이 실종된 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추억과 내면 속으로 침잠하는 중년 여성의 모습은 고스란히 <스위밍 풀>의 사라로 이어진다. 확대된다. 또한 두 편 모두 샬로트 램플링이 비슷한 역할로 출연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점은 전작이 이를 통해 부르주아 여성의 공허한 이면을 그리는데 천착했다면 이 영화는 좀 더 장르와 창작 그 자체에 몰두한다는데 있을 것이다. 여기서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어디부터가 가공의 이야기인지 구분이 모호해지는 사라의 글쓰기 작업은 곧 감독 오종의 영화적 체험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에서 사라의 창작에 대한 욕구를 부추기는 줄리를 연기한 루도빈 사니에는 우리에게는 오종의 전작 <8명의 여인들>의 막내 딸 역으로 익숙한 배우다. 전작에서 그녀는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어린 소녀였지만 이 영화에서의 루도빈 사니에는 눈부신 육체를 빛내며 여러 차례의 전라 연기도 서슴지 않는 과감한 연기를 선보이며 사라와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모은영(영화평론가)
첫댓글 꺄악~~~ 오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