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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21의 ‘백성’(λαός)과21:43의 ‘백성’(ἔθνος)에 대한 고찰
1. 들어가며
마태복음에서 요셉에게 현몽한 주의 사자(ἄγγελος)는 1:21에서 장차 태 어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면서 그 이유(γάρ)를“이는 그가 자기 백성(λαός)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개역개정)고 밝힌다.
한편 예수께서는 공생애 끝 무렵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유대 지도자들에게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면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ἔθνος)이 받으리라”(마 21:43, 개역개정)고 경고하신다.
여기 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말 개역개정은 마태복음 1:21의 ‘λαός’와 마태 복음 21:43의 ἔθνος를 모두 동일하게 ‘백성’으로 번역하고 있다. 물론 양자― λαός와 ἔθνος ― 의 의미장(意味場, semantic field)이 어느 정도 겹칠 수 있다.1) 그러나 만약 마태복음에서 이 두 단어가 신학적으로 중요한 차이를 지닌다고 한다면, 이 둘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반드시 구별을 지어야 할 필 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본 소고는
첫째, 마태복음에서 λαός(마 1:21)와ἔθνος(마 21:43)의 의미상 차이를 살펴보고,
둘째, 이 단어들이 모두 우리말 ‘백성(百姓)’으로 번역된 과정을 돌아보면서,
셋째, λαός(마 1:21)와 ἔθνος(마 21:43)의 우리말 번역에 대해 잠정적인 제안을 해 보도록 하겠다.
1) λαός는 일반적으로 복수의 ‘사람들’이나 ‘백성’ 또는 ‘민족’을 의미하며, ἔθνος는 ‘사교 모임’, ‘길드’(guild), ‘공동체’, ‘사회 계층’, ‘이방인’, ‘국민’, ‘나라’ 등을 의미한다. s.v. “λαός”와 “ἔθνος”, LSJ; s.v. “λαός”와 “ἔθνος”, BDAG; H. Strathmann, s.v. “λαός”, TDNT; Karl Ludwig Schmidt, s.v. “ἔθνος”, TDNT 참고.
2. 마태복음 1:21의 λαός와 마태복음 21:43의 ἔθνος
우선, 마태복음 1:21의 λαός를 살펴보면, 이를 ‘교회’로 해석하는 학자들 이 있다.2)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여기서 마태가 밝히는 ‘예수의 λαός’는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를 아우르는 ‘교회’인 것이다.3) 그러나 마태의λαός 용례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해석은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다.
마태복음에는 λαός가 총 14회 사용되는데, 몇 가지 사례만 보아도 이 단어가 ‘교 회’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태복음 1:21의 λαός 이후에 마태복음 2:4에서 재차 등장하는 λαός는 ‘이스라 엘 백성’을 지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 들(τοὺς ἀρχιερεῖς καὶ γραμματεῖς τοῦ λαοῦ)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 겠느냐 물으니.” 여기서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 어디에서 태어날지를 물은 대상은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21에서 λαός가 ‘교회’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됐다가 불과 여 섯 절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의 의미로 갑작스레 전용(轉用)됐다고 주장하 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마태복음에는 ‘백성의 장로 들’(οἱ πρεσβύτεροι τοῦ λαοῦ)이란 표현이 등장한다(21:23; 26:3, 47; 27:1).여기서 대제사장들과 함께 등장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장선 이들은 ‘교회의 장로들’이 아닌 ‘이스라엘의 장로들’임을 분명히 알 수 있 다. 그리고 마태의 구약 성취 인용구들(마 2:6; 4:16; 13:15; 15:8)에도 λαός가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다음 구절을 보면 이 단어가 이방 민족이나 교 회가 아닌, 혈통적 이스라엘을 뜻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백 성들(λαός)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 13:15 < 사 6:9-10).
여기서나 구약 이사야6:9-10에서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λαός(~[); 는 교 회나 이방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다.4) 이처럼 마태복음의 λαός가 ‘이 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 것은 칠십인역의 용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칠십인역은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할 때 대부분 λαός를 사용하는 반면(예,출 1:9; 6:7; 15:14; 19:5; 21:28; 레 26:12; 신 7:6; 26:17-19; 수 3:17; 4:1; 사 9:2; 26:2; 51:4; 58:2; 렘 7:23; 9:8 등), ‘이방 백성’ 또는 ‘이방 나라’를 의미할 때는ἔθνος를 주로 사용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예, 출 34:24; 신 18:9; 수23;9; 겔 5:6 등).5)
이와 같은 칠십인역의 용례 및 용어 사용의 경향을 마태 가 자신의 복음서에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마태복음 1:21에 사 용된 λαός는 ‘혈통적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용어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 다. 이를 통해 마태는 메시아 예수의 지상 사역의주대상이이스라엘임을천 명하고 있는 것이다(마 10:5-6; 15:24 참고).6)
이제, 마태복음 21:43의 ἔθνος를 살펴봐야 한다. 이 구절을 포함한 ‘포도 원 농부의 비유’(마 21:33-46)에는 여러 상징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서 포도 원의 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포도원 농부들에게 보낸 주인의 종들은 예수 이전의 선지자들을 의미하며, 포도원 주인의 아들은 예수 자신을 뜻한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반면에 ‘포도원’(21:33, 41), ‘악한 농부 들’(21:33-41), 그리고 ‘열매 맺는 백성’(ἔθνος, 21:43)이 무엇을 지칭하느냐 는 문제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먼저 이 비유를 이사야 5장의 ‘포도원의 노래’에 견주면서(사 5:7), 몇몇 학자들은 마태복음 비유에 등장하는 포도원(마 21:33) 역시 이스라엘을 가 리킨다고 주장한다.7) 하지만 더 확실한 내적 증거가 마태복음 안에 있다고 한다면, 굳이 이사야 5장과 같은 외적 증거를 끌어들이면서 ‘포도원’을 해 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점은 마태복음 21:41과 마태복음 21:43이 서로 평행(parallelism)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41절: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 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3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 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러한 평행 관계를 보면, ‘포도원’(ἀμπελών)은 이스라엘이 아닌 ‘하나 님 나라’(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에 상응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8) 주 지하다시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dominion)를 골자로 하는 개 념이다.9) 그러니까 악한 농부들은 그동안 누려왔던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 님의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그 특권은 다른 농부들에게 이양된 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도원이 아니라 ‘악한 농부들’이 이스라엘을 상징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악한 농부들’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같은 당대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10) 이 들의 주장에 따르면, 21:43에서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는 ‘너희’(ὑμεῖς)는 이 스라엘 전체가 아닌 ‘지도층’에게만 국한되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대신 상속하는 ‘다른 농부들’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같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포도원 농부의 비유’(21:33-46)에서 핵심은‘리더십 교체’라는 것이다.11)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마태복음 23:29-36과 비교하면 그리 설득력이 없 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예수는 표면적으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들을 향해 화(禍)를 선포하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자(使者)들을 죽인 죄 를 책망하신다. 그러나 36절에 “이것이 다 이 세대(ἡ γενεά αὕτη)에 돌아가 리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결국 그 책임을 지도자들에게만 국 한시키지 않는다. 히브리어 구약성서 및 칠십인역에서 ‘이 세대’(hZh< ; rADh;,ἡ γενεά αὕτη)는 광야에서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었다(신 1:35; 32:5, 20 등). 마태복음에서도 ‘이 세대’는 ‘악하고 음란하며’(πονηρὰ καὶ μοιχαλὶς, 12:39, 45; 16:4), ‘믿음이 없고 패역한’(ἄπι στος καὶ διεστραμμένη, 17:17) 세대로서, 예수의 제자들도 포함한(17:16-17) ‘당대의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하는 표현이다.12) 즉 예수께서는 마태복음23:29-36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을 배척한 책임을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결국‘당시의 이스라엘 전체’에 돌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비판이 표 면적으로 지도자들에게 향해 있다고 하여, 예수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인 책임과 그 파장을 지도자들에게만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
물론 ‘포도원 농부의 비유’(21:33-46) 끝에서, 마태복음 21:45-46이 유대 지도자들과 ‘무리’(ὄχλος)를 구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근 거로 예수를 죽인 책임이 지도자에게만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에서 지도자들과 무리(ὄχλος)의 구분은 예수를 죽이는 순간에 이르러 결국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ὄχλος)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중략) 백성이 다(πᾶς ὁ λαὸς)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 지어다 하거늘”(27:20, 25). 여기서 ‘A의 피를 B에게(B의 머리에)’라는 구문 은 구약에서 ‘피흘린 책임’(살해의 책임)의 주체를 특정할 때 사용하는 관 용적 표현이다(레 20:9; 신 19:10; 수 2:19; 삼하 1:16; 렘 25:15; 겔 18:13; 33:4; 참고, 행 5:28; 18:6).13) 여기서 알다시피, 예수를 배척하고 죽인 책임 은 결국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무리(ὄχλος)를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게 있음을 알 수 있다(참고, 행 2:36).14) 이처럼 마태복음 전체의 문맥으로 본다면, ‘포도원 농부의 비유’(마 21:33-46)에서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인 책 임을 지도자들에게만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15)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열매 맺는 백성’(ἔθνος, 21:43)이 누구를 지칭하느 냐?’는 것이다. 학자들은 크게 3가지 의견을 제시한다:
(1) 새로운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일컫는다.
(2)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만을 지칭한다.16)
(3)교회를 의미한다.17)
우선 (1)의 입장은 ‘악한 농부들’이 실패한 이스라엘 지 도자들이기 때문에 ‘열매 맺는 백성’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라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 입장은 ‘악한 농부들 = 이스라엘 지도자들’이라는 해 석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 전제는 이미 앞에서 반박한 바 있다.
근자에는 (2)의 입장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거의 없다. 마태복음에서 이스라엘을 제외 하고 이방인들만을 가리킬 때에는 ἔθνος라는 단수가 아닌 복수형태의 ἔθνη를 사용하기 때문이다(4:15; 6:32; 10:5, 18; 12:18, 21; 20:19, 25 참고, ἔθνη에 수식어 πᾶς가 붙으면 이스라엘과 이방 모두를 포함한다. 24:9, 14; 25:32; 28:19).18) 그리고 비록 이스라엘이 예수를 배척하였다고 하나, 이스라엘 안 에도 마태 자신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신실한 유대인이 있었 기 때문에, 마태가 ἔθνος를 이방인만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많다.
따라서 (3)의 입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예수의 죽음 과 부활 이후 복음이 모든 민족에 전파되었기 때문에(마 28:19-28), 이제는 누구나, 이스라엘이든 이방이든, 복음을 수용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 매를 맺을 수 있다(참고, 마 25:34). 하지만 ἔθνος를 무조건 교회와 등가의 개념으로 이해하기엔 여전히 어려운 점이 있다. 왜냐하면 마태의 눈에 교 회는 ‘corpus mixtum’ 즉 악인과 선인이 뒤엉켜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마7:15-23; 13:47-48; 22:10-14; 25:1-13). 예를 들어 혼인 잔치의 비유를 보면,왕의 초청에 응하여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교회) 가운데서도 여전히 어두 운 데로 쫓겨날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ἔθνος는 이를 부연 설명하는 분사구 문 ποιοῦντι τοὺς καρποὺς αὐτῆς을 통해 정의되듯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매 맺는 신실한 사람들만을 가리킨다. 따라서ἔθνος는 ‘corpus mixtum’인 교회 전체를 상징한다기보다, 교회 안에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 열매 맺는 ‘신실한 성도들’만을 지칭하는 표 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소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선지 자와 예수를 죽인 이스라엘 백성의 배역(背逆)을 통해 그들이 누렸던 하나 님 나라(통치)의 민족적 특권은 이제 그분의 뜻에 따라 열매 맺는 ἔθνος 곧‘신실한 성도들’이 누리게 될 것이다. 이 ἔθνος는 마태와 같은 유대인 성도 만이 아니라 신실한 이방인 성도들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렇게 민족을 초월하여 등장하는 믿음의 공동체인 ἔθνος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λαός와는 분명히 다른 용어이다.
이러한 개념적·신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백성’으로 번역하는 것은 분명 아쉬운 점이다. 그렇다 면, 왜 우리말 성경이 λαός(마 1:21)와 ἔθνος(마 21:43)를 모두 ‘백성(百姓)’으 로 번역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2) Günther Bornkamm, Tradition and Interpretation in Matthew (London: SCM Press, 1963), 325; W. D. Davies and Dale C. Allison,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 vol. 1 (Edinburgh: T&T Clark, 1988), 210; Lidija Novakovic,Messiah, the Healer of the Sick: A Study of Jesus as the Son of David in the Gospel of Matthew(Tübingen: Mohr Siebeck, 2003), 66; John Nolland, The Gospel of Matthew: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2005), 98-99.
3) John C. Hutchison, “Women, Gentiles, and the Messianic Mission in Matthew’s Genealogy”,Bibliotheca Sacra 158 (2001), 152-164. 허치슨에 따르면, 앞선 마 1:1-17의 족보에 이방 여인들 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후 21절에 등장하는 예수의 λαός는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를 포함 한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족보에 언급된 여인들이 모두 이방인인지의 여부는 논 쟁의 여지가 있다. 라합(수 2:1-3)과 룻(룻 1:4, 22)이 이방인이란 사실은 구약을 통해 분명하나,다말과 밧세바가 이방인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더구나 족보에 마지막으로 언급된 여인,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방인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하다. David C. Sim, “The Gospel of Matthew and the Gentiles”,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57 (1995), 22-23 참고.
4) 참고로 마 4:16에서 마태가 인용한 이사야 구절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흑암에 앉은 백성(λαός)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혹자는 여기서 λαός를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교회’ 또는 예수의 ‘이방 사역’을 의미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선 마 4:15에 “이방의 갈릴리여”(Γαλιλαία τῶνἐθνῶν)란 표현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John Nolland, Matthew, 172-174 참고. 그러나 챈 시(Mark A. Chancey)가 주장한 바와 같이, “이방의 갈릴리여”(Γαλιλαία τῶν ἐθνῶν)는 이사 야 당시 이방 제국에 의해 유린당한 북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을 뜻하는 표현이지, 갈릴리 가 원래 ‘이방인의 땅’이라거나 ‘이방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란 의미가 아니다. 마태 는 이를 통해 이방 통치의 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에 약속된 회복의 시대, 곧 메시아의 시대 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교회의 출현’이나 ‘이방 선교’와 연결시키 는 것은 무리가 있다. Mark A. Chancey, The Myth of a Gentile Galile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22-27, 28-120 참고.
5) Strathmann, s.v. “λαός”, TDNT. 이는 ‘이스라엘의 백성’을 의미할 때 주로 ~[;을 사용하고, ‘이방 백성’이나 ‘이방 나라’를 의미할 때 주로 yAG를 사용하는 히브리어 본문의 경향을 칠십 인역이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6) 더 자세한 사항은 다음을 참고할 것. J. R. C. Cousland, The Crowds in the Gospel of Matthew(Leiden: Brill, 2002), 75-86.7) David L. Turner, Matthew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8), 513-514.
8) Wesley G. Olmstead, Matthew’s Trilogy of Parables: The Nation, the Nations and the Reader in
Matthew 21.28-22.14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89-95.
9) 이러한 이해는 구스타프 달만(Gustaf Dalman)이 19세기 말에 제안한 이후로 학자들 사이에 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이다. Gustaf Dalman, The Words of Jesus: Considered in the Light of Post-biblical Jewish Writings and the Aramaic Language(Edinburgh: T&T Clark, 1902), 94; Richard T. France, The Gospel of Matthew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2007), 102-103; Craig S. Keener,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Matthew (Grand Rapids: Eerdmans, 1999), 68; W. D. Davies and Dale C. Allison Jr., Matthew 1-7, vol. 1, Chiristopher M. Tuckett and Graham I. Davies, eds., ICC (Edinburgh: T&T Clark, 2004), 389-392. 이러한 주장의 전제는 ‘포도원이 이스라엘’이라는 해석에 근거한다. 포도원 이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포도원을 관리하는 악한 농부들은 ‘이스라엘의 타락한 지도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밝혔듯이 포도원은 이스라엘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하나님의 통치를 따라서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자들은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이다.
10) David L. Turner, Matthew, 516-519; John Nolland, Matthew, 879; Markus Bockmuehl, Seeing the Word: Refocusing New Testament Study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6), 218-219; J. A. Overman, Church and Community in Crisis: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Valley Forge: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6), 302-304.
11) Matthias Konradt, Israel, Kirche und die Völker im Matthäusevangelium (Tübingen: Mohr Siebeck, 2007), 262-263; Markus Bockmuehl, Seeing the Word: Refocusing New Testament Study, 218-219.
12) Evald Lövestam, Jesus and ‘this Generation’: A New Testament Study (Stockholm: Almqvist, 1995), 8-20.
13) W. D. Davies and Dale C. Allison,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 vol. 3 (Edinburgh: T&T Clark, 1997), 591.
14) 물론 빌라도의 관정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제한적이므로(라피데는 최대 약 3천명을 수 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Pinchas Lapide, Wer war schuld an Jesu Tod?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G. Mohn, 1987], 88 참고), 이곳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모이는 것 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λαός가 마태복음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단어이고, 특별히 이곳에서 πᾶς를 사용하여 그 전체성을 강조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 27:25은 사실적 묘사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책임을 강 조하기 위한 ‘신학적 선언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공회에서 예수께 적용된 주된 죄목이 신성 모독(마 26:63-66)이고, 레 24:10-16에서 신성모독죄는 이스라엘 ‘온 회중’이 처결해야 할 죄목으로 규정하는 점을 감안하면, πᾶς ὁ λαός의 전체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물론, 마태복 음에서 예수를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배척한 세력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예수를 배척한 책임이 지도층에만 국한 되어 있다고 보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마태복음의 전체적 맥락과 신학적 결론(27:25)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로부터 배척을 당하신 것이다.
15) ‘포도원 농부의 비유’ 앞뒤에 있는 비유들, 곧 ‘두 아들의 비유’(마 21:28-32)나 ‘혼인 잔치 의 비유’(마 22:1-14)는“누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가?”라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지, 이스 라엘 리더십의 교체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포도원 농부의 비유’ 전후 문맥과 비교해 볼 때도, 이 비유의 주제를 이스라엘 리더십의 교체로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다.
16) Francis W. Beare,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Oxford: Blackwell, 1981), 431.
17) W. D. Davies and Dale C. Allison Jr., Matthew 19-28, vol. 3, Chiristopher M. Tuckett and Graham I. Davies, eds., ICC (Edinburgh: T&T Clark, 2004), 189-190; Donald A. Hagner,Matthew 14-28 (Dallas: Word Books, 1995), 631; Robert H. Gundry, Matthew: A Commentary on His Handbook for a Mixed Church under Persecution, 2nd ed., (Grand Rapids: Eerdmans,1994), 430.
18) John P. Meier, “Nations or Gentiles in Matthew 28:19?”, Catholic Biblical Quarterly 39:1 (1977), 94-102.
3. 개역개정에서 마태복음 1:21의 λαός와 마태복음 21:43의ἔθνος가 ‘백성’으로 번역된 과정
오늘날 우리말 성경의 뿌리가 되는 1887년 판 예수셩교젼셔(Korean N.T. Ross Version)를 보면, 마태복음 1:21과 21:43을 각각 다음과 같이 번역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원문은 띄어쓰기 없이 세로쓰기로 되어 있으므로 부득불 가로쓰기로 인용하되 띄어쓰기는 생략한다.).
마 1:21 뎌아달을나을지니일홈을예수라칭라쟝차그셩을죄에구완리니
마 21:43 너희게일오나니하나님의나라너희에게아사열음치셩주리니
이후 ‘성서번역자회’에서 1900년에 출간한 신약젼셔(Korean N.T.)는 해당 구절들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원문은 여전히 세로쓰기지만 띄어쓰 기가 적용되었기에 이를 반영하여 인용한다.).
마1:21 아을낫커든일홈을예수라라이는긔셩을뎌희죄 에셔 구원시리라 더라
마 21:43 그런고로 내가 너희에게 닐오니 하님 나라를 너희에게 아사 열 셩의게 주시리라
여기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말 성경은 처음부터 λαός(마 1:21)와ἔθνος(21:43)를 모두 ‘셩’으로 번역하고 있다. 물론 예수셩교젼셔의 경 우 존 로스(John Ross) 목사가 그리스어 개역본을 참고하여 한역(韓譯)과 대조했고,19) 신약젼셔역시 번역할 때에 어느 정도 원어를 반영했다고 하나,20) 적어도 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의 ‘셩’이란 번역에서는 원어 성경의 영향을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당시 존 로스가 옥스퍼드 의 제임스 레게(James Legge)로부터 받아 번역에 참고했다고 전해지는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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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개역본(H KAINH DIAΘHKH)의 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21:43은 다음과 같다.22)
마 1:21 τέξεται δὲ υἱόν, καὶ καλέσεις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Ἰησοῦν, αὐτὸς γὰρ σώσει τὸν λαὸν αὐτοῦ ἀπὸ τῶν ἁμαρτιῶν αὐτῶν.
마 21:43 διὰ τοῦτο λέγω ὑμῖν, ὅτι ἀρθήσεται ἀφ̓ὑμῶν ἡ βασιλεία τοῦθεοῦ, καὶ δοθήσεται ἔθνει ποιοῦντι τοὺς καρποὺς αὐτῆς.
여기서 보듯이, 그리스어 개역본은 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에서 각각 λαός와 ἔθνος라는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예수셩교젼셔의 번역에는 원어의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처 럼 예수셩교젼셔가 λαός(마 1:21)와 ἔθνος(21:43)를 모두 ‘셩(百姓)’으 로 번역한 이유를 당시의 그리스어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면, 로스 목사가 참고했을 영어 성경을 살펴봐야 한다.23) 그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개정 역(English Revised Version)의 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은 다음과 같다.24)
마 1:21 And she shall bring forth a son; and thou shalt call his name Jesus; for it is he that sha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마 21:43 Therefore say I unto you, The kingdom of God shall be taken away from you, and shall be given to a nation bringing forth the fruits thereof.
위에서 보듯이 당시 영어 개정역은 마태복음 1:21에서 그리스어 λαός를 people로, 마태복음 21:43에서 ἔθνος를 nation으로 각각 달리 번역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셩교젼셔가 λαός(마 1:21)와 ἔθνος(마 21:43)를 모두 ‘셩(百姓)’으로 번역한 것은 결국 그리스어 또는 영어 성경의 영 향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남은 선택지는 이제 한문(漢文) 성경을 살펴 보는 것이다. 존 로스는 당시 중국의 한역(漢譯) 성경이 예수셩교젼셔의 중요한 저본이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My mode of translation from the commencement has been to get a translation from the Chinese by a Corean scholar. Almost all our translators knew mandarin as well as Wen-li. As they have been fairly intelligent men and scholars, their translations gave an exact idea of the meaning derivable by ordinary scholarship from the Chinese Scriptures, and even in this light the work has been very interesting.25)
이 기록을 통해서, 로스 목사의 번역을 도운 조선인들이 당시 중국의 문 리체(Wen-li, 文理體)와 만다린(mandarin)으로 한역(漢譯)된 성경에 익숙했 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문리체 성경은 고전 한문체 번역본을 의미하는데,개신교에서는 대표적인 예로 모리슨(Robert Morrison)에 의해 1823년에 간 행된 신천성서(神天聖書, Morrison-Milne Version)가 있다. 신천성서의 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은 다음과 같다(원문과 달리 가로쓰기로 인 용하지만, 원문에 표기된 구두점을 반영한다).
마 1:21 又其將生一子爾必名之耶穌、因其將救厥民出伊等之罪也
(사역: 또 그[녀]가 장차 한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반드시 그를 야 소[예수]라 이름하라. 왜냐하면 그는 장차 그의 백성을 저들의 죄에서 나오도록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 21:43 故此我語汝知、以神之王將離爾移去、而給於他國結其之菓也
(사역: 이러한 이유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알게 하리니, 이로써 하 나님의 왕업이 장차 너를 떠나 옮겨 가서, 다른 나라에 주어 그것의 열 매를 맺을 것이다.)
이처럼 신천성서는 마태복음 1:21의 λαός를 ‘民’으로 마태복음 21:43의ἔθνος를 ‘國’으로 번역했다. 이렇게 λαός(마 1:21)와 ἔθνος(21:43)를 각각 달 리 번역한 것은 모리슨이 당시의 그리스어 <공인본문>(Textus Receptus)과 영어 <흠정역>(Authorized Version)을 참고하여26) 직접 번역했기 때문으로 보인다.27) 그러므로 예수셩교젼셔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에서 공히 사용한 ‘셩(百姓)’은 신천성서의 영향으로 보기가 어렵다.
한편, 예수셩교젼셔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한역본은 문리체 대표역본(代表譯本 또는 委辦譯本, Delegates’ Version)이다.28)1852년에 간행된 대표역본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은 다음과 같다.
마 1:21 彼必生子、可名曰耶穌、以將救其民於罪惡中、
(사역: 저가 반드시 아들을 낳을 것이니 가히 이름하여 야소[예수]라 이르라. 이로써 그의 백성을 죄악 중에서 장차 구원할 것이다.)
마 21:43 吾語汝、上帝國、必奪爾、賜他民、以結果者也、
(사역: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하나님 나라를 반드시 너에게 빼앗아 열매맺는 자로서 다른 백성에게 주겠다.)
여기서 대표역본이 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에서 각각 수식어其와 他를 써주었다는 점에서는 신천성서와 유사하지만(厥과 他), 그 체 언인 λαός와 ἔθνος 자체는 구별하지 않고 모두 ‘民’으로 번역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백성(百姓)’이 아니라 ‘民’이지만 양자를 동일하게 번역했다는 점에서는 예수셩교젼셔와 대표역본이 똑같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1839년에 귀츨라프(Karl Gützlaff)가 출간한 구세주야소신유조서(救世主 耶穌新遺詔書, Gützlaff Version)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구세주야소신유 조서의 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은 다음과 같다.
마 1:21 其必生子、可名稱耶穌、因必將救民免罪、
(사역: 저가 반드시 아들을 낳을 것이니 가히 이름하여 야소[예수]라 칭하라. 왜냐하면 반드시 장차 백성을 구원하여 죄를 용서할 것이기 때 문이다.)
마 21:43 是故吾語、神國必奪於爾、轉與他民、所結其菓者也、
(사역: 이런고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 나라를 반드시 너에게서 빼앗 아 다른 백성 곧 그 열매를 맺는 자에게 전해 주겠다)
또한 대표역본이후 1859년에 브리지만(Elijah C. Bridgman)과 컬벗슨(Michael S. Culbertson)이 번역·출간한 야소기독구세주신약전서(耶蘇基督 救世主新約全書, Bridgman-Culbertson Version)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마 1:21 彼將生子、爾必名之曰耶穌、以將救其民於其罪惡中、
(사역: 저가 장차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반드시 그를 이름하여 야소[예수]라 말하라. 이로써 장차 그 백성을 그 죄악 중에서 구원할 것이다.)
마 21:43 我故語爾神之國必奪於爾、而賜與能結其果之民、
(사역: 고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반드시 너에게서 빼앗아, 그 열매 맺을 수 있는 백성에게 주겠다)
이처럼 신천성서(1823년)보다 시기적으로 예수셩교젼셔(1887년)에 더 가까운 대표역본(1852년)을 포함하여 그 전후에 등장한 문리체 한역(漢 譯) 성경들은 모두 마태복음 1:21의 λαός와 마태복음 21:43의 ἔθνος를 구별 하지 않고 ‘民’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양자를 구별하 지 않고 동일하게 ‘셩’으로 번역한 예수셩교젼셔와 똑같은 패턴이다.
다만, 예수셩교젼셔가 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에서 공히 사용 한 ‘셩(百姓)’이란 한자어 자체는 당시 문리체 한역 성경들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셩교젼셔의 ‘셩(百姓)’이란 한자어 표현이 어디서 왔을까? 이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로스 목사를 도와서 예수셩교젼셔를 번역하는 데 기여한 조선인이 문리 체 한역 성경의 ‘民’을 직접 ‘셩(百姓)’으로 치환했을 가능성이며, 둘째,문리체가 아닌 관화체(官話體, 구어체) 한역 성경을 참고했을 가능성이다.우선 전자의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 훈민정음의 일부를 살펴보겠다. 한글 창제의 이유를 밝힌 <훈민정음 해례본> ‘예의(例義)’ 첫 부분과 이를 우리 말로 번역한 <언해본> 첫 부분은 다음과 같다(가로쓰기로 인용하되 원문 의 구두점과 사성[거성, 상성, 평성, 입성]을 반영하였다.)
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 伸其情者。多矣。
나·랏:말·미 中國·귁·에 달·아 文문字··와·로 서르 ·디 아·니· ·이런 젼··로 어·린 百· 姓··이 니르·고·져 ··배 이·셔·도·: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
이처럼 우리글의 표준 설명서라고 할 수 있는 훈민정음은 ‘愚民’을 ‘어린(어리석은) 셩(百姓)’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미 15세기 중반에 조선에서는 ‘民’을 한자어 ‘백성(百姓)’으로 번역·이해했던 것이다.29) 그렇다면 19세 기 후반에 예수셩교젼셔가 번역될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훈민정음 이후 약 450년이 지난 19세기 후반의 한글 사용 경향에 대 해서는, 당시 ‘독립신문에서 사용된 民 용어의 빈도’를 조사한 결과가 있어 소개한다.30)
<표 1> 1896~1899년 독립신문에 나타난 ‘민’ 용어의 빈도
연도 용례 | 1896 | 1897 | 1898 | 1899 |
국민(國民) | 29 | 44 | 67 | 31 |
민족(民族) | - | - | - | - |
인민(人民) | 499 | 865 | 947 | 598 |
백성(百姓) | 730 | 1,288 | 1,456 | 1,252 |
동포(同胞) | 24 | 44 | 247 | 31 |
신민(臣民) | 38 | 75 | 102 | 58 |
이처럼 19세기 후반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이었던 독립신문은 가장 압도적인 빈도로 ‘民’의 개념을 ‘백성’이란 단어를 통해 표현했다. 특 별히 그 시기가 예수셩교젼셔가 간행되었던 1887년에 근접한 것이어서 이 통계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다시 말해, 훈민정음만이 아니라 450년이 지 난 구한말 당시 조선 사람들은 ‘民’의 개념을 ‘백성’이라 표현하는 것에 익 숙했다. 그리하여 예수셩교젼셔의 번역에 도움을 주었던 조선인이대표역본을 전후한 문리체 한역본들의 ‘民’을 직접 ‘셩’으로 번역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예수셩교젼셔가 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을 번역할 때, 문리체 한역본 외에 관화체 한역본을 참고했을 가능성이다. 왜 냐하면, 앞서 본 바와 같이 로스 목사는 ‘예수셩교젼셔의 번역에 기여한 조선인이 문리체만이 아닌 ‘만다린’(관화체: 중국 북부의 구어체) 한역 성 경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1887년 이전에 간행된 관화체 역 본으로서 마태복음을 담고 있는 최초의 한역본(漢譯本)은 1872년에 북경번역위원회에서 간행한 북경관화역본(北京官話譯本 또는 新約全書)이다.북경관화역본의 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은 다음과 같다.
마 1:21 他必要生一個兒子、你可以給他起名呌耶穌、因爲他要將他 的百姓從罪惡裏救出來。
(사역: 그녀는 반드시 한 아들을 낳을 것이다. 너는 그에게 야소[예수]라 이름을 지어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장차 그의 백성을 죄악에서 부터 구원해 낼 것이기 때문이다.)
마 21:43 我所以告訴你們、神的國、必從你們這裏奪去、賜給能結果 子的百姓。
(사역: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반드시 너희 에게서 빼앗아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백성에게 줄 것이다.)
이처럼 북경관화역본은 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에서 문리체 역본들의 ‘民’을 공히 ‘百姓’으로 바꾸고 있다. 신천성서를 제외한 문리 체 한역본들이 마태복음 1:21의 λαός와 마태복음 21:43의 ἔθνος를 구별하 지 않고 모두 ‘民’으로 번역했다고 한다면, 북경관화역본은 이를 모두 당 시의 구어체적 표현인 ‘百姓’으로 바꾼 것이다. 이처럼 마태복음 1:21과 마 태복음 21:43에서 사용된 북경관화역본의 ‘百姓’은 이후에 등장하는 관 화체 한역본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 중국 기독교인들의90% 이상이 본다고 알려진 화합본(和合本, Chinese Union Version)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31)
그렇다면 예수셩교젼셔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의 한자어 ‘백 성’에 대해 상기한 두 가지 가능성 ― 조선인 번역자의 직접적인 번역 가능 성과 관화역본에서 인용했을 가능성 ― 중의 하나를 택할 수도 있겠으나,양자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셩교젼셔의 번역에 기여한 조선인이 문리체만이 아닌 관화체(구어체) 한역 성경을 참고했기 때문에, 문리역본의 ‘民’을 조선인 번역자가 ‘셩’으로 번역하면 이는 관화역본의 ‘百姓’과도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한다면, 다음과 같은 잠정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1) 예수셩교젼셔에 시기적·내용적으로 더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대표역본을 비롯한 문리체 한역본들은 마태복음 1:21의 λαός와 마태복음21:43의 ἔθνος를 모두 ‘民’으로 번역하고 있다.
(2) 예수셩교젼셔의 번역자가 참고했을 구어체 한역본 ― 북경관화역본― 은 이를 모두 ‘百姓’으 로 번역하고 있다.
(3) 19세기 말 조선에서 ‘民’의 개념을 표현하는 가장 두 드러진 어휘가 ‘백성’이었다.
(4) 그렇다면, 당시 예수셩교젼셔의 번역자 는 문리체와 구어체 한역본들을 바탕으로 마태복음 1:21과 마태복음 21:43의 ‘民’ 또는 ‘百姓’을 당시의 용어인 ‘셩’으로 한글화했을 가능성이 크 다. 결국 오늘날 우리말 성경에서 마태복음 1:21의 λαός와 마태복음 21:43의 ἔθνος를 구별하지 않고 ‘백성’으로 번역하게 된 원인은 당시의 그리스 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 때문이 아니었다. 그 결정적인 원인은 19세기 중국 의 한역(漢譯) 성경들과 19세기 후반 조선에서 ‘民’을 표현하는 개념어들 가운데 ‘셩’의 높은 사용 빈도 때문이었다.
19) 민영진, 전무용, “한국어 번역 성경에 나타난 중국어 성경과 일본어 성경의 영향”, 「성경원 문연구」 19 (2006), 181-182.
20) 류대영, 옥성득, 이만열, 대한성서공회사 II: 번역·반포와 권서사업(서울: 대한성서공회, 1994), 36.
21) 최성일, “로스역신약 성서의 특징과 저본에 관한 소고 ―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을 중심 으로 ―”, 「Canon&Culture」 4:2 (2010), 114.
22) Edwin Palmer, H KAINH DIAΘHKH: The Greek Testament with the Readings Adopted by the Revisers of the Authoried Version (Oxford: Clarendon Press, 1881). 보다시피 이 그리스어개역본마 1:21과 마 21:43은 구두점을 제외하고 현재의 NA28판과 동일하다.
23) 옥성득, 이만열, 대한성서공회사 자료집 제1권: 로스 서신과 루미스 서신(서울: 대한성 서공회, 2004), 64-65 참고.
24) The New Testament of our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Translated out of the Greek: Being the Version Set Forth A.D. 1611, Compared with the Most Ancient Authorities and Revised A.D. 1881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881). 이는 1661년 판 <흠정역>(Authorized Version 또는 King James Version)을 개정한 것이다. 이 <흠정역> 역시 마 1:21의 λαός를people로, 마 21:43의 ἔθνος를 nation으로 각각 달리 번역했다. cf. <흠정역> 마 1:21 And she shall bring forth a son, and thou shalt call his name JESUS: for he sha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흠정역> 마 21:43 Therefore say I unto you, The kingdom of God shall be taken from you, and given to a nation bringing forth the fruits thereof.
25) J. Ross, “Corean New Testament”, Chinese Recorder and Missionary Journal 14 (1883), 495.
26) Toshikazu S. Foley, Biblical Translation in Chinese and Greek: Verbal Aspect in Theory and Practice (Leiden: Brill, 2009), 19, 각주
27) 모리슨(Robert Morrison)은 자신의 비서에게 보낸 편지에 복음서를 비롯한 신약이 전적으 로 자신의 번역임을 밝히고 있다: “The Gospel, the closing Epistles, and the Book of Revelati on, are entirely my own translating.” 이 편지는 그의 미망인이 편집한 모리슨의 선집에 그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Eliza A. Robert Morrison, ed., Memoirs of the Life and Labours of Rob ert Morrison, D.D., vol. 1 (London: Longman, 1839), 395 참고(원문은 다음 웹사이트에서 확 인할 수 있다. https://archive.org/details/memoirsoflifelab01morr/page/n6).
28) 최성일, “로스역신약 성서의 특징과 저본에 관한 소고”, 113-114.
29) ‘民’과 ‘百姓’의 의미 변천에 대한 약사(略史)는 다음의 소논문을 참고할 것. 정현근, “민(民)의 어원과 의미에 대한 고찰”, 「한국정치사상연구」 15:1 (2009), 136-146.
30) 정병준, “한말·대한제국기 ‘민’(民) 개념의 변화와 정당정치론”, 「사회이론」 43 (2013), 365에 수록된 표를 일부 편집하여 재인용하였다.
31) 화합본마 1:21 他将要生一个儿子、你要给他起名叫耶稣、因他要将自己的百姓从罪恶里 救出来。화합본마 21:43 所以我告诉你们、神的国必从你们夺去、赐给那能结果子的百姓。
4. 마태복음 1:21와 마태복음 21:43의 ‘백성’에 대한 잠정적 제안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λαός(마 1:21)와 ἔθνος(21 :43)는 마태복음에서 중 요한 신학적·개념적 차이를 지닌 용어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말 성경은 양 자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백성’으로 번역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개 역개정이 이러한 차이를 반영하여 번역을 수정한다면, 더 바람직할 것이다.현재 공동번역과 새번역은 해당 구절들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공동번역
마 1:21마 21:43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 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하고 일러주었다.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새번역
마 1:21마 21:43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 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 나님의 나라를 빼앗아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 실 것이다.
공동번역은 개역개정과 같이 λαός(마 1:21)와 ἔθνος(마 21:43)를 구 분하지 않고 모두 ‘백성’으로 번역하고 있다. 한글 성경 가운데는 새번역이 양자를 각각 ‘백성’과 ‘민족’으로 구분하고 있다.32) 그런데 이 번역에도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민족’은 “일정한 지역 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 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민족’은 ‘특정 지 역을 기반으로 한 언어·문화 공동체’인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 이, 마태복음 21:43의 ἔθνος는 신실한 성도들 ―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는 분명 오늘날 ‘민족’의 정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개념이다. 결국 새번역이 λαός(마 1:21)와 ἔθνος(마 21:43)를 구분하고자 했 던 시도는 좋으나, 후자를 ‘민족’으로 번역한 것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남는다.
사실, 마태복음 21:43의 ἔθνος보다는 오히려 마태복음 1:21의 λαός가 이 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을 따른다면, ἔθνος(마 21:43)가 아니라 λαός(마 1:21)를 ‘민족’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 직하다. 그래서 양자를 각각 ‘민족’(마 1:21)과 ‘백성’(마 21:43)으로 구분해 준다면, 우리말 성경 독자들이 이를 혼동하는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33) 물론 ἔθνος(마 21:43)를 ‘백성’으로 번역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을 이루는 일반 국민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실한 성도 들’을 의미하는 ἔθνος(마 21:43)에 등가 번역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마태복 음 21:43에서 ἔθνος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는 주체들’을 가리킨다. 이처 럼 ‘하나님 나라’라는 인접 표현을 고려한다면, ‘나라의 근본을 이루는 존 재’란 뜻의 ‘백성’은 ἔθνος와 분명 조화가 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본 필자는 다음과 같이 번역의 잠정적인 수정을 제안하고자 한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민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32) 참고로주요영문성경들은마1:21과마21:43을다음과같이번역하였다:
· NKJV 마 1:21 And she will bring forth a Son, and you shall call His name JESUS, for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마 21:43 Therefore I say to you, the kingdom of God will be taken from you and given to a nation bearing the fruits of it.· YLT 마 1:21 and she shall bring forth a son, and thou shalt call his name Jesus, for he sha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마 21:43 Because of this I say to you, that the reign of God shall be taken from you, and given to a nation bringing forth its fruit.· NRS 마 1:21 She will bear a son, and you are to name him Jesus, for he will save hispeople from their sins. 마 21:43 Therefore I tell you, the kingdom of God will be taken away from you and given to a people that produces the fruits of the kingdom.· NIV 마 1:21 She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you are to give him the name Jesus, because he will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마 21:43 “Therefore I tell you that the kingdom of God will be taken away from you and given to a people who will produce its fruit.
33) ‘민족’이‘백성’보다혈통적·인종적개념이더강하다는점은이용어들의역사적용례를고찰 하면 알 수 있다. 정병준, “‘민’(民) 개념의 변화”, 369-371 참고. 예를 들어, 1918년에 미국의 윌 슨 대통령이 제창한 ‘the principle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을 ‘백성자결주의’가 아니라 ‘민 족자결주의’로 번역한 것도 ‘민족’이란 용어가 지닌 혈통적·인종적 색채 때문으로 볼 수 있다.
5. 맺으며
본 소고는 마태복음에서 λαός(마 1:21)와 ἔθνος(마 21:43)의 개념적·신학 적 차이 및 우리말 번역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전자가 ‘이스라엘 민족’을 의 미한다면, 후자는 ‘신실한 성도들’ ―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 ― 을 가리킨 다. 특별히 ἔθνος(마 21:43)는 선민 이스라엘의 실패로 인해 등장하는 새로 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마태신학에서나 구속사적으로 중요한 개념이 다. 이렇게 민족을 초월하여 등장하는 믿음의 공동체인 ἔθνος(마 21:43)는λαός(마 1:21)와는 분명히 다른 용어이다. 따라서 양자의 중요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들이 구분 없이 우리말 ‘백성(百姓)’으로 번역된 것에는 분명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개역개정이 앞으로 양자의 차이를 재고하여 이를 번역에 반영한다면 우리말 독자들이 성경을 조금 더 분명히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연구를 위해 제언을 하자면, 우리말 성경의 번역사를 연구할 때에, 학자들이 대표역본을 비롯한 문리체 한역(漢譯) 성경을 주 로참고하는경향이있다.34) 그러나앞서살펴본바와같이구한말성경번 역에 일조한 조선인들은 문리체만이 아니라 관화체에도 익숙했었다. 그리 하여 북경관화역본과 같은 구어체 성경이 예수셩교젼셔를 비롯한 우 리말 성경 번역에 영향을 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말 성경 번역사를 연구할 때에, 연구자들은 문리체만이 아니라 관화체 역본의 영향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34)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글 성경 번역 계보도’에도 예수셩교젼셔에 영향을 준 한역(漢譯) 성경으로는 대표역본만이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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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섭 박사(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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