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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레지오 마리애 은총의 모후Co. 원문보기 글쓴이: 박진영
마포역(홀리데이인서울; 舊가든호텔)에서 하차하여 용산성당행 마을버스 2-1 좌석버스 : 718, 1002 시내버스 : 2, 3, 30, 30-2, 48, 77, 123, 135-2, 145, 522-2 지하철 : 5호선 마포역 3번 출구(샛별 문구 앞에서 2-1마을버스 승차) 공덕역(서울대동창회관)에서 하차하여 용산성당행 마을버스 2-1 좌석버스 : 772 시내버스 : 34, 34-1, 588 지하철 : 6호선 공덕역 7번 출구 |
지금 용산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삼호정"(三湖亭)의 명칭은 호수가 셋(三湖)이 있다 해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용산 앞강이 옛날 샛강이었으므로 '사이 물' 즉 '삿물'이 '삼물'로 변했다가 한자로 옮겨진 것이다. 천주교회측에서 이곳에 성직자 묘지를 마련하기로 결정한 것은 현재 정확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1887년신학교 부지가 매입된 직후인 것 같다. 그러나 이곳이 성직자 묘지로 꾸며지게 된 것은 1890년 2월 21일 블랑주교가 서거하면서 와서(瓦署,즉 왜고개)에서 구운 벽돌을 가져다 담을 쌓고 경계를 만든 때부터였다. 당시 삼호정 너머 도화동 쪽은 모두 공동 묘지 자리였으며, 조선교구에서 성직자 묘지를 이곳에 매입한 이유중의 하나도 이러한 점과 관련이 있었을것이다. 현재는 이 성직자 묘지가 용산 성당 구내에 위치하고 있지만,당시의 위치는 다음과 같았다고 설명할 수 있다. 즉 옛 삼호정 정자 자리 옆에 1889년 9월 8일(성모 성탄축일)에 강복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보육원(수녀원 용산 분원)이 있었고, 삼호정 안채가 공소로사용되고 있었으며, 공소와 보육원 바로 위쪽에 성직자 묘지가 있었던 것이다. 또 이 성직자 묘지에는 보육원쪽으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묘지가 붙어 있었는데, 여기에 있는 수녀 무덤들은 훗날 이장하여 현재는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 성직자 묘지에는 1890년 이래로 4위의 주교, 67위의 신부, 2위의 신학생, 1위의 치명자 등 모두 74위의시신이 묻혀 있다. 특히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조선에 들어오지 못하고 만주 땅에서 병사한브뤼기애르(Bruguiere,蘇 )주교의 유해가 조선교구 설립 100주년이 되던 1931년 10월 15일에 이곳으로 이장됨으로써 성직자 묘지로서의 뜻이 더 깊어지게 되었다. 용산 지역의 신자들은 성직자 묘지가 이곳에 조성된 때부터 이를 자신들의 조상처럼 돌보게 되었다. 공소 시절에도 공소 경당과 묘지가 바로 이웃해있었기 때문에 묘지를 돌보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성직자 묘지가 앞에서 말한 순교 성지. 신학교 등과 함께 이곳 신자들의 신심에 많은 영향을 줌으로써 단순한 자부심 이상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왔다는 점이라 하겠다. |
첫댓글 자세한 안내에 감사드립니다..
오시는길 버스노선이 오래되서 다바뀌었어요. 최근거 제가 다시 올릴께요
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