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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예수성심성월에 성심이신 예수님께...
글 : 이 해인 수녀님
겸손과 온유의 성심이신 당신은 항상
저에게 마음을 달라 하셨지요?
사랑의 가시에 깊이 찔리신 당신 마음에
깊이 들어 간 저의 기도는
오직 사랑 때문에 피 흘려도 좋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납니다.
초록의 황홀함에 취해 있던 6월의 숲에서
어느 순간 제 이름을 부르는
당신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저는 죄가 많지만, 갈림 없는 첫 마음을
순결한 첫사랑으로 당신께 봉헌하는 오늘
당신이 쏟아 부은 사랑이 넘쳐
제 마음은 온통 초록빛 바다
이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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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그리스도의 고통이
내 고통의 의미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고통과
나의 고통의 의미를 살려 놓으셨습니다.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의 하느님 인식(認識) <제3부>
윤 클레멘트(양호) 신부님
<전주교구청 사무처장>
한편 우리 인간의 존재성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 더욱 존엄하고 숭고하며 신앙의 빛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인간성의 회복과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버림을 받은 채 죽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때때로 우리 자신들이 십자가에 버림받음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고통. 힘겨움. 상처. 고난의 잔을 마시기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들 속에서 십자가에서 버림받고,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는 우리 자신들의 비천하고 나약한 십자가에 힘을 주고 의미를 주게 됩니다.
우리 자신의 버림받음과 고통이 십자가의 의미로 기도되어 질 수 있을 때, 비록 그것이 매우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받고 당하는 고통은 매우 크고 영성적인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의미가 될 때, 그리스도의 고통이 우리 자신들의 고통의 의미가 될 때에, 우리 자신들의 고통은 의미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이 내 고통의 의미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고통과 나의 고통의 의미를 살려 놓으셨습니다. 자기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우리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는, 비록 그것이 매우 미미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결짓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할 때에, 큰 의미가 되게 합니다.
한편, 떼이야르 드 샤르뎅2) (1881-1955, 예수회 사제, 신학자, 철학자, 지질학자, 고생물학자)은 우리 인간을 위해 태어나시고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사셨으며, 아버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죄인인 우리 인간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시작(A, 알파)이요 마침(오메가)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이 우주와 인간 세상의 중심이라고 보았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 비천한 인간을 위해 죽으신 것은 우리 인간과 나의 존엄성과 가치를 말할 수 없이 높게 고양(高揚)시키신 것입니다. 나와 그리스도의 관계성은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을, 나 자신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또한 나를 위해 부활하셨으며, 나를 위해 사시어 현존하십니다. 지금도... 어디에서든... 당신이 보내신 영으로... 성령으로... 힘으로... 사랑으로... 빛으로... 하느님의 빛. 위로. 영. 사랑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부르고 찾을 때마다 하느님의 선물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힘으로... 빛으로... 사랑으로... 하느님은 당신 모상으로 지어내신 죄인인 우리 인간을 잊지 않으시며 사랑하시기에...
우리 인간의 존엄성은 우리 인간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로부터 옵니다. 또한 우리 인간 영혼의 존엄성은 우리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하여 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은 영원하고, 하느님께 속한 것은 영원합니다. 인간에게 속한 것은 잠시이지만, 하느님께 속한 것은 영원합니다)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친구가 되는 것, 하느님과 우정을 친밀하게 가지는 것 (그것은 영성적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은총을. 사랑을 느끼면서 가까워지고 인식하는 것 ...)입니다. 가타리나는 그의 대화 끝 부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시여, 당신의 빛을 이해함으로써, 나는 당신을 맛들이고 당신의 깊이. 영원한 삼위일체성. 당신 창조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나이다. 하오며, 당신 안에서 나 자신을 바라볼 때에, 이 몸이 당신의 모상으로 지어내졌다는 것을 알게 되나이다. 당신은 내게 힘을 주시고 당신의 지혜를 알게 하셨나이다. 그 지혜는 피조물인 제가 감히 하느님 당신의 아드님이심을 아는 지혜이옵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령은 당신의 아들에게로 나를 이끄시고, 당신의 뜻을 알게 하시오며, 이 몸으로 하여금 당신을 사랑하게 하였나이다.(대화. p.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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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2014. 6. 1
마태오 28, 16 ~ 20
♠ 복음 연구
* 16-17절 :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배반자 유다를 제외한 열한제자가 처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전도를 시작하셨던 갈릴래아 산 위에서 모임이 이루어진다. 목자와 작은 양떼가 다시 함께 모였다.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예수께서 밤에 호수 위를 걸어오시면서 당신이 폭풍우의 주님이심을 보여 주셨을 때와 같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한다. 그러나 부활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18절 :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이 아버지에 의해 그분에게 주어졌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순명을 넘치도록 후하게 보답해 주신다. 예수님의 권한은 죄의 용서(9, 6)나 교리 (21, 23 ), 병, 마귀 등 그 원한이 미치는 여러 가지 영역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 그것은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의 보편적인 권한이며, 그분이 종말에 심판자로 오시게 될 사람의 아들로서 행사하시는 권한까지 내포한다. 이러한 것들은 하느님께서 그분의 메시아성을 확인해 주셨다는 것을 선포할 수 있는 뛰어난 표현들이다.
* 19절 : 제자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그분의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을 받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강화의 정점이다.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이 제자들의 직분에 모든 민족이 참여하도록 전도를 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이것은 모든 민족이 주님을 믿고 따르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전도를 한 후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세례를 받으려면 먼저 믿어야 하고, 세례를 받으면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르며, 생활 속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될 때 비로소 참된 제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20절 : 세례 받은 자들에 대한 교육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 그것은 복음서 안에 들어 있으며, 특히 대 강화들 속에 들어 있다. 참다운 제자가 되는 것에 관한 가르침과 하느님의 참된 뜻을 성취하는 방법에 관한 가르침이다. 모든 민족을 빛으로 인도하는 그 중대한 일은 인간의 힘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인간이 자기 힘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복음서에 지적되고 있다. 제자들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 날 까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 복음 요약 :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분부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고 제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가르치라고 하시는데 세례는 삼위일체 하느님,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한 후 제자들이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올바로 가르쳐 지키게 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면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하신다.
♠ 대화 방향 :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 뜻에 따르는 삶에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어떻게 결심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나누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영적독서를 위한 마태복음 (성 요셉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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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2014. 6. 8
요한 20, 19~23
♠ 복음 연구
* 19절 : 제자들은 ‘주간 첫날 저녁’, 그들의 박해가 무서워서 문을 닫아걸고 모여 있었다. 예수님은 닫힌 문을 통해 들어와서 제자들 가운데 서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셨다. 이 평화의 인사는 통상적 인사일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온전한 구원과 행복을 베푸신다는 뜻이다.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속죄의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여 그들을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신 데서 비롯된 선물이다. 또한 이 평화는 예수님이 최후만찬 때 제자들에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그들에게 나타나서 베푸신 구원의 선물이다. 이제 그분이 성령을 통해 영원히 그들과 함께 살고 계시기 때문에 평화는 영의 힘으로 영원한 선물이 된다.
* 20절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임을 알리고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생긴 상흔을 그들에게 보여주셨다는 말은, 환영처럼 가상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타나셨음을 강조한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뵘으로써 영속적이고 완전한 기쁨, 천상의 행복을 체험했다.
* 21절 :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평화를 베풀고 그들을 파견하셨다. 부활하신 그분은 몸으로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지 않아도 영의 힘으로 평화를 베푸신다. 평화는 그들이 낙담하지 않도록 예수님이 협조자 영을 통해 그들 가운데 현존하며 베푸시는 구원의 총체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평화의 사자로 이 세상에 파견하셨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이 사명을 이행하시는 동안 함께 계신 것처럼, 예수님도 제자들이 사명을 이행하는 동안 함께 계신다.
* 22절 : 제자들은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성령을 받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부활절 주일 저녁에 그들에게 나타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아라”하고 성령을 베풀고 그들을 세상에 파견하셨다. 성령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가신 뒤 파견하신 ‘협조자’이고 그들과 영원히 함께 있으며 예수님 말씀의 뜻을 설명하고 그분께 받은 사명을 이행하게 한다.
* 23절 : 성령을 체험한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성령을 베풀고 사죄권을 행사한다. 이 사죄권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속죄 죽음과 부활에 기인하고 그분이 보내주신 성령을 통해 실현된다. 성령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죄의 용서와 생명을 받는 반면, 성령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회개를 거절하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지도 못하고 파멸로 떨어진다.
♠복음요약 :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제자들은 문을 닫아 걸고 모여 있었다. 스승을 처형한 사람들이 무서웠고,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않아 어떤 용기도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오셨다. 그리고 평화를 빌어 주시며 당신 사랑의 흔적인 못과 창에 찔린 손발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죄를 용서해 주라고 분부하신다. 사도들에게 사죄권을 주시는 것뿐 아니라 우리 모든 신자들도 용서의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용서는 새 삶을 가능하게 해주고, 용서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용서하는 사람도 평화를 얻게 되는 길이다.
♠대화방향 : 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발현하신 대로 우리에게 나타나시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② 성령을 주시고 평화를 주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으로 보낸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라고 우리를 보내시는지 생각해 봅시다.
♠참고문헌 : ▪ 말씀의 등불 (가톨릭 신문사)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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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대축일
2014. 6. 15
요한 3, 16 ~ 18
♠ 복음 연구
* 16절 :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가장 소중한 외아들을 내주시었다. 우리는 세월호사건 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애절한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옛말에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외아들을 내주신 하느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 17-18절 :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통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 알 수 가 없습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서로 친구가 되어 사이좋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내일 만나자고 말하지만 하루살이는 내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음 날 메뚜기는 개구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겨울이 오자 개구리는 메뚜기에게 내년에 만나자고 합니다. 그런데 메뚜기는 내년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믿음이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믿기에 이해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머리로 이해하고 나서 믿는 것이라면 누구나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다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되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요한 7,37-40).
♠ 복음요약 :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 4장 14절과 6장 56절로 요약할 수 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 온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 대화방향 : 어떤 성서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바로 3장 16절 말씀을 읽는 것으로 시작하라. 성경을 통달했다면 다시 이 말씀으로 돌아오라.” 대다수 성서학자들이 동의하는 말이다. 성경에서 만일 오직 한 장만 가져야 한다면 루카복음 15장 (되찾은 아들의 비유)을 가질 것이요, 한 구절밖에 가질 수 없다면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가져갈 것이라고 한 사람이 있다. 이는 하느님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가장 핵심적이고 감동적으로 요약 압축하기 때문이다. 말씀의 핵심 구절구절들이 이루어 져 있는 미사전례는 바로 우리가 지상에서 맛 볼 수 있는 천상의 영원한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은총이 쏟아져 나오고 거룩한 천사들과 성인성녀들께서 성모님과 함께 주님 옆에 계신다. 마음으로 느끼는 사람은 느끼며 주님을 믿는 사람은 점점 느끼게 된다.
♠참고문헌 : ▪ 요한 복음 ▪ 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 (송봉모 신부. 바오로 딸)
▪ 거룩한 미사. 카타리나의 증언 (아베 마리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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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2014. 6. 22
요한 6, 51 ~ 58
♠ 복음 연구
** 예수님께서 더 이상 비유를 쓰시지 않고 구구절절 빵을 먹는 주제가 나오며 물질적 의미에서 깊은 의미로 당신의 말씀을 풀어주시고자 힘쓰신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체성사를 기억하고 그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날로 성체성사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이며 그 안에 담겨진 주님의 커다란 사랑과 은총이 담겨져 있음을 느끼는 순간 가장 큰 기적이 바로 내 안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51-52절 : 생명의 빵을 성체성사적 관점에서 설명한 이 말씀을 인육을 먹는 천인공노할 집단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 결과는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60절) 이 오해는 자의적 해석 내지 근본주의적 유물론의 해석에서 기인된 것이다.
* 53-54절 : 예수님의 살과 피는 성체성사의 빵과 포도주를 상징한다.
* 55-57절 : 본문에서 눈에 띄는 점은 영원한 생명의 현재성에 대한 강조다. 곧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예수님께서는 살아있는 빵이시기에 그를 믿는 사람은 여기에서부터 영원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참된 양식이며 음료이시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는 예수님 안에 머물고 예수님께서도 그 안에 계시고, 지금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계속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몸과 피를 마심으로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예수님이 살아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복음 요약 :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57절)
1. 미사 전례를 통해 거행되는 성체성사는 내게 어떤 의미일까?
예수님께서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식사를 통해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셨다. 그것은 먼저 식사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기 때문이며 먹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여 나도 이웃에게 음식이 될 수 있다.
2. 우리에게 몸과 피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몸과 피는 우리 생명체 유지의 전부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으스러지는 자신의 몸과 흘리신 피를 주어진 빵과 포도주를 몸과 피라고 말씀하시며 나누어주신다. 자신의 전부를 아낌없이 나누어주고도 아깝지 않은 사랑, 자신의 희생의 완성인 사랑으로 다가온다. 예수님은 생명의 빵이시기 때문에 자신이 나누어준다. 바로 그분이 우리의 굶주림을 채워줄 분이다. 요한은 역사적 인물 예수가 예수님 시대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가 성체성사 안에서 그들과 함께 현존한다는 것을 청중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는 여전히 그의 백성을 먹이실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지속시킬 양식을 제공한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한다.
♠ 대화 방향 :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주신 신앙의 신비다. 습관적으로 또는 진실로 생명의 빵을 받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물음에 응답이 있음을 안다. 사랑으로 구원되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된 교회는 끝없는 기쁨을 누리도록 부름 받았고, 식사의 표상으로 초대됨은 우정을 나누고, 하느님과 우리가 누리는 친밀한 통공을 보여주신다. 모든 성찬례는 오늘도 이러한 초대를 하고 있다.(잠언 1-6절 참조).
1) 내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되고, 영적인 갈증으로 간절하게 성체를 모시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나누어 봅시다.
2) 나는 영성체를 어떤 마음으로 모시는지요. 습관적이지 않을까요?
♠ 참고 문헌 : ▪ 요한복음 (성서묵상) <C.M 마르띠니 지음 성염 옮김>
▪ 이냐시오 영신수련 ▪ 여정 요한복음 강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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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주일 / 성베드로와 성바오로 사도 대축일
2014. 6. 29
마태오 16, 13 ~ 19
♠ 복음 연구
* 13절 :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이 질문이 비록 마르코 복음서의 표현과 다소 다르지만 그 의미는 똑같다. 여기서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 14~15절 : 엘리야는 메시아에 대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또 다시 이 세상에 오기로 한 예언자이고, 예레미야는 유배 때에 숨겨둔 거룩한 그릇과 기구를 네보산에서 다시 꺼낼 예정이었던 예언자이다. 즉, 사람들은 그런 예레미야 예언자가 재귀하여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여겼던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 원천에 마태오가 추가시킨 것이다.
* 16절 : 마르코는 “선생님은 그리스도 이십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마태오는 여기에 찬양하는 의미의 명칭을 추가하여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라는 명칭에 따르는 모호한 점들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마태오가 여기서 자신의 원천으로 사용한 신앙고백, 즉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신앙고백과 조합했다는 견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부활 후의 신앙 고백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을 때 이루어졌다.
* 17절 : ‘시몬 바르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란 의미이다. 유대인의 이름에는 바르(아들)란 말이 많이 붙어 있다. ‘살과 피’ 는 ‘인간, 사람’ 이라는 뜻으로, 특히 인간의 약함을 말해 주는 히브리식 표현이다. 베드로의 신앙이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서 온다는 것은 바울로가 예수님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과 비슷하다.
* 18절 :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으로 부터 ‘게파’라는 별명을 받았다. ‘게파’는 아람어인데 바위’라는 뜻이다. 바위를 그리스어로 ‘페트로스’라고 하는데, 이 말을 우리 말로 ‘베드로’가 된다. 교회란 그리스어로 ‘에클레시아(ekklEsia)’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소집( 召集)하다’ 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교회는 하느님께서 새롭게 불러 모으신 ‘그리스도인 백성’, 또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뜻한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불러 모으신 백성이요 모임이 기도 한 까닭에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한다. 4복음서에서 오직 두 번, 즉 이곳과 18장17절에만 ‘교회’ 란 단어가 나온다. 마태오는 ‘교회’와 유대인의 ‘회당(시나고가)’을 엄격히 구분하였다. ‘죽음’이라고 번역된 이 그리스어 낱말, ‘하데스(죽은 이들의 거처)’는 예수님의 교회 앞에서는 그 문이 닫혀지지 않을 성곽도시처럼 상상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교회는 죽음의 힘으로도 억눌려지지 않을 것이다.(역주: ‘교회들을 세우겠다’하시지 않고,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단 수로 표시 한 것은 예수님께서 충돌하는 여러 모양의 교회를 세우시거나 허용하실 뜻이 전혀 없음을 엿볼 수 있다.)
* 19절 : 이사야서 22, 15 이하에서 궁중의 시종장인 셉나의 뒤를 잇는 엘리아킴이 권위를 가지고 ‘열고’ ‘닫을 수 있는’ 다윗의 집 열쇠를 음미하면 열쇠의 성경적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맺고 푼다’는 의미는 랍비문헌에서 따온 것으로, ‘권위있는 가르침을 준다’는 의미와 ‘추방령을 해제하거나 내린다’는 의미 두 가지가 특히 중요하다. 이 열쇠에 대한 약속은 베드로만 받는다. 18장 18절에서는 제자들이 다 맺고 푸는 권한을 받게 되지만, 그 절(節)의 문맥으로 보아 추방령에 대한 권한만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 엿보인다. 열쇠가 ‘하늘나라의 열쇠’라는 것과 베드로가 이 땅 교회 안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하늘에서도 인정되리라는 것은 교회와 하늘나라가 동등하지는 않지만, 그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 복음 요약 :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의 대변자로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한 마르코 복음서의 고백은 여기서 상당히 수정되고 있다. 이 고백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에 관한 것이다. 주로 마태오만이 가지고 있던 특수한 문헌에서 옮겨 쓴 이 예수님의 응답은, 이 고백을 베드로에게만 허락된 하느님의 계시로 돌리며 (17절), 그를 교회가 세워질 반석으로 만든다(18절). 또 땅에서 맺고 푸는 이 제자의 권한이 하늘에서, 즉 하느님에 의해서 뒷받침될 것이라고 확인시켜 준다(19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가지 약속을 하신다. 첫째, 시몬베드로를 교회의 초석으로 삼아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교회 창립 약속(18절),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겠다는 약속(19a절), 맺고 푸는 권능을 주시겠다는 약속 (19b절)이다. 이는 베드로를 매우 우대하는 약속들이다. 이 약속의 말씀들은 베드로를 예수님의 수제자, 교회의 으뜸 사도로 높이 받들었던 시리아 교회의 전승이었는데 마태오가 이것들을 채집하여, 여기에 수록하였다.
♠ 대화 방향 :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그 주님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며, 동시에 나 역시 그 누구를 위해 주님의 삶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이는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십자가를 걸머지는 삶을 의미합니다. 만일 그러한 내적인 깊은 인식이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입장에서 볼 때, 주님 당신 앞에 놓여진 장애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잘못된 나의 믿음과 생활은 나의 이웃이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물이 되곤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면 그 속에 포함된 신앙적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형제들과 나눕시다...
♠ 참고 문헌 : ▪ 오늘 하루도 < 평일복음 묵상집 / 홍성만 지음 >
▪ 주석성경 신약 < 성요셉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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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1 >
하느님께서 주시는 십자가가 무겁기만 하고...
안산 원곡성당 FB
장 아가다 (소희)
안녕하세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잘 모르시겠지만, 얼마 전 세월호 사고로 하느님과 성모님 품에서 복사대장하고 있을 장준형 (사무엘)의 작은고모입니다.
사무엘은 제가 성서형제회원이라는 이유로 성거산성지도 여러 번 가고 그곳에서 예신의 꿈을 가졌었지요.
하지만 하느님은 사무엘이 더 필요하셨나 봅니다.
사실 전 성당에 다니고 나서부터 어딘지 모르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십자가가 무겁기만 하고 나에게만 주어지는 것 같아 짜증만 났습니다.
기도할 때도 고해성사를 볼 때도 항상 이런 화를 자주내곤 하였습니다.
이번 사고 직후에도 왜 사고자 명단에 없는지 빨리 시신이라도 안 보내주시는지 왜 하필 사무엘이 타고 가는 배인지... 많은 원망과 눈물을 보였습니다.
많은 화도 내고 울기도 해보고 두 손 모아 기도도 해보았습니다.
참 나빴죠? 하지만 사무엘이 처음 올라왔을 때는 너무 감사함에 눈물만 나오더군요.
그렇지만 사무엘의 시신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진도를 내려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시간과 우리 인간이 바라는 시간은 이토록 다르구나...’ 라고...
물론 지금도 사무엘 생각에 하루에도 열두 번도 울고 다시 맘을 잡고 ‘잘 살아야지... 그 녀석 몫까지 치열하게 살아야지...’ 란 생각을 수없이 합니다.
우습지만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것은 바로 신자 분들이셨습니다.
어린 녀석의 장례를 치를 생각을 하니 사실 막막했습니다.
친구 몇몇도 부모님의 반대로 안 올수도 있고 식구들도 어린동생들과 상처투성인 할머니 아빠 고모들 고모부….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준형이가 온다는 소식을 어떻게 아시고선 안치하는 순간부터 친구, 선후배, 그 어머니 아버지, 신자 분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많은 신부님들 타 본당 수녀님들의 사랑의 저희는 그냥 슬픔만 생각해도 될 정도 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신이 바뀌었다는 연락이 왔을 때는 일자분들께 죄송해서 얼굴도 못들 정도였습니다.
다시 우리사무엘을 찾아 왔을 때는 빈소도 차릴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너무 감사하게 본당신자분들과 총회장님 신부님께서 ‘이렇게 보낼 수 없다’ 하시며 본당 대강의실에 빈소를 차려주셨습니다.
아무나 빈소를 차릴 수 없고, 아무나 수녀님이 화환을 해주실 수 없는데... 어떻게 이 은혜를 모든 분들께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수로 신부님 수녀님들과 신자분들과 하느님, 성모님의 은혜를 갚아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고마운 분들과 사무엘을 사랑하고 지켜주던 친구들과 어르신들이 있어서 더 열심히 살아가면서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처럼 배움이 많지도 잘 하는 것도 없지만 제 직업이 간호사예요.
혹시 본당에서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모든 신부님 수녀님 신자분들... 그리고 우리 사무엘과 베로니카의 친구 선후배들 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이 모든 분들의 사랑 덕분에 우리 장준형(사무엘)을 꼭 하느님의 복사대장을 하고 있을거예요.
그리고 이번에 같이 간 친구들이 혹시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면 특유의 웃음과 친근함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서 함께 하리라 믿고 있어요.
모든 성서형제회 여러분의 기도, 감사드립니다.
못 쓰는 글 솜씨로 주절주절 썼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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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2 >
병상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
서울 당산동 산상수훈 팀 FB
김 효주아녜스 (향자)
병상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저를 찾으십니다.
빨리 병원에 다녀가라고... 늘 하셨던 말씀과 분명 다르셨을 텐데,
저는 그냥 그리워서 하시는 말씀이려니 생각하고 일을 해놓고 저녁에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고 당신이 돌아가신 뒤에 해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며 화를 내시는 어머님 말씀을 뒤로 하고 늘 해 왔던 내 생각대로....
불과 며칠 후 어머니는 혼수상태가 되셨고, 의식 없이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계시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죽음은 도적 같이 온다고 했지만 저와는 무관한 얘긴 줄 알았습니다.
살아계셔서 옆에서 간절히 들려주시고자 했던 어머님 말씀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제가 주님 말씀에는 얼마큼 귀 기울이면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해야 할 기도, 사랑, 봉사, 희생... 내일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그런 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시는 주님께서는 오늘도 간곡히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텐데,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복잡한 세상의 소리를 듣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지금 주님 앞에 불림을 받는다면....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모든 것을 영원할 것처럼 믿으며 지금의 소중함을 모르는 저에게 어머니가 서둘러 가시며 교훈을 남겨 주셨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저는 오늘도 어머니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던 죄스러움에 가슴 아파하며 후회합니다.
이 시대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나를 버리지 않고서는 참다운 부활은 체험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 윗자리에 주님 말씀을 놓고, 그 말씀에 귀 기울이며 알아듣고 실천하는 것에서 부활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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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봉사활동 소식 >
봄맞이 수녀원 봉사활동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FB
오 스테파노(광근)
이틀 전에 수녀원에 다녀왔습니다.
그간 벼르고 별렀던 수녀원 텃밭에 고추랑 상추랑 가지, 파 등등 올해는 수녀님들께서 부족함(?)없이 드시도록 되도록 많이 파종하였습니다.
지난 금요일(5/2) 장례미사를 마치고 수녀원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원곡성당 형제님 한 분과 자매님 한 분과 저와 이렇게 3명이 갔습니다.
사강 가서 농협 모종 장에서 고추, 상추, 가지, 파, 호박, 토마토, 수박, 단호박, 참외 등 여러 가지를 사가지고 수녀원에 가니, 안나 수녀님 한 분만 계시더군요.
수녀님께선 창고를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텃밭에 우선 고추랑 토마토를 심고 경당 쪽 담 밖에 호박 심을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없어서 다음에 심을 요량으로 수녀님께 매일 모종에 물 좀 주라 부탁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제(5/6) 오전 9시에 안산선부성당 형제님 한 분과 원곡성당형제님 한 분,그리고 자매님 한 분과 함께 안산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수녀원엔 아무도 안 계시더군요. 한참 봉사하다보니 점심때쯤 수녀님들께서 오셨습니다.
점심은 갖고 간 김밥과 라면으로 때웠습니다.
오늘 사가지고 간 옥수수와 사다놓은 파, 옥수수 씨앗 등을 다 심고 나니 오후 네 시 경이 다 되어 수녀님들께 인사드리고 바로 출발하였습니다.
*P.S :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다보니 홈피에 올릴 사진을 못 찍었네요.)
이번 이틀의 봉사기간 동안 이번일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기도를 해 주신 수녀님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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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4년 4월 1일 ~ 30일 수입 지출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