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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내 집이 좋다
아무리 좋은 잠자리라도 좀처럼 잠이 오지를 않는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집에서처럼 편안하지가 않다. 아무리 좋은 곳을 돌아다녀도 틈만 나면 집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멀리 집을 떠나 여행을 하면서 종종 겪어 보는 일이다. 일찍이 접해 보지 못한 일이라 훌륭한 잠자리이고 음식이고 볼거리지만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낯설고 서툴러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은연중 잘 길들여져 익숙한 내 집이 그리워진다. 아무래도 집이 부족한 것이 많겠지만 그래도 더 넉넉하게 느껴지며 그런 내 집이 있어서 좋은 것이다. 여행은 설레는 것처럼 일시적인 것으로 작고 소박해도 내 것이 좋다. 욕심을 내려놓고 가진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내 집이라고 특별한 잠자리에 아주 특별난 맛의 좋은 음식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내 집이고 우리 집이면서 내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다. 겉으로는 다소 허름하면서 초라하고 옹색하며 불편해보여도 군소리 없이 나를 가장 잘 알고 따뜻하게 받아주는 내 집이어서 좋다. 그동안 내 삶의 몸도 마음도 흉허물 없이 자연스럽게 풀어놓았던 텃밭으로 곳곳에 내 흔적이 배어 있어 좋다. 그 속에 땀내까지 그리움처럼 스며있어 좋다. 나를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의 안식처여서 좋다. 어떠한 격식이나 체면치레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서 좋다. 내 집은 평소대로 몸이나 마음을 방목해도 시시비비 없는 편안한 쉼터이어서 좋다. 아직은 못다 웃은 웃음이 있고, 아직은 못다 울은 울음이 있고, 아직은 못다 피운 사랑이 있다. 완성보다는 아쉬움이 남아있어 더 애착이 가고 그리움이 되는 것일 게다. 작은 것 하나도 완전해지면 독립을 해야 하지만 아직은 불완전하고 부족한 만큼 채우고 싶고 매듭짓고 싶은 마음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여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것일 게다. 그곳에 손때가 묻어있고 마음까지 덕지덕지 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익숙해지고 하나 되는 마음에서 오히려 다정다감해지는 것일 게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하룻밤을 제대로 못 넘기고 내 집이 그리워지는 것일 게다. 지지고 볶아도 잘 여문 참깨처럼 고소한 향기가 묻어나오고 그 반찬이 그 반찬이라도 못 잊는 것이다.
내 집은 버드내 상류 쪽 초록마을로 기온이 2~3도는 차이를 보이는 청정지역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여름에는 피서객이 몰려들었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모임에서 즐겨 찾는 유원지 아닌 유원지가 되어 주말이면 북적거렸다. 삼겹살 익는 냄새가 여름밤을 채우며 밤늦도록 도란거렸다. 푸른 하늘에 별을 헤아리는가 하면 더위를 잊으려 한 줌 냇가의 잔잔한 바람을 붙잡고 밤길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겨울 버드내가 꽁꽁 얼면 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몰려들어 썰매를 탔다. 추위쯤은 거뜬하게 떨쳐내고 얼음판에서 추억을 만들며 시간을 잊었다. 냇둑에서 미끄럼을 타며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까르르 번지며 추위가 흥건히 녹아내렸다. 아침에 집을 나서 열심히 일하고 고달플 때는 물론이며 즐거움에 푹 빠져도 저녁이면 돌아와 하루를 마감하며 잠자리에 누울 수 있는 곳이 집인데 스스럼없이 돌아올 수 있는 내 집이 있어 행복한 것이다. 술에 만취가 되어 비틀거려도 집은 본능처럼 잘 찾아왔다. 대문에서 벨을 누른 후에 정신을 잃고 주저앉아 그대로 잠이 들기도 했다. 내 집에 다 왔다는 안도감에 긴장했던 마음이 갑자기 풀어지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활하면서 의식주(衣食住)를 논하는데 그 중에 주(住)가 끝에 있는 것은 아무래도 집은 재산가치가 너무 크므로 살아가면서 천천히 마련하라는 것일 게다. 집은 기초생활의 밑바탕이면서 고향은 아니라도 희로애락에 물든 세월이 쌓이는 곳이다. 내 집은 대전을 관통하는 삼대 하천 중 버드내로 불리는 유등천 상류의 쟁기봉 아래 복수동 초록마을이다. 만성산 자락 뿌리공원과 보문산 자락 동물원을 이웃하며 하천에는 백로, 오리, 비둘기, 까치가 날고 대학교까지 있어 패기가 넘치는 곳이다. 복수라고 하면 뜬금없이 철천지원수로 으드득 이를 갈며 앙갚음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이 스쳐간다. 하지만 한참 잘못 짚은 선입감일 뿐이다. 복수동의 복수에서는 원수를 갚는다는 복수(復讐)가 아닌 전혀 다른 이미지가 담겨져 있다. 이미 받은 복을 까부르지 않고 잘 지킨다는 복수(福守)다. 복수동은 이미 복을 받고 누리며 지키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을이다. 내 집이 복수동의 초록마을로 자랑스러운 곳이다.
이 마을 저 마을 다녀도 초록마을이 좋다 몇 동 몇 동 헤아려보다 111동 오르내리기 좋은 0층이다 창 밖에 성큼 다가서는 보문산 버드내 물줄기에 하늘이 내려앉으며 물질하는 새와 눈 맞춤도 하고 청량한 바람 공기 마시며 걷고 달리며 줄을 잇는 시민들 아침햇살 희망을 듬뿍 서재에 들여놓는다 - 초록마을이 좋다
- 2020.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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