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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의 기초단체인 구(區)가 이웃 동네와 차별화된 색깔을 갖기는 쉽지 않다. 모두 엇비슷한 이미지를 갖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주 남구에 그런 잣대를 댄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광주 남구는 역사와 문화가 튼실히 살아 있다.‘광주의 원형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내놓을 만한 볼거리와 자랑거리가 수두룩하다. 더욱이 ‘현대’라는 옷을 자연스럽게 입히는 시도까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잘도 어울려 빛을 내는 동네다.
광주 남구는 1995년 양림동·봉선동 등 17개 동으로 살림을 시작했다. 인구는 20만 9,000여 명, 면적은 61만㎢로 광산구와 북구에 이어 세 번째로 넓다. 하지만 개발제한구역이 39만㎢나 차지, 주거공간은 빽빽하다. 그중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봉선동은 ‘광주의 강남’ ‘광주의 8학군’ 등으로 불릴 만큼 시샘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 동네가 됐다. 우수 학원들이 밀집하면서 집값이 크게 상승하고, 문화·유통·상업 등 모든 갖춰지게 됐다. 한때 드나드는 도로가 좁아 불편했지만, 최근 제2순환도로가 훤히 뚫려 ‘도심 속의 오지’라는 시선도 벗게 됐다.
대비되는 곳이 양림동이다. 이곳은 남구의 모태다. 아직도 대부분 옛 모습의 주택이 즐비하다. 최근 광주천을 끼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긴 했지만 여전히 ‘저개발 상태’여서 광주의 진면목을 보는데 안성맞춤인 동네다. 전남 서남권으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주월동은 그 중심으로, 나들목 도심 하나가 형성돼 있다. 이곳은 국도 1호선(목포~신의주)이 광주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이룬다. 목포·해남·나주·영암 등을 고향으로 둔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기도 하다.
1 양림동 양림산 자락에 자리한 광주 최고 서양식 건물인 우일선 선교사 사택. <광주 남구 제공>
2 매년 10월에 열리는 효사랑 전국 마라톤대회. 효사랑은 남구의 살림 목표이다. <광주 남구 제공>
3 경전선폐선터를 쉼터로 꾸민 '푸른길공원'.철도를 따라 도심에 숲길이 조성됐다. <광주 남구 제공>
다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양림동이다. 광주천 건너편 계림동(동구)과 함께 광주의 대표적인 주거지역이었다. 무등산 아래서 이들 지역을 뺀 대부분이 논밭이었다는 기록만 봐도 양림동은 일찍부터 택지로 주목받았다. 지명은 버드나무가 많은 곳이라 ‘양림(楊林)’이라 붙여졌다고 전한다. 양림동은 바로 그 양림산 아래 둥지를 틀고 있다.
이 동네의 역사적 품위는 전통가옥 2채에서 우러나온다. 이장우 가옥이다. 동서뱡향을 비낀 축선을 따라 대문간, 곳간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 등이 이어져 있다. 안채가 광주시 민속자료 1호다. 1889년에 지어진 집이다. 인근 최승효 가옥은 1,000여 평 대지에 1920년대에 지어졌다. 그 중 안채는 정면 8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이다.압록강 근처에서 구해온 목재로 건립됐다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 두 가옥은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미술인 470명, 기업 370여 곳이 나서 이들 주택과 골목 등에서 역사와 현대가 함께 깃들어있는 각종 디자인 제품을 내걸어 주목을 받았다.
양림동은 20세기 초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들어와 정착한 동네다. 자연스럽게 ‘광주의 예루살렘’ ‘서양촌’으로 불리며 서양식 교육·복지·의료·예술 활동의 중심지가 됐다. 광주기독병원, 호남신학대, 네덜란드 양식으로 지어진 수피아여고 등 개화기 건축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호남신학대 캠퍼스 안에는 호남지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22명의 묘역이 조성돼 있어 순례지가 되고 있다.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인 우일선(Wilson) 선교사 사택(1908년)은 광주시기념물 15호다. 1898년 들어와 활동한 오웬목사 기념관도 네덜란드 풍으로 지어져 보존되고 있다.
사직단이 있는 사직동은 광주시내에서 가장 고색창연한 곳이다.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는 사직단이 수풀이 우거진 사직공원에 조성돼 있다. 한 때 동물원이 있었다. 정상에는 광주시내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팔각정이 있다. 일제 때 신사가 있던 곳을 새롭게 꾸민 광주공원은 광주시의 제1호 공원이다. 일본인들이 본국과 만주·몽골·대만 등에서 가지각색의 나무를 옮겨 심어놓아 희귀한 수종들이 밀집돼 있다.서울의 파고다공원처럼 노인들이 머물며 쉬는 곳으로 변했다. 평일 오후나 주말에 글 읽은 소리가 가득한 광주향교가 있다.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교과서에 올라 있는 시인 김현승, 김수복이 이곳에서 살며 시심을 일궜고, 소설가 문순태도 이곳에서 민중성 높은 글감을 공글렸다. 드라마 작가 조소혜, ‘사평역에서’를 쓴 시인 곽재구도 살았다.
양림동·사직동 등의 역사문화자원에 매력을 느낀 탐방객들이 줄지어 찾고 있다. 매달 둘째·넷째 토요일에는 교육과학기술부와 남구가 함께 ‘광주근대역사문화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할 만큼 성황이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로 3년째다. 오전 10시부터 두 코스로 걷는다. 다문화가정 주부의 영어해설코너도 있고, 문화해설사가 따른다. 이장우·최승효 가옥에서 ‘다도예절체험교실’도 연다.
광주시와 남구는 양림동 일대 20만㎡에 역사문화마을 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 총 사업비 200억 원을 들여 2013년 말까지 완공한다. 옛 경전선 철길이 지나는 곳을 ‘푸른길 공원’으로 꾸민 것도 환호를 낳고 있다. 광주천~백운동로터리~동성중까지 4.1㎞ 구간에 느티나무·동백나무·향나무 등 1만 8,000그루로 숲길을 냈으며, 곳곳에 야생화를 심고 공연장을 만들었다. 봄·여름·가을까지 풍성한 음악회·전시회 등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도심 속에서 보는 가을단풍도 절경을 자아낸다.봉선동 뒤편 제석산 등산로와 주월동 금당산 등산로는 뒷동산처럼 부담없이 오를 수 있다. 쓰레기 매립지를 2만여㎡ 쉼터로 복원 유안공원, 제2순환도로 너머 진월지구에 들어선 호수공원도 산책로로 각광받고 있다.
정율성((1914~1976)이 화두다. 그는 광주 남구가 낳은 걸출한 항일운동가이자 중국 최고 인민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그는 ‘중국의 아리랑’이라 불리는 ‘옌안송’을 비롯, 가곡·합창·동요·영화음악 등 모두 360여 곡을 남겼다. 그가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은 ‘중국인민해방군가’가 됐다. 해방 후에는 북한으로 건너가 ‘북한 현대음악’의 기초를 닦아준 인물이기도 하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순안공항에 내린 김대중 대통령을 맞은 음악도 그가 작곡한 ‘조선의용군 행진곡’이었다. 그는 지금껏 ‘빨간 딱지’가 붙어 국내에선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광주 남구청이 2005년 중국 문화부와 함께 ‘정율성 국제음악제’를 열면서 ‘금기의 벽’을 깼다. 매년 열리는 음악회는 중국 CCTV가 중국 전역에 중계한다.이런 인연으로 주 광주중국총영사관(gwangju.kr.china-embassy.org)이 2007년 8월 월산4동 대남로 큰길에서 문을 열었다. 광주와 전남·북, 제주 등 4개 지역 주민들의 비자발급업무를 맡는다. 서울과 부산까지 가서 볼 일을 광주에서 단 하루 만에 해결하게 된 셈이다.
광주가 낳은 중국인민음악대부 정율성을 기리는 음악제. 이를 계기로 광주와 중국도시들 사이의 문화교류사업이 활발히 펼쳐지고있다.
<광주 정율성 국제음악제 제공>
광주 남구엔 이색 살림 목표 하나가 들어 있다. ‘효·사랑’이다. 세대간에 막혀 있는 대화의 벽을 ‘효’로 낮추고, 이웃 사이에도 ‘사랑’이 흐릴 수 있도록 하는 시책이 수두룩하다. 사회적 건강 수준을 높여보겠다는 의도다. 매월 8일을 ‘효사랑의 날’로 정해 주변을 살피고, 전국 처음으로 초등학생 인정교과서 ‘효사랑 생활’을 펴내 배우게 하고 있다.지난해 6월 문을 연 국내 최대 규모의 노인복지타운은 남구 이미지를 드높인 호재가 됐다. 노대동 땅 10만 1,067㎡에 연건평 2만 266㎡ 규모로 6년 여간 공사 끝에 완공했다. 수영장·골프연습장 등을 비롯, 탁구·당구·게이트볼·노래방·댄스교실·외국어·그림·서예·웃음치료 등 124가지 활동 프로그램이 매일 진행되고 있다. 하루 평균 4,000명 이상, 등록회원만도 3만 명이 넘는다. 전체 5개 노선에 셔틀버스가 다니고, 점심값만 있으면 하루종일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시설이 갖춰져 있다. 어른들이 대규모로 모여 즐기는 자체가 국제적인 관광거리가 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중국노인 1만여 명이 오기로 관광계약을 맺었다.
‘맛의 고장’의 지위를 살려 김치를 산업화하는 사업이 속도 있게 추진되고 있다. 농식품부가 임암동 효천지구내 2만 1,294㎡에 세계김치연구소를 10월 착공한다. 2011년 말까지 완공하는 이 연구소는 450억 원이 들어간다. 김치 맛의 표준화와 과학화를 이뤄내 국제적인 명품으로 키우기 위한 국가차원의 전략이다.
송하동에 들어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CGI(컴퓨터 형성 이미지) 센터는 기대를 부풀게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착공한 이 시설은 내년 6월까지 340억 원을 들여 9,289㎡ 부지에 11층(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로 짓는다. 문화콘텐츠 산업의 핵심기술인 이 기술을 활용한 프로젝트 제작과 공급 기능을 맡는다. 대성그룹이 투자한다. 2005년 문을 열고 드라마 ‘구미오 외전’ 등을 찍은 효사랑영상스튜디오, 지난달 동구 옛 광주세무서 자리에서 개관한 영상복합문화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14년 완공) 등과 함께 어울려 광주 영상문화를 주도해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는길
자동차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광주시내로 진입한 후 동광주 나들목으로 나온 후 제2순환도로를 타고 봉선동 터널로 들어오면 남구청을 다다를 수 있다. 버스로는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구 광천동 광주종합버스터미널까지 3시간 30분 걸린다. 택시를 타고 10분거리다. 기차는 광주역까지 15분, 송정역까지 25분 걸린다. KTX는 2시간 40분, 새마을 기차는 4시간30분 각각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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