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라순력도 (耽羅巡歷圖) 보물 652호
- 이형상 목사 /화공 김남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는 조선 숙종때인 1702년에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에 부임하여 제주도내 각 고을을 순력하면서 당시 거행했던 여러 행사장면과 자연, 역사, 산물, 풍속 등을 제주목 소속 화공(畵工) 김남길(金南吉)로 하여금 40폭의 채색그림으로 그리게 한 화첩이다.
탐라순력도 - 감귤박물관 (seogwipo.go.kr)
(특별전_탐라순력도연계)랜선 탐라순력도 여행
(특별전_탐라순력도연계)랜선 탐라순력도 여행 (youtube.com)
기획특별전 「그림에 담은 옛 제주의 기억, 탐라순력도('20.11.10~'21.2.14)」
[탐라순력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은 탐라순력도
[탐라순력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은 탐라순력도 (youtube.com)
[탐라순력도] 300년 전 제주의 기억
[탐라순력도] 300년 전 제주의 기억 (youtube.com)
제주MBC 특집 다큐멘터리 '제주의 기억을 걷다, 탐라순력도'
제주MBC 특집 다큐멘터리 '제주의 기억을 걷다, 탐라순력도' (youtube.com)
https://jejumbc.com/programme
[국립제주박물관] 탐라국 이야기
(450) [국립제주박물관] 탐라국 이야기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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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담은 옛 제주의 기억, 탐라순력도
2020-11-10 ~ 2021-02-14 국립제주박물관 기획전시실
(특별전_탐라순력도연계)랜선 탐라순력도 여행
(특별전_탐라순력도연계)랜선 탐라순력도 여행 (youtube.com)
상세설명
국립제주박물관은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와 함께 보물 제652-6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를 집중 조명하는 특별전‘그림에 담은 옛 제주의 기억, 탐라순력도’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탐라순력도와 함께 제작 당시의 시대 상황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17건의 작품도 선보입니다.
탐라순력도는 1702년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순력(巡歷)을 실시하고 남긴 화첩입니다.
이형상은 순력과 재임 중 중요한 순간들을 1703년 화공(畫工) 김남길(金南吉)에게 그리게 했습니다.
총 41면의 그림과 서문 2면으로 구성된 탐라순력도에는 1700년을 전후한 시기 제주 사회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제주의 대표 문화유산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소개되었을 뿐 기록자이자 저술가로서 이형상 목사의 여러 면모와 지방관들의 그림 제작이라는 조선 후기 문화사적 배경을 조명하는데 미흡했었습니다.
이번 전시로 탐라순력도의 가치를 높이고 이해의 폭을 넓히며 외연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전시장에는 은은한 조명 아래 놓인 탐라순력도가 시선을 사로잡는 가운데 이형상 목사가 남긴 보물들과 빼어난 그림들이 함께 선보입니다.
전시품 수량은 많지 않지만, 보물 6건을 포함해 국가지정문화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전시장은 명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형상 목사의 후손들이 간직하고 있던 보물 652호 《이형상 수고본(手稿本)》중 <강도지(江都志)>, <남환박물(南宦博物)>, <악학편고(樂學便考)>, <악학습령(樂學拾零)> 등 주요 저술과 이형상 목사의 거문고, 인장 등 국가민속문화재 119호인 <병와 이형상 유품>을 한자리에 모아, 조선 후기 지방관의 고민과 역할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조선 후기 지방관의 통치 행위를 그린《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등의 그림과 함께 17세기 말 제주목사로 재직한 이익태의《탐라십경도(耽羅十景圖)》를 계승한 12폭의 제주 풍경 그림이 선보입니다.
국립제주박물관은 한 번에 2면밖에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초고해상 디지털 스캔 작업을 실시하고 이를 대형 영상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관람객이 탐라순력도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전시하는 면을 바꿀 계획이며 세부 장면을 다양하게 담은 도록도 발간하였습니다.
탐라순력도 전시면 교체 일정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탐라순력도의 연구 기반을 확대를 위한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와의 첫 협력의 결과물이며, 앞으로도 공동 학술대회 등 다양한 조사·학술행사로 탐라순력도가 제주를 넘어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또한 이번 전시는 조선 후기 문화사에서 탐라순력도가 갖는 가치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전시와 연계하여 오는 11월 20일(금)에는 탐라순력도의 문화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온라인 학술 세미나가 준비되어 있으며, 다양한 학교 및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과 온라인 콘텐츠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탐라순력도 전시면 교체 일정]
◇ 1주 2020.11.10. ~ 2020.11.15. /감귤봉진(柑橘封進), 귤림풍악(橘林風樂)
◇ 2주 2020.11.17. ~ 2020.11.22. /교래대렵(橋來大獵), 산장구마(山場駈馬)
◇ 3주 2020.11.24. ~ 2020.11.29. /성산관일(城山觀日), 우도점마(牛島點馬)
◇ 4주 2020.12.01. ~ 2020.12.06. /화북성조(禾北城操), 조천조점(朝天操點)
◇ 5주 2020.12.08. ~ 2020.12.13. /김녕관굴(金寧觀窟), 별방조점(別防操點)
◇ 6주 2020.12.15. ~ 2020.12.20. /정의강사(旌義講射), 정방탐승(正方探勝)
◇ 7주 2020.12.22. ~ 2020.12.27 /천연사후(天淵射帿), 서귀조점(西歸操點)
◇ 8주 2020.12.29. ~ 2021.01.03. /현폭사후(懸瀑射帿), 고원방고(羔園訪古)
◇ 9주 2021.01.05. ~ 2021.01.10. /산방배작(山房盃酌), 대정조점(大靜操點)
◇ 10주 2021.01.12. ~ 2021.01.17. /대정배전(大靜拜箋), 대정양로(大靜養老)
◇ 11주 2021.01.19. ~ 2021.01.24. /제주조점(濟州操點), 제주전최(濟州殿最)
◇ 12주 2021. 1. 26 ~ 2021. 1.31. /제주사회(濟州射會), 제주양로(濟州養老)
◇ 13주 2021. 2. 2. ~ 2021. 2. 7. /병담범주(屛潭泛舟), 건포배은(巾浦拜恩)
◇ 14주 2021. 2. 9. ~ 2021. 2.14. /비양방록(飛揚放鹿), 서문(序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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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만나는 탐라순력도 특별전‘그림에 담은... - 국립제주박물관-Jeju National Museum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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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그리고 제주
박수현 저자(글)
바람길 · 2022년 07월 15일
탐라그리고제주 (youtube.com)
1702년 이형상 목사의 제주 순력 따라가기!
순력길을 따라 도는 제주 한바퀴.
1702년 제주목에 파견된 이형상 목사는 10월 29일부터 11월 19일까지 21일 동안 제주 전체를 돌아보며 방어진과 군사들을 살피고 무기와 진상품을 점검하면서 노인들을 위한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화공 오씨에게 그림으로 남기게 했는데 이 책은 그렇게 남겨진 그림인 탐라순력도를 따라 제주 전체를 돌아보는 책이다.
첫 번째 장 "제주"에서는 제주 전체에 대해 알 수 있는 장으로 탐라 개국 설화를 알아보고 보길도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그린 호연금서와 제주 전체 지도인 한라장촉을 통해 제주의 산, 오름, 포구, 돌하르방에 대해 살펴본다. 순력 전 진상품인 말을 살펴보는 공마봉진과 순력 중 성판악에서 말을 점검한 산장구마를 통해 제주말에 대해 알아보고 제주목 망경루 앞에서 감귤을 정리하는 감귤봉진과 망경루 뒤편 귤밭에서 풍악을 즐기는 귤림풍악을 통해 제주의 또 다른 특산물인 귤을 살핀다. 순력 후 제주목에 사는 노인들을 초대해 잔치를 베푼 제주양로를 통해서는 제주의 여인과 유배인을 통해 제주 문화를 살펴보고 마지막 건포배은에서는 투철한 유교 사상으로 신당 129곳과 사찰 5곳을 허문 내용을 통해 제주의 민간신앙을 알아보려 한다.
두 번째 장 "제주목"은 용연에서 시작해 제주읍성, 화북, 조천, 김녕굴과 별방진을 차례로 방문하고 해녀와 너븐숭이 4.3 기념관에 알아보며 세 번째 장 "정의현"에서는 우도, 성산포, 수산진, 정의현성, 정방폭포와 서귀포 그리고 천지연을 따라 가 본다. 정의현성은 지금은 성읍민속마을로 더 알려진 곳으로 민속자료 제 188호로 제주의 무, 유형 문화재와 옛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네 번째 장은 "대정현"을 방문한 내용으로 천제연 폭포, 산방산, 모슬포, 차귀진을 방문하고 대정현에서 추사 김정희의 유배 생활에서 제주의 모습을 찾아본다. 마지막 장 "다시 제주목"에서는 명월포, 비양도, 애월을 방문하고 명월 근처 항파두리에서 항몽 유적과 삼별초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박수현
75일의 세계여행 후,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조선역사이야기 '궁'을 썼으며 에세이 '나는 갱년기다'를 2020년 출간 후 2021년 신라 이야기 '릉'을 썼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여행서점 책방지기로 살아간다.
목차
“제주 섬이 만들어진 내용은 설문대할망 설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선문대할망, 설만두할망, 설명지 할망, 세명뒤할망 등으로 불리는 설문대할망이 바다의 흙을 퍼 치마에 담아 제주를 만들고, 다시 흙을 일 곱 번 떠 놓아 한라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라산을 쌓기 위해 흙을 퍼 나를 때 설문대할망 치마의 터진 부분으로 흙이 새어 나와 360여 개의 오름이 되었고 한라산 봉우리가 너무 뾰족해서 그 부분을 꺾어 잡 아 던지니, 아랫부분은 움푹 파여 백록담이 되고 윗부분은 제주 서남쪽의 산방산이 되었다고 한다.
제주는 180만 년 전 바다에서 화산활동이 일어나 만들어진 화산섬으로, 화산활동 후 한참이 지난 후인 약 2만 5천 년 전 섬 가운데서 용암이 솟아나 한라산이 만들어졌으며 주변의 작은 화산들이 터지면서 여 러 오름이 생겼다. 그 후 한라산에서 다시 용암이 솟았는데 점성이 강해 멀리 가지 못하고 분화구를 덮으 며 봉우리가 생겨났고 안에서 일어난 폭발로 꼭대기가 무너져 백록담이 생겼다.” P17
“한라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고려시대부터 음력 2월에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 북쪽에 마련된 단에서 산신제를 지냈는데 한라산이 너무 추워서 산신제를 지내러 갔던 백성들이 추위에 얼어 죽기도 했다. 이를 알게 된 제주 목사 이약동이 1469년(예종 1)에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산천단에 묘단을 세우고 산신제를 지내게 했으며 지금까지 산신제가 열리고 있다. 산천단에서는 이약동 목사의 사적비를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8그루의 흑송 또는 해송으로 불리는 곰솔을 볼 수 있다.” P28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제주는 돌덩이를 이용해 담을 쌓고 바닷가에서는 돌담을 쌓아 원담을 만들었으며 배가 드나드는 포구도 만들었고 바닷가와 해안 마을에서는 돌을 쌓아 성벽을 만들어 적의 침입을 막았다. 더불어 돌을 깎고 다듬어 돌테와 돌확, 돌고리, 연자매, 돌등잔 등 생활 도구를 만들 어 썼으며 큰 돌덩이를 깎아 돌하르방을 만들어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고, 동자석을 무덤 앞에 두어 영혼 의 문을 지키게 했다.” P34
“제주에는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해지는데 제주목사 이원진은 그 이유를 탐라지에서 "제주 가운데 한라산이 있어 남쪽 큰 바다의 독기는 산에 막히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기운이 더운 습기와 열기를 몰 아내기 때문"이며, "제주 안에서도 한라산 남쪽에 비하여 북쪽이 더욱 장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노인성을 보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어 노인성이 나타나면 기록으로 남 겼고 조선시대에는 해마다 춘분에 노인성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제주에서는 노인성 관측이 쉬워 장수하는 이가 많다고 전해진다. 이는 노인성이 고도가 매우 낮아 지구 북반구의 중위도 지역에서는 관측이 쉽지 않고 남쪽 하늘에 잠깐 나타나기 때문이다.” P47
“제주목 관아와 그 주변을 둘러싼 제주읍성은 1105년(고려 숙종 10)에 지어졌는데 탐라국 시절부터 있던 성곽을 이용해 지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고려 말부터 출몰한 왜구는 서해안과 중국까지 진출했는데 제주는 그 길목에 있어 잦은 왜구의 침입에 읍성들은 방어목적을 겸했다. 동쪽의 산지천, 서쪽의 병문천을 자연 해자로 이용해 성을 쌓았고 성안에 우물이 없어 1565년(중종 20)에 성을 넓혀 산지천과 지금은 사라진 가락천이 성안에 들어오게 됐지만 폭우 때마다 산지천이 범람하자 1780년(정조 4) 옛성길을 따라 성곽을 하나 더 두르고 남문을 소민문, 북문을 수복문이라 했다.” P58
“제주말로 너븐숭이는 넓은 돌밭을 뜻하는데 어린 아기가 병에 걸려 죽으면 이곳에 묻었다고 한다. 너븐숭이가 있는 북촌리에는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가가 많았고 해방 후에는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치 조직이 활성 화됐던 곳으로 북촌리 청년들에 의해 경찰관 폭행, 우도 지서장 납치 사건이 일어났다. 1948년 12월 16일에 무 장대에 협조하던 마을 주민 24명을 “난시빌레"에서 집단 총살했고 1949년 1월 17일 북촌국민학교를 중심으로 당팟과 너븐숭이에서 남녀노소 400명 이상을 집단 총살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시체를 수습했으나 어린아이 나 무연고자의 경우 집단 매장을 했는데 이곳의 무덤 모두가 4.3 사건의 무덤은 아니지만 20여 기 이상의 애기 무덤이 남아 있다. ” P76
“산방배작은 산방굴에서 여러 사람이 글을 짓고 문학을 논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송악산, 형제도, 군산, 감산, 용두 등이 보이며, 도로, 산방연대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으며 사계리 포구가 흑로포로 표기 되어 있다. 한라산에서 사냥하던 사냥꾼이 허공을 향해 몇 번의 화살을 쏘아 댔는데 화살 하나가 옥황상 제의 엉덩이를 건드렸고 화가 난 옥황상제는 옆에 있는 한라산 꼭대기를 뽑아 던져버렸는데 그것이 바로 산방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비교적 평평한 땅 위에 종처럼 생긴 화산인 산방산은 70~80만 년(한라산은 약 2만 5천 년) 전에 생긴 것으로 추정돼, 제주도 지표 지질을 구성하고 있는 화산암 중 가 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분화구가 없다.” P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