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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장소가 선사할 절경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휴식의 오후
오늘은 여유를 갖기로 했다. 내일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트레킹을 위해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시간.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발 가르데나의 한적한 거리, 알프스 특유의 목조 건물들, 창문마다 피어있는 제라늄 꽃들. 모든 것이 그림엽서처럼 완벽했다.
저녁에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소박한 식사를 했다. 남티롤 지역의 전통 음식들. 독일과 이탈리아의 영향이 섞인 독특한 맛이었다.
식사 후 호텔 테라스에 앉아 노을 지는 산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석회암 봉우리들을 장밋빛으로 물들였다. 돌로미티의 유명한 '알펜글로우(Alpenglühen)' 현상. 일출과 일몰 때 산이 분홍빛, 주황빛으로 타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마법 같은 순간.
"내일이 기대되네요."
동현이가 말했다. 우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베로나의 사랑과 예술도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자연이 선사하는 또 다른 경이로움을 만날 시간이었다. 돌로미티의 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은 침묵하지만, 그 침묵 속에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
밤이 깊어갔다. 호텔 창밖으로 별들이 쏟아졌다. 도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별들. 우주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내일이면 우리는 저 별들에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하늘을 향해 솟은 돌로미티의 봉우리들 위에서.
오늘의 기록
걸음 수: 17,371보
순수 걷기 시간: 2시간 50분
이동 거리: 11.3km
마음의 상태: 기대와 설렘으로 충만
돌로미티 케이블 카 트레킹 제7화 알페 디 시우시, 천상의 정원을 걷다 효도 관광 힐링 트레킹
2025년 7월 24일, 알페 디 시우시(Alpe di Siusi)
🌄 구름 위를 걷는 아침
호텔에서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9시가 조금 넘어 출발했습니다. 오르티세이 방향으로 10여 분을 달리다 작은 다리를 건너자, 우리를 기다리던 케이블 카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Monte Seuc행 케이블 카 앞에 섰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앞으로 5일간의 모험을 함께할 Supersummer Card 5일권을 180유로에 구매했습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산을 오를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케이블 카가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하자, 마치 우리를 환영하듯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오늘 트레킹이 어려운 건 아닐까?' 잠시 걱정이 들었지만, 10분 후 Monte Seuc에 도착하니 신기하게도 비가 그쳤습니다.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어 다소 아쉽긴 했지만, 해발 2,000m 위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습니다. 지상 낙원이 따로 없었습니다.
💚 2억 년의 시간이 빚어낸 초원
알페 디 시우시는 축구장 8,000개 크기의 56km² 넓이를 자랑합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곳은 2억 년 전 바다 밑 산호초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그 오랜 시간을 거쳐 중세 때부터 고원 초원지대를 이루었고, 19세기부터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산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Monte Seuc에서 출발해 Panoramic Point와 Contrin Hut, Sanon Hut를 거쳐 호수까지 이어지는 약 8~9km, 2시간 30분 예상 코스였습니다.
🎨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천상의 정원
6A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 지 10여 분, 눈앞에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그리고 그 초원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군들. 구름이 다소 덮여 있었지만, 오히려 그 구름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천상을 거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만약 구름이 없었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3,000m급 사쏘롱고와 사쏘 피아토 산이 구름에 반쯤 가려진 채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멀리 오들레 산군도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 야생화 향기 가득한 초원길
Contrin Hut을 지나며 아쉬움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야생화가 만개한 이 넓은 초원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구름이 조금 있다고 불평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
초원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Sanon Hut 방향이 아닌 아름답기로 유명한 **콤페쵸(Compeccio)**를 향해 걷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넉넉했고, 우리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맛보기로 했습니다.
☕ 11시 30분, 콤페쵸에서의 여유
콤페쵸에 도착한 우리는 아름답게 장식된 호텔들과 스키 장비 가게들 사이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었습니다. 고산의 맑은 공기와 함께한 식사는 그 어떤 미슐랭 레스토랑보다 맛있었습니다.
10분쯤 더 걸으니 파노라마 리프트가 나타났습니다.
🚡 360도 파노라마 선물
파노라마 리프트에 몸을 싣자, 알페 디 시우시의 넓은 초원이 360도로 펼쳐졌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가 된 듯, 끝없는 초원을 마음껏 감상하는 몇 분의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알펜 파노라마 호텔에 도착하니, 호텔 앞에는 선탠용 의자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누워서도 사방의 초원을 볼 수 있다니, 이게 바로 신선놀음이구나 싶었습니다.
산들은 구름에 가려 있었지만, 맑은 공기와 따갑지 않은 햇살이 주는 위안은 그 무엇보다 고마웠습니다. 맑은 날이었다면 동쪽으로 세체다, 셀라, 사쏘롱고 산군과 돌로미티 최고봉 마르몰라다, 서쪽으로 슐레른 산이 보였을 텐데 말이죠.
🐄 소들의 낙원, 우리들의 힐링
다시 리프트와 불라치아(Bullaccia) 케이블 카를 타고 이동하며, 360도 모든 방향이 푸른 초원으로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불라치아 식당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 후, 다시 6번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구름은 여전히 끼어 있었지만 날씨는 청명했습니다. 초원의 푸르른 색이 마음까지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넓은 초원 곳곳에는 소와 말을 기르는 막사들이 있었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이 우리네 인생처럼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 1시간의 걷기 명상
초원을 마음껏 구경하며 1시간 넘게 걷자 Sanon 농장이 나타났습니다. 다시 30분 넘게 조금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니, 드디어 Sonne 리프트와 Sole 호수가 보였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Sonne 호텔을 지나, 우리는 리프트를 타고 Monte Seuc로 돌아왔습니다.
🌅 하루의 끝, 그리고 행복한 피로
오후 3시경, Monte Seuc에서 오르티세이로 내려가는 케이블 카에 올랐습니다. 렌트카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니 오후 3시 30분.
9시 30분에 출발해 무려 6시간을 야외에서 보낸 하루였습니다.
원래는 2시간 30분짜리 간단한 코스를 걸을 계획이었지만, 우리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1번부터 14번 루트를 따라 3시간 30분 동안 걸으며, 총 6시간에 가까운 힐링 트레킹을 완성했습니다.
📊 오늘의 기록
2025년 7월 24일
천상의 정원에서 보낸 하루. 구름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 아쉬움마저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2,000m 위에서 가족과 함께 걸은 이 길은,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될 것입니다.
💚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돌로미티 케이블 카 트레킹 효도 관광 힐링 트레킹
제8화. 악마가 사랑한 세체다 (Seceda)
2025년 7월 25일
구름 낀 아침, 그래도 떠나는 설렘
어제의 여정이 몸에 남긴 피로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새로운 하루를 맞는 설렘은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조금 여유를 부리기로 했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걷기로.
호텔을 나선 시각은 오전 9시. 오르티세이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돌로미티의 봉우리들이 구름 속에 반쯤 숨어 있었다. 오늘도 날씨가 마음을 졸이게 한다. 하지만 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 그 불확실성 속에서 마주하는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묘미가 아닐까.
하늘로 오르는 시간
Funivie Seceda, 세체다로 향하는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했다. 9시 30분, 우리는 하늘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케이블카는 15분간 Furnes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고도를 높여갔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한 폭의 파노라마처럼 변해갔다. 마을은 점점 작아지고, 산들은 점점 더 크고 웅장하게 다가왔다. 두 번째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5분을 더 오르니, 드디어 세체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체다, 건조한 대지 위의 경이로움
'세체다(Seceda)'란 이름은 '건조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 경사진 초원이 워낙 가파르고 급해서 항상 민낯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케이블카에서 내려 2,518m의 정상에 서니, 그 의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을 가로막는 것은 3,000m급 거인들의 행렬이었다.
오른쪽 끝으로 사쏘롱고(Sassolungo)와 사쏘 피아토가 구름에 반쯤 가려진 채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완전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위용만으로도 숨이 멎을 듯했다. 어제 다녀온 알페디시우시도 저 멀리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며 인사를 건넸다.
중앙에는 셀라(Sella) 산군과 오들레(Odle Peaks) 산군이 마치 대자연의 대성당처럼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회색빛 암석과 초록빛 초원이 만들어내는 색의 대비는 신이 직접 붓을 들어 그린 수채화 같았다.
그리고 왼쪽 끝,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아오른 봉우리가 보였다. 악마조차 사랑에 빠졌다는 그 봉우리. 세체다의 상징과도 같은 뾰족한 능선 뒤로 2,984m의 페르체다(Furcebetta)가, 그리고 그 너머 3,025m의 사쓰 리기아스(Sass Rigais)가 산 마루금을 따라 하늘을 찌를 듯 이어졌다. 그 능선을 넘어가면 오들레 산군의 장관이 펼쳐진다고 한다.
'이것이 신이 만든 걸작이구나.'
말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십자가가 품은 기도
세체다의 최고 정상 언덕에는 예수의 십자가가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차갑고도 청량한 고산의 바람. 십자가는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통과 사랑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예수님이, 이곳 하늘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든 이들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계신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이 웅장한 자연 앞에서, 그리고 이 고요한 십자가 앞에서 인간은 그저 작고 겸손한 존재일 뿐이었다.
안개 속에 숨은 악마의 얼굴
칼로 자른 듯 날카로운 세체다의 봉우리들. 악마마저도 사랑에 빠졌다는 그 풍경을 온전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안개가 끈질기게 전망을 가렸다. 기다렸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바람이 안개를 걷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연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구글 지도에서 빌려온 맑은 날의 세체다 사진을 보며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저 안개 너머에 얼마나 경이로운 풍경이 숨어 있을지. 언젠가 다시 올 이유가 생긴 셈이었다. 여행은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을 때 더 깊은 여운을 남기는 법이니까.
오늘의 여정, 그리고 변화하는 계획
오늘의 트레킹 계획은 이랬다.
세체다 출발 → Troier 산장(2) → 피에랄 롱기아(Pieralongia)(3) → Firenze 대피소(4) → 콜 라이저 케이블카(5) → 케이블카로 산타 카타리나 마을 하산 → 버스로 오르티세이 복귀 → 주차장에서 차량 픽업 → 호텔 귀환.
총 6km, 약 2시간 30분의 트레킹. 초보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코스.
초원 위의 평화로운 시간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거대한 산들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마치 포근한 어머니의 품 같은 초원 평원을 마음껏 즐겼다. 햇살이 구름 사이로 새어 들어올 때마다 초원이 반짝이며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공기는 맑고 투명했다. 한 모금 들이마실 때마다 폐 깊숙한 곳까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바로 앙상블(ensemble)의 행복이구나. 햇살과 공기, 초원과 산들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내는 대자연의 교향곡. 우리는 그 속에서 한없이 작으면서도, 동시에 그 일부가 되어 있었다.
10시 50분, 우리는 트레킹을 시작했다.
들꽃의 향연
넓게 펼쳐진 초원 위에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색이 고운 수염달린 초롱꽃(Bearded Bellflower)이었다. 보라빛과 푸른빛이 섞인 종 모양의 꽃들이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는 모습은 마치 작은 요정들이 잔치를 벌이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반겼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도 평화로웠다. 목에 단 종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딸랑, 딸랑. 그 소리가 이 고요한 초원에 더욱 깊은 평온을 더해주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그리고 첫 빗방울
하지만 돌로미티의 날씨는 여자의 마음보다 더 변덕스럽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구름이 급격히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바람의 기운이 달라졌다.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질 것만 같은 분위기.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제도 날씨 때문에 멋진 전경을 놓쳤는데, 오늘도 이러면 어쩌나...'
마음 한편이 서운하고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이것도 여행이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비가 오는 날에만 느낄 수 있는 풍경도 분명 있을 테니까.
Troier 산장에서의 잠깐의 휴식
조금씩 굵어지는 빗방울을 피해 우리는 Troier 산장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산장 안의 공기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창밖으로는 빗줄기가 초원을 흠뻑 적시고 있었지만, 이곳은 아늑하고 포근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우리는 완전 무장을 준비했다. 레인 재킷, 방수 바지, 배낭 커버까지. 이제 비가 와도 걱정없다.
신기하게도 완전 무장을 끝내고 나니 빗줄기가 더 세어졌다. 자연이 우리를 시험하는 걸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우중 트레킹을 결심했다.
계획의 변경, 안전이 최우선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길은 점점 미끄러워졌다. 돌로미티의 날씨는 산에서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다. 안전을 위해 우리는 또다시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원래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2부 능선에 있는 피에랄 롱기아(Pieralongia)를 거쳐 가는 코스였지만, 이를 포기하고 더 빠르고 안전한 길을 택하기로 했다.
Malga Odles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계속 비를 맞으며 조심스럽게 흙탕길을 내려왔다.
비 속의 트레킹, 그래도 아름다운
다행히 세체다에서 콜 라이저(Col Raiser) 케이블카까지는 계속해서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초보자라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코스였다. 미끄러운 길만 조심한다면.
빗속에서도 저 멀리 앞쪽으로는 내일 트레킹할 3,200m의 사쏘롱고 산군이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마치 신비로운 환영을 보는 것 같았다.
다행히 비는 가랑비처럼 가볍게 내렸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것보다 훨씬 낫다. 조금만 조심하면 트레킹에는 문제가 없었다.
대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1시간을 넘게 걸어 내려오는 동안, 나는 위대한 대지의 경이로움에 계속 감탄했다.
태초부터 만들어진 이 대지 위에서 자비롭고 아름다운 풀들, 나무들, 돌들은 각자 자연의 법칙에 따라 순응하며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다하고 있었다.
어떤 풀도 "나는 왜 여기 있어야 하지?"라고 묻지 않았다. 어떤 돌도 "나는 왜 이렇게 생겼지?"라고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주어진 자리에서 존재하며 전체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순수함이 위대로워 보였다.
인간은 자꾸 이유를 묻고, 목적을 찾고, 더 나은 것을 바라지만, 자연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완벽했다.
오들레 농장, 그리고 하산
12시 30분, 드디어 오들레(Odle) 농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5분만 더 내려가면 콜 라이저 케이블카 승강장이었다. 비에 젖은 몸이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우리는 바로 Alm Hotel, Col Raiser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2시 50분, Col Raiser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산타 카타리나 마을로 내려왔다.
케이블카의 역사
이 케이블카는 1963년에 건설되어 1988년 현대식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20년마다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2008년에 큰 수리를 완료했고, 2028년에 또 한 번의 보수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케이블카 안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니, 우리가 걸어온 초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 때문에 3시간 반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세체다의 초원에서 충분히 힐링했다.
산타 크리스티나 마을의 아름다움
케이블카 정류장에 내리니 버스가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서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오르티세이 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산타 크리스티나(St. Cristina) 마을의 풍경에 넋을 잃었다.
꽃들이 탐스럽게 걸려 있는 베란다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창문들. 알프스 전통 양식의 목조 건물들. 마을 전체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곳 사람들은 매일 이런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구나. 부러웠다.
오르티세이 성 안토니오 광장
버스 종점은 오르티세이의 S. Antonio 광장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차했다.
아들 동현이가 혼자 택시를 타고 오르티세이 케이블카 승강장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가져오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는 광장 주위를 천천히 구경했다.
성 안토니오 교회의 소박한 아름다움
광장 한쪽에 자리한 성 안토니오 교회(Chiestta Sant' Antonio)가 눈에 들어왔다.
1673년, 로마네스코 양식으로 건축된 이 교회는 성인 안토니오에게 봉헌된 곳이었다. 오르티세이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작고 소박한 모습이 오히려 더 정겹게 느껴졌다. 정문 위에는 성 안토니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고요했다. 밖의 번잡함과는 달리 안은 깊은 평온으로 가득했다. 29m 높이의 양파 모양 종탑에는 세 개의 종이 있다고 했다.
주제단은 1850년 파올 폰 데슈반텐의 작품으로,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가 묘사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제단 오른쪽과 왼쪽에는 성 루프레히트와 성 우달리히를 묘사한 조각상이 서 있었다.
바로크 양식의 설교단 아래 벽에는 네 명의 복음서 저자 조각상도 보였다. 교회는 아담했지만 여섯 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특색 있고 아름다웠다. 햇살이 그 창문을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색의 향연이 경건함을 더해주었다.
중세의 그림 같은 마을
교회를 나와 다시 마을을 둘러보았다.
오르티세이가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곳의 집들은 마치 중세의 그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을 자아냈다.
Val Gardena 마을도 뒷산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알프스의 산들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이 마치 자연이 인간을 지켜주는 것 같았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의 만찬
렌트카를 픽업한 우리는 오후 4시경 호텔로 돌아와 샤워와 휴식을 취했다.
오늘 저녁은 특별한 계획이 있었다. 산타 크리스티나 마을에 있는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 '라 탐부라(Steakhouse LA TAMBRA)'를 예약해두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맞춰 식당으로 향했다.
주인이 직접 몇 개의 체인점을 운영하는 유명한 곳이라더니,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만석이었다.
이색적인 와인 서빙
주문을 마치고 현지산 포도주 한 병을 시켰다.
그런데 주인이 직접 나와 와인 서빙을 했는데, 그 방식이 독특했다. 와인 잔을 종이에 문질러 약간의 열기를 더한 후 와인을 따라주었다. 와인의 향과 맛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한 방법이라고 했다.
처음 보는 서빙 방식이었지만, 그만큼 와인에 대한 정성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티본 스테이크의 완벽한 맛
그리고 드디어 메인 요리, 티본 스테이크가 나왔다.
잘 손질된 스테이크가 먹기 편하게 도마 위에 담겨 나왔다. 야채와 함께 곁들여져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점심을 샌드위치로 간단히 때웠던 터라 배는 이미 허기져 있었다. 첫 입을 베어 물었을 때의 그 감칠맛이라니. 육즙이 입안 가득 퍼지며 미각을 깨웠다. 완벽하게 익은 고기의 부드러움과 겉면의 바삭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와인 한 잔과 함께 즐기는 스테이크. 이것이야말로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몸은 피곤했지만, 미각은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가성비 좋은 저녁
와인 한 병을 포함한 3명의 저녁 식사 비용은 280유로. 이 정도 퀄리티를 생각하면 상당히 가성비가 좋은 식당이었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만족스러웠다.
호텔로 돌아와 포근한 침대에 몸을 눕혔다. 피곤한 몸이 침대에 닿는 순간 스르르 잠이 들어왔다. 오늘도 잘 보냈다는 만족감과 함께.
오늘의 트레킹 정리
원래 계획: 세체다 → Troier 산장 → 피에랄 롱기아(Pieralongia) → Firenze 대피소 → 콜 라이저 케이블카
변경된 실제 코스: 세체다 → Troier 산장 → Malga Odles 산장 → 콜 라이저 케이블카 → 산타 크리스티나 마을
비로 인해 안전을 위해 코스를 단축했지만, 그래도 세체다에서 3시간 이상을 보내며 충분히 그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참고: 푸른색으로 표시된 트레킹 루트는 콜 라이저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걸어서 하산하는 코스다.
여운
이것으로 악마가 사랑한 초원 '세체다'를 마음껏 즐겼다.
비가 와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여행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비 오는 날의 세체다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으니까. 안개 속에 숨은 봉우리들은 더 신비롭게 느껴졌고, 비에 젖은 초원은 더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순간 이곳에 있었다는 것. 이 자연 속에서 숨 쉬고, 걷고, 느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가치 있는 하루였다.
오늘의 기록: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 그 자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제9화. 거인들이 살았던 사쏘롱고 (Sassolungo)
2025년 7월 26일
새로운 여정을 향한 출발
발 가르데나의 안트레스 호텔에서의 3일밤이 지나갔다. 익숙해진 방, 아침마다 맞이하던 창밖 풍경과 작별할 시간이었다. 오전 9시 30분, 체크아웃을 마치고 짐을 렌터카에 실었다.
네비게이션에 'Sass Levante 케이블카'를 입력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사쏘롱고를 향해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 하나하나가 아쉬움과 기대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거인들의 세상으로
발 가르데나에서 동쪽으로 약 10여 분을 달렸다. Plan de Gralba 마을이 나타나고, 그 순간 숨이 멎었다.
저기, 저 앞에.
사쏘롱고 산군이 수평선을 가득 채우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펼쳐진 거대한 산군. 마치 대지를 지키는 파수꾼들처럼 위엄 있게 서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쏘롱고 산군과 주변의 봉우리들이 엄숙한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냈다. 회색빛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성벽. 2억 3천만 년의 시간이 빚어낸 예술작품. 인간의 시간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대한 역사가 저 바위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었다.
Passo Sella, 거인들의 문턱
드디어 오전 10시 30분, Passo Sella에 있는 Sassolungo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압도되었다. 거인들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혀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 거대한 산들은 분명 범인(凡人)이 올려다볼 수 없는 존재들의 영역처럼 보였다.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오른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3,181m의 사쏘롱고(긴 돌, Sassolungo)**였다. 중앙의 고개가 2,681m의 포르첼라 사쏘롱고(사쏘롱고 고개). 그 옆으로 2,918m의 푼타 친퀘디타(Punta Cinquedita), 왼쪽 봉우리가 3,126m의 푼타 그로만(Punta Grohmann). 그리고 구름에 반쯤 가려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 2,956m의 사쏘 피아토(평평한 돌, Sasso Piatto).
하나하나가 하늘을 찌를 듯한 거인들이었다.
1972년의 추억, 전화박스 같은 곤돌라
케이블카는 1972년에 건설된 2인승 곤돌라였다. 전화박스를 닮은 아담한 크기. 정식 이름은 '텔레 캐비나 사쏘롱고(Telecabina Sassolungo)'.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작은 곤돌라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하늘로 실어 날랐을까. 설렘과 경외심으로 가득 찬 눈빛들. 정상에서 내려오며 만족과 감동으로 빛나던 얼굴들. 그 모든 순간들이 이 작은 공간에 스며 있을 것이다.
우리도 그 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 곤돌라에 올랐다.
2억 3천만 년의 시간
천천히 고도를 높여가는 곤돌라 안에서 생각했다.
약 2억 3천만 년 전, 이곳은 열대 산호초 군락이었다고 한다. 따뜻한 바닷속에서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산호들이 춤을 추던 곳. 그것이 지각 변동과 풍화 작용을 거쳐 지금의 3,000m급 봉우리들로 솟아올랐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연이 쌓여야 이런 장관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인간의 삶은 그저 찰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찰나의 순간, 우리는 2억 3천만 년의 역사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웠다.
암벽을 오르는 용기
곤돌라 창밖으로 몇몇 등산객들이 보였다.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고 바위 사이의 가파른 길을 따라 묵묵히 올라오는 모습. 고도의 경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인한 체력은 물론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 필요할 것이다.
등산복에 밴 땀 자국,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의 무게, 정상을 향한 눈빛의 집중. 그들은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편하게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지만, 저들은 자신의 두 발로 이 거인의 몸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어느 쪽이 더 큰 감동을 얻을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거인의 손목, 푼타 친퀘디타
곤돌라가 조금 더 고도를 높였을 때, 눈앞에 기이한 형상이 나타났다.
푼타 친퀘디타(Punta Cinquedita).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편 거인의 손목처럼 보이는 바위 봉우리.
전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옛날 이 사쏘롱고 산야에 거인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대부분은 선량했지만, 그중 한 거인은 악행을 일삼았다. 견디다 못한 거인들이 그를 잡아 처형하고 땅에 묻기로 했다.
죽음을 앞둔 악한 거인이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
"제 손목 하나만은 거인 세상에 남게 해주십시오."
거인들은 그 청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저렇게 한쪽 손목이 땅 위로 솟아 있다고.
전설일 뿐이겠지만, 저 형상을 보고 있으니 정말 거인의 손목처럼 보였다. 2억 년의 지질학적 진실보다, 때로는 이런 전설이 더 가슴을 울리는 법이다.
2,681m, 포르첼라 델 사쏘롱고
10여 분을 올라 드디어 **2,681m의 포르첼라 델 사쏘롱고(고개)**에 도착했다.
곤돌라 문이 열리는 순간 차갑고 맑은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심호흡 한 번. 몸속 깊은 곳까지 청량함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오늘도 날씨는 우리 편이 아니었다. 구름이 산봉우리들을 감추고 있었다. 아쉬움이 밀려왔다. 맑은 날이었다면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고개에는 토니 데메츠(Toni Demetz) 산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듬직한 존재. 여행자들의 쉼터.
포기한 트레킹, 그래도 괜찮은 이유
원래 계획은 이 고개를 넘어 525번 길을 따라 경사면을 내려가고, 526번 길을 계속 가면서 원점 회귀 코스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소요 시간 3시간 30분. 체력만 허락한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코스.
하지만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았다. 구름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고, 체력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가족 여행이었다. 무리하면 안 됐다.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우리는 트레킹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30여 분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하산은 다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기로.
아쉬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다. 그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도 여행의 일부니까.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수줍은 새색시
우리는 산장 밖에 서서 날씨가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구름이 몰려왔다 흩어졌다를 반복했다. 잠깐 동안 햇살이 바위를 비추면 회색빛 암석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그러다 다시 구름에 가려지면 신비로운 안개 속 풍경으로 변했다.
퇴적암 덩어리로 형성된 이 고개는 맑은 날이면 아름다운 자태를 활짝 드러낸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마치 수줍은 새색시처럼 베일 뒤에 숨어 전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구글 지도에서 본 맑은 날의 사쏘롱고 고개 사진을 떠올리며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언젠가 다시 올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1,124m의 거대 암봉
발 가르데나 지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사쏘롱고 그룹.
놀라운 것은 퇴적암 봉우리만 지상에서 솟아오른 높이가 무려 1,124m나 된다는 것이었다. 평지에서 보면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암벽 요새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저것을 맨손으로 오른다고?'
암벽 등반가들의 용기와 기술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산장에서의 소박한 점심
산장으로 내려가 간단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다.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산 지대에서 먹는 소박한 식사는 그 어떤 레스토랑 음식보다 맛있었다. 차갑고 맑은 공기가 최고의 양념이었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구름에 가려진 봉우리들. 아쉬움을 달래며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차가워진 몸을 녹여주었다.
하산, 그리고 새로운 발견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2,218m의 파소 셀라(Passo Sella, 셀라 고개)**가 창밖으로 맑게 보였다. 하지만 3,181m의 사쏘롱고 산군들은 여전히 구름에 가려 정상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늘은 끝까지 숨바꼭질을 하려나 보네.'
마음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곤돌라가 내려가는 동안 눈에 띈 것이 있었다. 퇴적암 바위들 사이에서 탐스럽게 피어 있는 야생화들. 척박한 환경, 강한 바람, 적은 흙. 그런 조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꽃들.
생명력이 강한 꽃들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역경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더 향기롭다고 했던가.
또한 루프 트레킹으로 원점 회귀하는 트레일 길 526번도 보였다. 저 길을 따라 걸었다면 어땠을까. 다음을 기약하며 마음에 담아두었다.
예상보다 빠른 여정의 끝
오후 12시 30분, Sassolungo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출발한 지 1시간 만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서둘러 하산한 결과였다.
너무 일찍 끝나버린 것 같아 허전했다. 하지만 어제 저녁 La Tambra 식당 주인이 추천했던 곳이 떠올랐다.
Monte Pana, Monte Seura.
"거기 가보셨어요? 사쏘롱고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예요."
주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 가보자. 오늘 하루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니까.
오늘의 트레킹 요약
원래 계획: Passo Sella → Sassolungo 고개(케이블카) → Toni Demetz 산장 → 525번 길 하산 → 526번 길 → 원점 회귀
실제 코스: Passo Sella → Sassolungo 고개(케이블카) → Toni Demetz 산장에서 커피와 샌드위치 → 날씨로 인해 525번 길 생략 → 케이블카로 하산
날씨만 좋았다면, 그리고 체력이 허락했다면 전체 루프 코스를 34시간에 완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23번 구간에 급경사 길이 있지만, 조금만 주의하면 안전한 트레킹이 가능하다.
Monte Pana를 향해
식당 주인의 추천대로 우리는 1시간을 달려 Monte Pana Cable Station에 도착했다.
리프트를 타고 Monte Seura로 출발했다.
평화로운 고원 마을, Monte Pana
1,740m의 고도에 자리한 Monte Pana 마을이 평화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차로도, 자전거로도 올라올 수 있는 마을이었다. 실제로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온 귀여운 꼬마가 보였다. 아버지는 아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천천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에 가득한 웃음. 아버지의 뿌듯한 미소.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전거 뒤에 태우고 동네를 돌던 기억.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커서 함께 이렇게 해외여행까지 오게 됐구나.
감회가 새로웠다. 사진 한 컷을 남겼다.
산타 크리스티나에서 오는 또 다른 길
산타 크리스티나 마을에서 리프트를 타고 오면 Pernach-S.Cristina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만 이동하면 Monte Pana - Monte Seura 케이블카 정류소가 나온다.
몬테 파나는 고원에 위치한 마을로, 앞에는 사쏘롱고가 웅장하게 서 있고 뒤로는 세체다의 평원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호텔도 몇 개 있는 힐링 마을로 알려져 있었다.
파나 돌로미티 호텔의 유혹
멀리 보이는 파나 돌로미티(Pana Dolomiti)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음식은 물론, 평원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수영도 하고 사우나도 즐길 수 있는 힐링 호텔이라고 했다. 음식도 수준급이라니, 언젠가 한번 쯤 여유롭게 머물며 쉬어가고 싶었다.
자동차로 올 수 있는 곳이기에 현지인들이 가족 나들이 장소로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주말이면 피크닉 바구니를 든 가족들로 붐빈다던데,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Monte Seura, 사쏘롱고와의 조우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리프트를 타고 사쏘롱고를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Monte Seura로 갔다.
Monte Pana에서 Monte Seura로 가는 리프트. 공중에 매달려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사방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눈부셨다.
리프트에서 내리니, 바로 앞에 사쏘롱고의 거대한 봉우리들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2,025m의 고도에 위치한 몬테 세우라. 바로 앞에 사쏘롱고가, 맞은편에는 셀라 산군이 펼쳐지는 거대한 평원.
'이곳이구나. 주인이 추천한 이유가.'
숨이 멎을 듯한 풍경이었다. 아침에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을 때는 구름에 가려 제대로 보지 못했던 사쏘롱고가 이제야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의 아쉬움이 단번에 사라졌다.
산악자전거와 관광객들
이곳은 산타 크리스티나에서 자전거로도 올라올 수 있는 힐링 장소였다. 케이블카든 산악자전거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라고 했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니 산악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땀에 젖은 얼굴, 하지만 만족스러운 미소. 자신의 힘으로 이곳까지 올라온 성취감이 얼굴에 가득했다.
포토존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도 주위의 산들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쏘롱고를 배경으로, 셀라 산군을 배경으로. 셔터를 누를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카숀 농장에서의 여유
조금 아래쪽에 **카숀 농장(Malga Cason)**이 있었다.
이곳에서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내려가 보았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스파게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군들을 바라보며 야외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행복 그 자체였다.
스파게티가 나왔다. 단순한 토마토 소스 파스타였지만, 이 풍경 속에서 먹으니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못지않았다. 커피 한 잔을 더 시켜 천천히 마시며 힐링의 시간을 즐겼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우리는 그 느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정한 여유를 느꼈다.
하산, 그림 같은 산타 크리스티나
오후 3시 30분, 시간을 확인하고 우리는 하산을 시작했다.
Monte Seura → Monte Pana → 산타 크리스티나로 이어지는 리프트를 번갈아 갈아타며 천천히 내려왔다.
산타 크리스티나 마을은 언제 보아도 그림 같았다.
포근하게 초원과 산들에 둘러싸인 전원 마을. 알록달록한 꽃들이 걸린 베란다, 전통 목조 건물,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마을이었다.
'여기서 살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면 이 풍경이 펼쳐지고, 산책하듯 리프트를 타고 산에 오르고, 저녁이면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서 와인 한 잔.
현실로 돌아가기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Hotel Pordoi를 향해
오늘은 Hotel Pordoi에서 1박하기로 했다. 네비게이션에 호텔을 찍고 부지런히 달렸다.
SS242번 도로를 따라 30분을 이동하니 Hotel Maria Florar 근처 고갯마루에서 사쏘롱고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야생화가 탐스럽게 핀 들판 너머로 사쏘롱고 산군의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차를 잠깐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같은 산도 보는 각도에 따라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SS48번 도로를 따라 1시간여를 더 달렸다. 그 유명한 구불구불 고갯길, Passo Pordoi 고개를 가기 전에 오늘의 목적지인 Hotel Pordoi에 오후 5시경 도착했다.
중원의 안식처, Hotel Pordoi
포르도이 호텔은 사쏘롱고와 셀라 산군을 바라볼 수 있는 중원(中原)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특히 채식 레스토랑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건식 사우나와 습식 사우나도 갖추고 있어 피로한 심신을 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방에 짐을 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산들이 석양빛을 받아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루의 마무리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사우나에서 몸을 녹였다. 따뜻한 증기가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하루 종일 움직인 몸이 비로소 쉴 수 있었다.
오늘의 일정을 정리했다.
계획했던 사쏘롱고 루프 트레킹은 날씨 때문에 완주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신 Monte Pana와 Monte Seura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만났다. 여행은 언제나 그런 식이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다.
완벽한 여행은 없다. 하지만 불완전한 여행도 나름의 완벽함이 있다.
여행 팁
만약 Sassolungo 루프 트레킹을 하지 않는다면, 오늘처럼 발 가르데나 호텔에서 체크아웃한 후 산타 크리스티나 쪽으로 가서 Monte Pana와 Monte Seura를 먼저 관광하고, 오후에 Sassolungo 케이블카를 타고 관광하는 일정을 권하고 싶다.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 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전에 여유롭게 다른 곳을 둘러보고 오후에 사쏘롱고에 오르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오늘의 기록
여운
거인들이 살았다는 사쏘롱고.
전설은 전설일 뿐이지만, 그 거대한 봉우리들 앞에 서면 전설이 진실처럼 느껴진다.
2억 3천만 년의 시간, 열대 바다에서 하늘 높이 솟아오른 기적, 그 긴 세월 동안 쌓인 이야기들.
우리는 그 장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잠깐 이름을 남기고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오늘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산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10화 "돌로미티의 성" 파소 포르도이
2025년 7월 27일
작별과 시작 사이에서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새벽 햇살에 눈을 떴다.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조식 식당으로 향했다. 채식 위주로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 식사는 많이 먹어도 속이 편할 정도로 담백하고 맛있었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입안에서 아침 공기처럼 상쾌하게 퍼졌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4박 5일 동안 우리를 헌신적으로 가이드해준 아들 동현이가 베네치아로 떠나는 날이다. 늙은 부모 둘을 세심하게 관찰한 결과, 택시를 이용하며 안전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고 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아들은 렌터카를 반납하고 오후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며 우리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아버지, 어머니,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들의 손을 잡으며 고마움이 복받쳐 올랐다. 저 멀리 이국땅까지 늙은 부모를 위해 함께해준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들의 차가 호텔 앞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이제 진짜 우리만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 같은 묘한 설렘을 느꼈다.
파소 포르도이를 향하여
9시, 우리는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프런트에 맡겼다. 호텔 직원이 친절하게 알려준 시간에 맞춰 호텔 앞에서 Passo Pordoi행 버스를 기다렸다. 맑은 아침 공기가 폐 속 깊이 스며들었고,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아침 햇살에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Passo Pordoi(파소 포르도이)**는 '포르도이 고개'라는 뜻으로, 북쪽의 셀라 산군과 남쪽의 마르몰라다 산군 사이를 가로지르는 장엄한 고갯길이다.
이 전설적인 고개길은 1904년경 아라바(Arabba)에서 카나제이(Canazei) 마을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발 2,239m의 고도에 건설된 이 도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이었다. 카나제이에서 고개까지 12.1km를 연결하는 동안 무려 28개의 헤어핀 커브를 지나야 한다. 아라바에서는 9.3km를 달리며 32개의 헤어핀을 통과해야 고개에 닿는다.
평균 7~8도 경사를 끊임없이 올라가는 이 힘든 코스는 세계적인 사이클링 대회의 명소가 되었다. 유명한 '지로 디탈리아(Giro d'Italia)' 대회에 여러 번 선정되었으며, 전 세계 라이더들이 꿈꾸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라고 한다. 버스 창밖으로 그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보였다. 그들의 도전하는 모습이 경이로워 보였다.
전설의 발자취를 따라
11시 20분경, 드디어 Passo Pordoi 케이블 카 정류장에 도착했다.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선 동상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자전거 선수 **파우스토 코피(Fausto Coppi, 1919~1960)**의 기념 동상이었다. 세계 대회에서 수십 번의 우승을 차지한 그는 포르도이 구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의 영혼이 이곳에 영원히 머물 수 있도록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동상의 얼굴은 영원히 저 높은 산을 향해 있었다.
케이블 카 입구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또 다른 선구자의 동상이 서 있었다. 마리아 피아츠(Maria Piaz, 1877~1971), '포르도이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 여성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그녀는 포르도이 고개에 판잣집을 지어 고개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휴식과 따뜻한 식사를 제공했다. 돌로미티의 산악 도로인 '스트라다 델레 돌로미티(Strada delle Dolomiti)'가 생기면서 포르도이 고개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헌신적인 활동이 이곳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1961년, 그녀는 최초의 케이블 카를 만들어 셀라 산군과 연결되는 관광 루트를 개척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산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늘로 오르는 5분
1963년 개통된 케이블 카에 몸을 실었다. 2,239m의 포르도이 고개에서 5분간 상승하면 해발 2,950m의 **사소 포르도이(Sasso Pordoi)**에 있는 Maria 산장에 도착한다.
케이블 카가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구불구불한 헤어핀 커브가 마치 용의 등뼈처럼 산허리를 감고 있었고, 그 길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장난감처럼 작아 보였다. 창문 너머로 차가운 고산의 바람이 살며시 스쳐 지나갔다.
돌로미티의 성(城)
케이블 카에서 내려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우리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거대한 셀라 산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700m 높이의 평탄한 바위 성벽이 마치 병풍처럼, 아니 거대한 성곽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햇살이 백운암 절벽에 부딪혀 은빛으로 반짝이고, 구름 그림자가 산군 위를 천천히 흘러갔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돌로미티의 테라스'라고 부르지만, 나는 감히 **"돌로미티의 성(城)"**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3,000m 높이의 평탄한 고원에서 돌로미티의 모든 산군을 360도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장관이 아니라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마치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특별한 관람석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왼쪽으로는 어제 다녀온 사소롱고 산군이 익숙한 친구처럼 손을 흔들고 있었고, 이어서 장엄한 셀라 산군이 파노라마를 이어갔다. 셀라 산군을 따라 시선을 돌리면 오른쪽 끝에 거대한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 정점에 자리한 곳이 바로 셀라 산군의 최고봉 **피츠 보에(Piz Boè, 3,152m)**였다. 오늘 우리가 도전할 목표였다.
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안개에 싸여 신비로운 모습으로 드러나는 돌로미티의 여왕, 마르몰라다 산군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부부의 도전
우리는 피츠 보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른 트레커들과 함께 셀라 산군의 테라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왼쪽 끝에 있는 봉우리가 우리의 목적지였다.
천 길 낭떠러지가 있는 고원지대의 9부 능선길을 따라 30여 분을 걸었다. 발밑으로는 아찔한 절벽이, 눈앞으로는 끝없는 하늘이 펼쳐졌다. 3,000m 고지의 공기는 맑고 차가웠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시원하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포르셀라 포르도이(Forcella Pordoi) 안부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포르도이 산장(Rifugio Pordoi, 2,848m)**이 자리하고 있었다. Passo Pordoi에서 걸어 올라오는 등산객들의 중간 쉼터이자, 장엄한 전망을 선사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산장에서 바라본 마르몰라다 산군의 일부가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풍경이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안개 속 순례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계속해서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자연의 위대한 교훈을 체험했다. 나이가 들어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정상을 향해 도전하는 우리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긍지가 가슴속에서 솟아올랐다.
어떤 구간은 트레커들의 안전을 위해 와이어 로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안전한 길잡이를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갔다. 안개 속에서도 이정표는 명확했고, 우리는 그 표지를 믿으며 걸었다.
1시간을 트레킹하며 주위를 살펴보니 광활한 회색의 백운암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성벽이었다. 자연이 수억 년에 걸쳐 빚어낸 이 장엄한 조각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미완의 정상, 완성된 여행
드디어 정상 피츠 보에 산이 안개 속에서 눈앞에 나타났다.
이제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야 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1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날씨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체력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정상까지 왕복 1시간, 고도 3,152m...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없이도 통했다.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무리해서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무사히 하산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웠다.
"여기서 돌아가요."
아쉬움은 있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맑은 날의 피츠 보에 정상 풍경을 나중에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았다. 고도 3,000m 높이에 이런 트레킹 코스가 있다는 것이 전혀 상상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피츠 보에 정상에는 카판나 피츠 파사(Capanna Piz Fassa) 산장이 있다. 1968년 포르도이의 선구자 마리아 피아츠의 아들이 등산객을 위해 만들었고, 1980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360도 아무런 가림 없이 사소롱고, 로젠가르텐, 마르몰라다, 치베타, 토파네, 푸에즈 오들레 산군까지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알타 비아 2(Alta Via 2) 구간이 통과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올라온 길과 반대편에 알타 비아 2의 경로가 이어진다고 한다. 언젠가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마음속으로 작은 소원을 빌었다.
하산길의 은총
우리는 원점 회귀를 위해 왔던 길을 따라 안전하게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길은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 오르막보다 힘은 덜 들지만, 한순간의 방심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신 있게 내려갔다.
길가에 예수의 고난 장면이 목각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모습을 보며, 중생을 위해 고난을 감내하는 희생정신에 고개가 숙여졌다. 감사했고, 경배로웠다. 이 높은 산에서 신의 사랑을 만나는 것, 그것은 예상치 못한 은총이었다.
하산하다 피츠 보에를 돌아보았다.
신기하게도 안개가 걷히고 정상의 산장이 투명하게 보였다. 햇살이 구름 사이로 쏟아지며 산장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정상을 포기한 것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나이를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무사히 돌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등반이 아닐까.
무사 산행을 기원하는 돌탑을 지나 왕복 3시간 만에 우리는 Maria 산장에 도착했다.
상당히 힘든 트레킹이었다. 피로가 뼈 속까지 쌓여 있었다. 그러나 가슴속은 벅찬 감동으로 가득했다.
3,000m 높이의 고원에서 3시간 동안 트레킹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서 이곳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오늘의 이 트레킹이 아름답게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80대의 나이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었다.
꿀맛 같은 점심과 만남
Maria 산장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시장기에 먹는 야채 샐러드와 따뜻한 수프는 정말 꿀맛이었다. 고산에서 맛보는 소박한 음식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다니. 몸과 마음이 함께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케이블 카를 타기 전, 사소롱고 산군 쪽으로 조금 내려가 보았다.
철제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돌이 반쯤 쌓여 있었다.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십자가에는 **"INRI"**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머리글자로,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를 의미한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당시 그의 죄목을 표시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 달았던 명패의 내용이라고 했다.
이 십자가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며, 전쟁과 역사적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높은 산 위에서 만나는 이 십자가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인간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구원에 대한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켰다.
조금 더 내려가니 자연이 만든 거대한 암층이 나타났다. 수억 년의 풍화작용으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 아래로 보이는 것은 아찔한 1,000m 절벽 너머의 포르도이 헤어핀 길이었다.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도전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었다.
젊음과의 만남
케이블 카를 타기 위해 산장으로 돌아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클라이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젊은 그들의 힘찬 발걸음을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기다렸다가 그들이 모두 올라온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독일에서 왔습니다. 당신들은요?" "한국에서 왔어요."
독일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들은 40대 초반이라고 했다. 우리가 80대라고 하자, 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Unglaublich! (믿을 수 없어요!) Really amazing!"
그들은 진심으로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우리도 그들의 젊음과 열정에 엄지를 치켜세우며 서로 격려했다. 나이와 국적을 넘어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로 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존경과 격려를 느꼈고, 우리도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것이 뿌듯했다.
돌로미티의 성벽
포르도이의 셀라 산군은 돌로미티의 중앙에 위치한 산군으로, 정상이 뾰족하지 않고 거대한 평원처럼 생겼기 때문에 '돌로미티의 테라스'라고 불린다.
하지만 내 눈에는 달랐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모습은 마치 **"돌로미티의 성벽"**처럼 느껴졌다. 자연이 수억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이 거대한 요새, 그 안에 들어선 우리는 마치 중세 시대 성을 방문한 여행자 같았다.
그림 속을 걷다
우리는 케이블 카를 타고 Passo Pordoi로 내려왔다.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호텔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조금 더 이곳의 공기를 마시고 싶었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다.
보이는 곳곳이 힐링의 장소였다. 하나하나가 풍경화 같은 거리를 걷는다는 것, 그것은 피로조차 느끼지 못하게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알프스의 전통 가옥들, 꽃으로 장식된 발코니,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 멀리 보이는 설산...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발걸음마다 감사했다. 이 나이에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 건강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감사의 작별
오후 4시경, 호텔에 도착했다.
채식 식사와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해준 주인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들은 주인장도 놀라워하며 축복해주었다. 함께 기념 촬영을 하며 아쉬운 이별을 나눴다.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Rifugio Col Gallina로 출발했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되새겼다.
오늘의 기록
오늘의 포르도이 파소 트레킹 경로: 1→2→3→4→5번 지점까지 도달 후, 6번(피츠 보에 정상)을 포기하고 5→4→3→2→1로 안전하게 회귀
오늘의 운동량:
숫자로 기록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가슴속에 새겨졌다. 도전의 기쁨, 포기의 지혜, 자연의 경이로움, 그리고 함께 걷는 행복.
80대의 우리가 3,000m 고지를 걸었다.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이미 우리만의 정상에 올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도전하는 마음과 함께 걷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