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살기
2024.7.2.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 시집이 1980년대 서점가를 휩쓸었다. 지금 그 시집의 인기는 모든 유행처럼 시들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는 점점 ‘홀로서기’를 해야만 한다.
아이가 자라라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성숙만이 아니라, 부모의 보살핌 없이 혼자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날갯짓할 줄 알게 된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 자기의 삶을 헤쳐 나가듯이 말이다. 그런데, 왜 물질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홀로서기를 넘어서 혼자 살기를 하게 된 것일까?
수렵 채집으로 시작한 인류의 역사는 농업과 정착 생활을 하기 전까지 무리를 지어 떠도는 삶을 살았다. 그 무리는 하나의 운명공동체였다. 맹수를 만나면 무리가 함께 돌멩이를 던지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무리를 지켜야 했다. 창고에 쌓아둘 식량도 없고, 보관할 방법도 모르는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먹을 게 많으면 나누어 포식하는 것이었다. 먹거리가 부족하면 서로 조금씩 나누어 먹고 함께 배고픔을 견뎌내야 했다. 이렇게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조차 나눠야 하는 인류의 조상에게 한 무리의 생존은 언제나 철저한 협동과 공동 책임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러니, 육아와 약자의 보호도 무리 전체의 책임이었다.
그러다 농사와 어업 등 정착 생활의 시작은 무리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안정된 식량 조달이 가능해지면서 부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육아의 핵심적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체력이 좋은 성인 남성이 생계를 주로 책임지고, 아내는 그의 도움으로 자녀를 낳아 키우는 일종의 분업, 역할의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부부가 키운 아이들이 자라 늙어 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부모를 봉양했다. 이런 체제가 제대로 유지되려면, 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효도가 권장되어야만 하는 사회적 덕목이었다. 대가족이라 불리는 이런 전통 가족은 산업화, 도시화하기 전까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바탕을 이루는 조직이었다.
산업화는 영국을 선두로 한 서유럽에서도 겨우 200여 년 전에야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는 농촌 인구를 도시로 집중시키고,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아이들이 노동에서 해방되어 모든 어린이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열렸다. 구전 지식, 현장 교육을 통해서도 유지되는 농어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가 아니라 체계적 교육을 받아야만 가치 있는 직업인이 되고, 생산성이 높아지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근육보다 지식이 두뇌가 중요해지는 산업 현장에서 여성은 점점 남성과 함께 생산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1, 2차 세계 대전이라는 국가 총력전이 이런 여성의 산업 참여를 촉진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단지, 봉제와 의류 공장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여성은 남성과 일자리를 다툴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군대조차도 고정 관념이 여성의 광범위한 참여를 막는 최대 장애물이라 보인다.
이렇게 여성이 가정 밖의 산업 활동에서 남성이 하던 임무를 맡으면서, 남성은 상대적으로 수입이 줄어들고 더는 혼자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되어 갔다. 경제력을 확보한 여성은 경제적 독립과 더불어 발언권을 확대했다. 복지의 확대와 여권의 신장은 가정에서 여성이 더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제는 가사 노동 시간이 줄고, 전통적으로 가정 내에서 충족되고 만들던 많은 일과 물건이 외부에서 구매해야 하는 서비스와 제품이 되었다. 이에 따라서 소비 규모가 늘고, 이 늘어난 지출을 뒷받침하기 위해 더 많은 가족 성원이 노동에 참여해야만 했다. 더는 아이가 자라 늙은 부모를 보살필 경제적 시간적 여력이 없게 되었다. 남녀 모두 가정 밖에서 산업 활동에 참여하느라 누구도 전적으로 가정을, 자녀를 돌볼 수 없다. 남자건 여자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생활 방식대로 살려면 노부모는커녕 자기 자녀도 온전히 돌볼 수 없이 각자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버지나 어머니 어느 한쪽이 아니라 성인 남녀는 모두 가정 밖에서 소득을 올려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부부가 남편에게나 아내에게나 의존하지 않고, 각자 독립 경제를 영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누구도 상대방의 생활을 책임지려고 하지도 않고 할 능력도 없이 제 앞가림하기에만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굶주림의 공포에서 벗어난 현대의 인류가 남녀 모두 가정 밖의 경제활동에만 몰입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현재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던 거의 모든 일들이 금전으로 평가되는 경제 생산 활동으로 바뀌는 만큼 가정은 그 역할도 줄어들고, 가정에 머무는 시간도 줄어들게 되었다. 이런 가정의 부실화, 공동화는 내 삶만도 책임지기 버거운 현대인을 양산했다. 이들은 배우자를 만나고, 그를/그녀를 부양할 염두를 못 내는 현대의 젊은이다. 그런 그들이 어찌 자녀를 낳아 기를 꿈을 꿀 수 있을까? 내 노후를 뒷바라지해 주지도 못하고 나보다 잘 살 희망이 없는 미래의 세대를 말이다. 세상은 승자 독식으로 변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을 쳐다보며 절망에 빠져드는데.
산업화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선진 사회 모두가 결혼과 출산의 급감에 따른 인구 감소의 위기에 처해 있다. 무엇이 해법일까? 수명의 증가를 감당할 수 없는 연금 고갈, 미래 사회를 지탱할 수 없는 인구 구조의 역전은 정착 사회를 지탱해 온 가정의 해체에 그 원인이 있다. 무리 전체가 운명 공동체였던 사회가 가족 운명 공동체로 바꾸더니 이제는 핵가족도 모자라 1, 2인 가구가 주류가 되었다. 이렇게 가족을 부양할 능력도, 의지도 없이 혼자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현재의 시대 조류와 사회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본다. 사람은 저 혼자만 살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타인과 힘을 합치고, 의지하고, 도우며 위기를 극복하면서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문명을 발달시켜 왔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