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
綠雲 김정옥
동그란 몸에 배꼽이 툭 튀어나왔다. 앞머리 양쪽으로 바짝 긴장한 잿빛 브러시를 몇 가닥 붙였다. 그 귀여운 몸으로 물방개처럼 뱅글뱅글 방향을 바꿔가며 제 할 일을 톡톡히 하고 다닌다. 하도 신통방통해 엉덩이 한번 툭툭 쳐 주고 싶다.
날이 갈수록 집 안 청소하는 것이 꾀가 난다. 언제부턴가 청소 한번 하고 나면 양쪽 허벅지 안쪽이 뻐근했다. 지병인 퇴행성 무릎 관절염 때문에 엎드려 물걸레질을 할 수가 없어 엉덩이로 뭉개며 닦았더니 근육통까지 왔다. 누가 청소를 대신해 주면 좋겠다 싶던 차에 로봇 청소기가 제 몫을 한다는 친구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마침, 친정에 다니러 온 작은딸과 함께 가전제품 매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가격도 착하면서 먼지 흡입과 물걸레를 동시에 진행하는 로봇 청소기를 만났다.
집에 들여오자마자 그가 있을 곳부터 찾았다. 언제든지 들어오고 나가기 편한 데를 선점했다. 설명서를 뚫어져라 보고서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앱도 깔았다. 곧바로 리모컨으로 시운전에 들어갔다. 청소기가 생전 처음 보는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터를 둘러보는 듯했다. 청소할 공간과 장애물 등을 인지하느라 쭈뼛쭈뼛하며 움직였다.
다음날부터 그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청소를 시작합니다.’라는 신호로 출발하여 잠시 쉬거나 지체하는 법도 없이 빨빨 돌아다녔다. 얼마나 똑똑한지 한 번 간 길을 다시 가는 일도 없었다. ‘나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하며 큰소리로 수선을 떨지도 않았다. 사람 손이 가지 않는 소파나 침대 밑까지 들어가 빠지는 곳 없이 일을 했다. 일을 모두 마치면 알아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런 후 방전된 몸을 스스로 충전해 기운을 보충하는 영물이었다. 분리해서 들여다본 먼지 통 속에는 그가 열심히 일한 증거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아, 이제 힘든 청소에서 해방되겠구나.’ 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웬걸. 최신형 고급 기기가 아니라 그런가. 이것저것 번거로운 일이 많았다. 청소기가 지나가기 전에 주방이나 화장실 앞에 있는 매트를 치워야 하고 전기 코드도 미리 걷어야 한다. 번번이 걸레도 빨아 끼워야 하고, 먼지 통을 일일이 손으로 비워줘야 했다. 그런 데다가 동그란 몸체라 구석에 박힌 오물은 처리하지 못했다. 한 번은 턱턱 부딪히며 창턱을 오르려 용을 쓰기도 하고, 방바닥에 있는 코드를 친친 감고 살려 달란다. 어쩌다 식탁 의자 다리에 걸려 먼지 통이 빠져 나동그라진 채로 저 혼자 돌아다녀 당황스러웠다. 기계가 사람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하지는 못했다.
다시 예전 방식대로 진공청소기에 전원을 꽂아 한바탕 먼지를 빨아들이고 걸레를 빨아 구석구석 박박 문질렀다. 그가 걸레를 달고 무심하게 왔다 갔다 한 것과 다른 뿌듯함이 밀려왔다. 다시 허벅지가 뻑적지근했지만 결국 내 손이 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일을 빼앗긴 그가 뻘쭘하게 쳐다본다. 저는 최선을 다했으니, 잘못이 없다는 표정이다. 인간이 설정해 놓은 프로그램대로 움직인 것뿐인데 하는 짓이 마음에 쏙 들지 않는다고 밀쳐놓으면 어쩌느냐고. 참 딱하단다.
전자제품에서 사람처럼 꼼꼼하고 깔끔한 솜씨를 바라는 것도 인간의 욕심이 아닐까. 이쯤에서 그의 활약에 만족하던가, 아니면 무릎 닳아가면서 쪼그리고 힘들게 청소하던가, 선택해야 할 판이다.
처음 그를 들였을 때 똑똑하고 신통하다고 칭찬할 때는 언제고 고새 손 좀 많이 간다고 타박하니 나도 참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내 몸이 덜 고단해지려면 군말 없이 뒷손을 보면 되는 것을. 그가 싫어하는 전기 코드와 매트는 미리 치워주고, 걸레 빨아서 갈아주고 구석은 내가 닦는 게 무에 그리 큰일이랴. 이제 그의 부족한 점을 기꺼이 채워주는 청소 파트너가 되기로 했다.
내 삶의 파트너도 처음 만날 땐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좋은 것만 보였다. 작은 키도 훤칠해 보이고 헤픈 씀씀이는 마음씨가 넉넉한 사람으로 포장 돼 세상 멋있었다. 하물며 담배 피우고 술 좋아하는 것까지 남자다움으로 보였으니 말해 무엇하랴. 차츰 콩깍지가 벗겨져 마땅치 않은 행동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그걸 참지 못하고 일일이 타박하며 밴댕이 속을 내비쳤다. 그의 뒷손을 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젠 좋은 파트너가 되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장애가 되는 것은 미리미리 알아서 치워주고 있다.
매일매일 어디서 그렇게 먼지가 생기는지 모르겠다. 청소하고 돌아서면 없던 머리카락이 슬금슬금 보인다. 내 마음에도 먼지가 쌓이고 오물이 끈적거린다. 청소기의 먼지 통을 비우듯 욕심과 삿된 마음을 탈탈 털고, 오래 찌든 감정은 수세미로 박박 닦으며 살아갈 일이다.
파트너가 신명 나게 다시 일을 시작했다. 뒷손을 돕는 나도 덩달아 바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