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본기> 온조왕 26년, 27년, 마한 정벌 기사가 있어, 연도가 AD8년, AD9년이죠.
기사를 요약하면,
온조 26년, AD8년
7월, 왕이 순망치한을 이야기하면서, 마한 정벌을 제안.
겨울 10월, 마한 정벌했으나, 원산성과 금현성은 항복 안 함.
온조 28년, AD9년
4월, 두 성이 항복, 백성들 한산 북쪽으로 옮김.
7월, 대두산성 축조.
마한 목지국의 눈치를 보는 시기에, 이 기사는 우리에게 혼란을 주죠.
우선, 120년을 낮추어, AD128년으로 옮겨 보면, 고구려 태조왕 121년 요동정벌하면서
마한 병사 1만명과 동행했다고 하므로, 7년이 지난 일이니, 128년쯤이면, 백제가 마한을 정복했다고 무리없이 연결되는 걸로 생각이 되죠.
하지만, 여기서, 홍종국씨 <제왕연대력>에 마루왕 기사에 똑같은 내용이 적혀 있으나, 문장 말미에 이런 기사가 적혀 있죠.
"이 해 백제는 비로서 왕을 칭할 수 있었다"
이 구절이 발목을 잡죠.
그래서, 180년(3갑자 하향) 낮추면, 어떨까요?
188년 구지왕 원년 기사와 맞물리게 됩니다.
<백제왕기>에서 구지왕은 188년, 12월에 엉겹결에 왕위에 오르죠.
구지왕은 '기루왕의 7번째 아들'이며, '개로왕의 동생'이라고 명확하게 명시가 되어 있죠.
구지왕은 왕위 대상자에서 벗어난 인물이며, 어떤 이유로 느닷없이 왕이 된 사람이다.
그래서, 대충 기년 정리해 보면..
기루왕 (15년) 168년 ~ 182년
개로왕 (7년) 182년 ~ 188년
구지왕 (39년) 188년 ~ 226년
이렇게 되죠..
<백제본기> 기루왕 52년(128년) 기사는 이렇죠.
겨울 11월, 왕이 죽었다.
그래서 위의 온조왕 26년 기사에 넣으면,
개로왕 말년, 구지왕 원년 188년
7월, 왕이 순망치한을 이야기하면서, 마한 정벌을 제안.
10월, 마한 정벌했으나, 원산성과 금현성은 항복 안 함.
(11월, 개로왕 사망)
(12월, 구지왕이 왕위에 오름.)
이렇게 타임라인이 완성이 되죠.
우리는 <삼국지>에서 부여 위구태가 공손도와 결탁하여, 왕위를 인정받은 것을 알고 있죠.
그래서, 위 온조왕 AD8년 기사를 180년 기년이동시키면,
"188년 개로왕은 마한 정벌을 하면서, 변고로 사망했다."
그렇게 유추할 수 있죠.
첫댓글 이 글은 과거에 연구한게 아니고 오늘 해봤어요.
8년을 68년, 128년, 188년, 248년에다 넣어 봤습니다.
<제왕연대력> 한문 텍스트를 <백제본기>사이에다 제가 과거에 넣어 놨더군요.
188년에 넣으니, 놀라운 결과가 나오네요.
과거에는 인지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