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한국내외 여러 인사들이 조계종 관련 상황에 주목하며 염려하고 있음을 언론을 통해 봅니다. 소납은 비록 미주에 머물고 있지만, 종도의 한사람으로서 조계종의 종지종풍을 되새겨 보며, 그 후예로서의 사명감과 아울러 참회와 혁신운동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도반 및 독자들과의 탁마를 바라면서 산승의 생각과 바람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참고로 조계종의 명칭과 배경의 인연부터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른바 조계종의 공식명칭은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입니다. ‘조계종’ 앞에 관형 수식어인 ‘대한불교’는, 세계적인 불교 가운데 한국이라는 지명 즉, 한국이라는 특별한 공간과 아울러 한국인이라는 민족 문화적 특징을 들어냄으로서, 다른 나라 민족의 불교와는 다른 특성을 지닌 한국인의 불교라고, 조계종을 한정해주고 있습니다.
원래 ‘조계’란 중국 선종(禪宗)의 제6대조사, 줄여서 육조(六祖)인 대감혜능(大鑑慧能) 선사가 머물며 교화하던 곳의 이름으로, 이는 곧 혜능을 가리키는 것으로 통합니다. 한국에서는 혜능의 선법을 전해온 그의 후예들이, 조계라는 명칭을 통해 그들의 법맥과 전통을 밝혀 왔습니다. 이는 중국에서 중국인들에 의한 혜능의 후예로서 이어져 온 현창교화사업과는 다름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로서 ‘조계종’이란 한국의 불교전통을 담지 해온 종단으로서, 교단의 여러 종파 가운데 하나이지만 (고려말엽 태고선사에 의해 모든 종파를 포섭했던 명칭이기도 함), 석존으로부터 비롯된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달된 선법을 중심으로 형성 발전되어 온 불교종단임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종의 전통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 (Sakyamuni Buddha)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해 받은 제1대조사 가섭(Maha-kasyapa) 존자를 시작으로 그 법이 계속 전승되어서, 인도의 제28대 조사였던 달마(Bodhidharma) 존자가 전법교화를 위하여 중국으로 와서 중국선종의 초조(제1조)가 되었고, 그가 전한 법이 중국의 제6대인 혜능에 이르러 중국에 널리 퍼지게 됩니다. 혜능의 증법손 (曾法孫)인 서당지장(西堂智藏)의 법을 잇고, 총림 청규의 창시자인 백장회해(百丈懷海)의 인가를 받아온 신라의 명적도의(明寂道義) 선사가 한국에 가지산문을 열어 선법을 폈고, 그의 법손 보조체징
(普照體澄)에 이르러 그 법이 융성해지자, 중국의 조계에 혜능이 주석하던 보림사(寶林寺)와 같은 사명을 국가조정으로부터 받아서 조계의 법맥과 가풍의 전통이 국가적으로 공인되었습니다. 그 뒤로 고려의 태고보우(太古普愚)와 조선의 청허휴정(淸虛休靜) 선사 등을 거쳐 조계의 법통이 근대에 전해졌으며,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을 현대적으로 공식화 할 때에, 도의 선사를 종조(宗祖)로 하여 종헌(宗憲)을 만들고, 종지(宗旨)와 종통(宗統)을 명문화 하였습니다.
현대 조계종의 설립근거로서의 헌법인 <종헌>에는 종지와 종통을 밝혀놓고 있습니다. 즉 종헌 제2조에는 “본종은 석가세존의 자각각타(自覺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한 근본교리(根本敎理)를 봉체(奉體)하며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전법도생(傳法度生)함을 종지로 한다.” 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풀어서 말하자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우치신 바, 깨달음과 실천수행이 잘 갖추어진 근본 가르침’을 받들어 몸소 체험하며,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그 성품을 보아 깨달음을 이루고 그 법을 전하며 뭇 생명을 구원하고 제도함’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석존의 근본 가르침은 이른바 삼법인(三法印) 즉, 무상(無常)과 무아(無我) 및 적정(寂靜)과 사성제(四聖諦)와 중도(中道) 등의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는 경장(經藏 Sutra)과 아울러 불자들의 계법(戒法) 즉, 행동 윤리강령을 담고 있는 율장(律藏 Vinaya)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선종의 특징인 각자의 심성을 보아 깨쳐서 지혜를 갖추고 자비심으로 세상에 회향하여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교의 근본교리를 바탕으로 하여 대승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의 수행법을 통해서 도를 이루고, 사회에 회향 교화함을 조계종이 목표로 삼고 있음을 선언한 것으로, 세계인들에게 그 존재 목적과 지향을 천명한 것입니다. 이는 조계종도로서, 불교를 올바로 이해하고, 계율을 잘 지키며, 참선수행을 잘하고, 사회에 자비봉사를 의무와 사명으로 여기고 살아가야 함
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헌 제6조에는 “본종은 신라 헌덕왕 5년에 조계 혜능조사의 증법손 서당 지장 선사에게서 심인(心印)을 받은 도의국사를 종조로 하고, 고려의 태고 보우국사를 중흥조로 하여 이하 청허와 부휴 양법맥을 계계 승승한다.”고 하며 그 법맥과 종통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석존과 가섭 및 보리달마와 혜능을 통해, 인도와 중국을 거쳐 이어져 온 법을 한국의 도의국사가 전하고, 그를 신라와 고려 및 조선시대를 지나 오늘날까지 약 2,600여년을 전승 유지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조계종도는 마땅히 종조와 그 종통의 가풍을 잘 배우고 실현해 나가야 할 줄 압니다. 불자로서 부처님이 정해주신 계율을 지킴은 물론, 인도의 초조 가섭존자와 중국의 초조 보리달마존자, 조계혜능과 서당 및 백장선사, 한국의 초조 도의국사 및 태고와 청허선사가 보여 주신 청백가풍(淸白家風)의 유산 즉, 맑고 조촐한 청빈(淸貧)의 삶을 향기롭게 꾸려나감이 바람직한 종교인의 살림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1994년도 조계종 개혁회의 부회장이었던 설조스님이 그 당시에 재정과 인사부분 등의 입법조치 미완에 대한 참회와 그 이후의 적폐청산을 위한 각성을 위해, 41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정진을 하여 국내외의 관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분의 혁신 주장과 청정승가 구현요청은 시의적절한 것이며, 비정상적 종단의 정상화를 촉구하고 발원한 것입니다. 일부 편향된 비판을 하는 이들이 설조스님의 과거 개인적 비리 의혹을 트집 잡아 그 분의 단식정신과 본질을 호도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개인의 일신상 허물로 대의명분을 그르치려는 것은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부역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말보다 뜻에 의지하고(依義不依語) 사람보다 법에 의지하며(依法不依人) 지식보다 지혜에 의지하고(依智不依識) 불완전한 것보다 완전한 진리에 의지하라(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춰 봅시다. 아울러, ‘어두운 길을 갈 때에 누가 횃불을 들고 오거든, 그 사람을 싫어하여 그 불빛까지 받지 않으려다가는 흙구덩이에 빠지기 쉽다’는 말씀도 유념하여야겠습니다.
오늘날 조계종단 지도부 인사의 부실과 부덕 및 무능 무참으로 종단의 사회적 위상과 이미지가 실추되고, 종단내외의 관심있는 분들에게 근심과 우려를 일으키고 있음은 매우 슬프고 안타까운 현실이며, 불조에 죄송스럽고 종도와 시민들에게 부끄러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때에 조계종과 인연이 있는 모든 분들은, 조계종의 정상화를 위하여 지혜와 힘을 모아서, 훌륭한 종지와 종풍을 되살려 내는 운동에 솔선수범하고 단합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시대적 책임과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면, 역사적 죄인으로서 후대인들의 지탄을 받을 줄 압니다. 한국내외의 조계종도와 불자 및 이웃 종교인들과 시민 여러분들의 경책 및 협조를 빌면서, 조계가풍을 살아내려는 비구 진월 분향. 나무본사 석가모니불!
진월스님은 전통 해인강원(현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6년간 제방의 전통선원에서 수선안거 정진한 뒤에, 그 체험을 현대사회에 회향하기 위한 방편으로 버클리대학에서 불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동국대학교에서 교수하면서, WFB 부회장, URI 세계위원, UNDV국제위원 등 세계평화 운동을 하다가, 정년퇴임한뒤에 캘리포니아에 고성선원을 열고 전법포교를 진행하고 있다.
www.go-sung.org jinwol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