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루블화가 국제유가의 폭락으로 폭락세를 면치 못했다. 루블화는 9일 국제외환시장에서 하루만에 달러당 6루블이 뛴 달러당 73.47루블을 기록했다. 러시아에서 100달러를 루블로 환전할 경우, 600루블을 더 받는다는 뜻이다. 600루블이면 현지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돈이고, 한달짜리 스마트폰 유심도 500루블에 불과하다.
현지 경제전문지 코메르산트는 "유가가 루블화를 끌어내렸다"고 썼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유가 전쟁'과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이 러시아로 번진 것이지만, 직접적으로는 국제유가의 하락이 루블화의 가치를 떨어뜨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루블화는 9일 국제외환시장(Forex)에서 달러당 73.47루블, 유로화당 83.77루블까지 치솟았다(가치 하락). 달러당 환율이 73루블을 넘어선 건 지난 2016년 3월 이후 처음이다. 루블화는 장중 한때 달러당 75루블, 유로당 85루블을 넘어서기도 했다.
러시아 외환시장은 '여성의 날' 연휴로 이날 문을 열지 않았다. 10일 개장 이후 러시아 외환시장도 국제외환시장과 같은 흐름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이날 긴급 경제관련 회의를 소집, 국제유가 흐름과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노박 에너지 장관은 국제유가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여전히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은 유가가 배럴당 25~30달러 선까지 떨어지더라도 그동안 쌓아놓은 국부펀드 자금으로 재정운영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도 러시아 예산은 배럴당 42.4달러(러시아 우랄산 원유 가격)를 기준으로 산정된 상태다.
하지만 루블화의 폭락장세는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직면한 경제난을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그동안 안정세를 보여온 소비물가도 일정 수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달러당 64달러 선을 유지해온 루블화는, 지난달 말 러시아의 석유 감산 합의 거부 소식이 전해지면서 65달러선으로 올라서더니, 지난 주말(7일) 최종적인 합의 실패 소식이 전해지자 67~68루블로 뛰었다. 그리고 이날 개장하자마자 70루블을 돌파하면서 75루블까지 치솟았다. 다행히 달러당 73달러선에서 Forex는 폐장했지만, 유가가 추가 하락할 경우 루블화는 달러당 80루블까지 뛸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루블화 폭락에는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화 매입 중단' 발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중앙은행은 이날 "국제원유시장의 갑작스런 혼돈 상황에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통화당국의 향후 조치를 미리 알린다"는 배경 설명과 함께 "앞으로 30일동안 국내시장에서 외화 매입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중앙은행은 그러나 금융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안정성 유지를 위한 추가 대책을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요 러시아 에너지 기업들의 주가도 추락했다.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티의 주가는 22.5%,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은 15.4%, 러시아 최대 민영 가스회사 '노바텍'과 민영 석유회사 '루코일'의 주가는 각각 11.1%와 17.3% 내려 앉았다.