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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항으로 손꼽히는 여수를 삶의 근거지로 삼고 있는 김지란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그는 2016년 《시와문화》로 등단하였으며, 한국작가회의 회원, 숲속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산림치유지도사로서 아름다운 환경 지키기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시인이다. 시인은 자신의 성장 거점인 가만만을 중심으로 시적 사유를 펼치고 있는데, 가막만은 전여수반도를 바라보며 고돌산 반도와 돌산도를 기점으로 개도까지 이어지는 만이다. 현재도 꼬막 양식장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표제작 「가막만 여자」를 중심으로 이 땅의 큰 줄기를 이루어온 민초들의 삶을 제재로 한 시편들이 대종을 이룬 시집이다.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둘러싼 절절한 사연, 감칠맛 나는 토속어 구사가 돋보이는 개성적인 시집이다. 「섬」, 「여순백비」, 「똥꼬막」 등 60편 시를 수록하고 있다.
■작품평
바다는‘삶의 원고지’이다. 낙지가 온몸으로 뻘에 쓰는 글자처럼 김지란 시인은 온몸으로 바다를 쓴다. 낙지가 뻘에 기대듯 일가족은 출렁거리는 바다를 붙잡고 살아간다. 평생 물의 감각을 체득한 아버지와 비린내를 묻히며 살아가는 가족의 일상이 희디흰 소금처럼 눈이 부시다. 이것은 낡은 무릎을 가지고도 절망하지 않는 건강한 삶의 모습이다. 폐업 중인 바다가 거꾸로 매달려 침상으로 쏟아질 때도 팔뚝을 타고 기어오르는 희열이 흔들리는 목선을 끌어당긴다. 흘수선을 훌쩍 넘어버린 너덜너덜한 슬픔을 묻어두고 달려온 밀물이 순식간에 갯벌을 덮듯이 생의 고단함을 덮을 수 있는 충만한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피조개처럼 붉은 그 피로 문신처럼 새겨진 글씨들은 속속 시로 태어났다. 그 누가 절망을 희망으로 노래할 수 있으랴. 차분한 어조로 깊은 울림을 주는‘격’을 갖춘 슬픔이 짐짓 의연하다. 김지란 시인의 즉물적인 시편들에는 싱싱한 비린내 속에 꿈틀거리는‘가막만의 힘’이 들어있다. -마경덕(시인)
김지란 시인의 시 속에서 눈여겨볼 것은 시적 대상으로 천착한 사물에 대한 인식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그것은 인간과 관계 맺는 사물의 차원을 단순하게 바라보지 않고 성장 과정에서 기여한 등가 관계가 아직도 실효적 가치로 유효함을 말해준다. 낯익은 과거의 시간을 통해 찾아낸 삶의 가치와 의미의 위중함을 실리보다 인간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적 근원으로 구체화한 성장기‘바다’이미지는 시간의 흐름만 되돌려놓는 것이 아니라, 혼돈과 무의미한 일상에서 불모성으로 점철된 현대인들에게 상실감을 회복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박철영(시인·문학평론가)
섬
부엌에 쪼그려 앉아 김을 굽는다 짠물 뒤집어쓴 순비기나무 향이 번진다 가막만* 바다에 살던 멸치잡이 아버지
엄마는 참기름을 솔가지에 묻혀 해우*에 바르셨다 질긴 가난에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 앞에서 해풍을 닮은 눈물을 김 위에 뿌리셨다
눈물 젖은 날 김 살살 흔들어 거칠었던 아버지의 바다를 달래고 소금꽃 핀 채로 부풀어 오른 슬픔 이쑤시개 하나로 잠재우곤 하셨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잠재우지 못한 나는
다 하지 못한 숙제가 모래성처럼 쌓일 때마다 가슴속에 앉혔던 섬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만조滿朝에 잠기곤 했다 물속에서, 영원에 영원을 더해서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전라남도 여수반도·고돌산반도와 돌산도·개도로 둘러싸인 내해
*김을 뜻하는 전라도 여수 사투리
|차 례|
1부 섬
섬 _ 12
토마토 _ 13
해삼과 대나무 _ 14
사리 _ 16
진안댁 _ 18
간짓대 _ 20
아버지의 여름 _ 21
본적 _ 22
정류장 거울 _ 24
입술 _ 25
항아리 _ 26
낙지 _ 28
해거리 _ 29
달팽이 집 _ 30
품삯 _ 31
2부 출사표
블랙아웃 _ 34
갯것 하는 날 _ 36
콜 포비아 _ 38
내 안의 물고기 _ 40
그녀를 입다 _ 41
고둥의 맛 _ 42
칼 _ 44
피조개 _ 45
햇살 청구서 _ 46
지극한 잠 _ 47
벌집 _ 48
잎새주 _ 49
에움길 _ 50
출사표 _ 52
詩밥 _ 54
3부 귀 열리다
지네발란 _ 58
쌍둥이 별자리 _ 60
먼나무, 머언나무 _ 62
오늘의 메뉴 _ 64
조개탕을 끓이다 _ 65
냉이꽃 _ 66
7월, 엄마의 바다 _ 67
밟히다 _ 68
혼인목 _ 70
우주 대폭발 _ 71
우화부전 _ 72
귀 열리다 _ 73
래반뚜언 _ 74
사이렌 소리, 깨지다 _ 75
똥꼬막 _ 76
4부 등대
불가사리 _ 78
바다와 광대 _ 80
도솔암 _ 82
보내야 할 때 _ 83
등대 _ 84
창문시장 _ 86
영원사 _ 87
아장살이 _ 88
열 개의 봉우리 _ 90
무화과 _ 92
성묘 _ 93
종이탈 _ 94
온기를 들이다 _ 96
기우제 _ 97
여순백비 _ 98
■해설 - 파문처럼 밀려갔다 밀려오는 바다의 삶/ 박철영 _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