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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거지가 되지 말자 본 문 : 누가복음 18 : 35 - 43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어제 그제가 우리나라가 국가 적으로 지키는 현충일이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순국하기도 하고 또는 장애를 입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을 추모하는 날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 분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요즘 길을 다니다 보면 군데군데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풍경을 보면서 그 옛날 못 먹고 헐벗었던 보리 고개를 생각해 봅니다. 참으로 지지리도 가난하여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던 때가 바로 4~50년 전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386 좌익 세력들이 독재자라고 몰아붙이는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 사업을 통하여 “5000년 묵은 바위의 이끼를 벗기자” 라는 슬로건으로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자”는 운동을 벌렸습니다.
그 결과 온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지지리도 못살던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 버리고 선진국의 대열을 향해 고공행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몇 해 전 캄보디아를 선교 방문하였을 때 현지 가이드가 하는 말이 현재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고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고 박정희 대통령은 1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한 인물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안에서만이 그 분을 독재자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김대중 前 대통령은 퇴임 후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념관을 건립하였습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은 고향 봉화마을에다가 수십억을 드려 사저를 짓고 천년만년 살아보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백억의 국고를 드려서 호화묘지를 조성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 박정희 대통령만은 기념관 건립을 하지 못하도록 지나간 10년 동안 온갖 방해를 해서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는 머리에 백발이 날리는 7080세대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이루어 놓은 경제 성장의 금자탑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오늘날 386세대라고 하는 사람들은 환상적인 이념만을 앞세워서 이와 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우고 이 나라를 지킨 60대 70대 80대를 보수 수구세력이라고 단죄하면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2030 세력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060, 7080세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베트남 전쟁을 통하여 많은 장병들이 월남의 정글 속에서 피 흘려 싸웠기에 우리나라의 군장비의 현대화가 이루어 졌고 경제 성장의 초석이 되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현충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몸 바친 그분들의 영령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느새 이제는 완연한 여름이 되어서 한낮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날씨로 변해 버렸습니다. 어제 그제가 절기로 보리 환갑이라고 하는 망종(芒種)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지역에서는 보리농사가 없지만 호남지역으로 가면 보리 추수가 지금 한창입니다.이와 같은 여름철을 맞이하여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떨어지거나 식지 않도록 각별히 힘쓰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에너지와 같습니다. 에너지가 떨어지면 모든 것이 다 정지되고 맙니다. 마치 자동차의 기름이 떨어진 것과 같습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자동차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믿음이 식어지거나 떨어지면 우리의 생활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고 맙니다.
그래서 생활의 기쁨이 없습니다. 생활의 기쁨이 없으니까 매사에 의욕도 없고, 교회도 나오기 싫어지고, 억지로 교회 나와 앉아있어도 한 시간 내 졸다가 갑니다. 그러니까 무슨 은혜가 되고, 무슨 성령 충만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이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는 『새 힘 받아 승리의 삶을 살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노력하고 힘쓰는 자를 도와주십니다.
다 같이 복음성가를 한절 부르겠습니다.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136)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 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 찌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 세요 힘을 내 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힘을 내 세요 힘을 내 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잖아요
그럼 오늘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영적 거지가 되지 말자』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 말씀으로 성경에 기록된 바디매오의 실상과 오늘의 우리들을 대조하면서 우리가 마치 거지같은 인생을 살고 있지나 않은지를 돌이켜 보고 저녁 시간에는 거지의 상징인 겉옷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예수께로 나온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된 것을 말씀드리면서 우리도 영적 거지의 겉옷을 벗어버리는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에 일어난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건이며 기적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요단강 건너 뵈뢰아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요단강을 건너면 여리고성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리고성을 지나가실 때에 길가에서 구걸하는 바디매오라고 하는 거지 소경을 만났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나라에는 소경들이 참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리고성의 바디매오는 성문 곁에 앉아서 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구걸을 합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눈을 굴리며 구걸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오늘이 무슨 날인데 사람이 이렇게 많이 지나갑니까? 하고 물으니까 나사렛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꿈속에서라도 만나기를 소원하였던 예수님이 지나 가신다니 꿈이냐? 생시냐? 하면서 예수님을 목청을 돋우어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못 들으신 척 그대로 지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는데 바디매오는 더욱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부르짖었습니다.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은 가시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하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들은 이 바디매오의 기적의 사건을 통하여 바디매오가 눈을 뜬 것도 중요하지만 바디매오를 통하여 우리들 자신을 돌아다보며 우리가 오늘 고쳐야 할 고질적인 믿음의 병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함께 은혜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1. 먼저 바디매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詳考해 보겠습니다.
(1) 바디매오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소경은 눈을 볼 수 없는 장애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습니다. 약 7만 명의 맹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책망하셨습니다.
(겔12:2)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
(막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예>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구름이 끼고 안개만 끼면 눈 뜬 장님이 되어 기계에만 의존하고 비행을 한다고 합니다. 미국을 출발하여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가 인천 공항 상공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계기판만을 드려다 보아야 합니다. 이때 관제탑에서 연락이 옵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1마일 떨어져 있으니 고도를 낮추시오 이제는 0.5마일 남았으니 75피드로 착륙을 시도하시오’ 그러나 조종사의 눈에는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가까스로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을 하였습니다. 마치 장님이 외나무다리 건너가는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2) 바디매오는 항상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았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선천적인 질병이나 장애는 부모의 죄요 후천적인 것은 자신의 죄라고 믿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갈 때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신 것을 보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멸시와 천대를 받았겠습니까?
(3) 바디매오는 구걸하여 먹고사는 거지였습니다.
구걸이란 다른 사람에게 돈이나 곡식 또는 물건 등을 얻기 위해 간청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다시피 구걸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서 본연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2. 거지의 속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거지들은 항상 더러운 옷을 입습니다.
평생 좋은 옷을 입지 못합니다. 있어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누가 적선을 하고 도와주겠습니까?
(2) 거지들은 항상 구걸을 해서 먹고삽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항상 자기가 노력하고 그 노력에서 얻어진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고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거지들은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기껏 한다는 것이 남에게 더러운 손을 벌리는 것 밖에 없습니다. 서울에 가면 서울역 부근과 지하철 정류장이라든가 지하도에 노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것과 빈둥빈둥 놀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항상 술에 취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큰 맘 먹고 천 원짜리 두어 장 쥐어주어 보세요 그러면 당장 그 돈 가지고 매점에 가서 소주 한 병 삽니다.
그러므로 거지들에게는 씨를 심고 가꾸고 거두는 노력이 없습니다. 마치 기생충처럼 남에게 의존이나 해서 살려고 합니다.
3. 그러면 누가 어떤 사람이 영적 거지인가
위에서 거지의 속성에 대하여 이미 말씀을 다 드렸기 때문에 벌써 짐작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일반 사회에 거지들이 있다면 신앙생활에도 거지가 있는데 이들이 바로 영적 거지입니다. 더 고상한 말로 표현한다면 『거룩한 거지』입니다. 그러면 누가 어떤 사람이 영적 거지이고 거룩한 거지인가를 잘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 즉 설교를 들으면 그 말씀을 나에게 적용(Application)을 하여야 합니다. 선포되는 설교 말씀이 모두 나와는 상관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만 연관이 된다고 생각을 한다면 이것은 극도의 이기주의입니다.
(1) 하나님과 멀어지면 거지가 됩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났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알고 돈 가지고 떠났다가 가졌던 돈 다 잃어버리고 정말 거지가 되어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뜻합니까? 아버지를 떠나 아버지와 멀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과 멀어진 것을 말합니다. 교회와 멀어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가진 돈 다 빼앗기고 잃어버리고 그리고 몸은 병들어 만신창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탕자와 같이 아버지께로 돌아만 오면 문제는 해결이 되는데 사람들은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올 줄을 모릅니다.그래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실 때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라고 하였습니다.
(2) 신앙생활에 게으른 사람이 영적 거지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거지들은 누가 일찍 일어나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아무 때나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잠자고 싶으면 잠을 잡니다. 그리고 배고프면 나가서 구걸을 합니다. 생활의 규칙이 없습니다. 사람은 규칙의 동물이며 사회성을 가진 집단적 동물이기 때문에 규칙이 있어야 하고 그 규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게으른 사람 보면 규칙이 없습니다. 주일날도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무슨 일이 있어서 다른데 가고 싶으면 가버립니다. 저녁예배도 이런 저런 핑계로 안 나옵니다. 새벽기도는 아예 다른 나라사람들이나 하는 것인 양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이 생각해 버립니다. 신앙생활에 규범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영적 거지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가 아니고 모두가 다 내 뜻대로 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고 말씀하였고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책망하실 때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라"(롬12:11) 고 하였고 솔로몬은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고 하였고 그 외에도 게으른 자에 대한 책망의 말씀이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6: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잠22: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잠26: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잠26: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3) 타의에 의해서 겨우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피동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마치 손수레처럼 누가 끌어다 놓으면 그 자리에 그냥 있고 또 누가 끌어오기 전에는 그 자리에 그냥 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름 사람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가자고 해야 겨우 손수레처럼 끌려 나오고 심지어는 아무리 끌어도 움직이지도 않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믿음가지고 무슨 신앙생활 한다고 하겠습니까? 이런 생활에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매사에 짜증만 나고 불평과 원망만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면 사탄이 얼씨구나 하고 틈을 탑니다. 그러면 환난이 닥쳐옵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할 때라”고 하였습니다.(벧전4:17) 사도 바울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4) 신앙의 구걸이나 하는 사람이 영적 거지입니다.
자기가 노력하지 않고 구걸하여 얻어먹는 것은 항상 부족하고 배가 고픕니다. 그러나 자기가 노력하여 얻은 결과는 항상 풍요롭고 넉넉하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자기가 노력하고 힘쓰고 애써서 은혜 받고 기쁨이 충만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남에게 얻어먹는 신세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서울역 앞의 수많은 노숙자들이 왜 그 생활을 청산하지 못합니까? 요즘 중소기업에는 일군이 없어서 기계를 모두 세워놓고 공장은 문을 닫고 불법으로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해서 겨우 돌아가고 있는데 어디 가서 일하면 왜 못삽니까? 그 생활에 중독이 되어서 그 생활을 떠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지 근성이 박히면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말세가 가까워 오니까 사람들의 마음은 강퍅할 대로 강퍅하여져서 아무리 권면하여도 듣지 않습니다. 행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계22:10-12)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거지가 아닙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다시는 거지의 누더기 옷을 입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사함 받고 이제는 세마포 예복을 입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임을 명심하고 자녀답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자기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영적 거지가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깊이 생각 할 것은 우리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교인이 아닙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라야 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영적 거지가 아닙니까? 여러분의 신앙이 거지 신앙이 아닙니까? ①하나님과 멀어지고 ②신앙생활에 게으른 사람 ③매사에 능동적으로 행하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서 겨우 움직이는 사람 ④신앙의 구걸이나 하는 사람은 아무리 자신은 아니라고 변명을 해도 어쩔 수 없이 영적 거지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계3:19-20)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열심을 내야 합니다. 주님이 지금 나의 심령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야 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성도가 되어서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그리고 한 가지 알려 드립니다. 저는 설교를 작성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 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런 사례가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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