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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한민족사 |
세계사 |
1393. 2 |
국호를 조선으로 바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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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 10 |
한양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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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8. 8 (태조 7) |
제1차 왕자의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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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8. 9 |
정종 즉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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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 1 |
제2차 왕자의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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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 11 (정종 2) |
태종 즉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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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 7 (태종 1) |
신문고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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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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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의 남해 원정 |
1406. 3 (태종 6) |
선교양종의 사찰 242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없앰. 사찰의 토지와 노비를 제한하고, 나머지는 몰수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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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4. 3 (태종 14) |
경기좌우도를 경기도로 개편 전국 8도 체제가 완성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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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 8 (태종 16) |
승려들을 대상으로 도첩제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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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 (세종 2) |
집현전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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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9 (세종 11) |
농사직설 편찬 |
잔 다르크, 영국군 격파 |
1434 (세종 16) |
장영실이 자격루를 만듦 동북면에 6진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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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 2 (세종 25) |
계해조약 체결 통신사가 쓰시마 도주와 세견선을 50척으로 정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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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 12 |
훈민정음 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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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 4 (세종 27) |
정인지, 권제 등이 ‘용비어천가’ 10권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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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 9 (세종 28) |
훈민정음 반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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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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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금속활자 발명 |
1452. 5 |
단종 즉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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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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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 멸망 |
1455. 6 (단종 3) |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줌 |
장미전쟁(~1485) |
1456. 6 (세조 2) |
사육신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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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7. 6 (세조 3) |
단종을 영월에 유배 10월 영월에서 단종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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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3. 11 (세조 9) |
홍문관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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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 11 (성종 1) |
경국대전 교정(校訂)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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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8. 12 (성종 9) |
서거정 ‘동문선’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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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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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 왕국 성립 |
1482. 8 (성종 13) |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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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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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
1498. 7 (연산군 4) |
무오사화 발생 |
바스코 다 가마, 인도 항로 개척 |
1504. 10 (연산군 10) |
갑자사화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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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 9 (연산군 12) |
중종 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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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 4 (중종 5) |
삼포왜란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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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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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우신예찬’ 저술 |
1512. 8 (중종 7) |
임신조약 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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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 6 (중종 12) |
축성사를 비변사로 개칭 |
루터, 독일 종교개혁 시작 |
1519 (중종 14) |
기묘사화 발생 |
마젤란, 세계일주 항해(~1522) |
1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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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제국 성립(~1857) |
1530. 8 (중종 25) |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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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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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교회 성립 |
15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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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 종교개혁 |
1543 (중종 38) |
풍기군수 주세붕이 백운동 서원 건립 |
코페르니쿠스, 지동설 주장 |
1545. 8 (인종 1) |
을사사화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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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 2 (명종 5) |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에 따라 백운동 서원에 소수서원의 편액이 하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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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9. 3 (명종 14) |
임꺽정의 난 발생 |
엘리자베스 1세, 영국 교회 기초 확립 |
1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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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일조편법 실시 |
1575. 7 (선조 8) |
동서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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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0 (선조 13) |
정철 ‘관동별곡’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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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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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력(현재의 태양력) 제정 갈릴레이, 중력의 법칙 발견 |
15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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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군, 에스파냐 무적함대 격파 |
1589. 10 (선조 22) |
정여립 모반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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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0. 3 (선조 23) |
황윤길, 김성일을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 |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 통일 |
1592. 4. 13 (선조 25) |
임진왜란 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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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했습니다.
한 민족에게는 역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언어도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찬란한 역사를 지니고 있어도 우리의 민족의식을 담은 언어가 없다면 그 민족에게서는 그 민족만의 독특한 민족성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 발표를 통해서 그 동안 “한글”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일했던 제 자신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고, 세종대왕의 엄청난 노력이 깃든 한글을 사용할 때에 있어 조금 더 고운 말, 바른 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발표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논의의 초점은 한글의 우수성을 확인하는데 있는 것인가요? 보완하도록 하세요.
훈민정음에 대한 김유라 학우님의 발표 잘 들었습니다. 만약에 훈민정음이 반포되지 않았거나 훗날 주시경 선생께서 우리글을 연구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둬 버렸다면, 우리는 지금 중국의 문자를 빌려서 쓰면서 많은 괄시를 받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최근에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무시하고 있는 중국의 한자를 그대로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훈민정음에 대한 발표는 더욱 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고유문자가 없는 나라에서 ‘한글’을 선호하며, 한글을 채택하려는 나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1) 고유문자가 -> 고유 문자가
이렇게 세계에서 한글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글의 우수성, 과학성 때문이겠지요. 이러한 우리나라의 문자 ‘한글’에 주목함으로써 우리 민족 문화의 자긍심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글’을 사용할 때에 더욱 더 자긍심을 가지고, 맞춤법 하나하나부터 세심히 사용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무엇이 논의의 초점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댓글을 보완하도록 하세요. 2) 맞춤법 하나하나부터 세심히 -> 맞춤법부터 세심히
권력이나 명예, 재력 등 무엇이든 상위계층에 있는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현재로서도 충분히 잘 살고 있기 때문이죠. 하물며 왕이라는 직책에 있는 사람이 수많은 주위 반대에 부딪히며 백성을 위한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훈민정음은 우리나라의 보물입니다. 우리는 훈민정음으로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꿈 꿀 수 있게 되었고 우리 자신의 자랑스러움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