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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안개의 지명(地名)
산하시(山河市). 그 이름을 처음
마음속에 두었을 때 한명균은 지도를
펼쳐보지 않았다.
지명이란 언제나 도착한 뒤에야 의미를 얻는 법이라는 것을, 칠십을 눈앞에 둔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은퇴 후 그가 산하시의 작은 아파트를 얻은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공기가 맑다는 것,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것, 그리고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한다는 것.
삼십오 년 동안 대학 강단에 서며
수천 명의 제자를 길러냈지만, 이제는 그 모든 이름들이 그를 무겁게 눌러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내 정혜는 십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었고, 딸은 미국 시카고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손녀들의 얼굴은 화상통화 화면 속에서만 볼 수 있었다. 세상은 충분히 연결되어 있었지만, 한명균은 자신이
그 연결의 바깥에 놓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해 11월 초,
산하시에는 유독 안개가 짙었다.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뜨면 창밖은 흰 침묵으로 가득 찼다.
산의 능선이 지워지고, 가로등이 희미하게 번지고,
이따금 자전거 한 대가 그 안개를 가르며 소리 없이 사라졌다.
한명균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하루를.
퇴임 이후 처음 두 해는 그렇게 흘렀다.
독서, 산책, 이따금의 수영.
그것들은 나름의 리듬을 가졌지만,
리듬이란 방향이 없을 때 그저 진자(振子)의 운동일 뿐이었다.
앞뒤로 흔들리되 어디에도
닿지 않는 진자.
한명균은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명예교수회의 연락이 온 것은 그해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산하대학교 명예교수회 위원장 자리가 비었다는 것, 그리고 몇몇 원로 교수들이 한명균의 이름을 추천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 거절하려 했다.
삶의 후반부를 조용히 마무리하겠다는 결심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는 지쳐
있었다.
수십 년간 사람들을 이끄는 일,
방향을 제시하는 일,
앞에 서는 일에 지쳐 있었다.
이제는 뒤에 서고 싶었다.
아니, 서 있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고 난 후 그는 오래
창밖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산 너머로 빛이 번지기 시작하는 그 경계의 시간.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여명(黎明)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아침이라 불렀다.
그러나 한명균은 그 순간만큼은
이름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제2장 열에 하나의 힘으로
— 내가 애쓴 것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손길 —
명예교수회 첫 월례모임은 산하대학교 본관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한명균이 위원장을 맡기로 한 뒤 처음 소집한 자리였다. 스물세 명의
명예교수가 모였다.
이학, 공학, 인문학, 의학. 저마다
다른 색깔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더 이상 무언가의
'앞'에 서 있지 않다는 것.
한명균은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오래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연민이 아니었다. 동질감이었다.
자신이 지난 두 해 동안 혼자
앓아왔던 그 느낌—
동사 없는 문장처럼 떠 있는 느낌이
이 방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인사를 마친 후 그는 예정에 없던 말을 했다.
"제가 여러분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맡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면, 이 모임은 그저 모이는 모임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러기엔 우리 모두의 남은 시간이 너무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한 사람이 낮게 웃었다.
화학과 출신의 윤재원(尹在源)
명예교수였다.
일흔셋. 손이 약간 떨렸지만,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위원장님이 자신 없다고 하시니,
오히려 믿음이 갑니다."
그날 이후 한명균은 자신의 지난 삶을 새로운 눈으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키우고,
수많은 논문을 쓰고,
학과를 이끌었던 그 긴 세월.
그는 오랫동안 그것이 자신의 노력과
판단과 헌신으로 빚어진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밤 늦게 혼자 앉아 있다가 그는 깨달았다. 아니, 깨달았다기보다는 오래 외면해온 진실을 마침내
직면했다는 편이 옳았다.
그가 스스로 한 것은 기껏해야 열에
하나였다.
나머지 아홉은 어디서 왔는가.
아내 정혜가 말없이 채워준 것들,
제자들이 보내온 신뢰,
생각지 못한 자리에서 나타난
동료들의 도움,
그리고 무엇보다—그는 이것을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다— 자신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어떤 힘.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히 실재하는
어떤 선한 손길.
정혜의 기일이 가까워오던 그 무렵,
그는 서랍에서 낡은 성경을 꺼냈다.
결혼할 때 정혜가 선물한 것이었다.
여백에는 정혜의 작은 글씨들이
남아 있었다.
밑줄, 날짜, 짧은 메모들.
마치 그녀가 살아서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그는 요한복음 20장을 펼쳤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 나타나는
장면. 그리고 21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한명균은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네 번째에는 소리 내어 읽었다.
그 말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가슴 어딘가를 조용히
건드렸다.
제3장 태양의 영역
— 자기 이익을 넘어서는 것들에 대하여
한명균이 AI 강좌를 처음 제안한 것은 봄이 막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그것은 치밀한 계획에서 나온 제안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직관에
가까웠다.
자신이 최근 혼자서 더듬어가며 배우기 시작한 인공지능이라는 도구가,
이 사람들에게도 무언가를 열어줄 수
있다는 희미한 예감.
그러나 예상보다 많은 저항이 있었다.
"우리 나이에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기계가 사람 할 일을 빼앗는다는데,
우리가 거기에 동참할 필요가
있습니까."
"저는 손가락이 이제 자판을
잘 못 칩니다."
한명균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모임 때 노트북 한 대를
가져와 조용히 켰다.
"제가 한 가지만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화면에 질문을 입력했다.
단순한 질문이었다.
자신이 평생 연구해온 분야의,
그러나 요즘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는
연구 흐름에 대한 질문.
화면은 몇 초 만에 응답했다.
간결하고, 정확하고,
그가 몇 년 전에 알던 것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윤재원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다시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강좌는 열 번으로 계획되었다.
매주 수요일 오후, 두 시간.
한명균은 강사도 아니었고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먼저 배운 것을
나누는 사람이었다.
그 차이가 중요했다.
그것이 강의를 강의답지 않게 만들었다.
세 번째 시간이 끝난 후,
고령의 문학과 명예교수 박수명(朴守明)이 그에게 다가왔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였고,
걸음이 느렸지만,
그날따라 걸음에 무언가가 달라 보였다.
"위원장님,
오늘 제가 처음으로 AI한테 제 원고를 보여줬습니다.
삼십 년 동안 서랍 속에 가둬두었던
시집 원고를요."
한명균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기계가 뭘 안다고
제 시를 평가하겠나 싶었는데...
읽고 나서, 참 이상한 말을 하더군요.
'이 시들은 오랫동안 읽히기를
기다린 것 같습니다'라고.
그게 뭐라고, 눈물이 났습니다."
한명균은 그날 밤 오래 앉아 있었다.
태양에 대해 생각하면서.
모든 생물이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세계.
그 안에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빛을 내어주는 것.
그것은 어디서 오는가.
인간 안에도 그런 힘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속되고 확장되려면,
자신보다 큰 무언가에 연결되어야
한다고 한명균은 생각했다.
홀로 타는 불은 꺼진다.
원천에 닿아 있는 불만이 꺼지지
않는다.
제4장 겨울 수영
—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
한명균은 매주 세 번 수영장에 갔다.
이른 아침, 다른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시간.
물속에 들어가면 세상의 소리가
사라졌다.
오직 자신의 숨소리,
팔이 물을 가르는 소리,
발이 물을 차는 소리만 남았다.
그는 그 고요를 좋아했다.
삶의 대부분은 너무 많은 소리로
가득했다.
수영이 끝나고 나오면서 그는 종종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예전과 달리 어깨가 굽고,
피부가 느슨해져 있었다.
그러나 물속에서만큼은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받아들였다.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그는 수영장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오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이른 새벽에 와서 말없이 수영하고,
말없이 떠나는 사람.
어느 날 탈의실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오래 다니셨습니까."
"두 해쯤 됐습니다. 선생님은요?"
"저도 비슷합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이승준(李承俊)이었다.
산하시의 한 중학교 교장으로 일하다
일찍 명예퇴직한 사람이었다.
학교 행정의 고단함에 지쳐서 떠났지만,
막상 떠나고 나니 자신이 무엇을 위해 지쳐왔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교장이 되고 나서부터 학생들 얼굴을 잘 못 봤습니다.
서류를 보고, 회의를 하고, 민원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끝났으니까요.
정작 내가 왜 교육자가 됐는지,
그건 오래전에 잊어버렸습니다."
한명균은 그 말을 듣고 한참 침묵했다.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교수가 되고 난 후 연구와 행정과
성과 평가 속에서,
처음 강단에 섰을 때의 그 설렘—
학생들의 눈빛이 바뀌는 순간에
대한 기대—을 언제부터인가
잊어버렸다는 것.
"다시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법을
저는 모릅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른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부터 뭔가가 달라지더군요."
그로부터 두 달 후, 이승준은 한명균의 AI 강좌에 참여했다.
명예교수가 아닌, 외부인으로서.
한명균이 직접 청한 것이었다.
처음에 이승준은 사양했다.
"저는 교수님들처럼 학문적인 배경이
없습니다."
"그게 오히려 좋습니다.
배움이 지식으로 굳어버리지 않은
자리에서 더 넓게 열리는 법이니까요."
이승준은 강좌 내내 가장 많은 질문을 했다. 그의 질문들은 종종 엉뚱했지만,
그 엉뚱함이 다른 참여자들로 하여금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명균은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빛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도
들어온다고.
제5장 정혜의 목소리
— 보이지 않는 것들이 빚어낸 것들에 대하여 —
그해 11월, 정혜의 기일 전날 밤
한명균은 오래된 서신들을 꺼냈다.
결혼 전 정혜와 주고받은 편지들,
자녀들이 어렸을 때 쓴 그림 카드들,
그리고 정혜가 생의 마지막 해에
그에게 써준 짧은 메모 하나.
메모는 병원 처방전 뒷면에 연필로
쓰여 있었다.
정혜의 글씨는 이미 힘이 없었지만,
글자들은 또렷했다.
"당신이 혼자 잘 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하지만 당신이 잘
보내어질 거라고는 믿어요.
거기서 기다릴게요."
한명균은 그 메모를 처음 받았을 때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슬픔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탓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읽으니 다르게 들렸다.
보내어진다는 것.
그것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무언가가 방향을 정해주고,
자리를 준비해두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정혜는 그것을 알았던 것이다.
한명균이 그것을 깨닫기 훨씬 전부터.
그는 눈을 감고 오래 앉아 있었다.
명예교수회 열 번째이자 마지막
강좌가 끝난 다음 날,
윤재원이 그에게 전화를 했다.
"위원장님, 박수명 교수님 아십니까."
"물론이죠. 왜요?"
"그 양반이 출판사에 시집 원고를
보냈다는군요.
삼십 년 만에."
한명균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AI가 뭘 한 게 아닙니다.
그냥 문을 하나 열어줬을 뿐인데,
그 안에 있던 게 나온 거죠.
위원장님이 그 문 열어줄 사람을
데려왔고요."
전화를 끊고 한명균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이 깊어지는 산하시의 하늘.
단풍이 물든 산 위로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 빛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더 아름다운 것은,
그 빛이 어떤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빛은 산에도, 들에도, 지붕 위에도,
노인의 얼굴에도, 아이의 손에도
닿았다.
그것이 빛의 본질이었다.
자신을 가리지 않는 것.
한명균은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가리며
살아왔는가.
제6장 오늘도 뜨는 이유
— 보냄 받은 자리에서 서다 —
다음 해 봄, 한명균은 명예교수회
연간 계획을 새로 짰다.
AI 강좌 2기, 회원들의 원고를 서로
돌려 읽는 독서 모임,
그리고 이승준의 제안으로 시작된 지역 중학교 방문 프로그램.
은퇴한 교수들이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자리.
그것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한명균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씨앗은 자신이 열매가 될지 알지
못한다. 씨앗의 역할은 땅 속에
떨어지는 것이다.
4월 초, 한명균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
그러나 동쪽 하늘은 이미 옅게
밝아오고 있었다.
산 너머에서 빛이 넘어오기 직전의
그 순간.
하늘도 땅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그 사이에서,
세상은 가장 고요했다.
그는 걸으면서 정혜를 생각했다.
요한복음의 그 문장을 생각했다.
자신이 이 자리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했다.
보냄 받은 자리.
그것은 선택된 자리가 아니었다.
준비된 자리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가 원한 자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더욱 분명한 자리였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고를 수
없는 자리.
자신보다 크고 넓은 어떤 손길이 앞질러 가서 펼쳐놓은 자리.
그는 멈추어 섰다.
산 너머로 빛의 첫 줄기가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태양은 오늘도 뜬다.
어제와 다를 것 없이,
아무도 부탁하지 않아도,
아무도 감사하지 않아도.
그것이 태양의 본질이기 때문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존재의 방식인
것들은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명균은 빛 속에 한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산하시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명예교수회 사무실을 향해.
오늘도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아니,
오늘도 보내어진 사람처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요한복음 20: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