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밥 / 조성국
어머니 나 밥 먹이며
애써 가르치신 것 한 가지
마당 가운데 널어놓은 멍석에 곡식들 말려놓고,
우르르 몰려오는 햇봄의 갓 깨어난 연노랑 병아리를 쫒는 것도 쫒는 것이지만, 그 병아리 놓치지 않고 쏜살같이 급강하해서 한순간 낚아채 가는 솔개 쫒으라고, 나어린 손아귀에 작대기를 쥐여주곤 했다 세상에는 공밥 없다고, 어지간히도 언질하셨다
- 조성국, 『슬그머니』(실천문학사, 2007)
공밥 / 김혜자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밀개차 끌고 가다 오르막길에서 얼기설기 종이 뭉치와 박스들을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구부려 앉아 박스를 줍고 종이를 다시 묶습니다 앞서가던 할머니가 할아버지 밀개차도 같이 끌고 갑니다 할머닌 무거운 프라이팬 주워 2천 원 받았다고 흐뭇해하십니다
자전거와 도서관과 시가 공생의 도구란 말 믿고 도서관에 가 반나절 꼼짝 않고 공생의 시 궁글렸습니다 컨베이어벨트 앞에 앉은 조립공처럼 시의 밥 지었지요 좀체 익지 않는 시 뜸 들이는 동안 잘 익은 시 한 알 한 알 베껴 먹기도 했어요 퇴근하면 문 닫아버리는 도서관에 가보고 싶었던 여공 시절 떠올리며 열심히 공부했지요 냉이도 퍼렇게 언 손 뻗치고 쑥도 가물어터진 흙 비집고 올라오는데 저 어린 것들도 공들여 푸른 밥상 차려내는데 공밥 먹는 시시한 시인 안 되려고 기 쓰고 시를 썼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반나절 퍼 올린 오늘 시값은 공짜랍니다
- 김해자,『집에 가자』(도서출판 삶창, 2015)
공밥 / 김혜자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밀개차 끌고 가다 오르막길에서 얼기설기 종이 뭉치와 박스들을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구부려 앉아 박스를 줍고 종이를 다시 묶습니다 앞서가던 할머니가 할아버지 밀개차도 같이 끌고 갑니다 할머닌 무거운 프라이팬 주워 2천 원 받았다고 흐뭇해하십니다
자전거와 도서관과 시가 공생의 도구란 말 믿고 도서관에 가 반나절 꼼짝 않고 공생의 시 궁글렸습니다 컨베이어벨트 앞에 앉은 조립공처럼 시의 밥 지었지요 좀체 익지 않는 시 뜸 들이는 동안 잘 익은 시 한 알 한 알 베껴 먹기도 했어요 퇴근하면 문 닫아버리는 도서관에 가보고 싶었던 여공 시절 떠올리며 열심히 공부했지요 냉이도 퍼렇게 언 손 뻗치고 쑥도 가물어터진 흙 비집고 올라오는데 저 어린 것들도 공들여 푸른 밥상 차려내는데 공밥 먹는 시시한 시인 안 되려고 기 쓰고 시를 썼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반나절 퍼 올린 오늘 시값은 공짜랍니다
- 김해자,『집에 가자』(도서출판 삶창, 2015)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작과비평사, 1996)
혼자 먹는 밥 / 문성해
건너편에
밥 먹는 법을 잊어버린 귀신 하나
덩그러니 앉혀놓아도 좋겠지
물풀을 다 걷어낸 모시조개처럼
찬 한 개로 먹는 밥은
스스로 소금기가 배어 있다
푸른곰팡이 부대가 닥치기 전
잠시 내게로 들른 이 밥을
들판에서 주운 살점인양 느긋이
몸에 숨겨주는 아침,
움푹 꺼진 눈의 귀신 하나
맞은편에 앉히고
또 누가 홀로 밥사발과 독대하는지
이 아파트 어디선가
밥그릇 긁는 소리가 난다
숟가락 소리가 깊어지면
몸속의 여물통에도
반짝이는 사리가 찬다
- 문성해, 『내가 모르는 한 사람』(문학수첩, 2020)
객짓밥 / 마경덕
하나님은
저 소금쟁이 한 마리를 물 위에 띄우려고
다리에 촘촘히 털을 붙이고 기름칠을 하고
수면에 표면장력을 만들고
소금쟁이를 먹이려고
죽은 곤충을 연못에 던져주고
물 위에서 넘어지지 말라고 쩍 벌어진 다리를
네 개나 달아주셨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연못이 마르면
다른 데 가서 살라고 날개까지 주셨다
우리 엄마도
서울 가서 밥 굶지 말고, 힘들면 편지하라고
취직이 안 되면
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지 말고
그냥 집으로 내려오라고
기차표 한 장 살 돈을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그 한마디에
객짓밥에 넘어져도 나는 벌떡 일어섰다
- 월간『시인동네』(2016년 12월호)
따순 밥 / 길상호
언 손금을 열고 들어갔던 집
그녀는 가슴을 헤쳐
명치 한가운데 묻어놓았던 공깃밥을 꺼냈다
눈에서 막 떠낸 물 한 사발도
나란히 상 위에 놓아주었다
모락모락 따뜻한 심장의 박동
밥알을 씹을 때마다
손금 가지에는 어느 새 새순이 돋아났다
물맛은 조금 짜고 비릿했지만
갈증의 뿌리까지 흠뻑 적셔주었다
살면서 따순 밥이 그리워지면
언제고 다시 찾아오라는
그녀의 집은 고봉으로 잔디가 덮여 있다
- 이은봉, 『2018 오늘의 좋은 시』(푸른사상, 2018)
추운 밥 / 공광규
겨울 아침 인도 위에
비둘기 한 마리가 깃털을 덮고 누워 있다
썩어 먹다 남은 토사물이
주검 옆에 얼어 있다
부러진 고개를 꺾고
빨간 발을 오므린 채
신축빌딩 아래서 삶을 멈춘
그의 깃털을 찬바람이 흔들고 있다
오늘 새벽 슬픈 부리로
얼어 있는 토사물을 찍어 먹다
발길에 채었거나 갑자기
날아가려다 시멘트벽에 부딪혔을 것이다
눈앞에 두고 간 밥을
저승에서도 못 잊겠는지
차마 감지 못한 눈으로
서울 하늘 아래 추운 밥을 바라보고 있다.
- 공광규, 『소주병』(실천문학사, 2004)
모래밥 / 유홍준
공사장 모래더미에
삽 한 자루가
푹,
꽂혀 있다 제삿밥에 꽂아놓은 숟가락처럼 푹,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느라 지친 귀신처럼
늙은 인부가 그 앞에 앉아 쉬고 있다
아무도 저 저승밥 앞에 절할 사람 없고
아무도 저 씨멘트라는 독한 양념 비벼 대신 먹어줄 사람 없다
모래밥도 먹어야 할 사람이 먹는다
모래밥도 먹어본 사람만이 먹는다
늙은 인부 홀로 저 모래밥 다 비벼 먹고 저승길 간다
- 유홍준, 『저녁의 슬하』(창비, 2011)
어머니의 밥 / 오봉옥
난리를 두 번이나 겪어봐서 안다
이 세상에 목숨 붙이고 사는 일보다 중요한 거 없다
잡상인으로 살며 사흘 걸러 잡혀가면서도
눈물 한 번 흘리지 않았다
잡아가는 순사도 지쳐 멀리서 호루라기 불었다
자식 놈 밥 넘어가는 소리 들으며
빈 수저로 허공을 퍼 올려 배를 채우던 엄니에게
밥은 무엇이었을까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세월,
난 늙은 엄니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눈밥을 떠먹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제 몸의 살점을 뚝 떼어내 자식들 입에 떠 넣어주는 일을
난 그저 거룩하다는 말로 포장해 왔다
- 오봉옥,『섯!』(천년의시작, 2018)
아버지의 밥 / 오봉옥
초로인생이라는 말 입에 달고 살았다
식은 밥 한 덩어리에 막걸리 한 잔이면 그만이었다
고개를 자빠트리고 내일을 걱정하는 건 엄니에게 미루고
짐 자전거 타고 유유자적 사람들 만나 이약이약 하며 살았다
잡상인으로 잡혀가 경찰서 조서를 받다가도
엄니가 오면 대신 좀 받으라며 벌떡 일어서 나가곤 했다
엄니에게 목구멍은 슬프디슬픈 감옥이어서
눈물을 삼키게 하는 곳이었지만
자신에게 목구멍은 염치없는 골목일 뿐이어서
밥물 끓는 냄새만 나도 문 열리는 소리를 냈다
그런 아비에게 인생의 가장 즐거운 낙은
뚝배기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먼 산 바라보는 일이었다
- 오봉옥,『섯!』(천년의시작, 2018)
새벽밥 / 공광규
기내식을 주겠다는 방송이 나와
눈뜨고 전광판을 보니 새벽 네 시다
비행기는 호주대륙 북쪽 반도를 겨우 비켜가고 있다
고도 1만 미터 영하 40도
이 높고 추운 곳에서 새벽밥을 받으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새벽 밥상에 숟가락 젓가락 내려놓고
숭늉으로 입가심을 하고는
헛기침 두어 번 하며 사립문 밖으로 사라지던 아버지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일어난 나는
눈을 비비며 아버지가 남긴 흰 쌀밥을 먹었다
기내식 포장을 뜯으며
창밖을 내다보니
대륙 지평선이 눈꺼풀을 막 열고 있다
청양 우시장 거간꾼 완장을 찬 아버지가
코뚜레를 움켜쥐고
흥정을 막 시작했을 것 같은 시간이다
- 공광규, 『파주에게』(실천문학사, 2017)
누이의 밥 / 오봉옥
누이에게 저녁노을은
하루를 시작하는 붉은 종소리였다
친구들이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학교에서 돌아올 때
누이는 밤일을 하기 위해
축 처진 어깨로 공장 문턱을 넘었다
고등학교를 못 간 누이는
눈물을 달고 살았다
외양간에 웅크리고 앉아
여물 먹는 소를 안쓰러이 바라보다가
때 묻은 팔소매로 눈가를 훔치기도 하고
갑자기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끼기도 했다
열일곱 처녀의 얼굴 여기저기엔
울음 자국이 딱지처럼 앉아있었다
구멍 난 양말들이 참새처럼
줄지어 빨랫줄에 올라앉던 시절,
누이의 꿈은
단발머리 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엄니 곁에서 늘
앙알앙알거리던 누이에게
밥은 무엇이었을까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일보다
절실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누이는 끝내 나비가 되어
야간 학교 높은 담을 넘나들었다
- 오봉옥,『섯!』(천년의시작, 2018)
◇ 밥에 관한 시 모음 [1]
시 모음 197. 「밥」
밥에 관한 시 [1] 차례 밥 / 안도현 밥 / 허형만 밥 / 이문재 밥 / 황규관 마당밥 / 안도현 찬밥 / 안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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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는 것은(1993)
작사 / 지예, 작곡 / 김진룡
노래 / 김종찬
https://www.youtube.com/watch?v=Rd0vyGFJAKg
첫댓글 그흔한 밥이야기도 많지만 그렇고 보니
밥 시도 많네요. 흔하니까 ㅎ
몇일전 목포에서 점심밥을 먹는디~
세상에나 / 그흔한 스텐 공기에 안으로 쏙
들어가게 밥을 줍디다. 그래도 밥 적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 뭡니까.
아하~~ 그래서 오늘날 쌀값이 20만원도 못가는것일까?
에구, 체면 때문일 겁니다. 왜냐구요? 가난뱅이로 보일까봐 ㅎ
지는 한 그릇 더 시켜 먹습니다.
수년 전부터 하루에 밥은 점심 만 먹는 날이 많습니다. 건강을 위해서지요. 그 옛날 배곯아던 생각을 하면서도 먹을 게 넘 풍족하고 쌀밥에 대한 좋지 않는 기피성 발언들로 더 안 먹게 되는군요. 쌍스런 말로 배떼지가 기름끼 꽉~ 찬거지요 ㅎ
아무튼 격세지감을 밥상머리화젯거리인데
부잣집 딸 집사람이라서 궁상이 될까봐 할 말을 꿀~ 꺽 삼켜버리지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