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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3월 27일 목요일
[(자)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백성에게, 주님께서 명령하신 길만 온전히 걸으면 잘될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당신을 반대하는 자고, 당신과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민족이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7,23-2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백성에게 23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24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25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모든 종들, 곧 예언자들을 날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보냈다.
26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부르더라도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28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말을 못 하는 이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마귀를 쫓아내신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두 부류의 사람들이 다루어집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그분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부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그 말씀의 내용을 보면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에 대한 일종의 답변인 것 같습니다.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는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듯합니다. 마치 베엘제불의 힘을 빌렸을 것이라는 생각도 그럴 만하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아예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표징을 보여 주셨는데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다른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이 모습은 제1독서에 나오는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의 사람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이미 말씀을 전하셨지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는 표징을 보여 주실 때 적어도 그들은 그 자리에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도 시련 속에서 하느님께 구체적인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이미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결코 잊지 않을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한창현 모세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인터넷은 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찾게 됩니다. 인공지능이 내재 된 검색엔진은 비슷한 것을 검색할 수 있도록 보여줍니다. 뉴스를 검색하면 뉴스가 화면에 먼저 나옵니다. 음악을 검색하면 음악이 화면에 먼저 나옵니다. 인문학을 검색하면 인문학에 관련된 내용이 화면에 먼저 나옵니다. 우연히 다용도 가구를 검색했더니, 다용도 가구를 소개하는 화면이 먼나 나왔습니다. 의자인데 사다리로 사용할 수 있는 가구도 있었고, 소파인데 침대가 될 수 있는 가구도 있었습니다. 탁자인데 서랍장이 되는 가구도 있었습니다. 하나의 모습인데,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더 멋진 변신이 있습니다. ‘트랜스포머’라는 영화는 로봇이 자동차로 변하기도 합니다. 변신이라는 면에서 잘 알려진 동물도 있습니다. ‘카멜레온’입니다. 카멜레온은 몸의 색을 보호색으로 바꿀 수 있어서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도 있습니다. 여성은 청순하게도, 화려하게도, 지적으로도, 활동적으로도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자연에서 우리는 변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매미는 7년 동안 애벌레로 있다가 매가가 된다고 합니다. 여름에 듣는 매미의 노래는 7년을 기다려온 기쁨의 노래일 겁니다. 변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는 나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땅을 기어다니는 애벌레는 고치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예쁜 나비가 됩니다. 변신의 원조는 누구일까요? 저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변신은 더 높은 곳을 향한 변신인데 예수님의 변신은 더 낮은 곳을 향한 변신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변신은 더 멋진 모습과 더 큰 능력을 지닌 변신인데 예수님의 변신은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의 변신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변신은 본능에 의한, 자연의 법칙에 의한 변신인데 예수님의 변신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느님의 뜻에 의한 변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변신은 예수님께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은총과 자비의 변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타볼 산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셨습니다. 율법과 예언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옷과 예수님의 모습은 화려하고 거룩하게 변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셔야 한다고 하셨을 때, 박해와 멸시를 받고 죽어야 한다고 하셨을 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안 됩니다.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신앙인의 변신은 겉모습의 변신이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의 변신은 타인에게 보여주려는 변신이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의 변신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변신이어야 합니다. 그 변신 때문에 박해를 받을지라도, 그 변신 때문에 모욕을 당할지라도, 그 변신 때문에 죽을지라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변신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충직한 부하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였습니다. 우리야는 아무것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야 했습니다. 헤로데는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겠다고 했지만,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2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죽였습니다. 가야파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위험에 빠지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거짓된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을 왜곡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베엘제불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선동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곡과 날조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왜곡과 날조는 악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권력의 편에 서서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했던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사순시기는 거짓과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사순시기는 왜곡과 날조를 밝혀내고 진실과 자유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님과 함께 해야 할 바>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루카 11,23)
빛과 함께
빛나는 것입니다
그저
어둡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과 함께
선한 것입니다
그저
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참과 함께
참된 것입니다
그저
거짓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
울려퍼지는 것입니다
그저
침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함께
믿는 것입니다
그저
불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함께
희망하는 것입니다
그저
무기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함께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저
증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함께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저
얽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함께
정의로운 것입니다
그저
불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께와 함께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저
무관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살림과 함께
살리는 것입니다
그저
죽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길과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저
가만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성인
성 루페르토 (Rupert)
활동년도 : +710년
신분 : 주교
지역 : 잘츠부르크(Salzburg)
같은 이름 : 루페르또, 루페르뚜스, 루페르투스
성 루페르투스(Rupertus, 또는 루페르토)는 국적을 따지면 프랑크인이지만, 독일 보름스(Worms)의 주교로서 바이에른(Bayern)의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그 지방의 알톳팅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자, 그의 활동 영역을 멀리 도나우(Donau) 강 지역까지 펼쳐나갔다. 그의 선교 중심지는 잘츠부르크였다. 성 루페르투스는 독일을 선교했던 가장 열심한 주교로 꼽힌다.
성 라자로 (Lazarus)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활동연도 : +344년
같은이름 :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성 자니타(Zanitas),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 성 마로타(Marotas), 성 나르세스(Narses), 성 엘리야(Elias), 성 아비보스(Abibos), 성 셈베트(Sembeeth), 성 마레(Mare)와 성 사바(Sabas) 모두 9명의 페르시아 순교자들은 페르시아의 국왕 사푸르 2세 치하에서 희생되었다.
성녀 리디아 (Lydia)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 +121년
같은이름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일리리아(Illyria)에서 순교하였다.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필레투스는 원로원 의원이고 성녀 리디아는 그의 아내이며, 성 마체도와 성 테오프레피우스는 그들의 아들이었다.
성 암필로키우스는 장군이었고, 성 크로니다는 기록 책임자였다.
성 요한(John)
신분 : 은수자
활동지역 : 이집트(Egypt)
활동연도 : 304-394년
같은이름 :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Joannes)은 이집트의 리코폴리스에서 태어났다. 콥틱 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0월 17일에 기념한다. 그는 원래 목수(또는 제화공)였지만 25살에 은수생활을 하기 위해 가까운 산으로 가서 이후 40년간 은수자로서 살았다. 함께 살고 있던 고령의 은수자는 그의 겸손과 순명을 시험하고자 1년 내내 마른 나무에 물을 주라는 등의 엉뚱한 명령을 이행하도록 시켰고 그는 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는 선배 은수자가 죽을 때까지 12년을 함께 생활했으며 그 후에는 여러 수도원에서 4년간을 생활했다.
40세 즈음이 되었을 때 요한은 리코폴리스 근처의 바위 꼭대기에 작은 방을 지어 들어가 살면서 해가 진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매우 검소한 삶을 살았다. 주중에는 기도하며 지냈으며, 토요일과 주일에는 그의 가르침과 영적 지도를 받고자 모여온 많은 사람들에게 방에 난 작은 창을 통해 가르침을 주곤 하였다. 자신의 방 근처에 병원과 비슷한 종류의 숙박시설을 짓게 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방문객들을 돌볼 수 있게 하였다. 그들은 성 요한의 치유와 예언의 은사 그리고 마음을 읽는 능력 등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예언에 관한 성 요한의 은사는 '테베(Thebae)의 예언자'라는 별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383년 그라티아누스 황제를 죽이고 387년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를 폐위시켰던 폭군 막시무스가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를 공격하자 황제는 막시무스와의 전쟁에 대하여 요한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그 후 자신만만해진 황제는 서쪽으로 행진하여 판노니아에서 수적으로 훨씬 우세했던 막시무스의 군대를 두 번이나 물리쳤으며 알프스를 넘어 아퀼레이아에서 그 폭군을 사로잡았다. 의기양양하게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온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이 승리를 성 요한의 기도에 돌렸다.
392년 에우게니우스는 발렌티니아누스 2세를 살해한 아르보가스테스의 도움을 받아 로마 제국의 서쪽 부분을 차지하였다. 테오도시우스는 내시 에우트로핀에게 요한을 콘스탄티노플로 데려오도록 지시하였다. 만약 요한이 오지 않겠다고 하면 에우트로핀이 직접 성인에게 황제가 에우게니우스에 대항하여 진격해야 하는지 아니면 동쪽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청하도록 하였다.
요한은 자신의 거처를 떠나지 않으려 했고, 황제의 승리를 예언했지만 이번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이며 황제도 이탈리아에서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에우게니우스를 향해 진격했고 첫 전투에서 만 명의 군사를 잃었다. 패색이 짙었지만 다음날 전투(394년 9월 6일)에서 이교도 시인인 클라우디아누스가 인정했듯이 하늘의 기적적인 개입에 의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95년 1월 17일 자신의 두 아들을 동서 로마의 황제로 남기고 서로마 제국 내에서 사망하였다.
기록이 남아 있는 성 요한의 기적 중에는 그가 축성한 기름으로 원로원 의원 부인의 시력을 회복시킨 일이 있다. 그는 어떤 여성과의 대화도 거부했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다른 매개체가 필요했다. 황제의 관리 중 하나가 요한에게 자신의 부인과 대화하도록 간청하였고, 이를 위해 그 부인은 리크로폴리스(Lycropolis)까지 어렵고 위험한 여정을 걸어왔다. 그러나 성인은 지난 40년간의 엄격한 봉쇄생활 동안 어떠한 여성도 보거나 말하지 않겠다는 불가침의 규칙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황제의 관리는 재차 부탁을 청하는 부인의 간청으로 다시 성인의 처소를 찾았다. 그리고 성 요한에게 자기 부인이 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슬픔을 못 이겨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성 요한은 그 관리에게 “부인에게 돌아가시오. 그리고 그녀가 이곳이나 집 밖에서는 아니지만 오늘 밤 나를 볼 것이라고 전하시오”라고 하였다. 관리의 부인이 잠들었을 때 하느님의 사람이 그녀의 꿈에 나타나 말했다. “부인, 당신의 큰 믿음이 나로 하여금 당신을 찾아오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이 하느님의 종을 보고 싶어 하는 욕구를 자제하라고 훈계해야 합니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따라하십시오. 왜 나를 보고 싶어 하십니까? 내가 하느님의 진정한 종과 같은 성인이나 예언자입니까? 나는 죄 많고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당신 신앙의 덕으로 당신이 당하고 있는 육체의 병을 낫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의지하십시오. 항상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고, 그 분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그녀의 품행에 대한 몇 가지 적절한 충고를 하고는 사라졌다.
부인은 일어나자마자 꿈에서 본 사람을 남편에게 이야기하였고 남편은 그가 성 요한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그 관리가 요한을 찾아갔지만 성인은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결국 그 관리는 성인의 축복을 받고 돌아왔다.
훗날 헬레노폴리스의 주교가 되고 성 요한의 전기를 쓴 팔라디우스는 394년 7월 성인을 방문하였다. 도착해서 보니 성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토요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토요일 이른 아침에 성인을 방문했을 때 성인은 창문을 통해 다른 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통역을 통해 그들이 에바그리우스 공동체의 일원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대화는 그 지방의 총독이었던 알리피우스의 황급한 방문에 의해 중단되었다.
성 요한은 팔라디우스에게 총독과의 대화를 위해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고, 참을성 없는 팔라디우스는 그들이 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에 짜증이 난 팔라디우스는 성 요한이 사람들 사이에 순위를 매긴다는 불평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결국 성 요한의 처소를 떠나려 할 때 요한은 통역을 보내어 “가서 그 형제에게 참을성을 가지라고 전하십시오. 나는 총독을 보내고 그와 대화를 할 것입니다”라고 말을 전하였다.
자신의 생각을 꿰뚫는다는 사실에 놀란 팔라디우스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알리피우스가 떠나고 성 요한은 팔라디우스를 불러 물었다. “왜 당신은 분노하고 마음속으로 나에게 죄를 돌리십니까? 당신과는 언제나 대화를 할 수 있고 당신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지도해주고 위안해 줄 수 있는 스승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총독은 급한 현세의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고 그런 급한 현세의 문제들로부터 잠시 짬을 내어 유익한 충고를 들으러 왔는데, 내가 어찌하여 당신에게 우선권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팔라디우스에게 자신을 유혹하는 것, 즉 은수 생활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은밀한 욕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악마가 자신의 아버지의 형상으로 나타나 유혹하며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은수의 삶으로 유도하고자 유혹하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나 성 요한의 형제자매들은 이미 세속을 포기했으며, 아버지는 7년을 더 살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유혹을 무시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 요한은 팔라디우스가 엄청난 고통과 고난을 당할 것이며 주교가 되겠지만 많은 고생을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 그 모든 고통은 지나갈 것이지만 당시에는 극도로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예언도 덧붙였다. 그들의 만남에 대한 팔라디우스의 증언은 오늘날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다.
같은 해에 성 베드로니우스(Petronius, 10월 4일)가 여섯 명의 수사들을 동행하여 요한을 방문하였다. 은수자는 그 중 누가 성직에 있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아무도 없다”고 대답하였다. 사실 성 베드로니우스는 부제였지만 동행한 수사들 중 가장 어렸기 때문에 그릇된 겸손의 덕으로 이를 말하지 않았다. 요한이 성 베드로니우스를 지목하며 “이 사람은 부제이오”라고 말했을 때 성 베드로니우스는 부인하였다.
며칠 후 그 수도승들은 성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