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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이 퇴근한 퍼시픽 보험회사. 부상당한 한 남자가 빈 사무실에 들어와 상관이자 보험 수사관인 바튼 키스를 향해, “나는 돈 때문에, 여자 때문에 살인을 했다”로 말문을 열고 자신의 지난 행적을 하나하나 녹음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 회사의 능력 있는 세일즈맨 월터 네프로, 이야기는 그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디트리히슨이라는 남자의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러 그의 집을 방문한 월터는 그곳에서 디트리히슨의 매력적인 아내 필리스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된다. 월터는 남편을 살해해 보험금을 탈 음모를 품고 있는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살인을 공모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디트리히슨에게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는 것처럼 속여 사망보험 에 가입하게 만들고 대중교통 재해 시 일반 재해 보험금의 두배를 지급받는 조건인 이중 배상금을 노려 디트리히슨이 기차를 타게 유도한다. 그리고 탑승 전 그를 살해하고 마치 사고사인 것처럼 꾸민다.
사고 뒤 바튼을 필두로 한 보험회사는 사건 조사에 착수한다. 냄새를 맡은 보험회사 대표와 달리 단순한 사고로만 생각하던 바튼은 26년간의 경험과 논리적인 추리로 점점 이 일이 살해 사건임을 직감하고, 월터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불안에 쫓기던 월터는 디트리히슨의 딸로부터 필리스가 디트리히슨의 아내를 살해했다는 것과,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과 달리 젊은 남자까지 따로 사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배신감으로 인해 월터는 결국 그녀를 찾아가 죽이고 회사로 돌아온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상관 바튼이 그 앞에 나타나고, 월터는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1. 영화사적 의미
〈이중배상〉은 필름누아르 작품의 교과서로 불리는 작품으로 1936년, 매거진 〈리버티〉에 발표된 제임스 M. 케인의 동명 소설을 빌리 와일더 감독과 하드보일드 장르의 거장 레이먼드 챈들러가 공동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빌리 와일더 감독은 기자 생활을 거쳐 시나리오작가로 영화계에 입문했는데, 그 경력을 반영한 듯 탄탄하게 짜인 〈이중배상〉의 각본은 완벽한 범죄 영화 시나리오의 모범으로 자리하고 있다.
영화는 월터가 바튼의 사무실에 와 음성을 녹음하여 자신의 과거를 모두 털어놓는 플래시백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빌리 와일더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극의 전개 방식으로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선셋대로〉에서도 유사하게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주로 사용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 장르의 구조와는 달리, 이미 극의 결과를 알려주고 간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소 흥미를 반감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비극적 결과를 알리고 전제함으로써 오히려 스토리를 탄탄하게 해주고 필름누아르의 비장미를 표현해주는 데는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원작의 스토리 라인을 대부분 따르고 있지만, 결말 부분의 처리와 월터와 딸 롤라의 관계 등에서는 조금 변화를 가했다. 특히 레이먼드 챈들러의 가세로 마치 영화를 보는 것보다 한 편의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해준다. 필름누아르 장르의 대표작인 〈말타의 매〉가 시각적 스타일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것과는 다소 다른 전개 방식으로 챈들러 소설에서 볼 수 있는 풍성한 대사의 향연이 뒷받침된다. 이는 월터와 그의 상사인 바튼이 주고받는 재치 있는 대사 장면에서 특히 도드라지게 사용된다.
특히 바튼 역을 연기한 에드워드 G. 로빈슨의 활약이 대단하다. 땅딸막한 체구로 코믹한 인상을 풍기며, 속사포 같은 대사를 쉬지 않고 펼쳐놓으며 어두운 극의 분위기에 활기를 더해준다. 월터는 필리스와 어두운 범죄의 세계를 구축하는 반면, 상사 바튼을 대할 때는 좀더 쾌활하고 진취적이며 평범한 보험 세일즈맨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이중배상〉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기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패러마운트가 다시 전환기를 구가할 때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한데, 〈나의 길을 가련다〉 〈선셋대로〉 〈셰인〉 〈이창〉 등의 작품이 비슷한 시기인 194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2. 주제
빌리 와일더 감독은 평범한 이미지를 가진 프레드 맥머레이의 속성을 〈이중배상〉의 테마와 연결시킨 측면도 없지 않다. 영화는 어느 날 한 여성을 만나고 치명적 유혹에 빠져 범죄에 가담하고 파멸해가는 한 남자의 비극적 최후를 통해 운명론을 피력하는 필름 누아르의 속성을 따르고 있다. 바로 선과 악의 경계에서 자칫 길을 잃고 자신을 나락에 빠뜨리고 마는 인간 내면의 나약한 속성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이는 특별한 사람이 아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임을 맥머레이의 이미지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3. 필름 누아르 스타일
〈이중배상〉은 미국 필름누아르의 서막을 연 원형과도 같은 작품이다. 필름누아르는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영향을 받아 탄생한 영화적 스타일로, 1940~50년대 절정기를 이루었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미국인들의 비관적 심리를 반영해, 주로 음울한 내용과 표현주의적 스타일이 결합된 스타일을 표방하고 있다.
〈이중배상〉은 하드보일드의 거장 레이먼드 챈들러가 빌리 와일더 감독과 함께 제임스 M. 케인의 소설을 각색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팜파탈 여성 캐릭터의 등장, 음울한 도시의 밤거리, 비장한 대사와 살인 사건, 비극적 최후 등을 조명함으로써 필름누아르의 대표적 형식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표현 양식에서도 필름누아르의 특징을 잘 느낄 수 있다.
월터의 플래시백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의 구조는 주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과거를 강조하기 위해 필름누아르에서 흔히 사용되는 형식이다. 밤 장면, 콘트라스트가 강한 조명을 활용해 불안한 인간의 심리를 나타내는 필름 누아르의 대표적 촬영 방식은 영화의 후반부 월터가 필리스와 대면한 장면에서 뚜렷하게 보여진다. 육중한 커튼으로 스며드는 빛을 통해 어둠에 가려진 인물의 표정이 효과적으로 구현된다.
4. 팜파탈
필름누아르를 규정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팜파탈(femme fatale)이다. 프랑스어로 ‘치명적인 여인’을 뜻하는 말로,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남성 캐릭터들을 파멸로 이끄는 섹시한 여성으로 그려지며, 스토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그렸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의 소재였다. 대표적인 팜파탈 배우는 고전 누아르영화의 마를렌 디트리히, 수잔 헤이워드를 비롯해 현대에 이르러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으로까지 이어진다.
〈이중배상〉의 필리스는 팜파탈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기억된다. 영화의 전반부 월터와의 첫 대면 장면에서 전형적인 금발의 미녀인 그녀는 일광욕을 하다가 타월로 몸을 가린 채 발찌를 걸고 나타나는데, 이때 월터가 그녀를 우러러보는 앙각숏과 2층 난간에 선 그녀가 월터를 내려다보는 부감숏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필리스의 신비감을 더하며 앞으로 닥쳐올 둘의 관계를 규정해준다.
필리스에게 첫눈에 반한 월터는 계단을 내려오는 그녀의 섹시하고 우아한 자태, 치명적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그를 사랑하는 척 감쪽같이 연기를 하지만, 월터보다 훨씬 치밀하고 정교한 두뇌를 가진 그녀는, 자신에게 눈이 먼 남자를 교묘하게 조정한다. 매혹적인 여성 필리스를 연기한 바버라 스탠윅은 이 작품으로 할리우드영화 팜파탈의 원조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다.
월터 네프(프레드 맥머레이) Fred Mac Murray (1908~1991) 미국 일리노이출신 189cm 평범한 이미지의 연기 위주 : 30대, 촉망받는 보험 세일즈맨으로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 디트리히슨이라는 남자의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러 갔다가 그의 젊은 아내 필리스의 꾐에 빠져, 범죄에 가담하게 되고 파멸해간다.
필리스 디트리히슨(바버라 스탠윅) Babara Stanwyck (1907~1990) 미국 뉴욕 출신 165cm, 헐리우드 황금기의 가장 섹시한 배우 평가, 팜파탈(femme fatale) 원조 배우 : 전형적인 팜파탈 유형의 여인.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에게 반한 월터를 이용한다. 배신감으로 분노한 월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바튼 키스(에드워드 G. 로빈슨) : 월터의 상사이자 보험조사관. 땅딸막한 체구와 수다스러운 캐릭터로 큰 키에 미남인 월터와 대조를 이루며 극의 활기를 더한다.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한 감과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결국 월터와 필리스의 범행을 밝혀낸다.
롤라 디트리히슨(진 헤더) : 필리스의 딸. 필리스의 과거 행적을 알고 그녀를 두려워한다. 아버지의 죽음 뒤, 월터에게 필리스가 자신의 친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특히 자신의 남자친구 니노가 필리스와 사귀는 걸 알고는 좌절에 빠진다.
디트리히슨(톰 파워스) : 필리스의 나이 든 남편. 석유회사 사장으로, 전처가 죽고 나서 필리스와 재혼했다. 고집 세고 강압적인 캐릭터다.
ㅇ 살인에서도 때로는 인동꽃 향기가 난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 바튼 키즈바튼은 결국 월터와 필리스의 범행을 밝혀낸다. 처음 젊고 매력적인 디트리히슨의 아내를 살인자로 지목하지만, 월터에 대해 의심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필리스의 배신을 알게 된 월터는 그녀와 반목하고, 결국 인동 향기 가득한 저택에서 서로에게 총을 쏜 뒤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부상을 입은 월터는 사무실에서 바튼과 맞닥뜨리지만 비난보다는 연민을 나타낸다. 월터는 도주를 할 수 있게 잠깐의 시간을 요청하지만 결국 쓰러진다. 살인 사건이라는 강력범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바튼의 대사와 인동꽃 향기가 퍼지는 정원의 분위기 덕분에 필름누아르의 낭만적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ㅇ 그 운명이라는 게 절 꼼짝 못하게 했죠. 이제 스위치만 누르면 됐죠. 톱니바퀴가 맞물려 있었죠. 생각할 시간은 이미 지나갔죠.
- 월터디트리히슨을 죽이고 범행에 가담한 월터. 바튼에게 전하는 녹음의 내용. 모든 사건이 끝나고 난 뒤 회고조로 전하는 말이기에, 자기반성과 후회조의 내용과 어투로 전개된다. 특히 운명에 의해 파멸해가는 월터 자신의 모습은, 필름누아르 속 인물들의 전형적인 캐릭터를 구축해낸다. 완벽한 계획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지만, 월터는 이미 그때부터 뭔가 잘못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알고 불안에 시달린다.
ㅇ 두명이서 살인을 하는 것은 전차에 함께 타는 것과 같다더군. 따로 내릴 수가 없어서 붙어다녀야 하고, 무덤으로 연결된 마지막까지 역까지 함께 있어야 하지.
- 월터필리스의 계약을 알게 된 월터가 한 말. 범행 뒤 둘은 슈퍼마켓에서 몰래 접선을 하는데, 그곳에서 필리스는 월터에게 자신들이 같은 배를 탔으니,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생사를 함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월터는 필리스에게 자신이 철저하게 배신당한 것을 알고 난 뒤 그녀를 응징하기에 이른다. 비록 범행에 가담했지만, 필리스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한 행동으로 월터는 돈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 하지 않고 순순히 죄를 인정한다.
1936년 매거진 〈리버티〉에 발표된 제임스 M. 케인의 동명 소설
네이버 지식백과] 이중배상 [Double Indemnity] (세계영화작품사전)
하드보일드[hard-boiled ]
1930년을 전후하여 미국문학에 등장한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
자연주의적인, 또는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로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하드보일드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1953년 퓰리처상을 받고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원래 ‘계란을 완숙하다’라는 뜻의 형용사이지만, 계란을 완숙하면 더 단단해진다는 점에서 전의(轉義)하여 ‘비정 ·냉혹’이란 뜻의 문학용어가 되었다. 개괄적으로 자연주의적인, 또는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 또는 도덕적 판단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비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하는 수법을 의미한다.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이 수법은 특히 추리소설에서 추리보다는 행동에 중점을 두는 하나의 유형으로서 ‘하드보일드파’를 낳게 하였고, 코넌 도일(Arthur Conan Doyle) 류의 ‘계획된 것’과는 명확하게 구별된다. 원래 이 장르는 1920년대 금주령시대의 산물이라고 하며,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도스 파소스(Dos Passos) 등 미국의 순수문학 작가들의 문학적 교훈을 적용시키려고 한다.
이 방법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추리소설은 대실 해밋(Samuel Dashiell Hammett)의 《플라이 페이퍼 Fly Paper》(1929)로 알려져 있으며, 이밖에도 캐롤 존 델리(Carroll John Daly),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 등이 활약하였다. 해밋은 이밖에 《몰타의 매》(1930) 《유령의 열쇠》(1931) 《그림자 없는 사나이》(1932) 등을 발표해 하드보일드파 탐정소설의 제1인자로 인정받았다. 한편, 영화에서도 필름누아르 장르에서 이러한 수법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하드보일드 풍의 대표작으로는 테이 가넷이 연출한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1946), 존 휴스턴이 연출한 《몰타의 매》(1941) 등이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