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이백평쯤 되는 밀보리 밭 한 뙈기쯤 가지고 싶다.
보리밭 푸르를 때 맷새가 날아 오르는 배경으로 숨 넘어가듯 노을이 지는 눈물 쏙 빠지는
풍경 속으로 무른 바람이 오고 또 갔으면 한다.
흰 색의 커다란 말 몇마리는 욕심이지만 울음 소리 고운 흑염소 몇 마리쯤은 놓아 먹이고
싶다.
별똥별 숨는 먼 산역 외로운 숯막에서 잠드는 늙어 외로운 산지기의 거친 노동을 바라보며
예전 무릅 바침으로 들었던 무서운 전설도 꼭 전하고 싶다.
"성민아 예나야, 할머니께 들었던 이야기인데" 하며
콩콩 뛰는 가슴 마주 대고 늘 착한 사람들은 약속 받는 복 받음도 선물 하고 싶다.
볼 살 트는 추운 겨울날 꼭꼭 다져 밟으며 아픔을 이겨낸 보리싹의 지혜와 용기도 함께,
지난 겨울 언덕을 타고 넘는 쎈 바람에 가지 꺽인 뽕나무 가득 해걸이도 없이
진홍빛 오디 물이 오를때 부터 쐐기풀이 자라나는 밭두렁으로 푸르름이 유난히 짙어지고
콧김 쎈 싸움소 머리맡으로 할미새가 날아 가는 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회 상>
이맘때쯤이면 진달레 꽃무덤 속에 모여 사는 문둥이들은 저들만의 낮으막한 소리로 노랠
불렀다.
"애기 간 그리운 사람아, 향내 나는 창꽃 화전 잎에 고이 고이 싸서 먹으리,
아가야, 들일 나간 엄마가 그리우면 향내 나는 창꽃 숲속으로 걸어 오렴, 천천히 이쁘게"
키큰 사람들은 말했다, "가지 마라 진달레 꽃 밭"
달이 높았다. 저 좋은 맑음, 그런데 건너 마을 분이는 달을 품고 죽었다.
얼굴 고운 분이가 맑기 만한 달을 품고 목을 맸다는 바람결 소리 전해 듣던날 좁다란
산길 가득 별이 떨어지고 또 떨어져 발 아레서 한 움큼씩 서걱이고 있었다.
"모를게 사람 일이라더니"
절구질로 하루를 걸러 내던 허리 아픈 엄마는 쓰게 웃었다.
그레도 세월은 강물을 따라 잘도 흘러만 갔다.
선 잠깬 새끼 노루 서툰 발길질에도 화살만 같다던 세월은 날아와 박히고 멈추지 않았다.
"그레 사람은 죽는 단다" 육이오때 총맞아 죽은 외삼촌은 엄마에겐 잘난 사람이였다.
의지 없는 어린날 머릿짐에 눌려 키도 못컸다며 외롭게 웃던 엄마도
언젠가는 죽을 거란다. "이 지겨운 놈의 세상 미련없다 내는 "
사람들이 살아진 길을 따라 시커먼 아버지는오고 갔다.
가끔 순사가 헛가리 속에 묻어둔 밀주 단속을 핑계치고 가는 날이면 하루 해는 유난히
길었다.
"미친 짓이다"
키를 낮춘 등잔불 아레 식은 질화로 가득 서캐를 털어내던 엄마의 가슴 앓이는 그때부터
뿌리를 내려 가고 있었다.
물봉선이 유난히 곱던 그해 개 살구는 해걸이로 아팠다, 차운 돌 하나 올려 주며
"아프지마" 시린 이마 가득 눈물이 고여 왔다.
너희들 위해 보리밭 한 뙈기라도 있었으며너 좋겠다던 엄마는 아픈 가슴 가득 밤마다
보리 타작을 해대고 있었다.
밤 부엉이가 서럽던 날들이였다.
<현실>
마흔 갓 넘긴 아내는 굴뚝 하나 가득 쑥빛 연기 올려 주며 누룽지 눌어 않는 가마솥 가를
하얀색 행주로 훔쳐 주겠지.
네 식구 먹기엔 조금 더 많은 저녁밥으로 혹여 지나 가는 길손 몫까지 챙겨 놓으리,
수저 한 벌 더 놓은 수고로움은 작으만 감사에 몫으로 충분 하리니.
누구라도 사랑 하는 연인이 생긴다면 알곡 익어 가는 보리밭 가를 걷게 하리.
아주 느릿하게 또 아름답게.
"보리밭 너무 예쁘다"
"저 보리밭 주인도 착할 거야, 그치"
그들 웃음 띤 속삭임으로 귓볼을 간지럽힐때 보리밭이 조금더 익어 가더라도 추수를
며칠쯤 늦쳐도 좋으리,
훗날에 훗날 내 자식이 야윈 무릅 바침에 조을듯 별똥별 지는 먼 산역 바라보며
부끄러운 듯 우는 밤부엉이 슬픈 전설을 듣게 될거야,
동학으로 쫓겨 자리 잡은 깊은 산골, 언 돌을 파내고 오래 묵은 소나무의 질긴 뿌리를
끊어 내던 할아버지의 불끈한 근육과 어린 내가 이해 하지 못하던 아버지의 밤길이
꼭 외로운 길 만은 아니였다고 전하고 싶다.
이제 보리싹 잘 트는 언덕으로 주소도 정하여 놓는다면 평생의 수고로움에 하나님도
화답 할거야,
"그럼 그 착한 삶이"
<바램>
다만 너무 세월이 너무 빠르지 않았으면 한다.
너무 많은 아픔들을 잊지 않았으면
조금 못난 오늘에 좌절하지 않고 조금더 밝은 내일이 올거라고 믿는 삶이 였으면 한다.
누군 가는 내가 떠나가는 뒷 모습을 보면서 간이역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리라.믿고싶다.
쓸쓸하지 않게.
향나무를 배경으로 서서 바리바리 싼 도시락도 건네주며 그간 참 수고 많았소 란 이야기를 전하리라.
가치 없는 인생이 있을까?
어느날 반백의 머리로 찾아간 국민학교 운동장이 쉬지않고 달려 가기에도 너무 작은
운동장이 아니였으면 좋겠다.
같이 늙어버린 빈 그네 에 앉아 기억조차 생경한 이름들을 떠올리고 조용히 적고 싶다.
이유 없이 사랑했던 사람아, 늘 배고팠던 사람아, 횟배를 앓고 독한 석유를 먹고 아침
마다 횟충에 숫자를 세던 사람아, 도장 버짐으로 뭉턱뭉턱 끊어지던 머리통을 이고 살던
사람아, 어직 외지 못한 칠팔에 오십육이 있더냐? 키 낮은 동생을 업어 주러 나간 사람아
왜 돌아 오지 않은 것이냐?
그레도 다시 쓴다, 그때의 지난한 삶이 지금 보다는 훨씬 아름다웠노라고.
<다시 현실>
고향 선산의 벌초를 마치고 내려오던 산길에서 국민학교 동창의 부고를 들었다.
"고생만 하다 갔지요, 그 지랄맞은 성질 때문에"
서른을 갓 넘긴 아내는 마흔의 얼굴로 말했다.
열 몇살 차이로 도적놈 소리를 듣던 그는 정말로 옆에 없었다.
마흔이 넘어 서면서 부고를 받는다는 것이 오래 잊은 사람의 엽서 한 장 달랑 받는듯
하다니 세속에 물든 내가 싫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아직 애들도 어린데"
부의금처럼 말을 던지고 제수씨라 불리던 얼굴 고운 아내의 눈물 젖은 슬픈 손을
놓았다.
그녀가 새로 시작 했다는 술집의 간판이 높은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봉평강 가으로 한스런 메밀꽃이 한무더기 내려 앉아있어 참 예뻤다.이유없이 눈물이 솟았다.
설령 대관령 넘은 찬 바람이 머릿칼을 부스스 하게 헝크러트려도 메밀꽃은 지고 단단한
열매를 안게 되리라.
그레 사노라면 여린 꽃대도 이를 악물고 단단 해지는 거야.
붉은 립스틱을 진하게 칠한 입술로 낯선 투사의 인사를 주고 받으며 우리는 돌아섰다.
노을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청태산 쯤에서 고단한 담배 한 개피를 물었다.
이상하게 가슴 한 켠이 아려오고 기침이 시작 되였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돌아 온 곳으로 갈길은 아직 한참이나 멀었는데 휴대폰이 요란스럽다.
"자고 올거야"
아무레도 돌아 가는 길이 갈길보다는 훨씬 짧아 보였다.
벌초를 마치고 시원한 맥주 한잔 안한다는 것이 갑자기 우스운 일이 되는 것만 같았다.
무엇을 잃어 버리고 온 사람처럼 차를 돌려 달리고 있었다,
바람은 낮으막하고 메밀꽃은 쓰러지고 있었다.
첫댓글한 사람의 이력을 엿보는데는 에세이 만큼 좋은 글이 없다라는 생각입니다. 시 보다도 소설보다도 화자의 내면세계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글이 산문인가 합니다. 님의 글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인생을 오래산분 같기도 하구요(아니지요?)간간 오타가 눈에 띄어 흠집이 보이며 단락을 짧게 쳐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첫댓글 한 사람의 이력을 엿보는데는 에세이 만큼 좋은 글이 없다라는 생각입니다. 시 보다도 소설보다도 화자의 내면세계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글이 산문인가 합니다. 님의 글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인생을 오래산분 같기도 하구요(아니지요?)간간 오타가 눈에 띄어 흠집이 보이며 단락을 짧게 쳐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