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도래
18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시작한 제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되었다. 석탄과 철을 주원료로 삼고 면직물과 제철 공업이 발전하였다. 19세기 후반 석유와 철강 산업의 발달과 아울러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제2차 산업혁명을 미국이 선도하였다.
1969년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시스템이 주도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로봇, 인공지능(AI), 3D 프린터, 드론, 전자화폐, 센스기술 네트워크 등 물리학 기술, 생물학 기술, 디지털 기술이 융합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기존산업의 창조적 파괴, 변화와
혁신의 일상화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제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존 일자리의 소멸은 마찰적 실업
사태를 낳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곧 학교교육의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한다. 세계경제포럼 <직업의 미래 보고서>를 보면 2020년에 요구되는
9가지 능력 중 복잡한 문제해결능력, 사회적/프로세스/시스템
기술, 인지능력 등을 강조하고 있다.
* 출처 : ‘제4차 산업혁명’ 클라우스 슈밥 저/송경진 역. 2016/새로운 현재)
2. 교육은 국가최대의 공공사업
미국은 1971년 특수교육의 일환으로 영재교육을 수학영재연구회(SMPY)로부터 시작하여, 1988년 연방정부 주도로 영재교육법을
제정하여 대부분의 주정부에서 영재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서로 다른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개인별 사고력의
함양 및 그룹과제 수행과정에서 복잡한 문제해결능력의 함양시키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농노제도의 철폐, 종교 자유 허용과 더불어 ‘교육은
최대의 공공사업’이라는 신념으로 교육혁신을 단행한 점에 나폴레옹의 업적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에 국가비전실현을 위한 공공사업 관점에서 창의성 함양을 위한 어린이, 청소년, 청년 교육 투자를 시작했다.
학교교육 혁신을 위한 지식혁명 전략계획서 ‘경쟁력이 있는 미래 : 지식주도 경제 건설(Our Competitive Future:
Building the Knowledge Driven Economy)’에서 정부, 기업, 학교 간 창조적 파트너십, 단기이익 추구보다 장기비전 추구, 교육과 과학, 창의적 기업문화 창달에 보다 지속적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3. 사회적 신뢰자본의 축적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신뢰(Trust)’라는 책에서 한 나라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는
경제적 규모만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 특히 사회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에 소통과 협력, 생산적 갈등관리를 통한 사회적 합의 형성 등을 통한 신뢰자본 축적을 국부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
제프 콜빈은 그의 최근 저서 ‘인간은 과소평가되고 있다(Humans are underrated)’에서 “구성원들이
신뢰할
때 조직의 창의력이 더 높아진다.”"신뢰를 쌓는 데 있어서 직접 만나서 나누는 대회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는 실증적 조사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Out of Sight,
Out of Mind’상식의 확인인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사회적 신뢰자본이 가장
풍요로웠던 시대는 세종대왕 통치기간이다. 신분차별을 타파한 집현전(Collective
Knowledge Center)이 신뢰자본 원천이었다. 정인지, 장영실 만이 아니라. 이천, 이순지
등이 있었다. 이 중 이천은 무인출신이었다.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천문의기는 그의 작품이었다.
* 참조 : http://www.hani.co.kr/arti/science/kistiscience/284991.html 조선 세종 때 장영실보다 뛰어난 과학자 있었다?!)
4. 후천개벽의 대변혁기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은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re-volve) 고요한
혁명을 가르치고
있다. 스스로 몸을 녹여가며 불을 밝혀 어둠을 빛으로 밝힌다. 선과 악 갈등은 정성과 희생으로 승화된다.
부처님 재세 당시 가난한 어느 포장마차
할머니의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법문이 오늘에 더욱 새롭다.
동학의 최수운, 강증산, 그리고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은 우리나라 근세 선지자이다. 이 세 분의 공통된 뜻은 후천개벽 시대에 '조선(한국)은 정신적 지도국’이
될 것이라는 비전이었으며, 역할분담을 통해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묵은
한을 푸는 천지해원(解怨)공사를 하고,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시었다.
가톨릭도 기독교와 갈등을 풀고 화해하며
하나의 종교,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이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제
1,700명이 넘는 ‘덕화만발’은 지난 몇년간 맺은
인연의 뿌리가 깊게 내리어 새로운 가지를 뻗기
시작하였다. 바로 ‘덕화아카데미’의 창립이다. 이 땅의 젊은 영혼들에게 희망의 결실을 나누기 위해.
첫댓글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수고하셨습니다.
이로써 덕화아카데미 창립의 이론적 토대가 마련 된 것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만파식적 이동하님이야말로 우리 덕화만발의 귀중한 일꾼입니다.
이를 12월 16일 <덕화아카데미> 창립식에서
식순 뒤에 요약하여 실을 것입니다.
한단님! 그리 준비해 주세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감사합니다. 격려와 칭찬은 분발과 정진의 주마가편의 깊은 뜻으로 새기겠습니다.
<4회까지 기대가 큽니다>
지난 삶, 특히 3년전 돌아가신 호랑이띠 선친(先親), SK 고 최종현(故 崔鐘賢)회장님, 덕화만발 어르신들 가르침, 그리고 지난 7년간 서울, 강릉, 대구, 창원, 광주에서의 현장체험으로 몸에 익힌 콘텐츠를 이사병행(理事竝行), 실사구시(實事求是), 이용후생(利用厚生),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으로 풀어가려고 합니다. 연재의 날짜를 굳이 정하지 않은 연유는 제 마음 속에서, 아니 뼈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글만 이강주, 안동소주처럼 받아서 올리겠습니다. 경륜의 지도편달을 청(請)합니다.
자주 읽어 봐야겠습니다. ^-^
좋은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