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증득 (seeing)의 단 위에서 설하시는
위 없는 깨달음을 얻은 상사,
정복자시며 연기를 보고 가르치신
이에게 예경올립니다.
2. 세상의 어떠한 퇴굴 (degenerations)도
뿌리는 모두 무지에서 비롯되니
당신이 설한 연기를
보므로써 이 모든 무지가 밝혀집니다.
3. 명석한 이라면
이 연기의 길을 이해하는 것이
당신 가르침의 핵심이라는 것을
어찌 모를 수 있겠습니까?
4. 이러할진대, 구세주시여,
이 연기의 가르침을 찬탄하는 것만큼
당신을 찬탄하는 길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5. “조건에 의지하는 어떠한 것도
실체성 (intrinsic existence)이 없도다.”
라는 말씀보다 더 경이로운 지침이
어디 있겠습니까?
6. 극단의 견해를 굳건히 부여잡는
어리석은 (childish) 집착과
지혜로운 이의 알음알이 (elaborations)의 그물을 끊는
문은 바로 이 사실입니다.
7. 이 가르침은 어디에도 없나니
당신만이 진정한 상사이십니다.
여우를 사자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외도들에겐
그저 아첨하는 말처럼 들릴 것입니다.
8. 경이로운 상사시여! 경이로운 귀의처시여!
놀라운 말씀을 설하시는 이! 위대한 구세주시여!
연기를 설하는 선한 이, 그 분에게
경이를 표합니다.
9. 중생들을 치료하기 위해
유익을 주시는 이께서는
가르침의 요의인 공성을 확신하기 위한
비할 바 없는 논리를 가르치셨습니다.
10. 이 연기의 법 (way)을
모순이라고 여기거나 확신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가르침 (system)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11. 공성을 보시는 당신에게
연기의 의미는
무실체성과 타당한 작용 (valid function) 사이에
모순이 없습니다.
12. 이와 반대로 보아
공성에는 작용이 없고
작용하는 것에는 공성이 없다고 한다면
무시무시한 암흑으로 빠질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당신 가르침에서
연기를 보는 것은 환희롭습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비실체성도
실체성도 없습니다.
14. 조건에 의지하지 않는 것 (non-contingent)은 하늘꽃과 같으니
조건 지어지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대상들이 본질적(essence)으로 존재한다면 그것들이 조건과
원인에 의지하여 존재한다는 것은 모순일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조건에) 의지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이러하니 어떠한 현상도 실체성이 없노라”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16. “실체성은 부정할 수 없으므로
모든 현상이 실체성을 가진다면
열반은 불가능할 것이며
미혹 (elaborations)은 멈출 수가 없게 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17. 이러하니 당신에게 도전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사자후로 설하시는 이시여,
그대는 현명한 이들의 대중에게 반복해서
모든 것은 실체성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천명하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18. 모든 것은 실체성이 없으며
작용은 “이것은 저것에 의지하여
일어난다”라고 하셨으니, 이 두 가지가
모순 (conflict) 없이 합일 (converge) 된다는 것을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19. “연기의 법칙을 통해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노라.”라고
천명하신 이것이 최고의 논리 (reason)이니
구세주시여, 당신은 위없는 설법자이십니다.
20. “제법은 본성이 없노라”와
“이것에 의해 저 현상 (effect)이 일어난다.” ?
이 두 가지의 확언은
서로 전혀 모순이 없습니다.
21. 이 보다 더 경이로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이 보다 더 오묘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당신을 칭송한다면
이는 진실된 칭송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찬탄이라 할 수 없습니다.
22. 무지의 노예가 되어
당신 (가르침에) 격노하며 반대하는 이들에게
실체성이 없다는 말이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닙니다.
23. 하지만 당신의 보물같은 언설,
연기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이에게는
공성에 대한 사자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더 놀랍습니다.
24. 비실체성으로 인도하는 문,
위없는 연기의 가르침,
이 개념 (name) 자체를
실체성이 있다고 여겨 부여 잡는 이가 있어
25. 성스러운 이들이 지나갔던 이 길,
비할바 없는 문을 보지 못한다면,
당신을 기쁘게 하는 이 최상의
길로 어떻게 인도하겠습니까?
26. 실체성 (intrinsic nature), 창조되지 않은, 조건에 의지하지 않는 것과
연기, 조건에 의지하는 , 창조되는 것 ?
이 둘이 어찌 합일되며,
한 가지 전제 (single basis) 위에 모순 없이
양립할 수 있겠습니까?
27. 그러므로 (대상에) 의지하여 일어나며,
실체성으로부터 벗어난 것인데도
마치 (실체성을 가진 것처럼) 나타나는 것은
환과 같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28. 이 사실은 통해 저는
당신이 가르치신 이 법에
도전하는 이들이
어떠한 논리로도 오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29. 왜 그러한가 하면, 이를 천명함으로써
보이는 현상과 보이지 않는 현상에 대한
상견 (reification)과 단견 (denigration)으로 빠질 우려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30. 이 연기의 길을 통해
당신이 설한 말씀은 오류가 없으며,
다른 가르침도 타당한 것이라는
믿음이 솟아납니다.
31. 있는 그대로를 보는 당신은 훌륭한 설법자이십니다.
당신의 뒤를 따르는 이들은
퇴굴할 일이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오류 (faults)의 뿌리가 뽑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32. 하지만 당신 가르침에 등을 돌리는 이들은
오래 동안 고심을 하더라도
오류는 점점 더 늘어나기만 할 것이니
그들은 “자아”가 실재한다는 관점만 강화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33. 아! 지혜로운 이가
이 둘 간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그 순간 존재의 깊은 곳으로부터
당신을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4. 당신이 설한 수 많은 가르침은 고사하고
아주 작은 부분의 의미라도
피상적이나마 확신을 갖는다면
이는 지복 (supreme bliss)을 그들에게 줄 것입니다.
35. 앗차! 저의 마음은 무지에 속박되어 있었습니다.
귀의를 오래도록 추구하였으나,
탁월함 그 자체인 분,
저는 그 분 공덕의 티끌만큼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36. 그럼에도 죽음을 향해 흐르는
이번 생의 강물이 멈추기 전에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신심을 찾았으니
이 정도라도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37. 스승 중에서도 연기를 가르치신 이,
지혜 중에서도 연기를 깨달은 지혜,
당신만이 세상의 제왕처럼 가장 훌륭하며,
다른 이들이 아닌 (당신만이) 이를 완전히 아십니다.
38. 당신이 설하신 모든 가르침은
연기법으로 인도됩니다.
이 마저도 열반을 위해 설하신 것이니
당신의 모든 언행은 평화를 줍니다.
39. 아! 당신의 가르침은 이와 같아서
어떤 이의 귀에 닿든지
그는 평화를 얻게 되니
당신의 가르침을 받드는 것은 누구에게나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40. 모든 반문의 도전을 이기고,
처음과 나중 간의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존재의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충족시키니,
이 논설은 저의 환희심을 더욱 더 늘어나게 합니다.
41. 이 (연기의 진리)를 위해 당신은
헤아릴 수 없는 수 겁 동안 거듭나며,
때로는 타인에게 당신의 몸, 혹은 생명을 주고,
사랑과 재물까지도 모두 주었습니다.
42. 이 가르침의 공덕을 보면
당신의 가슴이 (저를) 끌어당기는 듯 합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린 듯합니다.
이를 당신으로부터 직접 듣지 못한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요.
43. 그 비애감의 절절함이
저의 마음을 떠나지 않으니
이는 마치 어머니의 마음이
(끊임 없이) 자식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44~45. 당신의 언설을 숙고하며 저는 생각합니다.
“성스러운 상호의 존귀함으로 빛나시며
후광 빛의 그물 속에 신성하게 빛나시는
설법자, 원음 (pristine melody)으로
이렇게 가르치셨도다.”
이렇게 성인의 형상을 마음 속에 떠올리는 순간
마치 달빛이 열병을 치유하듯이
저는 위로를 받습니다.
46. 이 탁월하며, 가장 훌륭한 가르침에 대해,
배움이 부족한 이들은
발바자 풀 (balbaza grass)이 뒤엉킨 듯
극단의 혼란에 빠집니다.
47. 이러한 상황을 본 저는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며,
지혜로운 이들 (learned ones)을 따르기 위해,
당신의 의도를 숙고하고 또 숙고하였습니다.
48. 제가 불교와 비불교도의
여러 문헌들을 공부하던 그 때에는
끊임 없는 의심의 그물 속에 (걸려)
저의 마음은 고뇌에 빠져 있었습니다.
49. 완전 무결의 숲, 용수보살의 논서들 ?
실재와 비실재의 극단을 타파하고
당신의 비할바 없는 대승을 밝힐 것이라고
예언하셨던 용수보살
50. 흰빛의 화환으로 빛나는
찬드라끼르띠의 훌륭한 통찰들 ?
오염 없는 지혜가 완전한 찬드라끼르띠는
문헌들의 우주를 자유로이 활강하셨습니다.
51. 극단의 견해라는 어둠을 밝히고,
그릇된 설법자들 보다 더욱 빛나는 이 ?
스승의 친절함으로 이를 보았을 때
저의 마음은 마침내 평안을 얻었습니다.
52. 당신의 행위 중, 당신의 언설이 가장 훌륭합니다;
그 중에서도 이 말씀이 가장 탁월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들은 부처님을 기억하기를
연기의 법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53. 이처럼 상사를 따르며, 출가자가 되어
정복자의 말씀을 열심히 수학하고,
수행에 정진하는 이 비구는
위대한 깨달은 이에 대한 경외심이 이와 같습니다.
54. 스승의 친절함으로
위없는 상사이신 이의 가르침을 만났으니,
이 공덕 또한 모든 중생들이
성스러운 영적 스승에 의해 양육되는 원인이 되도록 회향합니다.
55. 이익케 하시는 이의 이 가르침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악한 생각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시고;
스승의 참된 본성을 이해함으로써 스승에 대한
확신을 찾는 이들로 언제나 채워지도록 하옵소서.
56. 어떠한 생으로 태어나든 저의 몸이나 생명을 주는 한이 있어도
연기의 법을 밝히는
성인들의 위대한 길을 떠받드는데 결코 한치의 잘못도 없도록 하옵소서.
57. 제가 항상 밤낮으로 신중하게
“위 없는 구세주께서 성취하신 이 가르침을
무한 겁 동안 치열한 정진으로
어떻게 하면 내가 떠받들 수 있을까?” 라고 숙고하게 하소서.
58. 이렇게 순수한 의도로 노력할 때,
브라마와 인드라 그리고 세속의 보호자들과
마하깔라 같은 수호존들이
어김 없이 항상 저를 지원하도록 하소서.
|
첫댓글 중생이 극단에 빠져도 연기가 되기때문에 실제로 극단에 빠지는 것은 없어요.
실제 모든 중생이 연기에 의해서 축복을 받죠.
연기를 느끼는 이는 부처님께 감사하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 뿐이죠.
감사합니다. 완전 감동이네요.
고맙습니다, 합장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