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단상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직업의 세계에는 일반사람과 다르게 남들이 편히 쉴 때 오히려 반대로 더 수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평상시 하던 일에 더하여 다른 이의 몫까지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힘든 일과를 보낸다. 그 수고로움은 심리적 압박에 더해 육체적인 힘겨워움을 겪는다.
그러한 직업군으로는 경찰공무원과 소방공무원, 그리고 환경미화원이 있다. 그밖에도 확대햐서 보면 명절의 특수와 코로나19로 인한 의료진, 기상이변에 따른 대처인력들도 이에 해당한다. 그중에서 명절 특수로 인해 수고하는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한 만큼 돈을 더 벌기 때문에 고생도 고생으로 여지기 않고 일한다.
그렇지만 그런 혜택이나 보상이 없는 직종은 사정이 다르다. 그 중에서도 경찰공무원은 쉬는 때 그만큼 오히려 범죄발생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더욱 긴장하고, 소방공무원 또한 높아진 화재위험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보낸다. 환경미화원의 고충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의 이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쓰레기와 주고받은 선물로 인한 포장지 처리는 몸살을 앓게 만든다.
이런 일은 한정된 범위 즉, 남들이 즐겁게 쉬는 만큼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특수상황에서 일의 총량이 늘어난다.
한데 나는 그런 상황도 아니면서 이번 추석연휴 5일간을 온전히 홀로 간병에 매달리며 지냈다. 그중에 단 한차례 요양보호사가 들러서 몸이 아픈 아내의 목욕을 시켜주고 갔을 뿐이다. 그 외에는 꼬박 나 혼자서 감당하였다.
나는 긴 추석연휴를 보내면서 내가 감당한 일이 마치 모래시계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잘록한 용기에 담긴 모래가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한쪽은 줄어들고 한쪽은 늘어나서 많아지면 기우는 기구. 하루 24시간, 그중에 상당한 시간 도움을 받던 요양보호사가 쉬어버리니 감당하는 일이 꼼짝없이 내 몫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것이 어디 감당하기에 적합한 나이인가. 내 나이도 어언 70을 넘어 중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 세월만큼 괴롭게 힘들게 보낸 날들이 많았다.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충고를 한다.
“요양시설에 맡기세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럴 수는 없지요. 내가 집에서 돌봐야지.”
부정해 해버린다. 그런데 최근에 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부인이 자기 더러 하는 말이 돌아가며 밥을 사더라도 임선생에게는 한번이라도 더 사라고 이르더란다. 그 말을 듣고 위로의 말로 받아들였다.
Y시에서 중증1급 환자를 자가에서 돌보는 사람은 나하나 뿐인데, 시에서 상을 내려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을 들으면 고맙기는 하지만 가당치 않아서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지인이 전한 말에 의하면 근자에 어느 매스컴에서 보도가 되었는데, 어느 노인전문요양병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환자들이 잠을 자지 않으니까 억지로 수면제주사를 놓아 재우다가 보호자에게 들통이 났다는 것이다. 그 보도를 접하지 못했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꼭 그런 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내가 다소 고생을 하더라도 집에서 간병을 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앞으로도 끝까지 그리할 생각이다.
간병 일을 하는 데는 애로가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애로는 장거리 여행이나 외출을 못하는 것이다. 늦어도 세 시간 안에는 집으로 와야 해서다. 하는 일은 용변을 돕는 것과 몸을 뒤척여주는 일인데, 요양보호사가 약골이라서 감당을 하지 못해 내가 해야만 한다. 그런 와중에 장거리 여행이라고는 대마도와 제주도를 잠시 들린 것이 전부이다.
그중에서 대마도는 1박2일을 다녀왔는데, 특별히 전문 요양보호사에게 부탁해서 가능했다. 그 바람에 수고비를 갑절이나 지급해야만 했다. 그리고 제주도 여행은 다행히 여수에서 제주 간을 다니는 크루즈가 개통이 되어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었다. 당초에 제주 자연사 박물관을 목표를 삼고 갔지만 두 시간 남짓을 돌아볼 정도로 시간이 빠듯했다.
이러니 17년간 간병을 하며 숨통인들 제대로 트고 살았겠는가. 그런데 사람은 지혜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피하지 못하면 차라리 그것을 즐겨라’라는 말이 있듯이 나대로 숨통을 트는 방도를 강구한 것이다. 그것은 글쓰기였다. 고통도 어떤 일에 몰두하면 잊히듯이 현실을 감내하는 방법으로 그 일을 택하게 되었다.
오직 내가 숨 쉴 것을 찾다보니 택하게 된 방도였다. 그렇게 열심히 쓰다 보니 작품을 1300편을 넘게 쓰게 되었다. 나의 집념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인생을 성찰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그렇게 보낸 시간이 나름으로는 소중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5일간의 연휴도 나는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아내 간병에 매달리는 한편으로도 틈틈이 써놓은 글을 퇴고 하고 책도 읽은 것이다. 나의 이런 생활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아내가 먼저 눈감을 수도 있고 내가 앞서 떠날 수도 있다. 나의 건강상태도 비상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오래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소원하기는 아내보다는 조금 늦게 눈을 감았으면 한다. 그것은 오직 마지막 마무리도 내가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이다. 무슨 순애보가 아니라 그것이 도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긴 연휴가 끝난 오늘부터는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요양보호사도 오게 될 것이고, 나도 가까운 곳으로 점심식사 약속도 잡을 것이다.
나는 때로 생각한다. 세상사가 나만 어렵겠는가. 나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사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추석을 맞아 국민가수 나훈아가 의미 있는 노래를 불렀다. ‘테스형’이라는 곳인데 ‘소크라테스에게 사는 게 왜 이러냐고, 먼저 간 저 세상에 천국은 있더냐고 물으니 말이 없더라’ 것이다. 하기는 우주는 공(空)인데 무엇이 있겠는가. 사는 동안 사람의 도리를 하고 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가 사는 생활태도가 살아가는 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살겠다는 다짐을 새삼스레 해 본다. (2020)
첫댓글 마음이 찡하네요.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
오랜 간병은 그로인해 지칠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의 힘으로 지켜내시는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오늘 맛난 점심드시고 행복하세요.
5일간 아픈 아내와 추석명절을 보내면서 느낀 소회를 써봤습니다.
너무 청승맞아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응원해 주셔서 고마습니다.
아무리 도리라고 하지만 병시중을 어디 아무나 하는 일이겠습니까. 인내와 헌신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수석과 수필이 있었기에 견디는 힘이 길러지셨으리라 봅니다. 늘 강건하시고 행복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추석명절을 꼼짝없이 간병을 하다보니 스치는 생각들이 많았습니다.
늘 함께 해주시고 따뜻한 마음을 싣어보내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사모님보다는 늦게 눈을 감고 싶다는 선생님의 소망에 그만 눈시울을 적시고 맙니다 간병인들조차 쉬어버리는 긴 연휴가 선생님께는 비상시국이었군요
우리 시 1급 장애인 가운데 집에서 간병을 받는 이가 오직 사모님 한 분이라니 선생님 지극하신 사랑에 숙연해지는 아침입니다
한고장에서 함께 살면서 누구 보다도 저를 잘 이해하는 분이 이선생이시죠.
따뜻한 눈길로 응원하는 분들의 호흡을 느끼며 삽니다.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는 6일간이였어요. 간병인이 안 오니 두 노인 삼시세끼는 우리 부부 몫이 되지요. 다행히 아이들이 와서 도와주니 편했고, 추석 전날 저녁과 추석날은 시동생이 있어 숨통을 틔웠지요.ㅋ 오늘은 간병인이 오니 마음이 편해요. 간병인 제도가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 고생 많으세요. 저도 힘들지만 선생님도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눈물나요. ㅋ
박선생님도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계시군요.
몸이 아픈 노인을 두분이나 모신다니 대단하십니다.
그래도 가족돌과 오붓한 명절을 보내셨다니 다행이군요.
늘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